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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받는 고양이, 슬럼가 청소년은 똑같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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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받는 고양이, 슬럼가 청소년은 똑같은 존재!

[프레시안 books] 피터 싱어의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행동하는 양심

청소년들의 역사의식이 없다고 해서 수능에서 한국사를 필수로 치르게 할 모양이다. 과연 시험을 보게 한다고 해서 없던 역사의식이 생길까? 역사 지식이 풍부한 사람을 역사의식이 깊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앎과 실천의 괴리 문제는 역사뿐만 아니라 여러 지적인 영역에서 생긴다. 논리적 또는 비판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시험들이 많고 나도 그런 시험 개발에 참여한 적이 있다. 과연 그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사람이 논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그 시험을 개발하면서도 항상 떠나지 않는다. 이른바 찍기의 신공을 발휘하는 문제풀이 기술자들이 다른 사람보다 논리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으니까.

아마 그런 고민은 윤리에서 가장 심각할 것이다. 어떤 행동이 윤리적인지 알면서도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윤리 선생이나 윤리학자가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면 다른 사람보다 몇 배는 더 비난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윤리 이론 연구자라고 하지 윤리학자라고 하지는 않는 꼼수를 부린다.)

▲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피터 싱어 지음, 김상우 옮김, 오월의봄 펴냄. ⓒ오월의봄
윤리학자 피터 싱어(이이는 앎과 실천을 일치시키므로 윤리학자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다)가 쓴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김상우 옮김, 오월의봄 펴냄)는 바로 윤리적 앎을 윤리적 실천으로 옮기는 동물운동가 헨리 스피라에 대한 평전이다. 그러니까 헨리 스피라는 뉴욕 대학교의 평생교육원에서 싱어의 강의를 듣고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내 생각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식은 머리에 집어넣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 방식은 그렇지 않다.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으면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121쪽)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이 책은 한 활동가가 어떤 식으로 양심을 행동으로 옮기는지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행동하는 윤리학'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원서 제목(Ethics into Action)이 이 책의 내용을 적절하게 나타낸다.

반면에 번역본 제목인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를 보고 이 책에 그 근거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 독자는 실망할 것이다. 그 주제는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 다른 저서 <동물해방>(김성한 옮김, 연암서가 펴냄)이나 <실천윤리학>(황경식·김성동 옮김, 연암서가 펴냄)을 통해 모든 동물이 평등한 이유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고 생각하고, 이 책에서는 그 생각을 어떻게 실천으로 옮기는지에만 집중하겠다는 것이 피터 싱어의 의도인 듯 하다. 번역본 제목이 이런 의도와 다르게 나온 것이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생각조차 낯서니까.

낮은 사람들과 함께 한 삶

스피라가 동물운동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건 40대 후반이었다. 그 이전의 경력도 동물운동가로서의 활동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동물운동가가 되기 이전까지의 삶을 기록한 1장 제목 '낮은 사람들과 함께 한 삶'이 그 관련성을 말해 준다.

스피라는 선원으로 일하면서 해운 노조에서 활동했는데 조합위원장의 전횡과 부패를 고발하여 노조의 민주화를 실현했다. 슬럼가의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 글쓰기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자존감을 높이게 했다. 그리고 사회주의노동당 당원으로서 당 기관지에 기사를 쓰거나 시위 현장을 방문하는 방식으로 흑인 시민권 운동을 도왔다. (여러 조합원들이 인종차별에 반대하기 위해 전세 낸 '자유의 기차'를 타고 워싱턴으로 모였는데, 일종의 희망버스다!) 또 연방수사국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하는 기사를 당 기관지에 연재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모든 동물이 평등한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낮은 사람들과 함께 한 삶'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소외된 조합원, 슬럼가의 학생들, 흑인들은 기본적인 권리도 챙기지 못한 사람들이다. 억압받고 착취 받은 그들 편에서 일한다는 것은 그들의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함께 투쟁한다는 뜻이다. 인간에겐 누구나 피곤하면 쉬고 싶고 자존감을 존중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런데 흑인이라는 이유로 버스에서 자리에 앉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런 기본적인 욕구를 침해한다. 1950년대 후반의 흑인 차별 반대 운동의 기화선이 된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은 그런 기본적인 권리를 찾기 위해 시작되었고 헨리 스피라도 노조원들을 적극 설득하여 그 운동에 동참하였다.

