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만했습니다. 6월 한 달 내내 가동한 핵발전소는 전체 23기 중에서 단 13기에 불과했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의 불량 부품 스캔들, 월성 1호기 수명 만료 등을 이유로 핵발전소 10기가 가동을 중단했죠.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고 초여름까지만 하더라도 "심각한 전력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심각한 전력난" 따위는 없었죠.
어렸을 때부터 핵에너지로 움직이는 로봇 '아톰'에 열광하며 "원자력 에너지는 미래 에너지"와 같은 메시지를 주입 받다 보니, 우리는 어느 새 핵발전소 없는 미래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핵발전소 수출에 그토록 열심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죠.
하지만 어떻습니까? 당장 대한민국이 멈추기라도 할 것처럼 언론은 호들갑을 떨었지만 핵발전소 10기가 멈춰서도 큰일은 없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2030년까지 핵 발전 비중을 59퍼센트로 늘리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이른바 '핵 마피아'라 불리는 이들의 자충수 탓에 오히려 핵 발전 비중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25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졌죠.
자,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대한민국은 지금 심각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여기서 핵 발전의 비중을 더 줄인다면 우리는 독일의 길을 좇아 핵발전소와 작별할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계획을 좇는다면 우리는 전력의 75퍼센트를 핵발전소에 의존하는 프랑스의 길을 뒤따를 것입니다.
"과학과 미래 그리고 인류를 위한 비전"을 찾는 <크로스로드>와 함께하는 '과학 수다'는 이번에 핵발전소의 이모저모를 살핍니다. 여러분의 선택을 돕고자 핵폭탄과 핵 발전의 기본 원리부터 시작해서 핵 발전의 문제점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가능성까지 살펴보았습니다.
고려대학교 윤태웅 교수(전기전자전파공학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이종필 박사(물리학과), 천문학자 이명현 기획위원, 강양구 기자가 핵에너지에 대한 애증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수다에 참여했습니다. 강 기자가 특별히 선택해 소개하는 세 권의 책은 핵발전소 없는 여름을 나기 위한 필독서입니다.
자, 독일입니까, 프랑스입니까? 여러분이 바로 그 선택의 주인공입니다.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이종필 박사. ⓒ프레시안(손문상) |
원자력 에너지 vs. 핵에너지
강양구 : 8월의 '과학 수다' 주제는 핵에너지입니다. 그런데 수다를 시작하기 전에 배경 설명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애초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났던 3월이 아닌 8월의 주제로 핵에너지를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핵발전소 사고와 같은 묵시록적 사건에서 좀 거리를 두고서 핵에너지를 살펴보자는 의도예요.
이명현 : 그런데 세상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죠. 최근에 핵발전소 불량 부품 스캔들이 일어나서 난리법석이니까요. 반핵 운동 진영에서나 통용되던 '핵 마피아'를 보수 언론은 물론이고 정부 인사도 사용하는 상황이니 격세지감입니다. (웃음) 아무튼 오늘은 애초 기획 의도대로 조금은 깐깐하게 핵에너지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겠습니다.
강양구 : 우선 <프레시안>에서는 '원자력 발전소' 혹은 '원자력 에너지'보다는 '핵발전소' 또 '핵에너지'와 같은 용어를 선호합니다. 저부터 웬만하면 '핵발전소' 또는 '핵에너지'라고 사용하죠. 왜냐하면, '원자력 발전소' 또는 '원자력 에너지'라는 표현이 부정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얘기부터 해보면 어떨까요?
이종필 : 핵에너지나 원자력 에너지, 핵 발전이나 원자력 발전, 핵폭탄이나 원자 폭탄…. 모두 한 가지 실체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그 뿌리는 모두 핵에너지에서 비롯된 것인데요. 일단 가장 기본적인 것, 그러니까 원자부터 다시 한 번 살펴보죠. 19세기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를 '원자'로 여겼었어요.
그러다 1897년에 영국의 조지프 존 톰슨(1856~1940년)이 전자를 발견하면서, 원자 안에 더 작은 물질로 이뤄진 구조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리고 최근 힉스 입자를 발견하기까지 그 구조를 해명하고자 수많은 과학자들이 노력했죠. (☞관련 기사 : 힉스 입자가 뭐냐고? 강남에서 '말춤' 추는 싸이!)
톰슨에 이어서 1911년 어니스트 러더퍼드(1871~1937년)가 원자핵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 전기'를 띤 원자핵 주위에 '- 전기'를 띤 전자가 분포하는 원자의 기본 구조가 확립되죠. 사실 원자핵의 본질은 '+ 전기'를 띤 입자들이 결합력으로 뭉쳐 있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핵에너지의 원천이 바로 이 원자핵을 구성하는 입자들 사이의 결합력입니다.
강양구 : 그 결합력이 바로 '핵력'이죠. 그리고 그 핵력이 깨질 때 방출되는 에너지가 바로 핵발전소나 핵폭탄의 원천인 핵에너지고요.
이종필 : 맞아요. 핵발전소의 연료인 우라늄은 원자 번호가 92번이잖아요. 이 원자 번호는 바로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의 숫자거든요. 그러니까 우라늄은 '+ 전기'를 가진 양성자가 92개 뭉쳐 있는 거예요. 거기다 원자핵을 구성하는 전기를 띠지 않는 중성자 약 140개가 붙어 있죠.
이렇게 원자핵을 구성하며 뭉쳐 있는 양성자, 중성자를 '핵자(nucleon)'라고 부르죠. 240개가 넘는 핵자가 뭉쳐 있는 우라늄 원자핵이 쪼개질 때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하는 게 바로 핵에너지입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흔히 쓰는 '원자력 에너지'가 아니라 '핵에너지'가 맞아요.
이명현 : 핵에너지, 핵폭탄이 정확한 표현이군요.
이종필 :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원자력'은 '원자력 에너지'나 '원자력 발전소'처럼 긍정적인 이미지로 쓰이고, '핵'은 '핵무기'나 '핵폭탄'처럼 부정적인 이미지로 쓰이죠. (웃음)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원자력 에너지'나 '원자력 발전소'를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정확한 용어가 '핵에너지'나 '핵발전소'라는 사실은 알아야죠.
윤태웅 : 물리학자들 사이에서는 어떻습니까?
이종필 : 물리학자들도 '원자력 에너지', '핵에너지'를 혼용해서 사용합니다. 하지만 엄밀히 구분을 해야 할 경우에는 '핵에너지'를 사용하죠.
▲ 윤태웅 고려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
'핵배낭' 테러가 가능한 까닭은?
이명현 : 그럼, 이제 어떻게 핵에너지가 만들어지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죠.
