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올 여름 최악의 무더위, 기상청 욕하면 안 되는 이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올 여름 최악의 무더위, 기상청 욕하면 안 되는 이유!

[세상을 바꾸는 날갯짓] 무질서로부터 질서를, 카오스 이론

1961년 겨울 미국 북동부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 시. MIT의 과학자 에드워드 로렌츠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성능이 좋은 컴퓨터로 기상 예측 모델을 시험 중이었습니다. 마치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지구와 행성의 운동 경로를 예측할 수 있듯이, 정확한 법칙만 발견한다면 날씨를 예측하는 일도 가능하리라고 믿었던 시절이었죠. 컴퓨터는 그 강력한 도구였고요.

그러던 어느 날, 로렌츠는 몇 달 전에 한 번 작업했던 기상 예측 시뮬레이션을 다시 한 번 검토하기로 합니다. 1분 1초가 아까웠던 그는 지름길을 택했죠. 이전에 출력한 데이터의 초기 조건을 컴퓨터에 직접 입력한 것이죠. 그리고 한 시간 뒤, 당시만 하더라도 엄청났던 컴퓨터 소음을 피해서 차를 한 잔 마시고 돌아온 그는 깜짝 놀랍니다.

▲ <카오스>(제임스 글릭 지음, 박래선 옮김, 김상욱 감수, 동아시아 펴냄). ⓒ동아시아
시뮬레이션 결과가 애초와 달라진 것이죠.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컴퓨터에 직접 입력한 숫자들이 문제였습니다. 애초 숫자는 0.506127과 같은 소수점 이하 여섯 자리였는데, 로렌츠는 그 중에서 0.506처럼 소수점 이하 세 자리만 입력한 것이죠. 1000분의 1 정도의 차이가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은 겁니다. 바로 '카오스(chaos)' 이론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초기의 미세한 변화가 결과에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로렌츠의 발견은 흔히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로 불립니다. 최근 다시 나온 제임스 글릭의 <카오스>(박래선 옮김, 김상욱 감수, 동아시아 펴냄)는 이런 '나비 효과'를 전 세계에 각인시키며 카오스 이론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예고한 현대 과학의 고전이죠.

그런데 정작 영화 소설 등에서 '나비 효과'가 널리 쓰이는 데도 그 과학적 의미를 정확히 아는 이들은 드뭅니다. 카오스 이론은 더 말할 것도 없죠. '카오스'뿐만 아니라 '카오스모스(chaosmos)' 같은 단어가 철학 혹은 문학 책에 등장하고 심지어 '카오스 세탁기'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정작 카오스 이론이 무엇인지는 아리송하기만 합니다.

"과학과 미래 그리고 인류를 위한 비전"을 찾는 <크로스로드>와 함께하는 '과학 수다'가 이번에 카오스를 주목한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카오스의 정확한 과학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카오스 이론으로 날씨 예측 심지어 주가 예측을 하는 건 가능할까요? 최근에 각광을 받는 '복잡계(complex system)'와 카오스는 같을까요, 다를까요? 카오스 이론은 세상을 이해하는 두 가지 관점 즉, '질서(cosmos, 결정론)'와 '혼돈(chaos, 비결정론)' 중 어느 쪽을 손을 들어줄까요?

이번 과학 수다에서 이런 질문을 명쾌하게 해결합니다. 가이드로는 한국의 카오스 이론 또 복잡계 과학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국형대 교수(가천대학교)와 <카오스>를 감수한 김상욱 교수(부산대학교)가 나섰습니다. 천문학자 이명현 '프레시안 books' 기획위원과 강양구 기자가 독자를 대신해 질문을 던집니다.

이번 과학 수다는 <카오스>를 펴낸 동아시아의 후원으로 지난 7월 5일 가톨릭청년회관 1층 카페 '다리'에서 특별히 청중을 모시고 진행했습니다. 이제 카오스의 세계를 직접 경험할 시간입니다.

