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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의 기적, "밤새 자동차 1500대가 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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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의 기적, "밤새 자동차 1500대가 사라졌어요!"

[인터뷰] 염태영 수원시장의 '생태 교통' 실험

한국에서 '환경' 혹은 '생태' 얘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 언급하는 곳이 있다. 바로 독일 남부 프라이부르크의 보봉(Vauban) 마을이다.

프라이부르크 시내에서 3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보봉 마을은 '차 없는 마을'로 유명하다. 주민은 보봉 외곽에 있는 주차장에 자동차를 놓고서, 가능한 한 마을에서는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한다. 물론 시내와 연결된 트램(노면 전차)은 마을의 주택 단지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운행한다. 평소에는 자동차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더 편하다.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할 것 없이 지난 10년간 여럿이 보봉 마을을 다녀왔다. 하지만 정작 한국에서 '차 없는 마을'을 만들어볼 생각은 감히 누구도 하지 못했다. 고작 1년 중 하루 이틀, 엄청난 비용의 행사를 개최하면서 시내 한 구석을 '차 없는 거리'로 만드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수원에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수원시 한복판 약 34만 제곱미터 면적의 행궁동이 9월 한 달간 '차 없는 마을'로 변한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 바로 옆에 위치한 행궁동은 인구 4300명에, 약 1500대의 자동차가 등록되어 있다. 그런데 9월 1일 새벽부터 이 행궁동에서 자동차가 마법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한 달. 주거, 상업 지역이 혼재된 행궁동은 한 달간 보봉 마을 못지않은 생태 마을로 변신했다. 통행량이 많았던 행궁동의 2차선 도로에는 자동차 대신에 자전거, 스쿠터 등이 오갔다. 밤낮 안 가리고 자동차가 점거하던 골목길은 아이들 또 '차 없는 마을'을 구경 온 100만 방문객의 놀이터로 변했다.

'세계 생태 교통 축제'의 이름으로 한 달간 진행된 이 기적 같은 일은 수원시가 발의하고, 행궁동 주민을 비롯한 수원 시민이 적극적으로 호응하면서 성사됐다. <프레시안>은 세계 생태 교통 축제의 폐막일인 10월 1일,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차 없는 마을'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친 염태영 수원시장을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수원시청에서 만났다.


▲ 염태영 수원시장.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한 달간 큰일을 치르느라 고생이 많았다. 세계 생태 교통 축제가 오늘 폐막했는데, 자평하면?

염태영 : 대성공이었다. 한 달간 전 세계 45개국 95개 도시 대표를 비롯해 약 100만 명의 국내외 관람객이 찾아와 생태 교통을 체험했다. 수원 시민 또 행궁동을 방문한 관람객이 '자동차' 중심에서 '사람' 중심의 교통이 무엇인지 또 미래 도시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프레시안 : 수원시에서 한 달간 행궁동 전체를 '차 없는 마을'로 만든다는 얘기를 듣고서 귀를 의심했었다. 내년(2014년) 선거를 앞둔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하기 힘든 실험이다.

염태영 : 당장의 인기에 연연하면 당연히 무모한 시도였다. 이번 시도를 미리 접한 많은 이들이 '과연 될까' 하는 걱정을 했었다. 솔직히 말하면, 스스로도 불안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축제가 시작되기 전날 밤, 행궁동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골목마다 주차되어 있던 차량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모습을 보았다. 가슴이 뭉클했다.

프레시안 : 행궁동 주민의 참여가 없었더라면 성사되기 어려운 실험이었다.

염태영 : 그렇다. 이번 실험이 성공리에 끝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동력은 바로 행궁동 주민의 참여였다. 실제로 수원시를 방문한 세계 각국의 도시 관계자, 교통 전문가도 행궁동의 차 없는 마을 실험에 놀라며 환호를 보냈다. 특히 다들 행궁동 주민의 자발적 참여가 인상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번 세계 생태 교통 축제를 공동 추진한 세계 75개국 1250개 도시의 네트워크 ICLEI(International Council for Local Environment Initiative)의 오토 짐머만 전 사무총장의 감상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는 8월 31일 밤 자동차가 모조리 빠져나간 행궁동을 보면서 "소름이 끼쳤다"며 "전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고백했다. (웃음)

프레시안 : 지난 2년간 이번 실험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프레시안(손문상)
염태영 : 솔직히 말하면, 이번 실험은 역발상의 축제였다. 자발적 불편을 축제로 승화시킨 것이나, 생태 교통이라는 국내에서 생소한 개념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나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개인적으로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며 두 번, 세 번, 네 번 주민과 눈높이를 맞추며 주민의 참여를 이끈 수원시 공무원의 헌신이 고맙고 또 고맙다.

