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한 왕국의 도읍을 걷는 일은 늘 특별한 감회를 불러오지만 제겐 부여가 더욱 그렇습니다. 처음 그곳을 찾은 것은 열아홉 그해 봄. 막 대학에 들어온 새내기 사학도 시절 선배들을 따라가 허허벌판에 우뚝 솟은 정림사지 5층 석탑과 투박한 돌부처를 보았습니다. 지금처럼 빙 둘러싼 돌담도 잘 다듬은 잔디도 없던 그때, 쓸쓸한 빈 절터에서 홀로 당당하던 석탑에 오래 마음이 머물렀지요. 얼결의 선택이었지만 역사를 공부하기로 한 것이 제법 잘한 일 같기도 했습니다. 오래 전 일입니다.
▲ 신동엽(1930~1969). |
우리들이 어렸을 적/ 황토 벗은 고갯마을/ 할머니 등에 업혀/ 누님과 난, 곧잘/ 파랑새 노랠 배웠다.… 잠깐 빛났던/ 당신의 얼굴은/ 영원의 하늘,/ 끝나지 않는/ 우리들의 깊은/ 가슴이었다.
금강, 아, 금강의 도도한 물결이 가슴으로 밀려들어 제 온몸을 흔들었습니다. 저는 이따금 고개를 들고 솟구치는 눈물을 삼켰습니다. 창밖으론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안간힘으로 빛나는 저녁 햇살 속에서 저는 당신이 노래한 아름다운 눈, 빛나는 눈을 보았습니다. 하얀 목련이 흐드러진 어둔 교정을 나오며 벅찬 가슴을 주체하지 못해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추었는지. 그 날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우러르며 저는 다짐했습니다. 당신 같은 시인은 못 되어도 당신 같은 사학도로 당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다고.
그것이 얼마나 당찬 꿈이며 생을 건 다짐인지 깨닫는 데 참으로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 세월 동안 저는 역사학을 떠났고, 역사가 진보한다는 믿음을 놓쳤고, 무엇보다 "껍데기는 가라"고 외치던 분노를 잃었습니다. 당신이 "어두운 시대의 위대한 증인"(*)이라 기렸던 시인 김수영의 표현을 빌리자면, "왕궁의 음탕 대신에 설렁탕집 주인년한테 옹졸하게 욕을 하는"('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사소한 노여움만을 키우며 살았지요.
(* : 신동엽을 두고 "강인한 참여의식이 깔려 있고, 시적 경제를 할 줄 아는 기술이 숨어 있고, 세계적 발언을 할 줄 아는 지성이 숨 쉬고 있고, 죽음의 음악이 울리고 있다"고 상찬했던 김수영이 타계하자, 신동엽은 <한국일보> 1968년 6월 20일자에 일종의 조사로 '지맥 속의 분수'라는 짧은 글을 실어 그를 기렸습니다.)
그리고 그 세월 동안 저는 당신의 시를 읽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그들의 소굴/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은 이길 것이다."('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은 이길 것이다' 마지막 연)라는 당신의 선언에 전처럼 가슴이 뛰기는커녕, 오히려 '그들'과 '우리'를 그처럼 분명하게 나눌 수 있을까, 우리 안에 그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이기면 다시 그들이 되는 것은 아닐까 의심만 깊어졌지요. 죄 없는 선한 백성과 그들을 착취하는 외세와 지배층을 대립시키는 당신의 이분법은 못 미더웠고, "좋은 씨 받아서 좋은 신성(神性) 가꿔보고 싶은 밭"이라고 <여자의 삶>을 노래하는 당신은 치마 길이를 재고 순결을 강조하는 숱한 아비들만큼 구태의연했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제게서 멀어졌습니다.
당신을 다시 만난 것은 몇 해 전, 다니던 출판사에 사표를 내고 부여를 찾았을 때였습니다. 고단한 밥벌이를 핑계 삼아 사람에 대한 고마움도 예의도 잊고 아만(我慢)에 사로잡힌 스스로에게 놀라 떠난 길. 그 길 끝에서 문득 당신의 옛집이 떠올랐습니다. 당신의 시를 읽지 않은 지 오래건만 가보고 싶었습니다. 오래 전 젊은 저를 흔들었던 시인의 속살이 궁금한, 그런 속된 호기심이었지요.
비 내리는 골목 안에 새로 파란 기와를 인 당신의 집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어린 시절을 보내고 나중엔 병든 몸을 뉘었던 그 집은 아담하고 정갈했습니다. 안채 방문 위에는 당신의 아내 인병선이 쓴 '생가'라는 시가, 툇마루 벽에는 당신의 친필을 새긴 '껍데기는 가라'가 걸려 있었습니다.