동물운동도 동물의 기본적인 욕구를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 동물에게는 자존감을 존중받고 싶은 욕구는 없지만 이유 없이 고통을 받고 싶지 않은 욕구는 있다. 동물이라고 해서 때리고 괴롭히는데 그것을 피하고 싶지 않겠는가? 스피라가 동물운동가가 되어 인간의 사소한 욕심을 위해 실험실이나 공장식 농장에서 고통 받으며 죽어가는 동물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런 기본적인 욕구를 존중해 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고통과 괴로움을 줄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는 것보다 중요한 동기부여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요?"(402쪽)라고 스피라는 겸손하게 말하지만, 그런 동기가 있다고 해서 다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결국 스피라의 삶은 평생을 억압받고 착취 받은 존재들 편에서 살아왔고, 그 존재가 소수자에서 동물로 확대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실천 가능한 운동 전략

▲ <동물해방>(피터 싱어 지음, 김성한 옮김, 연암서가 펴냄). ⓒ연암서가
앞서도 말했듯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잘못된 것이 있으면 행동을 통해서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강조한다. 저자 피터 싱어는 이 책이 요즘 절망적으로 퍼져 있는 두 가지 가정을 반박하는 사례로 쓰일 수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개인은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가정이고, 둘째는 '우리네 인생이 본질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가정'이다. 단순히 의무감이 아니라 즐겁게 일을 했으며("어제 끝내지 못한 일을 끝내고 싶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면, 훨씬 즐거운 인생일 것이라고 생각해요"(399쪽)), 실제로 수많은 변화를 가져왔던 스피라의 삶은 틀림없이 훌륭한 반박 사례일 것이다.

그런데 행동으로 옮기기만 하면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보여 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세상이 바뀌게 할 수 있는 실천 가능한 전략, 그것이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가 또 다른 메시지이다. 바로 이 점에서 인권운동가인 박래군 씨가 표4(뒤표지)에서 "동물 권리 운동을 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세상이 변하기를 바라는 이들이 반드시 보아야 할 실천지침서"라고 이 책을 추천한 이유일 것이다.

실천 가능한 운동 전략이란 어떤 것일까? 스피라가 동물운동가로 활동하기 전에도 물론 동물운동이 있었다. 예컨대 동물실험 반대 운동이 있었지만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구호만 외치고 모금하는 일만 반복되었다. 반대 단체의 기금은 늘어나지만 실험실에서 잔인하게 고통 받는 동물은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스피라는 그 원인을 "폐지하라! 전부가 아니면 전무를!"(124쪽)이라는 독선적인 운동 방법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목표로 삼을 만한 구체적인 실험을 찾아 거기에 집중하고, 조금씩 천천히 진척시켜 나가는 방법을 사용했다.

위에서 '이유 없이'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동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어떤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동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거나 실험을 하는 인간의 권리가 동물의 권리보다 우선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의 암이나 주요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의 동물실험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그런 동물실험까지 포함해서 모든 동물실험을 반대했다가는 비현실적인 사람으로 손가락질만 받을 것이다.

그래서 스피라는 실험의 목적이 아주 하찮고 괴상해서 누가 봐도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되는 실험을 선택한다. 국립보건원의 지원을 받아 미국자연사박물관에서 시행한 실험이 첫 번째 과녁이 되었는데, 고양이의 사지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잘라 보아서 그것이 고양이의 성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는 실험이다. 도대체 고양이의 눈이나 귀를 멀게 하거나 두뇌의 일부를 손상시킨 다음에 수고양이가 암고양이 대신에 토끼와 교배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공동체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과학 연구가 무슨 쓸모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반론이 나올 수도 있지만, 그런 고양이 연구의 대부분은 과학논문인용색인지수(SCI)의 통계를 보면 한 번도 인용되지 않았다.

스피라는 목표를 정한 다음, 박물관에 항의하고 박물관 앞에서 시위를 열고 신문에 반대 광고를 내고 박물관 후원자들에게 실상을 알리는 편지를 보내는 방식으로 반대 운동을 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에는 실험을 중단시켰다. 실험 대상이 우리에게 친한 반려동물인 고양이고, 그 실험은 아무 가치가 없어 보이고, 게다가 그런 실험에 국민의 세금이 이용된다는 점에서 고양이 실험을 첫 번째 투쟁 목표로 삼은 것은 뛰어난 전략이었다.