프레시안 : 한 달간의 실험이 끝나자, 이번에는 차 없는 마을을 유지하자는 여론도 있다.

염태영 : 이번 실험의 또 다른 성과다. 행궁동 주민 또 수원 시민 상당수가 차 없는 마을을 유지해 인사동을 뛰어 넘는 세계적인 명품 동네를 수원에 만들어보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좋은 아이디어다. 다만 이번 실험을 최초로 발의한 것은 수원시지만, 행궁동을 차 없는 마을로 유지하는 일은 전적으로 지역 주민의 의지에 맡길 생각이다.

프라이부르크의 보봉 마을도 시에서 강제로 차 없는 마을로 만든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이 자체적으로 차 없는 마을로 만들어가지 않았나? 행궁동 주민들 스스로 걷고 싶어서 찾아오는 동네 또 덩달아서 골목 경제도 살아나는 명품 동네를 만들 가장 지혜로운 방법을 찾으리라고 확신한다. 주민이 결정하면, 시에서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

▲ 자동차가 사라진 행궁동 굴목은 어린이의 놀이터, 연인의 데이트 장소로 변했다. ⓒ수원시청

ⓒ수원시청

프레시안 : 이번 실험은 도시 재생 사업의 새로운 사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인상적이었다.

염태영 : 행궁동은 수원의 대표적인 '구도심' 지역이다. 노후 시설, 도시 기반 시설 부족에 인구 감소, 고령화 등이 겹친 우리나라 구도심의 문제가 행궁동에 집약되어 있었다. (노인 인구 전체 48.5%, 세입자 비율 전체 79%, 노후 건물 전체 67.1%) 더구나 바로 옆에 세계 문화유산을 둔 탓에 주민들은 문화재 보호 구역, 고도 제한 등 각종 규제까지 감수해야 했다.

수원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공간인 행궁동에 어떻게 활력을 불어넣을 것인가, 이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생태 교통과의 연계를 찾았다. 자동차 없는 마을로 운영해 걷고 싶은 또 찾고 싶은 행궁동을 만들어간다면 전면 철거-재개발과 같은 토건 중심이 아닌 또 다른 도시 재생 사업이 가능하리라 확신했다.

이번 실험이 성공하면서 이런 새로운 도시 재생 사업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행궁동에 130억 원을 지원해 도로를 보행자 중심으로 개선하고, 노후 시설을 정비했다.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서 오랫동안 규제를 감수해야 했고, 또 수원 시민을 대표해서 한 달간 자동차 없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행궁동에 이 정도 지원은 당연한 것이라는 공감대가 시민들 사이에 있었다.

그 결과 행궁동은 9월 한 달간 100만 명에 가까운 인파가 찾는 서울 인사동을 방불케 하는 특수를 누렸다. 행궁동 인근의 수원천변 상가, 지동 시장도 모처럼 손님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지역 주민이 활력이 생긴 행궁동의 새로운 모습에 자부심을 가지게 된 것도 큰 성과다. 행궁동의 실험을 염두에 두고, 이런 새로운 방식의 원도심 재생 사업을 계속 추진할 것이다.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환경운동가로서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이런 무모한 실험을 밀어붙이지는 못했으리라 생각된다. 생태 교통이 왜 중요한가?

염태영 : 전 세계적으로 차량의 급속한 증가로 온실 기체 배출 증가, 대기오염, 교통 혼잡, 시민 건강 악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런 문제에 맞서는 강력한 해결책이 바로 '생태 교통(Eco mobility)'이다. 더 나아가 생태 교통은 기후 변화에 대처하면서 석유 고갈 시대에 대처하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 교통이다.

프레시안 : 생태 교통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9월 한 달간 행궁동에서는 다양한 생태 교통의 예들이 선보였다.

염태영 : 가장 대표적인 건 걷기다. (웃음) 여기에 더해서 자전거가 있다. 이번에 행궁동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개발된 용도에 따른 다양한 자전거가 선보였다. 또 전기로 구동하는 스쿠터도 자동차를 대신할 차세대 탈 것으로 자리매김할 예정인데, 이번에 행궁동에서 독일 네덜란드 등에서 개발된 전기 스쿠터의 현주소를 볼 수 있었다.