▲ 국형태 가천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공포의 '지수 함수'

강양구 : 오늘의 주제는 '카오스'입니다. 사실 카오스는 이제 너무 익숙한 단어가 되었어요. '나비 효과', '카오스 세탁기' 등. 그런데 이렇게 일상생활에서 굉장히 빈번하게 사용하는데도 정작 카오스의 과학적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아요. 제임스 글릭이 1987년 펴낸 <카오스>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도 이 때문이겠죠.

그러고 보니, 카오스 이론에 얽힌 한 가지 일화가 생각납니다. 1990년대 중반에 대학을 다닐 때, 생물학도가 주제도 모르고 독문과 수업을 청강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화두였던 '현대성(modernity)'을 놓고서 과학, 문학, 철학 등 다양한 텍스트를 읽는 자리였죠. 그런데 그 때 카오스 이론을 놓고서 독문과 학생과 저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었어요. (웃음)

한 독문과 학생이 카오스 이론을 결정론을 부정하는 최신의 과학 이론이라고 주장했고, 대다수가 그런 주장에 동조했죠. 그런데 정작 그 자리의 유일한 과학도였던 저는 그런 주장에 반대했죠. 저는 카오스 이론을 굉장히 복잡해 보이는 현상의 이면에 자리 잡은 질서를 찾아보는 시도로 이해했거든요. 제 관점에서 카오스 이론은 결정론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죠.

게을러서 아직도 이 의문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국형태, 김상욱 두 분 선생님께서 이 의문을 좀 해결해 주십시오. (웃음)

이명현 : 일단 정의부터 시작하는 게 어떨까요. 도대체 카오스가 뭡니까?

김상욱 : 방금 강 기자가 언급한 일화를 염두에 두고서 답을 해보죠. 여기 굉장히 간단한 계(system)가 있어요. 서로 연결된 두 개의 추가 좌우로 움직이는 진자는 그 한 예죠. 그런데 이 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펴봤더니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하게 움직이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얼핏 카오스 이론은 결정론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습니다.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하게 움직이는 그 계의 운동을 사실은 아주 간단한 방정식 하나로 정리할 수도 있어요. 그 운동은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아주 간단한 방정식을 따르는 거죠. 카오스 이론은 바로 이렇게 복잡한 현상 이면에 있는 기본 원리를 찾는 거죠. 그런 점에서 결정론의 전통 속에 놓여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명현 : 여전히 아리송합니다. (웃음)

국형태 : 처음이니까 일단 딱딱한 정의를 해보죠. 여기 어떤 초기 조건에 반응하는 계가 있어요. 그 반응은 아주 간단한 방정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일정하죠. 그런데 그 계가 실제로 반응하는 모습을 보면 굉장히 불규칙적이고 심지어 예측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런 운동이 바로 카오스입니다.

김상욱 : 물리학자는 방금 그 얘기를 이렇게 표현하죠. '어떤 계가 초기 조건에 대해서 지수 함수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운동', 이렇게요. (웃음)

이명현 : 이쯤에서 통역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프레시안(최형락)

김상욱 : 그래서 부산에서 특별한 실험 장치를 가져왔습니다. (웃음) 이게 뭔지 다 알죠? 추가 좌우 운동을 하는 진자입니다. 굳이 과학을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진자의 추가 굉장히 규칙적인 운동을 한다는 사실은 경험적으로 아실 거예요. 괘종시계의 추를 생각하면 되죠. 그러니까 진자의 추는 굉장히 간단한 운동을 하는 계입니다.

이제 카오스를 보여줄게요. 이 진자의 나사를 하나 풀면, 추 두 개가 운동하는 이중 진자로 변해요. 이제 이 진자를 한 번 움직여 볼까요? 좌우 진폭이 작을 때는 여전히 예측 가능한 운동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좌우 진폭을 크게 하면 어떤가요? 어떻습니까? 예측이 가능합니까?

