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낯선 사람이 지금 당신의 옷장 속에 살고 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낯선 사람이 지금 당신의 옷장 속에 살고 있다!

[인터뷰] 영화 <숨바꼭질>의 허정 감독을 만나다

성공한 사업가 성수(손현주)는 아내 민지(전미선)와 아들 호세, 딸 수아와 함께 고급 아파트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어느 날 전화기에서 들린 낯선 음성이 그의 완벽한 일상을 뒤흔든다. 아내에게조차 존재를 감춰왔던 하나뿐인 형 성철이 실종됐다는 것이다. 수십 년 만에 찾아간 형의 낡은 아파트에서 성수는 집집마다 새겨진 이상한 암호를 발견하고. "그 사람한테 제 딸 좀 그만 훔쳐보라고 하세요"라고 울부짖는 여자 주희(문정희)와 딸 평화를 만난다. 성수와 민지는 형의 아파트에서 봤던 암호가 자신들의 집 초인종 옆에도 새겨진 것을 발견한다. 성수의 기존의 결벽증은 점점 심해지며 생생한 악몽으로까지 침범해 들어오고, 안락하고 깔끔한 삶에 익숙했던 민지는 스물거리며 주변을 맴도는 낯선 외부의 적 앞에서 히스테리컬해진다.

▲ 영화 <숨바꼭질>. ⓒ(주)드림캡쳐

이른바 도시 괴담 중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 술 취한 후배를 바닥에 재우려고 자취방에 데려왔는데, 갑자기 후배가 뭔가 먹고 싶다며 귀찮아하는 나를 끌고 집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덜덜 떨면서 "침대 밑에 누워있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라고 고백한다. 혹은 '해님 달님' 전래동화의 가장 끔찍한 버전. 나의 소중한 엄마라고 믿었던 사람의 팔에 북실북실 돋아난 짐승의 털을 발견하는 순간 아이의 경악은 어떨까.

이들은 바깥세상으로부터 나를 지켜주고 위험으로부터 차단시켜주는, 온전히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공간/사람이 불현듯 가장 위협적인 공간/사람으로 돌변하는 순간, 내 사생활이 결코 지켜질 수 없다는 불쾌감이 확신으로 드러나는 순간의 경악을 가장 잘 표현하는 괴담이 아닌가 싶다. 놀라운 신인 허정 감독의 장편 데뷔작 <숨바꼭질>은 바로 이 경악을 포착했으며, 그 결과는 올해 본 한국 영화 중 가장 불길하고 무섭다.

주차장, 엘리베이터, 한밤중의 귀가길 등 대도시 어디에서나 맞닥뜨리는 타인은 유령이나 원혼보다 더 무시무시한 존재로 뒤바뀔 수 있다. 이곳은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가장 내밀한 사생활까지 침범해 들어올 수 있는 만인의 감시 사회다. CCTV와 현관문에 달린 볼록렌즈 구멍, 컴퓨터 캠 등을 활용한 온갖 훔쳐보기의 방식들은 공포 스릴러 장르의 소름 끼치는 장치로 탈바꿈한다.

혹은 아파트와 재개발로 대변되는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집착이 타인에 대한 무자비한 처단으로 이어지는 순간을 지금껏 용산 참사나 북아현동 재개발 투쟁의 현장에서 '남의 일'로만 지켜봤다면, 영화 <숨바꼭질>은 쥐도 새도 모르게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서 그런 공포가 '나의 일'로 현실화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숨바꼭질>은 호러 스릴러라는 장르적 특성에 걸맞게, 초반부터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쉴 새 없이 관객의 감정을 밀어붙인다. 손현주, 전미선, 문정희 등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보인 중견배우들뿐 아니라, 보통 희생자 역을 맡으며 감정을 고조시키는 도구로서 주로 활용되던 아이들마저도 이 영화에선 극단적인 공포를 넘나드는 감정 연기를 빼어나게 소화하며 극적 긴장감에 기여한다. 올 여름 만난 한국 영화 중 가장 흥미진진하고 잘 만들어진 작품의 연출자 허정 감독을 만나 궁금한 점을 들어보았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다. (결정적인 스포일러 질문은 인터뷰 맨 뒤의 박스로 뺐음을 밝혀둔다)