스피라의 운동 전략의 특징은 드레이즈 검사 항의 운동에서도 찾을 수 있다. 드레이즈 검사는 동물실험의 윤리 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대표적인 동물 실험으로, 토끼의 눈을 이용해서 화장품이나 생활용품의 안정성을 검사하는 것이다. 화장품을 토끼 눈에 비비면 당연히 토끼의 각막에 심각한 손상이 오고 토끼는 눈을 긁으며 도망치려고 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토끼에게 구속 장치를 입혀서 꼼짝 못하게 하고 금속집게로 눈을 항상 떠 있게 만든다. 우리 눈에 비눗방울이 조금이라도 들어갔을 때의 고통을 상상해 보라. 과연 화장품이나 주방 세제가 토끼에게 그만한 고통을 줄 만큼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일까?

대중들에게 호소력이 큰 공격 과녁을 잡은 것은 고양이 실험과 비슷한 전략이었지만, 여기서 주목할 것은 스피라가 기업들에게 드레이즈 검사를 즉각 중단하게 하는 것보다 대안을 개발하는 연구에 예산을 투입하도록 유도했다는 점이다. 화장품 회사에서 드레이즈 검사를 당장 중단하면 매년 1만 마리의 정도의 토끼가 생명을 구하겠지만, 의약품, 농약품, 화학제품을 개발하기 위한 드레이즈 검사를 받는 토끼는 여전히 희생되고, 그 분야는 화장품만큼 대중들의 동정과 분노를 일으키기 힘들기 때문이다.

스피라의 이러한 전략은 실험의 즉각적인 철폐를 요구하는 동물 운동의 다른 진영(누드 시위로 유명한 PETA가 대표적 단체이다)과 갈등을 빚었는데, 대안 연구는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음모이고 일종의 개량주의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변화는 조금씩 일어나는 것이지 한 번에 혁명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도덕적 순수성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고집하다가는 오히려 현 상태는 바뀌지 않으므로, 일부 동물이 고통을 겪는 현 상황을 바꾸도록 노력하고 장기적으로 동물 검사를 완벽하게 폐지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선하고 당신은 악하며, 당신을 교화하기 위해 한방 먹일 테다"(265쪽)와 같은 태도가 변화를 바라는 운동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실제로 여러 시민운동 단체들이 운동을 위한 운동을 하느라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스피라도 그런 우려를 보이는데, 그들이 화장품 기업들 몇 곳에 집착하는 것은 "항의운동을 하기에 편리하고 유명하기 때문이[고], 그런 다음 이러한 활동을 근거로 지지자들에게서 후원금을 받아낼 속셈"(277쪽) 때문이다. 스피라는 평생 운동을 하면서 직원 없이 혼자서 일했고 몇 명의 후원자 외에는 회원을 모집하지 않았으며 필요하면 단체들의 연합을 꾸렸다.

▲ <실천윤리학>(피터 싱어 지음, 황경식·김성동 옮김, 연암서가 펴냄). ⓒ연암서가
스피라를 현 상태와 타협하는 사람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동물 학대의 전면적인 철폐를 주장하는 개리 프란치오네 교수도, 스피라가 장기적으로는 철폐를 주장하지만 단기적으로 변화를 지향한다고 평가한다(Gary L. Francione, ).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잡고 한 걸음씩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안하는 긍정적인 운동을 지향한 것이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의 마지막 장에는 세상을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 헨리가 썼던 방법이 10가지로 정리되어 있다. 세상의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은 꼭 읽어보길 권한다.

서평을 마무리하기 전에 한 가지 사족을 단다. 스피라가 미국 사회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진정성과 전략이 주된 동인이었겠지만, 그런 운동을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 몫 했다는 느낌이다. 정보자유법에 따라 정보를 요구했을 때 관공서나 기업들이 정보를 제공한다든가, 자유롭게 보장된 시위라든가, 시민들의 항의 전화와 편지에 관공서나 기업들이 민감하게 반응한다든가 하는 배경이 있기 때문에 (물론 여기에도 생략된 난관이 있었겠지만) 운동의 성공이 가능했을 것 같다. 벽창호처럼 무슨 말을 해도 대꾸도 않고 자유로운 시위도 교묘하게 방해 받는 우리 사회에서 그런 변화는 요원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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