이종필 : 원자 번호가 92인 우라늄의 예를 들어보죠. 아까도 얘기했듯이 원자 번호는 양성자의 숫자와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라늄의 원자핵 속에는 양성자가 92개 들어 있죠. 이 양성자의 숫자와 원자핵을 구성하는 또 다른 요소인 중성자의 숫자를 합친 것을 '질량수'라고 부릅니다(질량수=양성자+중성자).
강양구 : 언론에서 "우라늄 235", "우라늄 238" 이렇게 쓸 때, 우라늄 뒤에 붙는 숫자가 바로 질량수죠?
이종필 : 맞습니다. 그러니까 우라늄 235는 양성자 92개와 중성자 143개로 구성된 원자핵을 가지고 있는 거죠(235=92+143). 우라늄 238은 양성자 92개와 중성자 146개로 구성된 원자핵을 가지고 있는 거고요(238=92+146).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중성자야 전기를 띠고 있지 않지만, 양성자는 한 개 한 개가 다 '+ 전기'를 띠고 있어요.
'+ 전기'를 띠는 양성자가 92개나 뭉쳐 있으니 마치 자석이 같은 극끼리 밀어내듯이 자기끼리의 반발력이 크겠죠. 그런데 그런 전기적 반발력을 압도하는 어떤 힘이 그것을 모조리 묶어서 원자핵을 만들어내거든요. 이 힘이 바로 양성자, 중성자를 강력하게 묶어주는 '강한 핵력(Strong Interaction)'입니다.
일본의 유가와 히데키(1907~1981년)가 바로 이 '강한 핵력'과 그것의 작동 방식을 최초로 제안해, 1949년 일본인 최초로 노벨상(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강한 핵력은 (+ 전기를 띤 양성자끼리의 반발력 같은) 전자기력보다 100배 정도 셉니다. 우라늄의 양성자가 거의 100개에 가까운 92개잖아요.
강양구 : 양성자 92개가 서로 밀어내니 아무리 강한 핵력이 있더라도 약간 불안정하겠죠.
이종필 : 맞습니다. 이런 우라늄을 외부에서 충격을 주면 강한 핵력이 더 이상 양성자나 중성자를 잡아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해요. 원자핵이 깨지는 겁니다. 바로 이렇게 우라늄의 원자핵이 깨질 수 있는 현상을 1938년 발견한 과학자가 바로 독일의 오토 한(1879~1968년)입니다. 이런 현상 자체도 경이로운 일이죠.
이명현 : 원자핵을 쪼개서 새로운 종류의 원자가 만들어지는 현상이잖아요.
이종필 : 네, 이게 바로 연금술이거든요! 그리고 곧 과학자들은 이 때 방출되는 에너지로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력을 가진 폭탄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대표적인 과학자가 바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과 함께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 핵폭탄의 위험을 경고한 레오 실라드(1898~1964년)입니다.
반복하지만 이 에너지가 바로 핵에너지의 원천입니다. 우라늄처럼 덩치가 큰 원자에 전기를 띠지 않는 중성자로 외부 자극을 주면, 우라늄의 원자핵이 쪼개져 다른 원소로 바뀌면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방출됩니다. 그 에너지를 바로 핵폭탄 혹은 핵발전소에서 쓰고 있는 것이죠.
강양구 : 여러 원자 중에서 특히 우라늄을 사용하는 이유는 그것이 비교적 쉽게 깨지기 때문이죠?
이종필 : 맞아요. 그렇게 원자핵이 쪼개지는 현상을 바로 '핵분열(fission)'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중성자를 포격해서 원자핵이 쉽게 쪼개지는 성질을 가진 원자를 '핵분열성 원자(fissionable atom)'라고 부르죠. 그런데 이런 핵분열성 원자 중에서 '피사일(fissile)'한 성질을 가진 게 있어요.
중성자를 포격하면 원자핵이 쪼개지죠. 그런데 핵이 쪼개지면서 쏟아져 나오는 중성자가 또 다른 우라늄 원자핵을 쪼개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서 쏟아져 나오는 중성자가 또 다른 우라늄 원자핵을 쪼개고. 이런 연쇄 반응이 바로 '피사일'한 성질입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천연 우라늄의 경우에는 우라늄 238이 99.3퍼센트입니다. 이 우라늄 238보다 중성자가 3개가 모자란 우라늄 235가 0.7퍼센트예요. 우라늄 238 역시 방사성 물질이긴 합니다만, 원자핵을 쪼개려면 고에너지 중성자로 때려야 할 뿐만 아니라 쪼개지고 나서도 거기서 나오는 중성자의 양이 많지 않아요.
강양구 : 피사일하지 않군요.
이종필 : 맞아요. 그런데 우라늄 235는 위험한 물질입니다. 저에너지 중성자로 때려도 원자핵이 쉽게 쪼개질 뿐만 아니라, 거기서 나오는 중성자 개수가 많습니다. 이 중성자가 다시 옆에 있는 우라늄 원자핵을 때리고, 또 거기서 나오는 중성자가 다시 우라늄 원자핵을 때리고….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우라늄 235는 불을 한 번 붙이면 끝없이 타오르는 굉장히 위험한 물질이죠.
이명현 : 거기서 나오는 에너지가 엄청나게 크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엄청난 에너지가 나오는 건가요?
이종필 : 여기서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E(에너지)=m(질량)×c(빛의 속도)2' 공식이 나오죠. 그러니까 우라늄 원자가 가지고 있었던 질량과 원자핵이 쪼개지고 나서 생긴 원자의 질량의 차이(m)에 빛의 속도(c=2.99792458×108m/s)를 곱한 만큼의 에너지(E)가 나온다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질량의 차이잖아요. 아주 거칠게 계산을 해보면, 우라늄 235 같은 경우에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235개 있어요. 양성자 한 개의 질량이 10의 -27승 킬로그램입니다. 그게 한 100개 있으면 10의 -25승 킬로그램인데, 그램으로 환산하면 10의 -23승 그램입니다. 그럼, 우라늄 1그램 안에는 대략 10의 23승 개의 원자핵이 있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원자핵 하나가 분열할 때는 미미한 에너지가 나오더라도, 우라늄 1그램만 하더라도 10이 23승 개만큼의 에너지를 얻는 거니까, 그 양이 엄청난 거예요. 바로 그렇게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방출시킬 때 나오는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력이 바로 핵폭탄의 실체입니다.
ⓒ프레시안(손문상) |
이종필 : 실제로 그래요. (웃음) 우라늄 235로 폭탄을 만드는 일은 굉장히 쉬워요. 순수한 우라늄 235를 특정한 질량(임계 질량) 이상으로 모아서 뭉쳐 놓으면 자기들끼리 연쇄 핵분열을 일으키면서 폭발합니다. 그런데 그 임계 질량이 고작 52킬로그램이에요. 그러니까 순수한 우라늄 235 약 50킬로그램만 있으면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거죠.
