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18년이 흘렀다. 전국의 영화광들은 이제 가을만 시작되면 가슴을 두근거리며 부산국제영화제의 초청작 목록을 들여다보는 게 일상이 되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명실상부 아시아 영화의 중심적인 위치를 점했고, 이곳에서 처음 상영되는 아시아 영화들이 이후 세계 각국 영화제로 초청받는다. 아시아의 감독들 대부분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고 싶어하는 것도 당연한 결과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제 한국의 영화 축제의 대명사로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도시로 거듭나려는 부산의 구심점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영상물등급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 게임물관리위원회 등 각종 영화 및 콘텐츠 관련 기관들이 부산으로 자리를 이미 옮겼거나 곧 옮길 예정이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시네마테크부산, 영화의 전당 등의 기존 행사 및 시설에 이같은 기관들이 합쳐지면서 영화계를 아우르는 행정이 이곳에서 이뤄지게 된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높은 인기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더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을 전문적으로 방영하는 케이블 TV까지 오픈할 예정이다. 영화인들의 눈이 부산으로 집중되는 이유다.
10월 3일부터 10월 12일까지 열리는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스케줄을 비집고 1시간 동안 그를 만나, 부산국제영화제와 영화의 도시로서의 부산에 관한 청사진을 들었다. 아래는 이용관 집행위원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편집자>
▲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부산국제영화제(조정수) |
프레시안 : 부산국제영화제가 올해로 18회째를 맞이했다. 이번 영화제의 가장 큰 특징을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까.
이용관 : 이번 영화제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예가 개막작인 키엔체 노르부 감독의 <바라 : 축복>과 폐막작인 김동현 감독의 <만찬>이다. 부탄 영화 <바라 : 축복>을 개막작으로 선정한다는 건 상당히 모험적인 시도였지만, 굉장히 좋은 반응들이 뒤따랐다. 예상이 적중했다는 것에 안도와 자부심을 느낀다.
또한 한국의 독립영화가 폐막작으로 선정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만찬>은 가족멜로드라마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할 만큼 뛰어난 작품이다. 최근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르네상스가 왔다고들 얘기하지만, 그 평가는 상업영화계의 일부에 집중되었을 뿐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지금이 독립영화의 새로운 전성기라고 볼 수 있다. 올해에만 100편의 독립영화가 제작됐다. 상업영화만큼 많은 독립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활발한 제작만큼이나 독립영화를 그만큼 활발하게 배급하고 상영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으니 그게 안타깝다. 우리라도 적극적으로 한국 독립영화를 소개하자는 게 모토였고, 올해 영화제가 그 계획을 풀가동하는 장이 되었다.
부산영화제가 대체 뭐하는 곳인가? 한마디로 아시아 영화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영화제이며, 아시아 영화인들이 모여서 서로 소통하고 정을 나누는 축제의 장이다. 그걸 영화인들끼리만 알아서 진행하는 게 아니라, 관객이 같이 참여한다는 데 의의를 둔다. 관객 참여율로만 보면 부산국제영화제가 세계 1위일 것이다. 해외 감독들이 올 때마다 깜짝 놀라는 게 우리 영화제의 GV다. 기본 3, 40분씩 진행되고, 어떨 때에는 1시간씩 걸리기도 한다. 그 자리에서 토론이 끝나지 않으면 영화관 바깥 광장으로까지 좇아와서 감독과 대화하는 관객들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나. 내 영화를 어떻게 이렇게 진지하게 대해 주냐면서, 수많은 해외영화인들이 한국 관객들의 열정과 진지함에 감탄한다.
또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영화제 관람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꿨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이번엔 우리가 관객들에게 그만큼의 기쁨을 돌려주고 싶었다. 영화의 전당 건물 1층이 원래는 게스트 라운지였는데, 올해부터 이걸 관객 라운지로 바꿨다. 1층의 모든 것을 관객들에게 내주었고, 대신 게스트 공간은 2, 3층으로 자리를 바꿨다. 표를 구하겠다고 새벽부터 뙤약볕을 참으며 줄서서 기다리는 관객의 모습이 안타까웠기 때문에, 올해부터 1층을 내줌으로써 최대한의 편의를 도모하려 했다.
