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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무적의 체제? "대안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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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무적의 체제? "대안은 있다!"

[프레시안 books] 베르트랑 로테·제라르 모르디야의 <대안은 없다>

현 경제 체제의 "대안은 없다"는 것, 이는 2013년의 세계 시민들 다수에게 일종의 상식이다. 하지만 합리적인 이유 없이 전환하는 것이 토마스 쿤이 말한 패러다임의 한 특징이라면, 그리고 그것을 떠받드는 구조와 요소를 사후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그나마 가능한 일이라면, 한 사회를 지배하는 경제 이데올로기는 상식보다는 패러다임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대안은 없다>(베르트랑 로테·제라르 모르디야 지음, 허보미 옮김, 함께읽는책 펴냄)의 부제목 '바보들이 지껄이는 소음과 격정에 찬 무의미한 이야기'처럼, 신자유주의라는 경제적 선전은 지난 30년 동안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복지국가의 초석이 된 '영광의 30년'이 있었다. 국가의 책임, 노동기본권 보장, 적극적 재분배, 사회적 연대에 대한 신뢰, 그 때는 이런 것들이 상식이었다. 케인스주의자들이 승승장구하는 동안 하이에크의 후손인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비분강개, 와신상담의 칼을 갈아야 했다. 그들에게 국가는 곧 공산주의였다. 그 사실이 너무도 싫었던 이들에게 마침내 기회가 왔다.

▲ <대안은 없다>(베르트랑 로테·제라르 모르디야 지음, 허보미 옮김, 함께읽는책 펴냄). ⓒ함께읽는책
1960년대 말이 되자 국가 주도의 경기부양책이 먹히지 않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불황과 인플레이션이라는 이중의 악재가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이다. 여기에 유가폭등과 전자산업의 부상으로 인해 전통적인 제조업 기업들은 경쟁의 압박에 내몰리게 되었다. 이제 시장에게 영광의 자리를 되돌려줄 때가 되었다.

이 모든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 자본주의 시장이 대안이 된다고?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대안이라는 것이다. 이 숙명론을 받아들이고 정부든 가족이든 개인이든 시장 속에서 시장을 통해 살아남으라는 것이다. TINA는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신조어였다.

저자들이 말하듯, 조지 오웰이 <1984>에서 언급한 '뉴스피크'는 여기에 잘 들어맞았다. 평등은 '형평성'으로, 임금은 '노동비용'으로, 이윤은 '부의 창출'로 다시 해석되었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스스로가 진취적이고 진보적인 (시장)자유의 화신이 되었으니, TINA 자체가 뉴스피크였다.

TINA는 매기(마가렛 대처)와 로니(로널드 레이건)라는 정치적 육신을 얻었다. 레이거노믹스의 내용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정부 지출 축소, 세금 감면, 규제 완화, 인플레이션 해소라는 원칙을 버무려놓은 규범이었다. 나머지는 시장이 해결해줄 것이었다. 대처가 한발 더 나아간 것은 영국에 상대적으로 많았던 국유 기업의 머리에 총부리를 겨눈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더 중요했던 지점은 수단에 불과한 경제학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시장에 순응하도록 바꾸는 것이었고, 결국 성공했다.

저항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탄광노조, 미국에서는 항공 관제사 노조 파업의 패배가 오히려 TINA가 대세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여기에 따르지 않았다가는 '국물도 없다'는 본때를 보인 것이다. 미테랑 좌파 정부의 프랑스도 이 도도한 물결 속에서 예외일 수 없었고, 신자유주의라는 '이성의 원' 안으로 편입되고 말았다. 프랑스의 한때 좌파들도 하나 둘씩 전향하거나 자세를 고쳐 잡고 타협했다.

그 이후 최근 몇 년의 상황은 너무나 익숙한 스토리로 전개된다.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자 신자유주의를 외치던 이들이 갑자기 국가를 다시 불러내어 구제를 해달라고 외친다. 마르크스를 다시 읽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떤다. 그리고 금융투자 전문가들과 주택담보대출기업들 같은 희생양을 찾고, 이들의 모럴 해저드가 문제였다고 질타한다. 끝으로, 여전히 다른 대안은 꿈도 꾸지 말라고 사람들을 겁박하는 것이다.

21세기 초반의 금융 위기는 신자유주의자들에게도 위기였으나, TINA의 위세는 꺾이지 않았다. 사르코지마저 나서서 금융자본주의를 비난했지만 오히려 금융자본주의의 사악한 측면을 개혁하면 될 일이지 자본주의 자체를 손댈 일은 아니라는 논지는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왕년의 좌파들도 금융자본주의의 비판에 합세했을 뿐, 별다른 토를 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일랜드와 그리스의 대중투쟁, 여러 나라의 '오큐파이'가 어떤 구체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도 이러한 상황의 연장일 것이다.

<대안은 없다>의 분량이 두껍지는 않지만 저자들의 이야기가 주로 프랑스의 상황을 좇고 있어 몰입해 읽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프랑스 지식인들, 정치인들, 언론인들, 심지어 연예인들이 TINA의 공고화 과정에서 수행한 역할을 함께 살펴보면 한국에서도 있음직한 일들과 사람들이 금방 떠오른다. 특히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를 반추해보면 참으로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당장 지금도 눈물겹게 대한문 분향소를 지키고 있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대량해고 사태를 두고도, 회계조작의 진상을 규명하고 복직을 논의하자는 요청은 정리해고 이외에 경쟁력 회복 대안이 있느냐는 단순 논리를 이기지 못하고 있다. 공기업들은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느라 적자를 감수하지만, 이를 비효율이자 국고 낭비라고 다그치며 민영화 말고 대안이 있느냐고 한다. 밀양과 청도에서 송전탑을 막고자 싸우는 어르신들에게도, 전기를 써야 하는데 핵발전 이외의 대안이 있느냐고 한다. 자유무역 확대해서 스마트폰 팔아야 농민도 먹여 살리는데, 우리 농업 자체에 대안이 있느냐고 한다. 새만금 사업은 이제까지 퍼부은 돈이 얼마인데 대안이 있느냐고 했다. 말도 안 되는 4대강 사업 역시 이명박은 그거라도 해서 경제성장 해야지 대안이 있느냐고 했으며, 다수의 국민들은 대통령이 그렇게 하겠다는데 대안이 있느냐며 묵인해주었다.

▲ 지난 4월 4일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노동자 분향소를 중구청 직원들이 기습 철거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요컨대 각자 재주껏 살아남는 것 말고 대안이 있느냐는 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상식이다. 그리고 1 아니면 0 밖에 없으니 그 사이의 무엇을 만들어볼 꿈도 꾸지 말라는 전체주의의 논리다. 이렇게 TINA는 무적의 그리고 만능의 프레임이 되었다.

<대안은 없다>에서 아쉬운 부분 중 하나는 TINA가 이렇게 힘을 갖게 된 이유에 대한 심리적인 혹은 심성구조적인 접근을 더 해 볼 수는 없었을까 하는 점이다. 빌헬름 라이히가 파시즘의 대중심리를 해부했던 것처럼, TINA를 적극적으로 또는 수동적으로 수용하게 만드는 요소나 조건들을 파악할 필요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드는 생각은 한국의 사회운동 내에도, 수많은 저항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실은 TINA가 만연해 있지는 않은가 하는 것이다. 당장의 가능한, 눈에 보이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현실론은 대안이 없다는 대안을 깨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현실론이 아닌 것은 모두 이상론으로 치부되고 말 것이다. 자본주의가 대안이 아니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비타협적 현실론의 마인드 게임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부터 먼저 1과 0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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