강양구 : 불가능하죠.

김상욱 : 만약 마찰력이 없다면 이 진자는 계속해서 이렇게 예측 불가능한 운동을 할 거예요. 바로 이게 카오스입니다. (웃음)

이명현 : 좀 더 들어가 볼까요. 아까 카오스의 딱딱한 정의를 말할 때, 초기 조건에 지수 함수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운동이라고 했죠? 왜 하필이면 지수 함수인가요? 일상생활에서 흔히 기하급수적이라고 하는 게 바로 지수 함수잖아요(y=ax).

김상욱 : 일단 기하급수가 얼마나 무서운지 예를 들어보죠. 자주 쓰는 일화인데요.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장군에게 왕이 소원을 한 가지 말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장군이 첫 날은 10원, 다음 날은 20원, 그 다음 날은 40원, 이렇게 두 배씩 상금을 달라고 말했죠. 이게 바로 기하급수죠. 왕을 비롯한 신하들은 다 장군의 소원을 비웃으며 실제로 첫 날은 10원, 둘째 날은 20원을 줬습니다.

그럼, 두 달이 지나면 이런 상금을 60번 주는 셈이 되잖아요. 자, 60일에 이 장군이 받을 돈이 얼마일까요?

이명현 : 상당히 많겠죠.

김상욱 : 상당히 많은 정도가 아니죠. 115경2921조…, 이렇게 됩니다.

국형태 : 이제 지수 함수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운동이 어떤 것인지 대충 감이 왔죠. 시간이 지날수록 오차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기 때문에 도저히 예측이라는 게 불가능하죠. 다시 이중 진자를 볼까요. 추를 50센티미터 높이에서 밀어보고 또 60센티미터 높이에서 밀어보죠. 고작 10센티미터 차이인데, 진자의 운동 모습은 전혀 다르죠.

아주 작은 초기 조건의 차이인데도 지수 함수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엄청나게 다른 결과가 나타난 거예요. 카오스 운동이 예측 불가능한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초기의 작은 오차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지수 함수로 증가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오죠.

▲ 김상욱 부산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카오스의 메시지 "우리는 모른다!"

이명현 : 여기서 '나비 효과' 얘기를 해볼까요?

김상욱 : 국형태 선생님께서 방금 설명한 게 바로 나비 효과입니다. 베이징에서 나비가 날개를 한 번 펄럭이면 그것 때문에 뉴욕에서 폭풍우가 칠 수 있다는 건데요. 나비가 한 번 펄럭인 것 같은 미세한 변화가 시간이 지나면서 엄청나게 증폭돼 뉴욕에서 폭풍우를 일으키는 변화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걸 강조한 용어죠. 카오스의 핵심을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죠.

용어 자체가 드라마틱하다 보니 작가, 감독 등이 사회 현상의 예측 불가능한 측면을 강조하고자 할 때 자주 활용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쥐라기 공원>이죠. 1993년에 개봉한 옛날 영화인데, 최근에 3D 영화로 다시 개봉해 그 존재를 아는 분들이 늘었죠.

이 영화에서 나비 효과가 나옵니다. 영화 속에서 멸종 공룡을 복원해서 공원(쥐라기 공원)에 가둬둔 이들은 완벽한 통제가 가능하리라고 믿어요. 하지만 영화 속에서 수학자로 나오는 이언 말콤(제프 골드블럼)은 "카오스 이론에 따르면 완벽한 통제는 불가능하다" 이런 얘기를 하죠. 그러니까 인간의 하찮은 실수가 예측 불가능한 엄청난 재앙을 낳으리라고 경고한 거죠. 실제로 영화 속에서 그렇게 되고요.