이 우라늄 235는 순식간에, 즉 한 100만분의 1초 동안 80세대까지 내려갑니다. 한 번 핵분열을 할 때 중성자가 2개가 나온다고 가정하면, 순식간에 2의 80승 개의 중성자가 생기는 거예요. 2의 80승 개의 중성자가 원자핵을 무차별 포격하며 에너지를 만드는 장면을 생각해 보세요. 그 짧은 시간에 갑자기 엄청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니 폭탄이 되는 거죠.
강양구 :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이 바로 이렇게 만들어진 우라늄 235 폭탄이었죠?
이종필 : 맞아요. 실제로 히로시마에 떨어뜨린 우라늄 핵폭탄은 사전 폭발 실험도 안 했어요. 우라늄 235를 30킬로그램, 40킬로그램 이렇게 따로 분리해 놓은 다음에, 나중에 투하할 때 재래식 폭탄을 터뜨려서 둘을 임계 질량 이상으로 합치는 거예요. 그럼, 그 순간부터 핵분열이 일어나서 '펑' 터진 거죠.
강양구 : 흔히 언론에서 "우라늄 농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그것이 바로 천연 우라늄에서 우라늄 235만 추출하는 과정이죠?
이종필 : 맞습니다. 바로 그 우라늄 농축만 제대로 할 수 있으면 우라늄 핵폭탄 만드는 일은 정말 쉽죠. 그런데 우라늄 농축은 굉장히 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죠.
강양구 : 맨해튼 프로젝트 때도 그 우라늄 농축에 굉장히 많은 인력과 시설이 필요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명현 : 그럼, 핵분열의 원인이 되는 중성자가 많아지거나 혹은 임계 질량 자체가 작아진다면 폭탄 크기를 작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겠네요?
이종필 : 맞아요. 일정 수준 이상의 임계 질량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중성자 때문입니다. 질량이 늘어나면 부피가 커지겠죠. 그럼, 자연스럽게 원자핵이 쪼개질 때 나오는 중성자가 밖으로 튕겨져 나가는 게 아니라 다른 원자핵을 포격할 확률도 커지죠. 그런데 이렇게 밖으로 튕겨져 나가는 중성자를 다시 안으로 돌려보낼 수만 있다면 임계 질량을 줄일 수 있겠죠?
그래서 중성자 반사재를 씁니다. 베릴륨 같은 원소는 중성자를 반사하는 성질이 있어요. 이런 베릴륨을 집어넣으면 원자핵이 쪼개지면서 나온 중성자를 베릴륨이 반사해서 계속해서 안에서 원자핵을 포격하도록 만듭니다. 이런 반사재를 이용해서 임계 질량을 4분의 1 정도로 줄일 수 있어요. 그래서 실제로 우라늄 235 폭탄은 15킬로그램 정도면 충분합니다.
강양구 : 그러니까,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핵배낭은 이런 반사재를 넣어 임계 질량을 낮춘 거군요.
이종필 : 그런 핵배낭은 대부분 플루토늄 폭탄입니다. 플루토늄은 핵 분열할 때 중성자가 세 개 나와요. 그러니까 임계 질량이 우라늄 235보다 적습니다. 반사재까지 사용하면 임계 질량이 6킬로그램 정도예요. 플루토늄은 밀도가 높기 때문에 6킬로그램이 350밀리리터 생수병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물론 플루토늄 폭탄은 우라늄 폭탄보다 만들기가 힘들죠.
▲ 이명현 '프레시안 books' 기획위원.(천문학자). ⓒ프레시안(손문상) |
핵발전소도 '펑' 하고 폭발할까?
강양구 : 핵발전소도 핵폭탄과 다를 게 없죠? 다만 우라늄 235의 농도만 낮춘 것뿐이죠?
이종필 : 그렇습니다. 핵발전소 핵 연료봉 안에 들어 있는 우라늄 235는 2~5퍼센트 정도예요.
강양구 : 흔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면 핵폭탄이 터지듯이 폭발하는 상황을 연상하는데, 절대로 핵발전소가 '펑' 하고 폭발하는 일은 없죠?
이종필 : 핵폭탄처럼 폭발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우라늄 235의 농도가 굉장히 낮기 때문이죠. 맨 처음 원자로를 만든 사람이 이탈리아 출신으로 파시즘을 피해서 미국으로 망명한 엔리코 페르미(1901~1954년)입니다. 그런데 페르미는 아예 전혀 농축하지 않은 천연 우라늄을 그 연료로 사용했어요. 천연 우라늄 속에는 우라늄 235가 약 0.7퍼센트 들어 있죠.
핵폭탄과 핵발전소는 알코올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 순도가 높은 알코올은 램프가 되잖아요. 불을 붙일 수 있죠. 그게 바로 핵폭탄입니다. 알코올 농도가 4도 정도 되면 음료수처럼 마실 수 있는 맥주가 되잖아요. 그게 바로 핵발전소죠. 맥주에다 아무리 불을 붙이려고 해도 불이 붙지 않잖아요.
강양구 : 우라늄 235의 양이 적을 뿐만 아니라 감속재도 넣잖아요? "경수로" 할 때 그 경수가 바로 감속재죠.
이종필 : 경수는 그냥 보통 물(H2O)입니다. 경수로의 경우에는 이 경수가 감속재, 그러니까 중성자의 속도를 늦추는 역할을 합니다. 제어봉도 중요하죠. 제어봉은 중성자를 흡수하는 카드뮴, 붕소 등으로 만듭니다. 이 제어봉으로 원자로 안에 있는 중성자의 숫자를 조절해서 연쇄 반응이 과하지 않도록 조절하죠.
우라늄 235는 한 번 불을 붙이면 꺼지지 않아요. 그러니까 정말로 효과적인 무기죠. 순간적으로 '쾅' 터뜨리면 도시 하나를 날려버리는 건 시간문제니까요. 적절히 제어만 할 수 있다면 에너지원으로서도 훌륭하죠. 연료 공급이 용이하지 않은 곳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항공모함, 핵잠수함의 동력으로 핵에너지가 각광받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명현 :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핵에너지를 이용한 우주 탐사선도 선호되죠.
ⓒ프레시안(손문상) |
강양구 : 하지만 1956년 영국에서 최초로 상업 발전을 시작한 이후에 핵에너지의 성적표는 그다지 좋지 않죠. 반세기가 넘었지만 핵발전소를 가동 중인 나라는 31개뿐입니다. 핵발전소 숫자도 434기에 불과합니다. 1979년 스리마일 섬, 1986년 체르노빌, 2011년 후쿠시마 등 사고도 끊이지 않았죠. 우리는 핵에너지를 정말로 통제하고 있는 걸까요?
