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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내란' 정말로 꿈꿨다면, 국가엔 오히려 '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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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내란' 정말로 꿈꿨다면, 국가엔 오히려 '호재'

[철학자의 서재] 톨스토이의 <국가는 폭력이다>

폭력적 국가와 그에 대한 폭력적 상상력

최근 십 수 년간 국정원이 이렇게 세간의 관심의 중심이 되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라는 슬로건이 무색할 정도로 요즘 국정원은 불철주야 아니 '불철음양'으로 분주해 보인다. 국가가 지니는 거대한 힘은 시민들에게 대개 추상적으로 다가오지만 유독 정보기관만은 다르다. 지난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현실적이고 눈에 보이는 '국가'이다.

홉스와 같은 사회계약론자들은 국가를 거대한 리바이어던으로, 무지막지한 힘을 소유한 괴물로 그린다. 여기서 국가는 모든 강제력을 독점하고, 이를 통해 내부의 다른 모든 강제력을 차단시킴으로서 독보적인 자신의 권위를 성립시킨다. 정보기관은 이러한 국가가 지닌 독점적인 강제력의 상징으로 자리해왔다.

현대 국가는 '국가가 없는 경우 발생하는 혼란과 폭력'에 대한 상상력을 자신의 기반으로 삼는다. '인간은 인간에 대한 늑대다'라는 전제를 가진 이 상상력은 국가에 대한 무분별한 권한을 준다. 그리고 이런 권한을 받은 국가는 개인 간의 다툼뿐만 아니라 자유, 민주와 같은 시민적 가치에 대해서도 통제를 가하기도 한다. 따라서 독점적인 강제력을 보장받은 국가는 시민사회와 지속적인 긴장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이번 국정원 선거개입사건도 그 협의가 사실로 밝혀진다면 시민적 가치에 대한 국가권력의 도발이었다고 볼 수 있다.

거대한 국가의 폭력성은 최근에 나타난 문제가 아니다. 근대국가가 건설되고 시민사회가 형성되면서 국가의 폭력에 대한 문제제기는 끊임없이 나타났고 많은 저항과 혁명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국가의 폭력에 적극적인 저항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국가의 폭력을 저지할만한 강제력을 획득하는 것, 즉 폭력을 수단으로 한 저항이다. 이번 이석기 의원 사건의 진상이 이석기 의원의 머릿속에 있는지 국정원의 머릿속에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국가 폭력에 대한 폭력에 의한 저항은 가장 원초적인 저항이어 왔음은 분명하다.

폭력적 국가와 그에 대한 폭력적 상상력은 시대가 가진 폭력성을 잘 보여준다. 시대가 유신으로 또 전근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듯 느껴지다 보니 이에 대한 반감도 자연히 이런 폭력을 반대하던 옛 사람이 떠오른다. 국가의 폭력과 그에 대한 폭력적 저항을 비판하면서 평화로운 삶을 꿈꾼 톨스토이가 바로 그다. 톨스토이는 조금 몽상적으로 무정부 사회를 꿈꾸지만 시대와 국가의 폭력을 버티지 못하고 가슴으로 세상에 내놓은 그의 목소리는 비록 낡은 서재 속의 이야기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는 다시 한 번 꺼내보게 된다.

국가는 집중되고 조직된 폭력을 대변한다. -간디

▲ <국가는 폭력이다>(레프 톨스토이 지음, 조윤정 옮김, 달팽이 펴냄). ⓒ달팽이
<바보 이반>으로 잘 알려진 톨스토이는 이 소설에서처럼 군대와 권력이 아닌 타인과의 나눔 그리고 도덕적 혁명을 통해 평화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1901년 노벨상을 거부한 톨스토이는 소설이외에도 국가와 권력의 폭력성을 폭로하는 에세이들을 많이 발표했다. 이 에세이들에서 톨스토이는 조금 낭만적이긴 하지만 진실하게 폭력을 거부하고 평화를 꿈꿨다. <국가는 폭력이다>(조윤정 옮김, 달팽이 펴냄)는 이러한 에세이를 모아 번역한 책이다.

이 책에서 톨스토이는 국가에 대해 <아라비안나이트>를 인용하면서 국가의 성질에 대해 말한다.

"무인도에 어느 여행자가 던져졌는데 그는 시냇가에서 앙상한 다리로 땅 위에 앉아 있는 한 작은 노인을 발견했다. 노인은 여행자에게 자신을 어깨 위에 걸머메고 시내를 건너달라고 부탁했다. 여행자는 좋다고 했다. 하지만 노인은 어깨에 앉자마자 다리로 여행자의 목을 감고 풀어주려 하지 않았다. 여행자를 꼼짝 못하게 만든 노인은 이리저리 원하는 곳으로 그를 끌고 다녔고, 나무의 과일을 따먹기도 했지만, 그를 짊어지고 있는 여행자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으며, 온갖 방법으로 그를 혹사시켰다."