▲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 <만찬>. ⓒ김동현 |
프레시안 :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서 완전히 자리 잡았다. 한중일 정도를 제외하면 아시아의 영화산업이 아무래도 영어권만한 규모가 될 수 없는 열악한 상황이다 보니, 어떻게 보면 부산을 거쳐 서구 영화제를 순회하는 아시아 영화들의 코스가 정착된 느낌이다. 아시아 최대 영화제로서의 정체성의 고민은 계속 이어지고 있을 것 같다.
이용관 :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영화의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는 계획은 사실 성공하기 어려운 개념이었지만, 그게 현실이 됐고 앞으로도 가능하다고 본다. 부산이라는 플랫폼의 성공 요인은 두 가지인데, 정치적인 측면과 한국 관객의 특수성이다.
먼저 정치적인 측면을 보자. 이런 규모의 영화제는 아시아의 여타 지역에서는 만들어질 수가 없다. 북경국제영화제가 부산을 벤치마킹하여 창설된 지 3년째인데, 여전히 상황이 쉽지 않다. 중국 당국의 검열 때문이다. 규모 면으로는 물론 부산국제영화제가 열악하다. 북경국제영화제 예산은 900억 원이고 우리는 100억 원이다. 우린 영화제 배너를 하나 걸 때도 허덕이는데, 북경국제영화제 기간에 북경을 가면 도시 전역에 배너가 쫙 깔려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북경국제영화제에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영화제는 해방구이자 열정이 표출되는 장이어야 하는데, 중국의 검열 때문에 영화들을 자유롭게 만들거나 초청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 특유의 중화주의 때문에, 내리누르는 권위에 반발하는 문화예술인들이 부산국제영화제를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도쿄국제영화제도 부산과 비교할 수 없다. 도쿄국제영화제 위원장이 요다 다쓰미, 가가커뮤니케이션즈와 에이벡스 사장이었던 분이다. <스타워즈>의 주요 인물 이름을 이 사람 이름에서 따왔을 정도로 세계영화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이 분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와서는 "할 말이 없다"고 감탄했을 정도다. 도교국제영화제의 취약점은 경쟁영화제라는 점이다. 아시아에서 아직은 경쟁영화제가 성공할 수 없다. 경쟁영화제에 작품을 수급하려면 월드 프리미어야 하는 동시에 상당한 화제를 모을 만한 작품성이라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그러려면 세계 3대 영화제인 칸, 베를린, 베니스에 가지 누가 굳이 도쿄국제영화제를 선택하겠나. 영화제는 문화제국주의가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는 장이다. 그러다보니 도쿄국제영화제는 '내가 사온 영화'를 상영하고 거기에 상을 준다. 그건 국제영화제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행위다.
▲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부산국제영화제(조정수) |
지금의 정치적·경제적 상황을 보더라도 한국이 아시아 쪽 벤치마킹 대상이기 때문에, 지금 젊은 세대들이 기성세대가 될 때쯤 아시아 전역은 경제적으로 크게 부흥할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계도 반응하게 된다. 아시아가 어마어마한 시장이 될 것이다. 그때쯤 되면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의 경쟁 영화제가 될 수도 있다.
우리의 철학이 영화제를 통해 실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보람을 느끼고 있고, 그 때문에 영화제에서 18년 동안 계속 일해왔다. 오히려 한국 정부가 그런 장점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한류 얘기를 계속 하는데, 부산국제영화제야말로 한류의 기지다. 영화제 예산은 자꾸 늘어나는데, 정부의 지원은 자꾸 줄어들고 있다. 옳지 않은 판단이라고 강력하게 말하고 싶다.
프레시안 : 부산국제영화제가 케이블 TV를 인수하여, 그 채널을 통해 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던 아시아 영화를 1년 내내 방영한다고 들었다. '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매우 좋은 돌파구라고 생각하는데, 현재 진행 상황은 어떤가.