윤태웅 : 제어 공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중요하게 여기는 사례를 하나 소개할게요. 한 공학자가 불확실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어 장치를 설계했어요. 그리고 그 제어 장치의 변수를 동료 공학자에게 이메일로 전했습니다. 이 변수를 전달받은 공학자는 확인 삼아 똑같은 조건에서 다시 모의실험을 해보기로 했죠.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제어 장치가 불안정한 거예요. 알고 보니, 이메일로 변수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이를테면, 소수점 다섯 자리 이하 숫자를 생략해서 얘기해 준 게 원인이었어요. 아주 작은 양적 차이가 심각한 질적 차이로 나타난 겁니다. 불확실성에 최대한 둔감하게 제어 시스템을 설계해 놓았는데, 그 의도하지 않았던 사소한 변화가 정반대의 결과를 낳은 거죠.
핵발전소는 굉장히 복잡한 인공물입니다. 사고를 예방하고자 수많은 안전장치들이 상호 작용하죠. 방금 언급한 몇 번의 사고를 거치면서 핵발전소의 안전망은 더욱더 보강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보강된 안전망은 핵발전소를 더욱더 복잡한 인공물로 만들었죠.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요소 간의 상호 작용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예측 불가능성이 더 커질 수도 있거든요. 체르노빌 사고나 후쿠시마 사고 같은 일이 반복될 가능성은 아주 낮습니다. 오히려 문제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예상치 못한 사고가 핵발전소에서 발생할 가능성이죠.
미션 임파서블, 10만 년의 봉인
이명현 : 이제 화제를 좀 바꿔보죠. 핵발전소의 문제점 중 딱 한 가지만 들라면 방사성 폐기물이죠.
윤태웅 : 맞습니다. 핵발전소 자체는 심각한 사고의 위험은 항상 있지만, 어찌됐든 제어가 가능한 인공물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방사성 폐기물은 정말로 제어가 불가능하죠.
강양구 :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한 달에 한두 차례씩 시민들과 핵발전소를 놓고서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다들 방사성 폐기물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래서 얘기를 해주면 정말로 놀라시죠. 거의 무슨 귀신이라도 본 듯 경악을 하세요. (웃음) 일단 왜 방사성 폐기물이 골칫거리인지부터 알아보죠.
이종필 : 우라늄을 태우면 찌꺼기가 남아요. 그런데 이 찌꺼기가 몸에 굉장히 안 좋은 것들이에요. (웃음)
강양구 : 몸에 안 좋은 수준이 아니죠. (웃음)
이종필 : 네, 찌꺼기 중에는 플루토늄과 같은 방사성 물질이 있습니다. 그런데 플루토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플루토늄 239 같은 경우는 반감기가 약 2만4000년이에요. 반감기는 플루토늄 안에 들어있는 방사능의 절반이 소진되는 기간을 확률로 계산을 해놓은 거예요. 그러니까 2만4000년이 지나도 플루토늄은 여전히 위험하죠.
강양구 :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장종훈 옮김, 살림 펴냄)으로 유명한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뮬러는 대략 반감기가 서른 번 정도는 지나야 외부 환경에 해를 가하지 않는 수준으로 방사능이 떨어진다고 공언했더군요. 그러니까 플루토늄의 경우에는 거의 60만 년 동안 외부와 격리를 시켜야 한다는 얘기죠.
지금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부지를 선정해서 건설 단계까지 간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핀란드가 유일합니다. 핀란드는 이곳에 2020년부터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영구 저장할 계획입니다. 핀란드는 이곳에서 약 10만 년 정도 플루토늄과 같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외부와 격리되어 있기를 희망하죠.
그런데 10만 년이 감이 오십니까? 10만 년 전에 지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이명현 : 10만 년 전이면…. (웃음)
강양구 : 우리의 조상인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과 유럽에서 조우했던 때가 바로 10만 년 전 즈음이라고 합니다. 네안데르탈인이요! (웃음) 그러니까 도대체 10만 년 동안 관리해야 할 위험한 쓰레기를 끊임없이 생산하는 핵발전소를 우리가 용인해야 하는지 질문을 할 수밖에 없죠.
핵폐기물 처리에 관심을 갖고서 이것저것 찾아보면 머리가 더 복잡해집니다. 예를 들어, 지질학적으로 100퍼센트 안정된 곳을 찾아서 땅속 깊숙이 방사성 폐기물을 묻었다 칩시다. 그러면 이제 이런 고민이 생기는 거예요. '이곳에는 굉장히 위험한 물질이 묻혀 있으니 접근 금지!' 이런 경고를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경고를 어떻게 할까요?
우리는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17~18세기에 쓰인 한글 작품을 선생님의 도움 없이는 해독할 수 없었잖아요. 언어는 200~300년만 지나면 해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방사성 폐기물을 처분한 곳을 수천 년, 수만 년 후에 지나갈 누군가에게 현대 언어로 경고를 하는 건 정말로 소용없는 짓이에요.
이명현 : 소용없는 짓이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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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구 : 몇 번 소개하긴 했습니다만, 움베르토 에코는 장클로드 카리에르와의 대담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내놓았죠.
"그냥 나 혼자만 해본 생각입니다. 핵폐기물을 묻되, 매우 희석된 상태, 즉 방사능이 아주 약한 상태의 폐기물을 맨 위층에 두고, 점차로 방사능이 강한 층들을 깔아 나가는 겁니다. 만일 외계인(혹은 미래 세대-인용자)의 실수로 그 폐기물이 손이나 혹은 손처럼 사용하는 다른 기관이 닿는다 하더라도, 그는 단지 손가락 한 마디를 잃게 될 뿐입니다.
만일 더 해본다면 손가락 하나를 잃게 되겠죠. 하지만 그가 더 이상 파보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일은 없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책의 미래>(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펴냄), 198~199쪽)
오죽하면 에코가 이런 아이디어를 내놓았겠어요. 솔직히 저는 회의적입니다. 유일한 방법은 그 지역에 외부인이 접근하는 걸 아예 차단하고, 대를 이어서 그곳의 접근을 막는 집단을 만드는 방법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자력 족(族)' 정도의 이름이 적당하겠군요. (웃음) 처음에야 접근 금지를 하는 이유를 알겠지만, 나중에는 '금기'만 남겠죠.
윤태웅 : 저도 비슷한 의견입니다. 사실 지난 수천 년 동안 인류가 해온 일이 그런 거잖아요. 신화, 종교 같은 것도 사실은 다양한 방식으로 고대의 지혜를 전달하는 방법이고요. 방사성 폐기물을 놓고도 그런 방법이 거의 유일한 해법 같아요. 그런데, 과연 수천 년 이상 그런 전승이 가능할까요?
