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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판 무덤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갈 건가!

[프레시안 books] 앤드루 바세비치의 <워싱턴 룰>

미국, 재정적자 속의 낭비적 군사정책

미국은 지금 심각한 재정적자를 겪고 있다. 수치로 말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도 낭비적인 군사비 지출은 멈추지 않고 있다. 시민 생활의 향상을 위한 예산 편성은 점차 요원해지고, 미국인들의 미래는 역동성을 잃고 있는 중이다. 오바마의 집권 2기는 2008년 당시 경제위기의 파국적 상황에서는 일정하게 벗어났지만, 그렇다고 기세 좋게 뭔가 뚫려나가는 상태도 아니다.

어디 그뿐인가? "아시아로의 복귀(Pivot to Asia)"로 번역되고 있는 미국의 아시아 패권체제 안정화 정책은 중국과의 대치 전선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미국에게 군사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결국 이러한 부담은 한국을 포함한 미국의 동맹국가들에게 지속적으로 전가될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런 조건 아래 대중국 포위망의 군사적 성격이 강화되는 방향이 수정될 전망은 보이지 않고, 우리의 평화체제 수립은 거듭 지연되고 있다. 이 모든 사태의 중심에는, 미국의 세계적 군사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이라크 전쟁을 종식시키겠다고 천명한 오바마의 집권기에 와서도, 여전히 이렇게 미국의 군사적 패권체제의 변화를 내다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와 같은 상황은 당장에 일본의 군사주의 노선 강화로 이어지고 있고, 한반도 정세의 경색 지속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우리 내부적으로는 "적"이 존속하고 있는 분단 대결주의가 정치를 지배함으로써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고, 통일에 대한 담론은 날이 갈수록 멸종해가고 있는 중이다. 통일을 위한 군사적 적대관계 해소를 위한 노력에 가치를 두자는 언론조차 거의 없다시피 하다.

워싱턴 룰, 자멸적 선택일 뿐

앤드루 바세비치는 그의 책 <워싱턴 룰>(박인규 옮김, 오월의봄 펴냄)을 통해, 미국의 군사체제가 극복되지 않는 한 미국 자신은 물론이고 지구적 차원의 진정한 평화도 끊임없이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단정한다.

"오늘날 미국의 정치인들은, 미국이 여전히 총과 버터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듯이 위선을 떨면서 거대한 규모의 사기극을 자행하고 있다. (…) 미국은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갚을 걱정을 하지 않고 얼마든지 빌려 쓸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말미암아 적자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으며, 그 결과 파산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워싱턴이 지금과 같은 파멸적인 군사·재정 정책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이후 모든 사태의 책임은 미국인이 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 <워싱턴 룰>(앤드루 바세비치 지음, 박인규 옮김, 오월의봄 펴냄). ⓒ오월의봄
그가 말하고 있는 "워싱턴 룰"이란 대통령을 비롯해서 군수산업과 국방부, 비밀 정보 기구, 미국의 정당 그리고 언론과 미국 시민들의 생각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단어의 핵심은, 미국이 압도적인 군사력만 가지고 있으면 세계를 미국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사고와 실제 시스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저자는 ①미국이 전 세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식의 신조, ② 이를 책임 있게 감당하기 위한 미 군사력의 세계적 주둔, ③이러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힘을 세계적으로 구현하는 것, ④필요하면 언제든 개입할 수 있다는 정책과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바세비치가 말하는 "워싱턴 룰"은 이를 실현해나가기 위한 원칙과 군사주의 이데올로기, 그리고 이와 연관된 세력 전체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국가 안보에 대한 핵심적 질문 던질 수 있어야