이용관 : 영화의 전당부터 얘기해보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표를 구하는 분들이 극장마다 힘들게 돌아다니는 걸 보면서 이런 열정이 365일 지속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영화의 전당 건립을 추진했다. 다들 미쳤다고 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동안 세계 각국 영화제들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게, 국력이 있으면 문화력도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국가의 힘이라기보다는 관객의 힘이다. 한국도 그런 힘이 있기 때문에 부산국제영화제가 성공할 수 있었다. 영화의 전당은 2000억을 들여 지은 건물이다. 이걸 사업으로 생각한다면 망할 게 뻔하다. 하지만 난 이게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영화계의 명소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케이블 TV도 마찬가지다. 아시아 영화들을 영화제 기간에만 트는 게 너무 아까웠고, 이런 좋은 영화들을 1년 내내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방법론과 타이밍의 문제인데, 막상 이 계획을 발표하고 나니까 돈 문제가 시작됐다. 그래서 케이블 TV의 3년 치 프로그래밍이 완성되고 이 채널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펀드를 완성하기 전까진 오픈 안하겠다고 했다.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무조건 할 거다. 수익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다들 우려를 표하시는데,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내부의 철학이 미흡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처음 시작할 때처럼 내부에서 광적으로 매달려도 될까 말까인데 나 혼자 동동 구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3년 치 프로그래밍은 일단 오더를 내린 상태고, 이번 영화제가 끝나면 그에 필요한 펀드를 만드는 데 집중할 것이다.
케이블 TV와 영화의 전당 등을 잘 활용하면, 부산국제영화제라는 플랫폼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아시아 각국이 더 가깝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전략적으로는 한류의 힘을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고 다문화시대의 훈련도 가능하며 또 많은 이들이 아시아 영화를 보면서 인문학적 측면에서 토론하는 문화를 만들 수 있다. 지금은 그 일차적인 단계인데, 전국 각 지역의 문화센터 등에 작게라도 100석짜리 영화관이 있다고 한다면, 거기서 하루에 한편이라도 아시아 영화들을 틀자는 협상을 진행 중이다. 찾아가는 영화관의 새로운 개념을 시작하려는 것이다. 이런 계획을 차근차근 실현하면 자연스럽게 케이블 TV로도 넘어갈 수 있다. 내년 정도에 정식 오픈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바라 : 축복>. ⓒ키엔체 노르부 |
프레시안 : 영상물등급위원회라든가 영화진흥위원회, 게임물관리위원회 등 각종 영화 및 콘텐츠 관련 기관들이 부산으로 이전했거나 이전할 예정이다. 부산 자체가 영화의 도시로 정착하고 있는데, 현재 논의 중인 부산에 국제 영상 콘텐츠 밸리를 구축하는 사업과 영화제 간의 긴밀한 유대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이용관 : 일단 영화진흥위원회는 10월 25일에 내려올 예정이고 게임물관리위원회도 비슷한 시기에 오게 된다. 국제 영상 콘텐츠 밸리의 경우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상황이었다. 곧 기획재정부가 예비 타당성 조사에 착수 예정인데, 실현될 것 같다.
부산은 400만 인구가 사는 도시이지만 예술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곳이다. 여기에 기적이 일어나는 중이다. 영화 관객의 질이 어마어마하게 높아졌고, 이제 다른 쪽에선 영화뿐 아니라 연극, 뮤지컬, 미술 등의 다른 예술 분야로도 그 가능성이 확산될 수 있을지 모색 중이다. 인근의 울산과 창원, 마산까지 합치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제가 출범하고 난 뒤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프레시안 : 국내 영화제들이 서로의 차별성을 강조하다보니, 외부자 입장에선 오히려 아시아의 연대보다 국내의 연대가 상대적으로 좀 약하다는 느낌도 든다. 특히 부산국제영화제는 맏형이자 가장 큰 규모의 영화제다보니 항상 그 행보에 주목이 쏠리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선 어떤 고민이 있을지 궁금하다.
이용관 : 처음부터 고민이 많았다. 다른 영화제들, 즉 전주국제영화제나 부천국제영화제 등의 태동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컨설팅 역할을 해왔으니까. 지금은 각 영화제들이 각자의 자리를 잡은 상태지만, 문제는 이것이다. 재정적인 어려움, 그리고 정치적인 어려움. 각 도시의 시장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정책이 도입되는 것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부산시의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모토가 좋은 모델인데, 부산은 영화제 개최에 있어 유관기관 협조가 가장 잘 되는 지역으로 꼽을 수 있다. 물론 우리도 재정적 어려움은 여전하다. 재단법인이 아니고 자율 기부 단체니까 상대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정치적 압력을 안 받으니 우리 생각대로 영화제를 꾸려나갈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복이다.