자전거 얘기가 나왔으니까 좀 더 덧붙이면, 이미 수원시에는 297킬로미터의 자전거 도로가 설치돼 있다. 앞으로도 자전거 도로망을 늘려서 시내 어디서나 자전거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자전거 보관대, 자전거 횡단도 등도 확충해 자전거 도로가 전시 행정이 되는 걸 막겠다.

ⓒ수원시청

프레시안 : 생태 교통이 자리를 잡으려면 자가용보다 편리한 대중교통이 필수적이다.

염태영 : 맞다. 앞으로 수원시가 대중교통 중심의 생태 교통을 선도할 계획이다. 우선 대중교통 전용 지구를 조성하기로 했다. 대중교통 전용 지구는 승용차를 포함한 일반 차량의 진입을 금지시키고, 버스와 노면 전차 등의 대중교통만 통행을 허용하는 구역이다. 2014년 말까지 수원시 전역을 염두에 두고 계획을 마련한다.

수원시는 2012년부터 '나누미카'라고 이름 붙인 '카 셰어링(car sharing)' 사업도 진행 중이다. 카 셰어링 사업은 자가용을 소유하지 않고서 필요할 때마다 자동차를 공유해서 사용하는 제도다. 현재 철도역, 관공서 등 30개소에 전용 주차 면적을 확보하고 있다. 2012년 말 현재 1184명이 회원으로 등록되어 자동차를 나눠 쓴다.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서울시는 기존의 지하철에 더해서 경전철 건설을 두고서 논란이 많다. 수원시도 노면 전차를 도입할 예정인데….

염태영 : 대중교통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 자체는 문제될 게 없다. 다만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인지 또 적절한 것인지를 치밀하게 따지는 게 필요할 뿐이다. 수원시는 2017년 운행을 목표로 노면 전차(수원도시철도 1호선)를 도입하기로 했다. 수원역에서 팔달문, 화성행궁, 수원야구장, 장안구청까지 총 6킬로미터 구간을 국비 등 총 1677억 원을 들여 건설할 예정이다.

이들 구간은 수원역과 수원 화성, 수원야구장 등을 연결함으로써 많은 교통 수요를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 노면 전차 노선은 구도심을 관통하고 있어서, 노선 주변의 교통을 편리하게 하고, 유동 인구를 발생시켜 쇠퇴한 구도심을 활성화시키는 데도 긍정적으로 기여하리라 생각한다. 현재 2015년 착공을 목표로 행정 절차를 진행 중이다.

새로운 노면 전차와 기존의 지하철 등을 연결하고, 철도가 운행되지 않는 방향으로는 간선 버스를 신설할 계획이다. 이런 대중교통 인프라가 제자리를 잡으면 수원시는 자동차 중심에서 사람 중심의 교통을 가진 품격 있는 도시로 발전할 것이다. 이번 세계 생태 교통 축제는 그 첫걸음이다.

ⓒ수원시청

프레시안 : 수원과 같은 도시를 생태 교통의 중심지로 일구려면 한두 해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지방자치단체장이 바뀌면 전임 시장, 군수가 했던 걸 모조리 부정하는 풍토도 있는데….

염태영 : 당연히 4년으로는 부족하다. 이번에 '차 없는 마을'의 기적을 만들어낸 수원 시민이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번 세계 생태 교통 축제의 성공을 계기로 앞으로 시민들이 수원을 생태 교통의 메카로 만드는데 나선다면, 성심성의껏 내 힘을 보태겠다. 그게 지금까지 나를 지지해준 수원 시민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프레시안 : 수원이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는 생태 미래 도시로 거듭나길 기원한다.

염태영 : 수원이 어떻게 변하는지 기대해 달라.

염태영 수원시장은…

ⓒ프레시안(손문상)
염태영 시장은 수원에서 나고 자란 '수원 토박이'다. 또래 세대가 서울에서 터를 닦을 때, 고향에서 지역 환경운동을 시작했다. 1994년 수원환경운동센터를 창립하고, 수원의제21(21세기수원만들기협의회), 경기의제21(푸른경기21실천협의회) 등 지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기획하고, 실천하는데 청춘을 바쳤다.

염태영 시장은 2006년 지방 선거에서 수원시장으로 출마해 한차례 고배를 마신 후, 2010년 수원시장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사람이 반가운 휴먼 시티 수원' 시정 슬로건을 바탕으로 마을 만들기, 주민 참여 예산제, 도시계획시민계획단, 시민배심원제 도입 등 시람 중심의 시정 철학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염태영 시장은 환경 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수원의 젖줄 수원천을 시민 참여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하였으며, 시민의 의사 결정을 시정에 적극 반영하는 시민 참여형의 모델을 실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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