바세비치의 주장에서 주목되는 것은, 미국의 이러한 군사주의 정책과 시스템은 2001년 9.11 이후 갑자기 등장한 것이거나 냉전 이후의 정책적 특징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냉전이 종식되어 미국의 대외정책이 혼선에 빠진 적도 없다고 그는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해 쿠바와 필리핀을 식민지로 장악한 이래, 본질적으로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은 미국의 국가적 시스템이자 생존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 시민들이 국가 안보의 근본에 관한 가장 핵심적인 질문을 던질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에 따른 재앙의 부담은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이 지게 될 뿐"이라고 바세비치는 개탄한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려면 "먼저 우리가 어찌하여 현재의 상황에 이르렀는가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미국이 세계적 제국을 건설한 때로부터 베트남 전쟁을 거쳐 이라크 전쟁에 이르는 과정을 면밀히 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1947년 생으로 웨스트포인트를 나와 23년간 미 육군 장교로 복무한 보수주의자였던 그가 미국 외교사를 전공하고 미국의 군사정책과 시스템 전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성토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도 흥미로우며 그의 주장에 신뢰를 높인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자신이 "권위에 복종하는 삶을 살아"왔으며 "통상적인 지혜에 확신을 느껴"온 인물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권력의 진실을 하나하나 알아가게 되면서, "권력의 행사에는 조작이 따르기 마련이고 권력은 솔직함과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냉전이 시작되는 단계에서 미 중앙정보국(CIA)과 전략공군사령부(SAC)의 주도자였던 앨런 덜레스와 커티스 르메이같은 인물이 미국의 군사주의 체제 골간을 완성했다면, 맥조지 번디, 맥스웰 테일러, 맥나마라는 1965년 케네디 정권 당시 베트남 전쟁의 수행을 통해 제국의 군사력을 최대로 강화했다. 이후 베트남 전쟁 패배로 인해 미 지상군 해외 파병이 어려워지고 이에 대한 미국인들의 우려가 이른바 '베트남 신드롬(syndrome)'으로 나타나면서, 이를 해소하고 다시 군사 행동의 확대·강화를 추진하게 되는데, 그 중심에는 2001년 아들 부시 정권 때의 네오콘 세력인 딕 체니, 도널드 럼스펠드, 폴 월포위츠 등이 포진해 있다.

'영구전쟁'과 미국의 전쟁사

물론 바세비치가 이 인물들을 근거로 내세워 미국의 군사 시스템 작동을 설명하려 한 것은 아니다. 이들로 대변되고 있는 "워싱턴 룰"이 얼마나 강력한 구조적 관성을 가지고 시기마다 미국이 직면한 위험을 강조하고 있는지, 그러면서 군사 시스템을 미국 대외정책의 핵심으로 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말하자면 전쟁이 끊임없이 발명되면서 미국을 "영구전쟁"의 상태로 내몰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구전쟁"의 개념은 바세비치에 앞서서, 타계한 미국의 작가이자 문명비평가인 고어 비달이 대중화시킨 용어이다. 미국이 단지 "긴 전쟁(long war)"을 하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미국이라는 국가가 존속하는 한 전쟁을 통해 국가를 유지하고 세계를 지배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는 비판이다. 이 말은 미국이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쟁을 수행한 나라라는 사실로도 뒷받침된다.

미국의 전쟁 정책과 그 역사에 대해 신랄한 문제를 제기한 이들은 적지 않다. 스콧 니어링의 경우 20세기 초반에 이미 미국의 군사주의와 제국주의가 결합한 현실에 대해 맹공을 했으며, 바세비치의 책에서도 잠깐 등장하는 리처드 바넷은 미국의 엘리트 계급이 미국 시민들을 지속적으로 기만하면서 실패가 자명한 전쟁을 밀고 나가 미국의 힘을 소진시킨다고 폭로해 왔다. 특히 리처드 바넷은 미국이 제3세계 군부 정권을 육성하면서 미국의 군사 시스템을 지구화해온 것에 대해 일찍이 치밀한 분석을 했던 바 있다.

아프가니스탄 헬만드주 살람바자르 마을 인근에서 반군 세력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미군 해병대원들의 모습. ⓒAP=연합뉴스

대중들의 책임은 없는가?