▲ <앨빈 토플러와 작별하라>(댄 가드너 지음, 이경식 옮김, 생각연구소 펴냄). ⓒ생각연구소
강양구 :
말씀을 듣고 보니, 댄 가드너가 쓴 <앨빈 토플러와 작별하라>(이경식 옮김, 생각연구소 펴냄)도 떠오릅니다. 이 책은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과거의 수많은 예측 실패 사례를 열거하면서 꼬집죠. 그런데 이 책은 미래 예측이 틀릴 수밖에 없는 근거를 카오스 이론의 나비 효과에서 찾습니다.

초기 조건이 조금만 달라져도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확한 미래 예측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거죠. 지금까지 우리가 얘기한 것과 다르지 않죠. 그런데 가드너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여요. 수많은 변수가 상호 작용하기 마련인 복잡한 세상에서 그 많은 변수를 동시에 고려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죠. 그 연상전상에서 미래 예측 역시 불가능하고요.

국형태 : 그 가드너의 견해에는 동의할 수가 없네요. (웃음)

여기서 카오스와 '복잡계'를 구분할 필요가 있어요. 카오스는 아까 봤던 이중 진자처럼 비교적 그 구성 요소가 단순한 계에서 일어나는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한 운동을 일컫죠. 그런 점에서 카오스의 경우에는 초기 조건이 조금만 달라져도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미래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가드너의 견해는 맞습니다.

반면에 복잡계는 구성 요소, 그러니까 수많은 변수가 상호 작용하는 계입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 선거에서 어떤 후보가 당선될지 또 앞으로 남북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수많은 변수가 상호 작용하는 복잡계의 전형적인 예죠. 얼핏 생각하면, 이런 복잡계의 미래를 예측하는 일 역시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런데 꼭 그렇지 않아요. 복잡계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많은 변수가 상호 작용하는 복잡계가 정작 특정한 패턴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단순히 반응하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예를 들어, 수만 명이 모여 있는 축구장에서 응원할 때를 보세요. 남녀노소 수만 명의 개인들이 모여 있는 복잡계인데도 전체를 놓고 보면 마치 하나가 된 것처럼 똑같은 패턴에 따라서 움직이죠.

사회 현상 중에도 이런 예가 많죠. 여론의 쏠림 현상은 한 예입니다. 일일이 헤아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변수가 있는데, 정작 여론이 형성되는 건 아주 단순한 패턴을 따르기도 합니다. 그러니 그런 패턴을 발견하면 특정한 복잡계의 반응을 미리 예측하는 일이 가능해지죠. 실제로 최근에 복잡계 과학이 그런 걸 하려는 거고요.

그러니 수많은 변수가 상호 작용하는 복잡한 세상에서 미래 예측은 애초 불가능하다는 가드너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군요.

김상욱 : 일상생활에서는 카오스와 복잡계를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칼 같이 나누는 게 낯설죠? 그런데 이 문제가 그렇게 간단치 않아요. 카오스 이론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드는 예가 날씨입니다. 카오스 이론 등을 연구하는 과학자 중에서 유일하게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가 1977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일리야 프리고진(1917~2003년)입니다.

프리고진이 항상 강연을 시작할 때 드는 상투적인 예가 있습니다. 우주의 운동을 기술하는 방정식을 만든 아이작 뉴턴조차도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우산을 가지고 나가야 할지는 몰랐을 거라고요.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가 우주를 기술하는 법칙은 알고 있지만 날씨는 예측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카오스 이론의 특징인 거죠.

▲ 슈퍼 컴퓨터는 날씨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프레시안(손문상)

앞에서 강조했던 카오스의 특징을 떠올려보세요. 만약 날씨가 초기 조건에 지수 함수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카오스 현상이라면 예측은 불가능하죠. 왜냐하면, 미처 고려하지 못한 초기 조건의 작은 오차가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으니까요. 이런 관점에서는 정확한 날씨 예측은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불가능한 목표죠.