▲ 허정 감독.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전설이나 신화가 비슷한 모티브로 조금씩 변형되면서 구전되는 것처럼, 괴담이라는 것도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SBS의 <궁금한 이야기 Y>라든가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끄는 이유가 이런 익숙한 패턴의 괴담, 혹은 도시 전설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당신은 어떤 점에서 '낯선 사람이 우리 집에 몰래 들어와 살고 있다'라는 괴담 모티브에 관심을 갖게 됐나.

허정 : 2010년 방영된 <궁금한 이야기 Y>에서 '범죄의 표식인가?-도둑 암호의 미스터리' 편을 보면서 초인종 옆에 이상한 표식이 발견됐고 사람들이 그에 대한 추측을 이것저것 내놓는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그 전까지는 내 집에 낯선 사람이 들어온다는 상황에 대한 괴담이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런 식의 소문들이 어느 순간부터 마구 쌓여가더라. 워낙 현실적인 느낌이 강한 괴담인데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그 점을 불안하게 인식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초인종 옆의 기호가 어떤 의미일지, 누가 그려 넣은 건지 생각하게 만드는 지점들이 있었다.

프레시안 : 이런 괴담에는 사생활이 침범당하는 것에 대한 강한 공포와 불쾌감이 존재한다. 영화 곳곳에선 낯선 동네에서 나를 훔쳐보며 좋아하는 좀 모자란 남자라든가, 밤거리의 취객, 노숙자라든가, 엘리베이터를 낯선 사람과 함께 타야 하는 공포 같은 것 등등이 지속적으로 드러나는데.

허정 : 사생활 침범일 수도 있고, 자기 소유의 영역에 대한 불안감일 수 있고, 그런 감정들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레시안 : 혹시 고향이 어딘가? 집의 형태는 아파트였는지….

허정 : 서울 토박이다. 아파트에서 살았고.

프레시안 : 그 질문을 드린 이유는 <숨바꼭질> 뿐 아니라 예전의 단편 <저주의 기간><주희>에서도 모두 아파트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 편 모두 재개발을 앞두고 있거나 막 새로 건축된 아파트가 주요 배경이다.

허정 : 아파트를 보면 되게 불안정한 느낌이 있다. 쉴 새 없이 새로 지어지고 꽉 들어차는 모습들이 답답하기도 하고. 지금 한국에서 산다고 했을 때, 내가 계속 아파트에서 살았기 때문인지 몰라도 아파트라는 공간이 가장 먼저 대표공간으로 떠오른다. 즉각적인 느낌이기 때문에 말로 설명하기가 힘든데, 원래 존재하던 것이 아닌 갑자기 새로 지어지는 공간의 느낌 자체가 좀 싸늘하다. 그래서 계속 아파트를 등장시켰던 것 같다.

▲ 영화 <숨바꼭질>. ⓒ(주)드림캡쳐

프레시안 : 10대에 대한 관심도 일관되게 보인다. 단편들에선 아예 10대가 주인공이고, <숨바꼭질>에선 손현주 캐릭터가 어린 시절 형과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소년적인 인물이며, 영화 후반부에선 손현주의 아들 딸 호세와 수아, 그리고 주희의 딸 평화가 집중 조명된다.

허정 : 내가 좀 편하게 느끼는 나이대인 것 같다. 꼭 10대를 그리려 한 건 아니었는데, 시나리오를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10대 전후의 아이들이 자꾸 등장한다. 욕망이나 불안감이 조금 더 솔직하게 보이는 나이대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프레시안 : 아역 배우들 연기 지도가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은데, 어떤 점에서 어린 배우들과 작업을 선호하는 건지 궁금하다. 특히 어린 수아로 나오는 배우 김수안 같은 경우 <미안해, 고마워> 같은 영화에서 봤을 때부터 워낙 연기 천재라고 생각했지만(웃음), 수아와 호수 남매의 연기가 너무 실감났기 때문에 연기 도중 실제 공포를 겪은 건가 싶기도 할 정도였다.