이명현 : 1977년에 발사한 우주 탐사선 보이저 호가 갑자기 생각나네요. 보이저 호는 지금 태양계 바깥쪽 어딘가를 외롭게 항해하고 있지요. 이 보이저 호에는 항해 도중에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외계 지적 생명체에게 지구인의 존재를 알리고자 인간 그림, 수학 공식 또 한국어를 포함한 세계 59개 언어의 인사말, 지구 사진 등이 실린 골든 레코드가 실렸습니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이 골든 레코드 제작 과정의 해프닝이 떠오릅니다. 우주 공간의 혹독한 상황에서도 골든 레코드가 견딜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져서 이 골든 레코드는 몇 억 년을 견디도록 만들어졌거든요. 그래서 역설적으로 우리의 정보를 담은 골든 레코드는 우리가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아예 인공 혜성 같은 걸 쏘면 어떨까요? (웃음) 주기적으로 지구를 방문해서 세계 곳곳에 묻혀 있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하는 거죠.
강양구 : 상당히 진지한 제안인거죠? (웃음)
이명현 : 그럼요. (웃음)
이종필 : 과거 10만 년과 앞으로 10만 년을 단순 비교할 수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어쨌든 우리는 문자도 없었고 지금과 같은 과학기술 문명도 없었죠.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보관할지의 문제는 아까도 언급했듯이 결국 문명의 전승을 안정적으로 어떻게 할지와 연결됩니다. 옛날보다는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겠어요?
강양구 : 언젠가 어느 자리에서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을 놓고서 걱정을 늘어놓으니까, 한 분이 항의조로 이렇게 물으시더라고요. '공무원이 있는데 무슨 소리야!' (웃음) 제발 공무원이 천년만년 방사성 폐기물을 잘 관리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윤태웅 : 지금 이런 얘기 자체가 굉장히 행복한 상황을 전제한 것이죠. 방사성 폐기물 처분 방법을 찾고서, 일단 묻어 놓은 다음의 일을 걱정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과연 앞으로 100년, 200년 동안 핵발전소 또 핵발전소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배출한 방사성 폐기물을 우리가 과연 안전하게 관리하며 생존할 수 있을까요? 이런 생각이 들면 아득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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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왜 '재처리'에 목매는가?
강양구 : 막상 얘깃거리를 늘어놓고 보니 할 얘기가 산더미 같군요. 방사성 폐기물을 걱정하면 곧바로 "재처리" 운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재처리를 통해서 방사성 폐기물의 부피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차세대 원자로의 연료로도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인데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의 핵심도 이 재처리를 하자는 것이에요.
이명현 : 미국이 쉽게 용인하지 않을 것 같은데…. 도대체 왜 문제인가요?
이종필 : 핵폭탄의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 때문입니다. 현재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사용 후 핵연료)로 재처리를 하는 나라는 영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중국, 인도의 6개국뿐입니다.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은 이른바 '습식 재처리'를 하고 있어요. 이 방법으로는 핵폭탄의 원료가 되는 순도 높은 플루토늄을 쉽게 얻을 수 있죠.
강양구 : 애초 미국 등도 재처리를 했었는데 플루토늄 같은 물질이 테러 집단에게 악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안 해요. 물론 미국은 이미 충분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더 많은 플루토늄을 축적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죠. 우리나라에서 하겠다는 건 습식 재처리가 아니잖아요?
이종필 : 네, 우리나라는 미국을 설득하고자 '파이로 프로세싱(Pyro-processing)'이라는 '건식 재처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방법으로 재처리를 하면 플루토늄에 다른 불순물이 많이 섞여 있어서 핵폭탄의 원료로 곧바로 활용을 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순물이 많이 섞인 플루토늄을 왜 만들지, 이런 의문이 곧바로 생기고요.
강양구 : 파이로-프로세싱 공장도 약 1개월 정도의 시간을 들여서 설비를 개조하면 플루토늄 단독 추출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또 파이로-프로세싱으로 재처리한 플루토늄 혼합물을 다시 한 번 습식 재처리를 하면 핵폭탄 급의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죠. 그러니까 재처리는 사실상 핵폭탄으로 곧바로 연결되는 거예요.
이종필 : 하나 더 있죠. 많은 이들은 파이로-프로세싱이 고속 증식로 개발의 전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고속 증식로는 플루토늄을 원료로 하는 또 다른 방식의 원자로입니다. 한국, 일본, 프랑스 등에서 활발히 개발 중이고요. 일본에서는 몬주 고속 증식로가 문제가 된 적이 있었죠.
윤태웅 : 몬주 고속 증식로는 실패한 프로젝트죠. 국내의 연구자들이 고속 증식로 같은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려는 마음은 이해가 됩니다만….
이종필 : 국내에서는 나트륨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나트륨 고속 증식로를 개발 중입니다. 그런데 나트륨은 사실 굉장히 위험한 물질이에요. 만약에 나트륨이 고속 증식로에서 폭발이라도 하면 정말 그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겠죠. 몬주의 예에서 보듯이 고속 증식로는 기술적으로도 불안정하고,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죠. 거기다 심각한 안전 문제까지 제기됩니다.
강양구 : 최근에는 우라늄 대신 토륨을 원료로 사용하는 핵발전소 얘기도 나오더군요. 사실 애초 핵 발전을 시작할 때도 우라늄 대신 토륨을 원료로 쓰자는 얘기가 있었죠? 그런데 왜 토륨 핵발전소는 좌초된 건가요?
이종필 : 핵폭탄을 만들 수 없으니까요. (웃음) 위험한 물질은 대개 질량수가 홀수인 거예요. 우라늄 235, 플루토늄 239…. 토륨은 우라늄 238처럼 한 번 불이 붙는다고 계속해서 타는 위험한 물질이 아닙니다. 그러니 발전을 하려면 중성자로 계속해서 때려줘야 합니다. 그러니 초기에는 매력이 없었죠.
우라늄 235는 한 번 불이 붙으면 계속해서 타는 데다, 플루토늄 같은 핵폭탄 원료도 부산물로 얻을 수 있잖아요. 하지만 최근에 핵발전소의 문제점이 불거지면서 토륨이 부상하고 있죠. 특히 인도는 토륨 매장량이 많대요. 그래서 인도에서 토륨 핵발전소를 열심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명현 : 토륨 핵발전소의 특별한 장점이 있나요?
이종필 : 198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이탈리아의 입자 물리학자 카를로 루비아가 있어요. 이 루비아가 최근에 새로운 에너지로 토륨 핵발전소를 강력히 지지하고 있어요. 루비아의 아이디어는 중성자 가속기로 만든 중성자를 대량으로 토륨에게 쏴주면 상업적인 핵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토륨은 우라늄 235와는 달리 계속해서 핵분열 연쇄 반응을 하지 않아요. 그러니 상대적으로 안전하죠. 방사성 폐기물의 문제도 상대적으로 줄어든다고 알고 있어요.
윤태웅 : 현재의 핵발전소가 문제가 많긴 하지만 재생 가능 에너지로 핵에너지를 대체할 수는 없다고 보는 이들에게는 토륨 핵발전소가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도 있겠군요.