그런데 날씨를 카오스 현상으로 간주하려면 그것과 관계되는 변수가 아주 적음을 보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변수가 서너 개 이상인 복잡계는 카오스 이론으로 설명할 길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아직까지 어떤 과학자도 날씨가 단지 두세 개의 변수가 관여하는 아주 단순한 계라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했어요.

그러니 한쪽에서는 날씨가 변수 몇 개만 관여하는 카오스 현상이기 때문에 예측 불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다른 쪽에서는 수많은 변수가 상호 작용하는 복잡계이기 때문에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형편이죠. 양쪽 다 논리만 다를 뿐 날씨를 놓고서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고요.

강양구 : 그런데 날씨가 카오스 현상이라고 규정해 버리면 결과적으로 쓸모가 없네요. 어차피 예측 불가능할 테니까요.

김상욱 : 여기서 카오스의 아픔이 있습니다. 제임스 글릭은 <카오스>에서 20세기 과학 혁명의 세 가지로 상대성 이론, 양자 역학 그리고 카오스 이론을 꼽죠. 그런데 상대성 이론, 양자 역학은 세상을 바꿨어요. 예를 들어, 양자 역학이 없으면 당장 이 방에 있는 문명의 이기 대부분은 세상에 존재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카오스 이론은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한 게 없습니다. 아, 하나 있네요. 카오스 세탁기요. (웃음) 왜냐하면, 카오스 이론이 전하는 메시지는 딱 한 가지거든요. '모른다!' 그래서 바로 과학자의 관심이 카오스 이론에서 복잡계 과학으로 확장된 거지요. 수많은 변수가 상호 작용하는 복잡계를 설명할 수 있는 패턴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요.

▲ 이명현 '프레시안 books' 기획위원(천문학자). ⓒ프레시안(손문상)

질서 vs. 혼돈, 카오스의 대답은?

국형태 : 평가가 너무 박한데요. (웃음) 카오스 이론이 활발하게 연구되기 시작한 게 1980년대 초반부터였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카오스 이론이 과학자에게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과학자 상당수는 컴퓨터를 만지는 일을 저급하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카오스 현상을 다루려면 손으로 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제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고전적인 과학 방법인 실험과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됐죠. 그리고 그런 새로운 방법을 통해서 그 전까지는 연구 대상이 될 수 없었던 다양한 자연 현상, 사회 현상을 다룰 수 있게 된 거죠. 과학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을 과학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했다는 점이야말로 카오스 이론의 가장 큰 기여죠.

김상욱 : 응용의 측면에서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 역학과 비교해서 얘기하다 보니 약간 박한 측면이 있었네요. (웃음) 저 역시 카오스 이론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꿨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당장 저만 해도 그래요. 아직 카오스 이론을 제대로 접하기 전이었던 학창 시절에는 규칙적인 패턴을 찾는 데만 전념했어요.

그리고 규칙적인 패턴이 나오지 않으면 그 데이터는 쓸데없는 것으로 간주해 버리곤 했죠. 그런데 그런 의미 없어 보이는 불규칙적인 데이터야말로 세상을 이해하는 핵심 고리였거든요. 카오스 이론은 바로 그 사실을 일깨워줬죠. 그런데 이런 시각이 처음부터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졌던 건 아닙니다.

글릭의 <카오스>는 미국에서만 100만 부가 팔렸고, 나온 지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높은 평가를 받죠. 왜일까요? 이 책이 일종의 휴먼 스토리이기 때문입니다. 선각자적인 입장 때문에 카오스 이론의 개척자는 박해 아닌 박해를 받았어요. 이 책은 카오스 이론 개척자의 고난을 생생히 그리고 있습니다.

사실 양자 역학이나 우주론의 대가는 대부분 미국 주요 대학의 교수입니다. 그 중 대부분은 노벨상을 수상했죠. 그런데 이 책에 나온 카오스 이론의 개척자들은 변두리 대학의 교수거나 심지어 교수도 아닌 학생이거든요. 양자 역학이나 입자 물리학을 연구해야 할 촉망받던 과학자들이 진자를 흔들고 있거나, 물방울이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패턴을 궁리하고 있었으니….

