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유리, 예쁘지만 '나쁜' 여신이 되어줘!

[TV PLAY] SBS <힐링캠프> 새 MC 성유리에게 바란다

대통령 후보에게 거침없이 별명을 지어줬다. 대선배 여배우가 나와도 전혀 기죽지 않고 당당히 진행했다. 풋풋한 후배가 나오면 귀여운 질투 작전으로 게스트의 마음을 편하게 풀어줬다. 게스트한테 집중하다가도, 양 쪽에 있는 MC들의 공격을 적절한 타이밍에 맞받아쳤다. 김제동은 물론 이경규에게도 돌직구를 날렸다. '깨갱'하는 순간은 단언컨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SBS <힐링캠프>의 한혜진은 그런 MC였다.

▲ SBS <힐링캠프>의 MC 김재동, 성유리, 이경규(왼쪽부터 시작). ⓒSBS

한혜진이 <힐링캠프>를 통해 '재발견'됐다면, 새로운 MC 성유리는 '재도약'을 꿈꾼다. "살짝 주춤한 인기를 다시 끌어올리겠다"는 '셀프 디스'로 자신을 소개한 성유리는 "시집가도 그만두지 않겠다"는 선포까지 했다. 김제동을 향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오빠는 내 스타일 아니다. 마음 고생 하지마라"고 못을 박았고, 이경규의 어설픈 영어 발음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콕 집어 지적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한혜진처럼 내숭 없는 MC가 왔다고 생각했다. "멘트할 때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게 마음에 든다"는 이경규의 칭찬처럼.

이경규와 김제동 사이에서 오프닝을 할 때만 해도 두 MC를 들었다 놨다 하는 모습을 보인 성유리는 게스트 함익병이 등장하자 그 존재감이 흐릿해졌다.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 그러나 연예인만큼 언변이 뛰어나고 예능감이 충만한 게스트를 능숙하게 다루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SBS <자기야: 백년손님>에 출연 중인 함익병은 대놓고 장모님이 해주신 매운탕이 짜다고 말하는 사위, 어떤 공격에도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는 사람이다. 이경규조차 두 손 두 발 다 든 게스트였지만, 그래서 오히려 돌직구를 던질 여지가 많은 '깐족사위'였다.

하지만 성유리는 오프닝 때만큼의 대범함을 보여주지 못했다. 평소의 "맹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첫 방송부터 '맹유리'라는 별명을 얻는 성과를 내긴 했지만, 인상적인 첫 술이었다고 평가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물론 꾸미지 않은 솔직한 리액션은 좋았다. 그러나 게스트의 말 사이사이를 훅 파고드는 섬세함은 부족했다. 성유리는 스스로 영혼이 자꾸 나가고 있다거나 게스트에게 설득당하고 있다고 실토했다. '맹유리'라는 캐릭터를 쌓는 데에는 일조했을지 몰라도, 진행자로서 중심잡기에는 실패했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방송 내내 털털한 웃음 외에 별다른 '한 방'을 보여주지 못했던 성유리는 게스트에게 줄 선물을 공개할 때가 돼서야 비로소 몸이 풀린 것처럼 보였다. 힐링 서프라이즈 포장을 뜯으며 몇 번이나 "제가 까면 될까요?"라고 말한 성유리는 그제서야 '정신줄'을 놓고 녹화장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 <힐링캠프>의 새 MC 성유리. ⓒSBS

이제 성유리에게 필요한 건, 게스트한테 좀 더 집중하는 자세와 게스트를 내 앞으로 끌어당겨 오는 힘이다. 자신의 첫 게스트였던 함익병에게 배워도 좋다. '버럭' 이경규의 인간적인 면모를 칭찬하다가도 금세 그를 공격하는 '밀당' 실력, 자신의 고집을 절대 꺾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을 묘하게 설득시키는 매력, 처음엔 밉상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를 바꾸지 않고 상대방을 변화시키는 근성 등을 말이다.

예의바르지만 재미없는 사위, 잔소리 많이 하지만 재미있는 사위 중에서 후자를 택한 함익병은 30년 넘게 장모님과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내고 있다. 그는 "장모님의 구박에 '죄송하다'고 말하면 더 이상 대화가 없지만, 얄밉게 나가면 어떻게든 그 다음 대화가 이어진다"고 말했다. 대화를 지속시키는 능력은 좋은 MC가 되기 위한 필수 자질이다. 게스트의 말에 그저 하하호호 웃는 착한 MC가 될 것인가, 불편하더라도 돌직구를 던지며 게스트의 맨 얼굴을 끄집어내는 나쁜 MC가 될 것인가.

다음 주부터는 좀 더 적극적인 MC 성유리를 기대해본다. 일단 멍석을 깔아라. 그러면 이경규와 김제동이 알아서 물고 뜯으며 캐릭터를 만들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