바세비치의 <워싱턴 룰>은 미국의 대외 정책사를 핵심적으로 요약, 대중적으로 이해하기 쉽도록 쓴 저작이면서 동시에 시스템 저지에 무력했던 대중의 책임을 함께 거론하는 책이다. 그는 "'저들이' 잘못된 국가 안보 정책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해서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을 허용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당연히 이는 권력의 책임에 대한 비판이 전제된 시민들의 책임론이다.

<미국 민중사>(1,2권, 유강은 옮김, 이후 펴냄)를 비롯해 미국의 군사주의 정책에 지속적인 비판을 했던 하워드 진도 시민들의 의식이 깨어나 권력의 기만을 거부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미국의 방향 수정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들보다 앞서서 <미국 외교의 비극>을 통해 1898년 미국의 쿠바 식민지화와 베트남 전쟁에 대한 비판을 가했던 미국의 역사학자 윌리엄 애플만 역시, 미국이라는 제국의 세계적 폭력 체제를 해체하기 위한 시민들의 각성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런데 바세비치가 주목한 대로, "워싱턴 룰은 미국의 힘과 영향력이 절정에 이르렀을 즈음에 만들어졌다. 그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미국은 1945년경 획득한 권위와 호의를 이제 거의 다 소진했다." 그리고 이러한 워싱턴 룰은 미국 자신에게도 파멸적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 종속돼 있는 동아시아, 특히 한반도는 이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인가?

이제 우리는?

<경향신문> 워싱턴 특파원을 지내고 국제 문제에 전착해오면서 바세비치의 책을 깔끔하게 번역한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박인규 이사장은, 옮긴이의 말에서 동아시아 미래를 위해 다음과 같은 제언을 내놓는다.

"바세비치의 지적대로 향후 동아시아에서는 안정과 평화보다 갈등과 경쟁이 높아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제어하기 위해 일본, 한국 등과 군사 협력을 강화하려 한다. 문제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각국이 자체 역량으로 평화와 안정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안정과 관련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의 역할, 그리고 남북관계의 중요성이다. (…)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는 우선 남북이 화해하고 함께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하여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한반도 평화협정과 북미 수교들을 통해 북한의 군사 외교적 고립을 해소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 바세비치가 이 책에서 미국의 군사주의를 비판했던 것처럼 오직 군사력에 의존해 평화와 안보를 확보하려는 것은 헛된 꿈에 불과하다."


이제 "워싱턴 룰"은 낡은 시대의 폐기되어야 할 구조물이다. 그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동아시아는 항상적 긴장에 시달릴 것이며 만일의 경우 군사적 충돌에 따른 폐허를 예상해야 할지 모른다. 인류사에서 제국 자신이 그러한 군사 시스템을 알아서 정리한 적은 없다. 인류역사상 최강국으로 등장했던 미국 자신이 스스로 "워싱턴 룰"을 포기할 가능성은 더더군다나 없다. 그러나 "워싱턴 룰"의 지속은 미국 자신과 우리들 모두에게 재앙일 뿐이다. 이 틀에 매달려 특권을 누려온 세력들에게만 단기적 이익을 가져다 줄 뿐이며, 대다수에게는 희생이 강요되는 폭력임이 명백하다.

미국이 지난 반세기 동안 파놓은 무덤 속으로 우리가 걸어 들어갈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일본의 우경화를 비판하면서도, 그걸 구조적으로 보장해주고 있는 "워싱턴 룰"에 묶여 일본 수송기를 우리 전투기로 호위하는 군사훈련 따위를 해야 할 까닭도 없다. 우리의 선택은 너무도 자명하다. "워싱턴 룰"을 넘어서는 평화체제의 건설이다. 동아시아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마땅히 선택해야 할 진로다.

"워싱턴 룰"은 평화와 생명의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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