허정 : 자기 감정에 대해 되게 예민한 애들이 따로 있다. 나로서도 그 감정의 메커니즘을 잘 모르겠는데,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그런 느낌을 표출하는 아이가 아니면 연기할 때 그 감정을 끌어내는 게 힘들더라. 그 부분이 아역 배우를 선택할 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 같다.

우는 장면만 하더라도 가짜같이 우는 애들이 있고 진짜같이 우는 애들이 있다. <숨바꼭질>에선 선배 배우들의 역할도 중요하지 않았나 싶다. 호세나 수아의 경우는 주희 역의 문정희 선배가 직접 옆에서 무섭거나 놀라운 연기를 해서 아이들 감정을 끌어올려주거나, 전미선 선배가 실제 엄마처럼 보살펴 주거나, 그런 식으로 아이들을 도와주셨다. 평화를 연기한 배우는 신기하게도 본인이 알아서 자기 표현에 욕심을 내는 지점이 있었다.

김수안 같은 경우는 부산국제영화제서 상영될 단편 <콩나물>을 보시길 권한다. 그 친구 인생 최고의 연기라고 생각한다.(웃음)

프레시안 : 출연한 아역 배우들에게 이 영화가 어떻게 다가왔을까. 개인적으로 '해님 달님'의 공포 버전이 아닌가 싶었는데.

허정 : 나도 그런 괴담들을 듣고 자랄 때 무서워했던 기억이 생생하고, 아이들에겐 그런 공포가 훨씬 실감나게 다가올 거란 생각이 든다. '해님 달님' 같은 괴담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아이들이 딱 그 나이 또래가 아닌가 싶다. 또 관객들 입장에서도, 지금 호세나 수아, 평화 같은 아이들보다 좀 더 나이가 많은 배우들이 나왔으면 공포 느낌이 덜 전달됐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프레시안 : 보통 호러 스릴러에서 아이들을 활용하는 방식과 많이 다르다. <숨바꼭질>의 아이들은 빽빽 울어대는 희생자가 아니라 꽤 능동적으로 움직인다.

허정 :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어드벤처물을 좋아하는 취향이라 그런 것 같다.(웃음) <구니스> 같은 영화들을 떠올렸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른보다 아이들 입장에서 더 크고 긴장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는데, <숨바꼭질> 같은 가족 괴담에서 아이들의 공포를 그 또래 시점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프레시안 : 단편 <주희>에 이어 <숨바꼭질>에서도 문정희가 연기한 캐릭터 이름이 주희다. 혹시 <주희>의 주희가 성장해서 <숨바꼭질>에 이른 건가.

허정 : 사실은 <숨바꼭질> 시나리오가 먼저 나왔고 그 다음 <주희>를 찍었다. <숨바꼭질>은 성수 입장에서 진행되니까 주희 캐릭터에 대해 아쉬움이 나왔다. 주희 캐릭터를 더 보여주고 싶었던 것들이 남아서 단편 <주희>에 착수했다. <주희>와 <숨바꼭질>의 주희는 둘 다 비슷한 캐릭터긴 한데 좀 다른 지점이 있고.

프레시안 : <저주의 기간><주희><숨바꼭질> 모두 내레이션 기법을 선호하는 것 같다. 특히 <주희>와 <숨바꼭질>에선 오프닝과 클로징에 거의 비슷하지만 단어가 조금 바뀐 내레이션을 사용하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 두 내레이션의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럼으로써 일종의 '구전설화 괴담'의 느낌을 더 강조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 허정 감독. ⓒ프레시안(손문상)
허정
: 동의한다. 학교 괴담이든 다른 종류의 도시 괴담이든, 사람들이 뭘 불안해하고 욕망하는지 그 지점을 건드리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이 영화에서도 괴담의 정체가 탁 드러나기 이전의 공간들에서 떠도는 느낌 같은 것들을 강조하기 위해 앞뒤로 내레이션을 배치했다.

프레시안 : 조금 헛갈렸던 지점인데, <숨바꼭질> 클로징의 아파트는 성수의 아파트인가, 혹은 주희네 아파트가 철거되어 새로 지어진 아파트인가?