있었던 일을 늘 있는 일로 하고 싶은 마음이 당신과 내가 처음 맺어진 이 자리를 새삼 꾸미는 뜻이라. ('생가' 부분)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부분)
툇마루에 앉아 봄비에 젖은 꽃밭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아픈 당신도 가끔 이 툇마루에서 우물 같은 하늘과 돌담 아래 소담한 꽃밭을 보았겠지요. 그리고 그런 당신을 아내는 울지도 못하고 지켰겠지요. 당신이 잊히지 않도록 온몸으로 당신의 시를 지키고 집을 지키고 기억을 지켰겠지요. 목이 메었습니다. 4월마저 껍데기들이 판치는 세상을 향해 눈 감는 날까지 "껍데기는 가라!"고 외치던 당신의 성실한 싸움에 목이 메고, 그 싸움을 증언하기 위해 헌신한 아내 인병선의 사랑에 목이 메었습니다.
그날 당신의 집을 나서며 열아홉의 다짐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감히 역사 앞에 제 삶을 비추었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으나, 성공과 실패, 가능과 불가능을 묻지 않고 스스로의 물음과 대답에 충실했던 그 마음만은 돌이키자고 다짐했습니다. 오래 미뤘던 꿈을 향해 나아가기로 했으니 더욱 그 마음으로 돌아가자고, 참 오랜만에 스스로에게 다짐했지요.
그때로부터 여섯 해가 흐른 지난 8월, 폭염 경보가 내려진 한낮의 부여를 걸어 당신의 집을 다시 찾았습니다. 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으나 또한 달라져 있었습니다. 젖은 제 마음을 위로해주던 꽃밭이 사라지고 툇마루 위에 걸렸던 당신과 인병선의 시도 없었습니다. 대신 집 바로 옆에 당신의 문학관이 새로 들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었습니다. 당신의 흉상이 마중하는 입구를 지나 전시실을 빙 돌고, 당신이 쓴 시구들이 깃발처럼 흔들리는 마당을 지나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는 옥상까지 찬찬히 둘러보았습니다.
부박한 시대지만 그래도 시인을 기억하는 마음들은 남아 있구나 안심하다가 문득, 이 모든 게 당신의 시를 현재가 아닌 박제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었습니다. 공연한 의심이지요. 그저 당신이 그토록 괴로워했던 분단도 여전하고 외세의 그늘도 자본의 파렴치도 가난의 허기도 모두 그대로건만, 마치 세상이 바뀐 듯 당신을 기념하고 당신의 시를 추억하는 제 자신이 민망해서 그런 의심을 하는 것이지요.
▲ <신동엽 시전집>(신동엽 지음, 강형철·김윤태 엮음, 창비 펴냄). ⓒ창비 |
그런 당신이 "갈보 은행" "털 난 달러" "땅을 갈라놓고 색칠하고 있는 흡반족들"에게 분노를 터뜨린 것은 이념 때문이 아니라, 배고픈 아이가 쓰레기통을 뒤지다 미군의 총에 맞아 죽는 현실이 기막히고 슬퍼서였습니다. 미움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이 땅에 태어나 살아야 하는 가엾은 목숨들에 대한 연민 때문에 당신은 자신의 아픔을 제쳐두고 시대의 무거움을 감당했던 것이니, 당신의 나이를 넘어 살고서야 당신이 겪었을 안팎의 갈등이 비로소 사무쳤습니다.
당신이 떠나기 몇 달 전에 발표한 '산문시 1'을 읽습니다. 다른 시들과는 퍽 다른 형식으로 동화 같은 상상을 죽 풀어놓은 이 시를 예전엔 심상히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보니 다릅니다. "스칸디나비아라던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로 시작해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로 끝나는 시를 읽는데, 경호원도 없이 아내랑 영화 구경 나왔다가 암살당한 스웨덴 총리 올로프 팔메와, 고향에서 막걸리 마시며 농사짓다 벼랑에 몸을 던진 전직 대통령이 겹쳐집니다. 당신이 상상한 그대로 살았던 그이들을 떠올리니, 당신의 엄중한 상상을 동화라 가벼이 여긴 제 자신이 부끄럽고 그런 상상을 현실로 살기 위해 애쓴 그이들에게 미안합니다.
할 만한지 손해는 없는지 잇속 꼼꼼히 따지는 사람들은 비웃겠지요. 반도의 허리에 놓인 완충지대가 반도 전체로 확장되어 끝내는 한반도 전체가 중립지대가 되는 꿈('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이나, 서울의 빌딩숲을 갈아엎고 그 땅에 보리 심는 꿈('서울')이나, 참 말도 안 된다고 한심해하겠지요. 하지만 한강 섬에 농업공원을 조성하고 비무장지대에 평화공원을 만들자는 요즘 세상을 보면 누가 누구를 비웃어야 할까요.
그러고 보면 일찍이 발칙한 꿈을 꾼 당신이 있어 지금 잠시나마 단잠을 잘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늦게나마 인사를 전합니다. 고마워요. 남은 꿈은 살아남은 우리의 몫이니 당신도 이제는 편안히 꿈 없는 잠을 주무세요. 다시 만날 그날까지 안녕!
그럼
안녕,
안녕,
논길,
서해안으로 뻗은 저녁노을의
들길, 소담스럽게 결실한
붉은 수수밭 사잇길에서
우리의 입김은 혹
해후할지도
몰라. ('금강' 끝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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