이종필 : 네, 앞으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강양구 : 어쨌든 우리나라에서 재처리에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핵무장 가능성을 높이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거든요.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재처리를 주장하는 분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우리도 언젠가는 핵폭탄을 가져야 해!' 이런 게 분명히 똬리를 틀고 있고요. 그런 흐름에 비하면 토륨 핵발전소를 대안으로 궁리하는 흐름은 훨씬 더 건강해 보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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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운대>가 포착 못한 불편한 진실
이명현 : 이제 좀 얘기를 정리해야 할 때인 것 같은데요. 우선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현재의 우라늄 235를 원료로 사용하는 핵발전소에 회의적이죠?
이종필 : 핵발전소가 주는 장점과 비교하면 그 단점이 너무 큰 것 같아요. 저는 부산이 고향입니다. 그런데 부산 기장군에 핵발전소 단지가 있잖아요. 만약 이곳에서 사고가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부산 인구만 350만 명이에요. 울산, 포항, 경주도 근처에 있습니다. 정말로 대난리가 날 거예요. 그래서 굉장히 보수적인 어머니도 막연한 불안감을 느낍니다.
강양구 : 그럴 만해요. 예를 들어, 영화 <해운대>가 2009년에 화제가 된 적이 있었죠?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지진해일(쓰나미)이 지나고 나서 뭔가 안도하면서 끝나죠. 그 장면을 보면서 실소했었죠. 지진해일이 해운대를 덮치면 고작 20킬로미터 떨어진 핵발전소 단지는 무사하겠어요? 대재앙이죠. 실제로 2011년 후쿠시마에서 그런 재앙이 일어났잖아요.
윤태웅 : 다른 건 몰라도 방사성 폐기물만 놓고 봐도 핵 발전이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생 가능 에너지가 과연 핵 발전의 대안인지도 의문이에요. 지금부터 투자하고 연구해서 바람, 햇빛 등으로 최대한 효율적인 재생 가능 에너지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과연 핵발전소를 대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거예요.
과학기술에 대한 관점의 일관성 문제도 짚고 싶어요. 핵발전소를 옹호하는 이들의 가장 큰 오류는 '모든 문제를 과학기술이 해결할 수 있다'는 맹신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분명히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거든요. 방사성 폐기물은 그 대표적인 예죠. 그런데 이런 모습을 비판하는 핵발전소 반대자는 어떤가요?
혹시 그들도 재생 가능 에너지를 놓고는 똑같은 맹신을 하는 건 아닐까요? 재생 가능 에너지가 모든 걸 해결할 수 없을 텐데, 모든 걸 낙관적으로만 보려는 역편향이 있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알 수 없는지 또 할 수 없는지를 좀 더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기술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기본자세가 그런 접근이라고 생각해요.
강양구 : 중요한 지적입니다. 기왕에 과학기술을 대하는 태도 문제가 나왔으니까, 저는 좀 다른 얘기를 덧붙여볼게요. 언젠가 서울대학교의 최무영 선생님께서 상기시켜 준 내용입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핵발전소를 최신의 하이테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게 "창조"를 외치면서 핵발전소에 집착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겠죠.
그런데 사실 핵발전소의 기본 원리는 우라늄을 태울 때 나오는 열로 물을 끓여서 증기를 발생시키는 데서 시작하거든요. 그 증기로 발전기의 터빈을 돌리는 겁니다. 증기로 터빈을 돌린다, 익숙하죠? 맞습니다. 증기 기관이죠. 우라늄을 태우는지 화석 연료를 태우는지만 다를 뿐 물을 끓일 때 나오는 증기로 터빈을 돌리는 기본 원리는 화력 발전소와 다를 게 없어요.
그러니 핵발전소는 올드테크입니다. 올드테크가 꼭 나쁜 건 아니죠. 하지만 이런 올드테크에 집착하는 것이 새로운 혁신을 가로막는 측면은 분명히 있어요. 만약에 지난 수십 년간 핵발전소 개발에 쏟는 노력을 재생 가능 에너지를 비롯한 더 깨끗하고 더 효율적인 에너지원을 찾는 데에 들였다면 지금 세상은 분명히 달라졌으리라 확신합니다.
독일은 좋은 예죠. 독일은 2022년까지 핵발전소를 완전히 폐쇄하기로 결단을 내렸죠. 애초 세계 재생 가능 에너지 산업을 선도하는 나라긴 했지만, 이런 결단 이후에 재생 가능 에너지의 혁신이 눈부셔요. 바람, 햇빛 에너지의 단점을 차근차근 극복하면서 50퍼센트 이상을 재생 가능 에너지에서 얻는 미래를 준비하고 있어요.
독일이냐? 프랑스냐? 선택의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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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웅 : 찬핵, 탈핵 이렇게 나누는 건 바람직하지 못한 것 같아요. 전력 문제를 고민하는 분들 중에서도 분명히 더 이상 핵에너지에 의존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들에게 찬핵이냐, 탈핵이냐 입장을 강요하는 게 과연 효과적인 전략일지 의문인 거죠.
더구나 지적 호기심 때문에 핵에너지를 연구하는 이들도 있지 않겠어요? 이들에게 갑자기 '핵 마피아' 딱지를 붙이면 오히려 반감만 더 사겠죠. 핵에너지의 문제점에 대해서 가능한 한 최소한의 합의를 할 수 있는 이들이 연대해서 같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일을 찾아보는 데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종필 : 그러니까, 이런 질문부터 해보면 어떨까요. 지금 한국 사회가 동의할 수 있는 핵발전소의 최대치는 몇 개일까? 지금은 23기가 가동 중이잖아요.
강양구 : 지금도 한국은 국토 단위 면적당 핵발전소 시설 용량을 따져보면 단연 세계 1위에요. 한국은 명실상부한 핵 발전 대국이에요. 미국(100기), 프랑스(58기), 일본(50기), 러시아(33기) 다음이 한국입니다. 인도가 20기로 한국 뒤를 바짝 좇고 있지요. 중국도 18기로 가동 중인 핵발전소가 일곱 번째로 많은 나라죠. 한국은 또 5기를 추가 건설 중이고요.
윤태웅 : 그러니까 이미 핵발전소 밀집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상태에서 핵발전소를 더 짓는 건 곤란하니 이제는 대안을 찾아보자, 이런 합의를 위한 노력을 시작하자는 거예요.
이종필 : 그런 합의가 불가능하다면, 한 발 더 양보해서 건설 중인 5기까지 포함해서 28기까지를 최대치로 하자는 식으로도 안 될까요?
강양구 : 일단 28기 중에는 노후화한 핵발전소가 포함되어 있어요. 이제 그런 핵발전소들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그럼, 그 핵발전소를 폐쇄하고 핵 발전 비중을 줄일거냐 아니면 그 핵발전소를 폐쇄하는 대신 그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새로운 핵발전소를 이어서 지을 거냐의 문제가 또 제기됩니다. 당연히 핵발전소 옹호론자들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계속 지으려 하겠죠.