영화제가 많은 건 좋은 일이다. 그걸 전시적으로,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하는 세력 때문에 문제가 생길 따름이다.
프레시안 : 돌이켜보면 부산국제영화제가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던 첫 순간이 1997년에 열린 2회 때의 '김기영 회고전'이었다. 물론 이제 와서는 한국 영화의 역사를 정리하는 영상자료원의 역할이 강화되었지만, 부산국제영화제만이 할 수 있는 한국 영화 자체의 강력한 이슈 발굴을 다시 목격하고 싶은 욕심도 든다.
이용관 : 인위적으로 욕심대로만 만들 순 없다.(웃음) 한국 영화사를 새로 쓰기 위한 장치들이 필요하다. 우리가 우리나라 감독을 뽐내는 포장을 하고 새롭게 조명하지 않으면 영화제를 여는 이유가 뭐냐, 그런 생각으로 터뜨린 첫 번째 기획이 바로 김기영 특별전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가장 큰 획 중의 하나가 한국 영화 회고전이 되어버린 순간이다. 몇 년 전에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좌파 세력이네 뭐네 하고 비판하던 사람들도 요즘은 노골적으로 "난 언제 해 줄 거야"라고 물어보기도 한다.(웃음)
올해 영화제의 '임권택 전작전'은 작정하고 터뜨렸다. 원 없이 펼쳐봤다. 현재 영상자료원에 남아있는 임권택 감독님의 예전 영화들을 복구하여 71편 전부를 상영하는 회고전을 꾸린 건 획기적인 사건이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영화의 전당이라는 전용관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제보다 10일 앞당겨 9월 23일부터 영화의 전당에서 먼저 '임권택 전작전'을 시작할 수 있었다. 어느 나라도 이렇게 큰 영화제 전용관을 가진 곳이 없다. 칸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도 작년에 허남식 부산 시장을 처음 만나자마자 건넨 말이, 칸의 시장과 파리의 시장한테 전용관 짓자고 말 좀 해달라는 것이었다.(웃음)
그런 전용관이 있기 때문에, 이런 큰 이벤트를 벌일 수 있고 사람들이 반겨준다는 게 정말 기쁘다. 전국에서 마니아들이 몰려들어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들을 본다. 멍석을 깔아주면 된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지금까지 김기영 감독님, 정창화 감독님, 임권택 감독님 세 번의 히트를 기록했는데, 또 나올 수 있을까. 솔직히 어렵다. '꺼리'로 만들어서 포장하는 것도, 때가 있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그래도 계속 발굴해야지.
▲ 임권택 감독이 꼽은 '아끼는 영화' 중 한편인 1991년 작 <개벽>. ⓒ춘우영화 |
프레시안 : 새삼스럽지만 부산국제영화제의 시작을 돌이켜보고 싶다. 1995년 당신을 비롯하여 김지석 교수, 전양준 평론가 등이 서울 프라자 호텔 커피숍에서 '프라자 회동'을 주관한 끝에 직접 김동호 위원장을 섭외하고 추대했다고 들었다. '프라자 회동'의 주역들은 흔히 '문화원 세대'라고 불리는 1970~80년대 영화광 출신이다. 그리고 1995년은 한국 영화계의 르네상스가 막 시작된 무렵이고, <키노>와 <씨네21> 등의 영화 전문지가 출현한 시기이자 영화 탄생 100주년이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한국 영화계의 지각변동을 함께 해온 세대인데, 일단 그 당시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국제영화제를 만들자고 결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이용관 : 우린 아무래도 강단파였기 때문에 비평 활동을 활성화하려던 게 1차적 목표였다. 1980년대 우리끼리 영화잡지를 만들었을 때 3000부가 팔려나갔다. 그때부터 재미가 들렸다. 출판도 해보고 다른 저널도 만들어보고, 그러다가 망했다. 집 한 채를 까먹은 셈이다.(웃음) 그래도 재미있으니까, 소위 말해서 작당하는 재미가 없었다면 계속 이렇게 올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우리 말고도 영화제를 만들어보려는 움직임들이 있었다. 광주비엔날레의 한 섹션으로 활용하자는 얘기가 있었고, 서울에서도 영화제를 만들어보자는 얘기가 있었다. 동시적으로 이런 얘기들이 터져 나온 건 시대적인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민주화물결이 지나가고 난 뒤 경제적으로 먹고 살 만해지니까 문화운동, 영화운동이 대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도 그중 일부였다.