톨스토이는 이것이 국가에게 병력과 돈을 제공한 국민들한테 일어난 일이라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국가 폭력은 한 몸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그 폭력을 비판받을 때에는 외부의 적을 핑계로 애국심을 자극한다고 한다.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했다면 그래서 시민들의 민주적 의사결정을 침해했다면 이것은 명백한 국가에 의한 폭력이다. 그러나 그 폭력이 비판받자 톨스토이 사후 100여년이 지난 동양의 작은 나라는 그의 말 그대로 외부의 적을 핑계로 애국심을 자극하고 있다.

도덕은 애국심 앞에 침묵하고 애국심 밖에서 활발해진다

폭력과 테러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은 생명을 보존하고자하는 인간의 자연스런 행위다. 국가는 위험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가장 큰 강제력을 획득하고 시민들은 그것을 용인한다. 그러나 톨스토이가 보기에는 국가권력이 있으면 폭력과 악인은 사라져야하지만 이들은 오래전부터 국가 내에서도 근절되지 않았다. 국가권력에 복종하면 폭력과 살해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된다고 하지만 오히려 일상적 폭력과 전쟁과 같은 생명의 위험에 내몰릴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사실 국가기관의 폭력은 서로에 대한 개인의 폭력보다 다소 분명하지 않은 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투쟁이 아니라 복종에 의해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권력 기관의 폭력은 엄연히 존재하고 거의 언제나 커져가기 마련이다. 과거 '남산의 매질'이나 현재 '오피스텔의 키보드질'은 형식만 다른 국가폭력의 한 모습이다. 톨스토이는 국가의 심각한 폭력성 중 하나는 국가폭력을 실행하는 이들로 하여금 비인간화적인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국정원 사건'이 사실일지라도 그 요원은 도덕적 자책감이나 회의감이 들 가능성은 적다. 왜냐면 이는 애국심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도덕은 애국심 앞에 침묵하고 애국심 밖에서 활발해진다.

그러나 이는 저항에서도 마찬가지다. 톨스토이는 폭력적 국가에 대한 저항은 당연하지만 폭력적 저항은 국가폭력을 강화시키는 구실을 제공할 뿐이라고 한다. 국정원 사건과 이석기 의원의 사건은 직접적 연관은 없다. 그리고 이석기 의원이 민간인 100여명을 이끌고 통신, 유류시설을 파괴할 것이라는 주장에 회의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항일유격대 정신에 과한 공감을 가지고 국가폭력에 대한 적극적 저항 노선을 펼쳐온 것도 사실이다. 폭력적 국가에 대해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폭력적 국가가 위기에 놓였을 때 그 위기를 타개할 근거를 마련해준다. 국정원 사건으로 국가의 부도덕성, 폭력성을 탓하는 사람들에게 국가는 이석기 의원 사건을 말하며 '니들도 똑같아'라고하며 안정을 취하려 한다. 톨스토이는 당시 사회주의자와 아나키스트에게 행해졌던 테러들이 더욱 악랄해지는 것과 합법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은 이 테러들이 폭력적 저항과 조응하여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톨스토이는 저항적 애국심 역시 상황을 더욱 안 좋게 만들뿐이며, 고난의 구원은 애국심이라는 낡아빠진 개념과 애국심에 의존하는 국가에 대한 복종에서 당신 스스로를 해방시킬 때 그리고 당신이 보다 높은 개념, 즉 민족 간 또는 민족의 형제애적 결합이라는 개념의 영역으로 대담하게 들어설 때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새로운 시대를 찾는 방법은 새로운 폭력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폭력을 없애는 노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종교적, 사색적 색채가 강한 톨스토이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현실성이 떨어질 수 있다. 그는 농촌을 통해서만 진정한 평화가 온다고도 하고, 의식만 바꾸면 사회적 관계도 개선 될 수 있다고도 한다. 전원생활에 대한 낭만을 가진 톨스토이는 자신도 자신의 말이 현실을 못 쫓아갈 수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이미 폭력이 우리 일상에 너무 깊이 연루되어 폭력의 고리를 피하기 힘들지라도 폭력에 참여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비록 우리가 폭력의 세기에 살고 있지만 폭력의 공범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국가 폭력을 종결시킬 수 있는 혁명은 영혼의 갱생, 즉 도덕혁명이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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