허정 : 성수 아파트가 맞다. 주희 아파트는 철거 직전이라는 설정만 계속 나왔고, 재개발의 모습까진 담지 못했다. 공간이 부서지고 새로 옮겨지는 느낌이 좀 더 들어가길 바랐는데, <주희>에서보단 <숨바꼭질>에서 덜 부각된 것 같다.

프레시안 : 전수아 미술감독과 주로 어떤 점에 대해 대화했나.

허정 : 일단 성수네 집에선 성수 캐릭터가 잘 보였으면 하는 얘길 했다. 우리나라 아파트가 아니네, 만들어진 세트네 이런 느낌이 들면 안 되지만 그 익숙한 공간 안에서 성수의 독특한 캐릭터가 스며들어가 있길 바랐고, 또 사람들끼리 숨바꼭질 놀이를 할 수 있는 구조적인 특성도 있어야 했다. 성수의 형 성철네 집 같은 경우는 언제든 비어 있는 느낌을 생각했다. 혼자 죽었는데 그 시체가 오래도록 발견되지 않았던 방의 이미지들을 좀 본 게 있는데, 성철네 집에서도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가 발견됐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주희네 집 같은 경우도, 주희 캐릭터에 맞춰서 이것저것 맥락 없이 다 모아 쑤셔 넣은 느낌을 상상했다.

프레시안 : 호러 스릴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개연성을 포기하고 가야만 하는 부분이 있다. 호러라는 장르의 최소한의 관습적 용인이라고 생각했는데, 관객들은 스릴러에 방점을 두었기 때문인지 개연성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이에 대한 감독의 항변을 듣고 싶다.(웃음)

허정 : 나는 애초에 이 영화를 괴담이라고 생각하고 출발했고, 이야기를 써내려가면서 장르적으로 재미있는 지점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비중을 두게 된 선택 지점들이 있다. 그러다보니 개연성에 대한 얘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이런 반응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내 선택에 대해서도 후회하지 않는다. 호러 장르에서 이런 식의 장면이 나오지 않을까 다음 순간을 예측했을 때 그 예상이 맞아떨어지는 재미도 있지 않을까 싶었고.(웃음) 물론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반응들 앞에선 좀 당황스럽다.

프레시안 : 손현주, 전미선, 문정희를 캐스팅할 때의 생각이 궁금하다. <숨바꼭질>을 보고 나서 세 사람 다 굉장히 좋은 배우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됐다.

허정 : 먼저 성수 캐릭터는 양면이 다 보이길 바랐다. 결벽증적인 캐릭터면서, 동시에 관객들에게 너무 거리감이 느껴지기보다 좀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손현주 선배가 그렇게 친근하면서도 예민한 느낌을 다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성수가 좀 더 겁을 많이 내는 캐릭터로 구상했는데, 손 선배와 얘기를 나누면서 가족을 좀 더 강력하게 지키고 싶어하는 선배의 생각을 받아들였고, 결벽증의 수위를 어디까지 올려야 할지에 대해서도 논의를 많이 했다.

주희를 연기할 배우는 되게 저돌적이고 맹목적인 느낌이 확 오는 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타인 앞에서는 그런 성격이 좀 숨겨져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후의 저돌적인 모습도 앞부분 행동 패턴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는 지점을 짚고 넘어가줘야 했다. 문정희 선배가 주희 역을 너무 잘해주셨는데, 초반엔 주희가 레퍼런스가 있는 캐릭터가 아니다보니 고민을 많이 하셨다. 자기가 본 사람 중에 이런 캐릭터도 있었다면서 의견을 내주시고, 하이에나 같은 느낌도 많이 생각하고.