그렇다면 왜 부산이냐? 원래는 서울에서 하려고 했다. 하지만 사공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부산으로 내려왔다. 처음엔 이렇게 거창한 규모의 영화제를 하려던 건 아니었다. 내가 처음 가본 영화제가 페사로국제영화제다. 이탈리아의 작고 아름다운 해변 도시인데, 그곳의 분위기를 목격하고 나니 우리도 이 정도 규모로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사로처럼 우리도 해운대나 광안리 바닷가에 술 먹는 영화제를 열면,(웃음) 거기에 관객이 3만에서 5만 명 정도 오면 대히트 아니겠냐 싶었다. 그래서 김동호라는 멋진 수장을 모시게 됐고 부산시와 협업을 거친 뒤 정신없이 불완전한 상태에서 영화제를 열게 됐다. 의전차량도 없었고, 모범택시 100대를 섭외해서 무조건 공항에서 대기했다가 게스트들을 모셔오라는 식으로 시작했다. 영화제 시작하기 직전, 우리끼리 모여서 내기를 했다. 과연 몇 명의 관객이 올까? 나는 3만 명, 제일 많이 얘기한 사람이 7만 명을 얘기했다. 결과를 두고 술내기를 했는데, 관객이 총 18만 명이 넘었다. 우리 기분이 어땠겠나. 이런 갈증이 시대적 흐름이었다.
지자체가 막 부흥하던 시기니까 그 이후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영화제, 광주국제영화제 등이 생겨났다. 운이 좋아서 우리가 먼저 치고 나갔기 때문에 영화제의 맏형 격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러다보니 영화제 규모를 점점 키워나가야 했다. 영화제의 철학도 중요하지만, 그게 아무리 훌륭하다 한들 관객과 만나지 않으면 실패한다는 일종의 절대적인 룰이 생겨버린 거다.
18년이 지나고 나니까 이젠 우리만의 정체성을 뚜렷이 견지하면서 관객들을 끌어들여도 함께 놀아줄 거란 믿음이 생겼다. 아까 얘기한 부탄 영화 <바라 : 축복>을 개막작으로 선정한 것에 대해서도, 기자들은 너무 대담한 결정 아니었냐고 놀라워하던데 역시 관객들은 좋아해주었다. 영화운동을 시작한 사람으로서, 평생 운이 너무 좋았다.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기적적으로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영화제의 성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초심을 잃지 않으면 잘 되겠구나라는 확신이 생겼다. 우리가 잘 해서 잘 된 게 아니라, 관객의 수준이 그만큼 높은 것이다.
프레시안 : 김동호 전 위원장의 뒤를 이어 올해로 3년 째 위원장의 임무를 맡았다. 사실 당신은 영화제의 위원장이기에 앞서 영화과 교수이고 영화 평론가이며 동시에 영화광이기도 하다. 영화제에서 행정 업무에 치중하다보면 정작 거기서 트는 영화를 볼 시간은 전무하다고 봐야 한다. 샘나지 않는가.(웃음)
▲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부산국제영화제(조정수) |
그동안 강단에서 배웠던 것이라면, 학생들이 좋아하는 선생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 내가 뭔가 해줄 수 있다는 게 보람이다. 그게 낙이니까 견디지. 영화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 마찬가지다. 문화적 마인드에 미쳐있는 워커홀릭들이다. 이건 돈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이수원 선생, 김지석 선생은 심지어 교수직도 때려치우고 와서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한다. 1년 내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거의 접할 기회가 없는 남미와 아프리카 영화들까지 발굴해온다. 다들 미쳤다.(웃음)
영화제는 결국 서비스다. 그런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많은 관객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본다는 게, 영화를 보는 것만큼 큰 쾌락이다. 운동의 기쁨이 뭔가, 움직이고 확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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