하지만 이 책에 나온 그런 개척자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지금은 카오스 이론이 학부생 교과서에 나옵니다. 과학자는 물론이고 일반인도 나비 효과를 알죠. 그런데 딱 거기까지입니다. '그래, 나비 효과가 뭔지는 알겠어. 그런데 그걸로 뭘 할 수 있지? 혹시 돈도 벌어줄 수 있어?' 이런 질문에 카오스 이론은 답을 내놓지 못한 거죠.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카오스 이론을 연구하는 과학자는 현대 과학의 중심부가 아닌 변두리에 있습니다. (웃음)

강양구 : 여전히 변두리에 있다고 하지만, 카오스 이론이 지난 30년간 성취한 게 있을 것 아니에요?

김상욱 : 여러 번 강조했지만, 카오스 이론은 아주 단순한 계도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한 운동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중 진자는 그 단적인 예였고요. 요약하자면, 카오스 이론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하는 일은 무질서로부터 질서를 뽑아내는 일이죠. 그럼, 이런 카오스 이론을 현실에서 어떻게 응용할 수 있을까요?

카오스 이론으로 주식 시장의 변화를 꿰뚫는 원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주식 시장은 한두 개의 변수로 좌지우지되는 단순한 계가 아니니까요.

날씨는 어떨까요? 아까 날씨를 놓고는 논란이 있다고 얘기했죠. 개인적으로 날씨는 복잡계라고 생각해요. 굉장히 다양한 변수가 상호 작용해서 변화무쌍한 날씨를 낳는 거죠. 다만 어떤 특정한 국면의 날씨를 놓고는 카오스 이론이 기여할지 몰라요. 그 국면에서는 한두 개의 변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 <혼돈으로부터의 질서>(일리야 프리고진·이사벨 스탠저스 지음, 신국조 옮김, 자유아카데미 펴냄). ⓒ자유아카데미
강양구 :
일리야 프리고진의 책이 <혼돈으로부터의 질서>(신국조 옮김, 자유아카데미 펴냄)잖아요.

김상욱 : 네, 그렇죠. 실제로 여러 가지 자연 현상에 들어있는 질서를 찾긴 찾았어요. 여기서 그걸 다 열거할 수는 없고요. (웃음) 참, 화제가 바뀌기 전에 한 가지만 첨언할게요. 아까 카오스 현상의 예측 불가능성을 얘기했죠? 그런데 오해하면 안 됩니다. 철학적으로 엄밀하게 말하자면 카오스는 분명 결정론적인 현상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예측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카오스 현상을 기술하는 단순한 방정식이 있기 때문이죠. 오차 없이 초기 조건을 정확히 알 수만 있다면 이중 진자의 움직임도 예측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이 불가능을 지탱하는 봉인은 오차의 지수 함수적 증가입니다.

그러니까 결정론을 싫어하는 이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카오스를 고려하더라도 우주는 결정되어 있어요. (웃음) 다만 인간의 능력으로 지수 함수를 극복하는 일이 매우 어려울 뿐이죠. 물론 이렇게 이야기해버리기엔 지수 함수가 정말 무시무시한 녀석이기는 하죠. 오늘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진정한 비결정론은 양자역학에서 나옵니다.

강양구 : 그러면 지금보다 훨씬, 훨씬, 훨씬 더 발달된 컴퓨터가 등장하면 카오스 이론의 예측 능력이 높아질 가능성도 있나요? 이론적으로는….

김상욱 :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니까요. 다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정밀한 자가 측정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인가요? 요즘에는 10의 마이너스(-) 9승 미터 그러니까 나노미터를 측정할 수 있죠. 하지만 그렇게 오차를 줄여봤자 기하급수로 60번만 지나면 그 오차가 엄청나게 벌어지겠죠. 결국 예측할 수 없어요.