바로 이 지점에서 핵발전소를 걱정하는 이들의 마음이 급해집니다. 왜냐하면, 지금 시설 용량 기준으로 보면 전체 전력의 35퍼센트 정도를 핵발전소에 의존하고 있어요. 지금 수준이라면 핵발전소 외에 다른 대안을 찾는 일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비중이 더 높아져서 50퍼센트까지 육박하면 어떨까요?
프랑스가 좋은 예죠. 프랑스는 현재 전체 전력의 75퍼센트를 핵발전소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런 프랑스는 '핵발전소 없는 미래'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좌우 정치가 또렷하게 나뉘는 프랑스의 정치 지형 속에서 좌든 우든 유독 핵발전소를 놓고는 한목소리예요. 강한 프랑스를 위해서는 핵발전소가 꼭 필요하다는 겁니다.
지금 한국은 딱 갈림길에 서 있어요. 독일로 가느냐 아니면 프랑스로 가느냐. 물론 현실만 놓고 보면, 프랑스로 갈 가능성이 크죠. 더 늦기 전에 정말로 사회적 대토론이 필요한 시점인데요. 정작 핵발전소를 유지하거나 확대하려는 분들은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답답할 따름이죠.
이종필 : 그러니까 지금 수준을 유지하는 정도로라도 타협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보자는 거죠. 50퍼센트가 넘지 않는 선에서 유지할 수 있도록.
강양구 : 그런 타협이 안 될 것 같아서 자꾸 딴죽을 걸게 되는데요. (웃음) 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하나만 더 짚고 갈게요. 개인적으로 제일 고민하는 핵 사고는 산둥 반도에 지어지는 핵발전소들이예요. 중국은 현재 18기를 가동 중이고 28기를 건설 중인데, 그 중 상당수가 산둥 반도에 모여 있어요.
만약 산둥 반도를 비롯한 중국 동해안의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나면 어떨까요? 편서풍을 타고서 그 방사성 물질이 그대로 수도권을 덮치는 거예요. '황사'가 아니라 '핵사'가 한반도를 덮쳤을 때, 한국 사회가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요? 사실 일본의 환경 단체가 한국 동해안의 핵발전소를 우려 섞인 시선으로 보는 것도 똑같은 이유 때문이죠.
윤태웅 : 그 문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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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 : 핵발전소뿐만 아니라 핵무기까지 넓혀서 생각해 봐도 그렇습니다. 사실 중국은 핵무기 보유국이고, 주변 국가들이 보기에는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있는 한국과 일본도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이에요. 거기다 북한도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하죠. 사실 북한 핵무기는 큰 문제에요. 한반도가 항상 핵전쟁의 공포 속에서 떨어야 하니까요.
거기다 한-중-일 3국이 핵발전소 경쟁까지 하고 있습니다. 우라늄 매장량이 풍부한 북한도 여기에 어떤 식으로든 가세하겠죠. 이런 상황에서 핵폭탄이나 핵발전소에 대한 시민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자의 인식이 너무 안이한 것 같아요. 일부 진보 진영 역시 마찬가지고요. 탈핵은 핵발전소뿐만 아니라 핵무기를 거부하는 것까지 포함하거든요.
강양구 : 오늘 얘기를 나눠보니 핵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는 일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심지어 과학 등 전 분야에 걸쳐서 한국 사회의 수준을 재는 척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얘기 말고도 재생 가능 에너지의 한계, 전기 요금의 문제점 등 할 얘기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만, 일단은 이 정도로 정리하죠. 오늘 주제넘게 말이 많아서 죄송합니다. (웃음)
이명현 : 현장에서 10년 넘게 고민하고 있으니, 그 정도는 참아줄게요. (웃음)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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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폭탄과 핵발전소는 '동전의 양면'! '내가 거부했더라도 누군가는 언젠가 핵폭탄을 만들 수밖에 없었을 거야.' 핵폭탄을 만든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과학자의 자서전을 읽다 보면, 늘 이런 식의 자기변호가 등장한다. 인간이 핵에너지의 존재를 알게 된 이상 핵폭탄의 등장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가정 속에 슬그머니 핵폭탄을 만드는데 참여한 자신의 행동은 불가피한 어떤 것이 되고 만다. 핵발전소를 옹호하는 이들은 여기에 한 가지 주장을 덧붙인다. '핵에너지는 양날의 칼이야!' 이런 주장 속에는 핵에너지 자체는 중립적인 것이어서, 그것이 핵폭탄으로 쓰이면 인류에게 해가 되지만 다른 용도 예를 들어 핵발전소로 활용하면 인류에게 득이 되리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이런 주장 속에서 핵발전소는 인류에게 긍정적인 어떤 것으로 자리매김한다. <원자폭탄 만들기>
특히 이 책의 백미는 과학자의 아이디어에 불과했던 핵폭탄이 전쟁의 광기 속에서 점점 더 실체를 갖는 과정을 생생히 묘사한 대목이다. 이 과정에서 과학자는 결코 어쩔 수 없는 소극적 동조자가 아니었다. 그 중 몇몇은 정치인에게 핵폭탄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건의했고(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누구는 핵폭탄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로버트 오펜하이머). 이뿐만이 아니다. 전쟁이 끝나기 바로 직전에 이들 중 대다수는 강하게 핵폭탄의 실전 사용을 바랐거나 적어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레오 실라드나 제임스 프랑크 같은 과학자는 폭탄을 일본에 떨어뜨리는 대신 제3국의 참관 하에 무인도에서 실험해 일본의 항복을 유도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런 제안에 힘을 실어준 과학자는 극소수였다. 결국, 일본과 물밑에서 종전 협상이 진행 중이던 1945년 8월 6일과 9일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졌다. 그 해에만 다수의 조선인을 포함한 20만 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그 핵폭탄의 고통은 지금까지도 대를 잇고 있다. 그 고통을 확인하고 싶다면, 원폭 2세 김형률의 삶을 그린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전진성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를 읽어보자. 로즈는 이 방대한 책에서 자신의 의견을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언뜻언뜻 안타까움을 내비치는 대목이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유럽에서 전운이 감돌던 1938~39년 과학자들이 조금만 더 세상 돌아가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어땠을까? 그 때 과학자들이 핵폭탄의 아이디어로 연결되는 '핵분열'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조금만 늦췄더라면? 그래도 핵폭탄을 만드는 일이 가능했을까? 로즈는 이 질문에 침묵한다. 하지만 반세기가 지난 시점에서 과거를 회고하는 우리는 그 질문에 잠정적으로 대답할 수 있다. 적어도 핵폭탄이 전쟁 중에 등장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만약에 전쟁 중에 핵폭탄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 후에도 오랫동안 핵폭탄은 가능성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가 반쯤 미친 전쟁 상태가 아니고서는 맨해튼 프로젝트와 같은 일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핵폭탄을 만들기 위해서 엄청난 자원을 쏟아 붓는 일은 전쟁 중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한 번 생각해보자. 핵폭탄을 만들기 위해서 여러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3000여 명의 과학자가 모였다. 미국을 대표하는 건설 회사와 화학 회사가 10만 명이 넘는 노동자를 고용해 핵폭탄의 원료가 되는 '우라늄 235'를 농축하고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거대한 공장을 단기간 내에 짓고 가동했다. 과연 이런 일이 평시에도 가능했을까? 로즈는 1986년 이 책으로 퓰리처상을 받고 나서, 핵무기에 초점을 맞춘 세 권을 더 펴냈다. 수소폭탄 개발 과정을 다룬 <원자폭탄 만들기>는 훌륭한 저널리스트가 때로는 과학자 혹은 역사학자가 하지 못하는 일을 어떻게 동시에 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은 20세기 현대 물리학의 탄생 과정을 어떤 과학자보다도 유려하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과학과 사회가 어떻게 역사로 엮이는지를 어떤 역사학자보다도 더 훌륭하게 보여준다. <야누스의 과학>