민지 캐릭터는 날카롭고 내뱉는 성격이기 때문에 오히려 안정적이고 차분한 분이 중심을 잡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 아이를 지키려는 엄마의 느낌을 강하게 전달해줘야 했고, 그런 면에서는 관객들에게 가장 감정이입하기 쉬운 캐릭터이길 바랐고. 전미선 선배님도 그런 감정의 흐름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 입장이라는 걸 잘 이해해 주셨다,

▲ 영화 <숨바꼭질>. ⓒ(주)드림캡쳐

프레시안 : 리듬감에 대한 고민은 어떤가. 어느 정도는 숨쉴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숨바꼭질>은 숨 돌릴 겨를이 없이 관객을 계속 몰아친다.

허정 : 그게 좀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시나리오에선 상황을 찬찬히 설명하면서 숨 쉴 부분이 더 많았는데, 편집하는 과정에서 '무섭고 재미있는 영화'를 염두에 두면서 차라리 죽죽 밀고 나가는 호흡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최종적인 선택을 내렸다. 나로서는 시나리오를 쓸 땐 이런 부분들이 무섭게 느껴질까, 괜찮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영화를 본 분들 반응을 보니 나 역시 놀랍긴 했다.

프레시안 : 당신의 영화적 취향은 어떤 쪽인지 궁금하다.

허정 : 너무 좋아하는 영화가 많아서 하나만 꼭 집어서 말하기가 힘들다. 어드벤처 영화와 공포 영화를 무척 좋아하고, 폴 토마스 앤더슨 영화도 되게 좋아한다.

프레시안 : 장편 데뷔작으로 이렇게 출중한 장르적 감각을 입증한 감독이 너무 드물었기 때문에 많이 반가웠고, 앞으로도 계속 이런 장르의 영화들을 만들어주길 바라는 개인적인 욕심이 있다.(웃음)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

허정 : <숨바꼭질>을 끝내고 난 뒤 고민이 좀 들었다. '괴담을 반영한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더 명확하게 '보여주는' 부분들이 있어야 했을까. 계속 이런 공포 느낌으로 다음 작품을 만드는 게 맞을지, 혹은 내가 의도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반응들을 보면서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내려다보면서' 접근한 건 아니었는데, 내가 어딘가 놓친 부분이 있는 걸까. 주희에 대해서도 좀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지점이 있었어야 했을까. 그런 생각들이 든다. 하지만 아직까진 <숨바꼭질> 에 대해 거리를 두기가 힘든 상태인지라, 시간이 좀 더 지난 다음 찬찬히 돌아보면서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면 좋을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스포일러 주의!)
프레시안 : 주희가 사는 아파트는 굉장히 중요한 공간인데, 일단 헌팅은 어디서 했고, 이웃집끼리 이어지는 구조에 대해 처음부터 어떤 설계를 했는가.

허정 : 주희의 공간은 동대문 근처 아파트에서 주로 촬영했다. 성수 아파트는 익숙한 느낌의 새 아파트기 때문에 주희 아파트는 정반대의 느낌으로 좀 다른 구조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일단 ㅁ자형이나 일자형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옛날에 지어졌을 땐 원래 하나의 공간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칸을 나눠 두 집으로 분리했다고, 언제든 뚫을 수 있다는 느낌을 생각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악마의 씨>(1968)에서 제일 인상 깊게 봤던 장면을 응용한 것이다. 나중에 밝혀지는 게 각 아파트 공간마다 전부 연결되어 있었지 않나.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이 쑥 들어오고 애초의 공간이 사라지는 느낌이 재미있었다.

프레시안 : 이 부분에서 좀 이해가 안 가서 감독에게 꼭 묻고 싶었다. 주희는 그 아파트에서 가장 '좋은' 큰 집을 차지하고 있는데, 왜 굳이 성수의 형 성철을 죽여야 했을까?

허정 : 사실 누락된 부분이 있다. 주희 입장에서 이것저것 조사하는 맥락이 원래 있었는데 편집에서 좀 빠져 나갔다. 성철이라는 존재는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사람이기도 하고, 애초에 주희가 좀 불안해하는 대상이기도 하니까 성철을 고른 거다. 딸 평화와 자기에 대한 보호 의식이 강한 캐릭터니까. 성철을 없앤 다음 주희가 잠시 거기 머무르면서 자기 속옷들도 서랍 속에 넣어놨던 거고. 설마 동생 성수가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테니까.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