국형태 : 사실 컴퓨터 기술이 발달하면서 카오스 이론의 응용 가능성이 높아진 게 사실이에요. 저는 날씨가 거의 카오스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상욱 선생님과 다르죠? (웃음) 다만 너무 먼 시간의 날씨는 오차가 커져서 예측 자체가 불가능하죠. 하지만 비교적 시간이 짧은 특정 국면의 날씨는 성능 좋은 컴퓨터만 있으면 예측이 가능하죠. 요즘 내일모레 일기예보는 많이 나아졌잖아요? (웃음)

주식 시장도 마찬가지죠. 카오스 이론은 굉장히 복잡한 현상에 아주 단순한 원리가 숨어 있다고 얘기하잖아요. 그래서 카오스 이론 연구자 중에서 주식 시장의 변화를 꿰뚫는 원리를 찾아보려는 이들이 있었어요. 몇몇은 회사를 차리고, 주가 예측 프로그램도 만들었죠. 그 프로그램을 팔아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물론, 주가를 잘 예측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얘기는 못 들었습니다만. (웃음)

김상욱 : 날씨 얘기가 또 나왔으니 한 마디만 덧붙이죠. 날씨가 카오스 현상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컴퓨터 성능을 높이는 건 사실 굉장히 비효율적인 대응이에요. 기상 예측을 하는데 1000만 원짜리 컴퓨터를 10억 원짜리로 업그레이드시키면 비용이 100배가 늘잖아요. 그런데 효과는 딱 두 배가 늘 뿐이에요. 기하급수로 오차가 늘어나니까요.

제가 날씨를 예측하려는 노력에 회의적인 게 바로 이 때문이죠. 컴퓨터 성능이 좋아져서 더 많은 변수를 넣어주면 일기예보의 예측 능력이 상당히 높아집니다. 날씨가 카오스 현상이라면 그렇게 예측 능력이 늘어날 리가 없죠. 아무튼 카오스 현상을 일상생활에서 응용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강양구 : 기자 생활 10년 하면서 절대로 안 쓰는 기사가 하나 있어요. 기상청 슈퍼컴퓨터가 얼마짜리인데 일기예보가 왜 틀리느냐, 이런 기사요. (웃음) 왜냐하면, 어렴풋하게 지금보다 훨씬 더 비싼 슈퍼컴퓨터 할아버지를 가져다 놓아도 일기예보의 정확도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오늘 그 이유를 좀 더 명확하게 알게 됐네요.

ⓒ프레시안(손문상)

세상을 바꾸는 날갯짓, '카오스 세탁기' 다음은?

이명현 : 이제 마무리를 할까요? 참, 마무리하기 전에 카오스 세탁기 얘기를 좀 하죠. (웃음)

국형태 : 카오스 세탁기는 제 전문 분야예요. (웃음) 유학 갔다가 귀국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LG, 대우 이런 대기업에서 전자제품에 '카오스'를 붙여서 출시하더군요. 그 때 모 대기업도 카오스 세탁기 개발이 한창이었는데, 저한테 자문을 구했죠. 그런데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냥 유행에 편승한 것일 뿐, 카오스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세탁기였거든요.

카오스 세탁기의 실체는 이렇죠. 당시 세탁기는 통이 한쪽 방향으로만 돌아서 소용돌이가 한 쪽 방향으로만 생겼어요. 당연히 빨래가 꼬일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소용돌이가 여러 방향으로 생기도록 모터를 이렇게 돌렸다, 저렇게 돌렸다 하는 세탁기가 개발되었는데, 그걸 카오스 세탁기라고 이름 붙인 겁니다. 비슷한 원리의 카오스 에어컨도 있었죠.