김명진은 <야누스의 과학>에서 상업용 핵발전소의 등장을 부추긴 것이 미군 해군의 핵잠수함 개발 노력과 1949년 소련의 핵폭탄 개발 성공으로 인한 미국과 소련의 역관계 변화였음을 보여준다. 핵발전소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따위는 애초 공허한 수사에 불과했던 것이다. 자세한 사정은 이렇다. 전쟁이 끝나자, 미국 해군은 비로소 육군이 독점하던 핵에너지 개발에 접근할 수 있었다. 해군은 핵에너지를 이용한 핵잠수함 개발에 착수해 웨스팅하우스(!)를 끌어들여 잠수함에 부착할 가압경수로를 만든다. 핵분열 반응을 하는 원자로에서 발생하는 열을 이용해서 물을 끓여 발전기의 터빈을 돌리는 핵발전소의 기본 원리가 핵잠수함에서 구현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련이 등장한다. 소련은 1949년 핵폭탄을 개발한 데 이어서, 핵에너지를 이용한 핵발전소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미국은 소련의 원조로 핵발전소를 도입한 제3세계 국가들이 소련으로 넘어가 이른바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 사이의 세력 균형이 무너지는 상황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1953년 12월 유엔 총회에서 했던 '평화를 위한 원자(Atoms for Peace)' 선언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미국이 보유한 핵에너지 기술을 인류의 번영을 위해서 사용하겠다는 이 선언은 사실 소련을 의식한 냉전의 무기였던 것이다. 1957년 상업 가동을 시작한 미국 최초의 핵발전소를 둘러싼 사정은 더 적나라하다. 세계 각국에 시급히 미국산 핵발전소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던 미국은 핵잠수함에서 사용하던 원자로를 그대로 가져다 이 최초의 핵발전소를 만들었다. 오늘날 전 세계 원자로의 70퍼센트 이상이 미국의 핵잠수함에서 사용하던 가압경수로인 것이 바로 이런 사정 탓이라니! 흥미롭게도 이미 이때부터 핵발전소의 경제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또 1950년대에 이미 상당수 과학자는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를 놓고서 골머리를 앓았다. 방사성 폐기물은 이미 핵발전소가 시작하던 그 때부터 골칫거리였던 것이다. 하지만 핵발전소를 둘러싼 모든 걱정거리는 뒷전으로 미뤄졌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핵폭탄의 엄청난 위력을 본 세계 각국이 핵발전소를 핵무기의 원료인 우라늄 농축 기술을 확보하고 더 나아가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단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장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핵발전소에 그렇게 집착한 이유가 핵무기 확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핵폭탄과 핵발전소는 핵에너지의 명암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동전의 양면이다. 만약 전쟁 중에 핵폭탄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핵발전소가 세상에 등장하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인류의 선택에 따라서 지금 우리는 핵발전소가 아닌 전혀 다른 에너지원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있을지 모른다.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
많은 이들이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일을 '예외 상태'로 생각한다. 하지만 1984년에 초판이 나온 찰스 페로의 <정상 사고(Normal Accidents)>(최근에 국내에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김태훈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로 번역 출간됐다)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 사고를 바라볼 수 있는 통찰을 준다. 특히 이 책은 1장에서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섬 핵발전소 폭발 사고를 살피며, 이것이 과연 예외 상태였는지 묻는다. 왜냐하면, 스리마일 섬 사고는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소한 문제, 역시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실수에 불운이 다섯 가지 이상 겹치면서 발생한 '정상 상태'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나씩 일어났으면 대수롭지 않게 대응했을 일들이 '우연히' 여러 개가 겹치면서 예상치 못한 상호 작용을 통해서 거대한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사실 이런 일은 일상생활에서도 많다. 예를 들어 이런 일은 어떤가? 어느 날 정오까지 보내야할 중요한 글이 있었다. 그런데 ①문서를 집 컴퓨터에 저장만 해두고 가져오지 않았다. ②오전에는 대개 집에 있던 동생도 그날은 일찍 학교로 나갔다. ③급한 마음에 택시를 탔는데 길이 막혀서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④얼른 집에 달려갔더니 주머니에 열쇠가 없었다. 아침에 열쇠를 챙기지 않고 나온 것이다. ⑤집을 잠그고 나간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수업 중인지 휴대전화를 꺼놓았다. 결국 강제로 문을 따고 집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이미 오후 1시였다. 이렇게 일상생활에서도 서너 개의 불운이 겹쳐서 때로는 심각한 결과를 낳는 일이 많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인간이 만든 가장 복잡한 인공물 중 하나인 핵발전소에서 스리마일 섬 사고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페로는 바로 이런 정상 사고의 예를 스리마일 섬 사고를 비롯한 여러 예를 들면서 보여준다. 찰스 페로는 <정상 사고>에서 위험을 세 가지로 나눈다. 첫째 대단치 않은 조치만으로도 감소시킬 수 있는 위험, 둘째 대응하는 데 중대한 노력을 요구하는 위험, 셋째 어떤 편익도 훨씬 능가하는 위험이 그것이다. 일단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여러 가지 인공물을 놓고서 이것이 어떤 위험을 초래할지 따져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그래서 첫 번째, 두 번째의 경우에는 실패로부터 배우는 과정을 통해서 위험을 줄여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위험의 경우에는 그것을 폐기하고, 대신할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가치와 이해를 가진 시민들 사이의 논쟁은 불가피한 과정이다. 그렇다면, 핵폭탄과 핵무기로 상징되는 핵에너지와 그 위험을 놓고서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이제, 우리 세대가 답할 차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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