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무궁화호 여객전무가 출발 신호를 기관사에게 잘못 전달했다는 것, 그리고 이를 이중 삼중으로 제어할 안전 조치가 작동하지 않았거나 안전 측선 등의 장치가 애초 미비했다는 것 등으로 알려지고 있다. 본인의 과실 부분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로 인해 인사상의 불이익뿐 아니라 심리적 타격도 감수해야 할 당사자들의 피해도 가능한 한 최소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쨌든 이 사고의 교훈을 잘 정리하는 것이 중요할 터인데, 사고가 터지자마자 언론과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에서 나오는 반응을 보니, 안전 불감증이 부른 인재라거나 코레일의 무사 안일한 경영의 문제라는 식의 일반적인 이야기들 외에 눈길을 끄는 것들이 있었다. 철도를 민영화했다면 더 큰 사고가 났을 것이라는 주장과 철도노동조합 때문에 사고가 빚어졌다는, 맥락에 있어 상반된 주장이 그것이다.
지금 박근혜 정부가 민영화를 우선 추진하는 것은 수서발 KTX 구간이므로 이 사고를 민영화와 바로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도 있지만, 우선 민영화된 철도라면 이러한 사고가 더 자주 더 크게 일어날 개연성이 다분하다. 민영화로 인해 운영 주체가 많아지고 각 주체에게 이윤 창출, 즉 비용 절감의 필요성이 높아진다면 비용에 해당하는 안전장치는 소홀해 질 것이고 유사시 정보 공유와 협력 체제도 원활하지 않게 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2000년 10월의 하트필드 사고를 위시하여 민영화 이후 수건의 사고를 통해 50여 명의 사망자를 낸 영국 철도의 사례는 영국인이 별나게 무사 안일한 것이 아니라 바로 민영화가 문제임을 보여주었다. 물론 더욱 강화된 안전장치와 관리 감독 제도로 문제점을 보충하면 된다고 약속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결국 추가적인 지원금과 추가적인 조직을 의미할 것이며 그럼에도 돌발사고시 대응의 곤란은 여전히 남는다.
다음으로, 민영화를 가시적인 소유 구조나 지배 구조의 문제로 국한하지 않고, 단기적 시장 가치 극대화를 위한 효율화나 업무와 사업 분할 확대까지로 넓게 볼 경우, 이는 한국 철도에서도 이미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코레일은 수익성 개선이라는 명분으로 인력 감축과 유지 보수 업무의 아웃소싱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정비 점검 주기가 늘어나고, 1인 승무제가 확대되며, 무궁화호 지선 운행이 감축되고 직원이 없는 무인역이 늘어나는 것 모두가 이러한 흐름 속에 있다.
철도노조 때문에 사고가 일어났다는 주장은 노조의 업무 순환 전보 거부 투쟁으로 인해 대체 인력으로 투입된 여객전무가 경험이 부족하여 신호를 잘못 보냈다는 것을 논리로 든다. 그런데 실은 이것 역시 앞의 문제들과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철도노조는 코레일이 추진하는 승무 요원과 지상 요원의 순환 근무가 업무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철도의 안전에도 위험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경고하기 위해 휴일 근무 거부 투쟁을 했던 것이었다. 얼마간의 노동비용 절감과 노동조합 순치를 위해 도입하려는 강제 순환 전보의 문제점은 이야기하지 않고 노동조합의 정당한 대항 행동을 사고의 원인으로 거론하는 것은 핑계거리로는 매우 궁색하기만 하다.
대구역 사고를 통해 우리가 함께 더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한국 철도의 가치는 무엇이고, 우리가 그것을 충분히 끌어내고 또 향유하고 있는가 하는 부분이라고 본다. 한국 철도는 총 연장거리가 3500킬로미터에도 미치지 못함에도 우리의 일상에서 이미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위상으로 인해 한국 철도는 민영화 시도와 그 저지 투쟁에서도 첨예한 전선이 되고 있다. 기후 변화와 화석 에너지 고갈의 시대에 철도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지만, 철도 교통이 갖는 특성으로 인한 사회적 가치도 더욱 환기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이런 측면이다.
나는 철도 노동자들이 다른 부문이나 회사의 노동조합원보다도 '착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고, 그들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런 느낌을 다시 확인한다.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해보면, 철도 노동자들이 지방 출신자와 격오지 등 지방 근무자가 많아 시골 인심의 일부처럼 원래 순박하고 욕심이 적은 편이라는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궤도의 물리적 특성상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철도 노동자들은 기관차를 조종하든, 승객을 보살피든, 검수와 정비를 하든, 신호를 관리하든 간에 이 연결망을 자연스레 인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떠오른다. 전남 여수에서 평생을 근무하는 철도 노동자라도 용산, 부산, 태백의 노선과 차량들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그는 알고 있다. 이는 공장의 출입문과 제품 출하장의 경계 바깥으로는 관심이 가기 어려운 제조업 공장의 노동 과정이나 가치 사슬과도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앞서의 이유에서 이어지는 것으로, 철도 노동자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그렇지 못할 때 큰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 역시 컨베이어벨트 위를 흐르는 조립품과 부속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넓어야 공정 하나를 넘어설 수 없는 노동과정의 범위와도 다른 차원이 있다.
그만큼 철도 노동자들은 생활상의 고충도 많았고, 그 척박함을 견뎌낸 뚝심으로 노동조합 민주화까지 이루어냈을 것이다. 도로는 전국을 거미줄처럼 엮어주는 것 같지만, 실은 자동차 단위로 개인들을 따로 떼어 놓는다. 그러나 철도는 사람들을, 승객으로 탄 사람과 승무원과 역무원들을 서로 연결시킨다. 철도의 수송 비중과 문화적 영향력이 클수록 그 나라는 더 연대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는 가설은 얼토당토않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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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은 "우리가 이렇게 돌아가는 곳도 이 열차의 또 다른 칸은 아닌가"라며 탄식하지만, "우리는 이 긴긴 터널 길을 실려 가는 희망 없는 하나의 짐짝들이어서는 안되"고, "우리는 이 평행선 궤도 위를 달려가는 끝끝내 지칠 줄 모르는 열차 그 자체는 결코 아니"라고 다짐했던 것이다.
그는 깜빡 잠의 꿈속에서라도, 1등석 표를 쥔 사람들 뿐 아니라 "매일처럼 이 열차를 기다리는 저 모든 사람들 그들 모두 아니 우리들 모두를 태우고", "아무도 단 한 사람도 내려서는 안 되지 마지막 역과 차량 기지를 지나" 그리하여 "열차와 함께 이 어둔 터널을 박차고" 거기까지 함께 나아가자고 노래했다.
그것이 철도와 열차의 본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 철도의 공공성과 사회적 가치도 철도 노동자와 우리들이 함께 발굴하고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철도노조가 준비하고 있는 민영화 저지 투쟁을 응원하며, 철도의 가치와 철도 노동자들의 착한 마음을 단지 코레일의 '고객'이 아닌 이용자이자 동료로서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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