따져 보면, 카오스 세탁기 이후에도 비슷한 것들이 많았죠. '퍼지 세탁기'도 있었고, '인공지능 세탁기', '은나노 세탁기' 등. (웃음)

이명현 : 이제 대충 카오스 이론이 어떤 것인지 감은 잡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카오스 이론 또 복잡계 과학을 좀 더 깊이 이해하려면 어떤 책이 도움이 될까요?

김상욱 : 글릭의 <카오스>가 최고죠. 이 책을 처음 읽으면서 정말로 가슴이 막 뛰었던 기억이 납니다. 국형태 선생님께서는 이미 1980년대 초부터 미국에서 카오스 이론을 연구 중이셨습니다만, 저를 포함해서 나중에 카오스 이론에 관심을 가지고 뛰어든 후속 세대 과학자는 대부분 이 책을 보면서 카오스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키웠죠.

그런데 25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전혀 낡았다는 느낌을 안 줍니다. 더 놀라운 일은 이 책의 저자인 제임스 글릭이 과학자가 아니라 기자라는 거예요. 여기 강 기자도 있습니다만, 기자가 이렇게 깊은 시각과 넓은 내용이 담긴 과학 책을 쓸 수 있다는 게 과학자로서 정말로 놀라운 일이죠.

강양구 : 저는 절대로 이런 책을 못 씁니다. (웃음)

김상욱 : 지레 포기하실 것까지야. (웃음) 아무튼 과학자가 아닌 기자가 쓰다 보니 아까 얘기했던 과학자 개개인의 뒷얘기도 풍부하고 맛깔나게 녹아 있어서 더 읽는 맛이 납니다. '감수자 후기'에서 썼습니다만, 아마 글릭 자신도 이 책을 쓰고 나서 "신이여, 진정 제가 이 책을 썼단 말입니까" 하고 외쳤을 거예요.

▲ <자연은 어떻게 움직이는가?>(페르 박 지음, 이재우·정형채 옮김, 한승 펴냄). ⓒ한승
국형태 :
동감입니다. 카오스 이론과 관련해서 이만큼 잘 쓴 책은 없는 것 같아요. 스튜어트 카우프만의 <혼돈의 가장자리>(국형태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도 같이 읽을 만합니다. 이 책은 카오스 이론과 더불어 복잡계 과학도 언급하고 있죠. 복잡계 과학의 성과를 본격적으로 소개한 책으로는 페르 박의 <자연은 어떻게 움직이는가>(이재우·정형채 옮김, 한승 펴냄)가 좋고요.

복잡계 과학의 문제의식을 인간사에 적용시켜본 이른바 '사회 물리학'을 소개한 마크 뷰캐넌의 <사회적 원자>(김희봉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나 복잡계 과학의 한 갈래라고 할 수 있는 네트워크 과학을 소개하는 알버트 바바라시의 <링크>(강병남 옮김, 동아시아 펴냄)도 같이 읽을 만합니다.

김상욱 : <카오스>에서 시작해서 방금 국형태 선생님께서 언급한 책들을 쭉 읽어보면 카오스 이론에서 복잡계 과학으로 확장해온 흐름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여기 국형태 선생님도 계시지만, 지금은 애초 카오스 이론을 연구하던 과학자도 대부분 복잡계 과학으로 관심의 초점을 옮겼어요.

국형태 : 그렇죠. 저는 애초 간단한 카오스 계를 공부했고요. 그 이후에는 여러 변수가 상호 작용하는 복잡계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는 신경 세포 망을 복잡계로 간주하고 뇌 기능과 관련된 여러 패턴을 찾는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복잡계 과학의 최전선이 지금은 뇌 과학인 셈이죠.

이명현 : 듣고 보니 카오스 이론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과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복잡계 과학, 네트워크 과학 등으로 변신하면서 세상을 이해하는 과학의 시야를 계속 넓혀가고 있으니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꿀 나비 효과가 누군가의 컴퓨터에서 날갯짓을 시작하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이 과학 수다가 그 날갯짓일 수도 있고요.

ⓒ프레시안(손문상)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