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여기에서 '데모스'는 그냥 '민중'이 아니다. 가령 거리에서 마주치는 낯선 행인들은 '민중'이지만 그리스어의 '데모스'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데모스'는 어떤 지역에 정주하며 생활을 함께 해온 사람들을 뜻한다. 현대어로는 '지역 주민'에 가깝다.
이것은 '장소'의 문제가 민주주의에 참으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민중의 자기 통치가 활발히 이뤄질 수 있는 곳은 뜨내기들이 오가는 가두가 아니라 오랫동안 삶을 꾸려가며 애착을 갖게 된 생활공간이다. 이런 장소가 갖춰져야 비로소 이웃들 사이의 대화와 논쟁(이것은 좋게 말한 것이고, 달리 표현하면 싸움) 그리고 합의로 공공의 사안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 간단히 말해, 마을이 없으면 민회(民會)도 없다. 미국식 타운 미팅(town meeting)도 결국은 타운, 즉 마을을 전제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운동의 선구자들은 이것을 누구보다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사회 변화란 무엇보다 자본주의의 착취, 수탈 공간과는 다른 새로운 장소를 만들어가는 일이었다. 공장에서처럼 자본가 독재 아래서 영혼 없는 짐승 무리 취급을 당하지도 않고 퇴근 후 돌아가는 동굴 같은 빈민 주택에서처럼 무력한 개인으로 고립되지도 않는 생활공간을 구상하고 실현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초기 사회주의자 중 한 사람인 로버트 오언은 뉴라나크에서 획기적인 작업장 실험에 착수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노동자들을 위한 주거 단지와 학교 그리고 여가 공간을 만드는 데 골몰했다. 그는 농촌 공동체가 사라지고 등장한 산업 사회에서 처음으로 마을을 새롭게 복구하려 했다.
또 다른 초기 사회주의자 샤를 푸리에는 오언보다 더 극단적이었다. 그에게 새로운 사회 건설이란 곧 '팔랑스테르(phalanstère)'라는 공동 주거 단지를 만드는 일에 다름 아니었다. '팔랑스테르'는 방진(方陣)을 뜻하는 '팔랑크스(phalanx)'와 수도원이라는 뜻의 '모나스테르(monastère)'의 합성어다.
이 묘한 이름의 구상은 당시만 해도 전례가 없었던 대규모 주거 단지를 제시한다. 그 안에는 아파트형 공동 주택이 있고, 공공 집회장, 공동 식당과 육아 시설 등이 있다. 푸리에와 그 제자들은 초기 자본주의의 뜨내기 노동자들이 이 새로운 생활공간에 정착해 산업 사회의 '데모스'로 거듭 나길 바랐다. 이진경의 <근대적 주거 공간의 탄생>(그린비 펴냄) 제6장 "주거 공간과 계급 투쟁"은 이러한 푸리에주의자들의 꿈을 흥미롭게 소개한다.
사회주의 운동 1세대만 장소 문제를 중요시한 게 아니었다. 이후의 좌파 정치나 노동 운동에서도 이런 고민은 이어졌다. 그 대표적 사례 중 하나가 1930년에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등장한 '칼 마르크스 호프(Karl Marx Hof)'다. 당시 비엔나 시정부를 장악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노동당은 노동자들의 주거 개선을 위해 입주자 5000명 규모의 거대 아파트를 건설하고 여기에 마르크스의 이름을 붙였다. 아파트 안에는 유치원도 있었고 도서관과 카페도 있었으며 우체국, 병원, 생필품 상점도 있었다. 푸리에의 팔랑스테르 이상으로 칼 마르크스 호프는 하나의 마을이었다.
ⓒ뉴시스 |
그런데 사회주의자들의 주거 실험이 지역 주민 공동체를 되살리려는 노력이었던 데 반해 한국의 아파트 단지는 그런 공동체와는 거리가 멀다. 아파트 단지는 외부와 철저히 격리되어 있고, 단지 내부는 다시 각 세대의 사적 공간들로 나뉘어 있을 뿐이다. 건축가 박철수는 강준만의 표현을 빌려 이런 단지형 아파트야말로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를 보여준다고 비판한다(<아파트>(박철수 지음, 마티 펴냄)). 현대 사회에 '데모스'를 되살려낸다는 선구자들의 기획과는 정반대 결과다.
이런 역설의 곡절을 짚는 것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다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서구에서 변혁 운동의 중요한 고민 중 하나였던 주거 공간의 설계가 한국에서는 온전히 자본주의 근대화를 추진한 이들의 몫이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된 돌진적 근대화의 궤도 안에서 움직이는 국가 관료기구와 민간 건설 자본의 몫이었다. 이들의 손끝에서 서구의 실험들은 뜻하지 않은 기괴한 모습으로 변형되기도 하고 최악의 앙상블로 조합되기도 했다.
그 창조물들이 수도권 공화국, 중산층 신화 그리고 신자유주의 시기의 자산 시장 거품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오늘날의 '아파트 공화국'이 등장했다. 위로부터의 주거 공간 실험은 다수 시민을 '마을'이 아닌 '단지'의 거주자로 만들어 놓았다. 이러한 단지 안에서는 자산 가격을 올리려는 '사적 정열'은 들끓어도 '데모스'에게 기대되는 '공적 정열'은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 한국인의 절반 가까이가 이러한 주거 공간의 유폐자들이다.
반면 사회 변혁을 이야기하는 쪽은 이런 현실에 둔감했다. 선구자들의 혜안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대지와 괴리된 허공의 대의였다. 노동 계급이 작업장에서 떠난 뒤 어떤 공간에서 생활하는지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독자적인 주거 공간 구상 같은 것은 없었다. 이런 가운데, 1980년대 말 거리와 공장에서 거세게 일던 그 공적 열정은 아파트 단지들로 스며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가두의 민주주의가 왜 매번 일상 속에서 소멸되어 버리는지는 사회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으로 남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최근에는 상황이 바뀌고 있다. 위에 소개한 박철수를 비롯해 박인석, 박해천 같은 저자들이 아파트가 한국인의 주된 주거 형태가 된 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깊이 캐묻고 있다. 이들은 사회과학자가 아니다. 건축 전공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책에서 나는, 사회과학 논문이나 운동권의 글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한국 사회의 깊은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아파트 일변도의 주거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이 한국 사회 변화의 중대한 과제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인구의 절반이 '아파트 공화국'의 유폐자인 한, '시민사회'를 이야기하고 '노동 계급'을 말하는 게 얼마나 공허한 일인지 말이다.
위의 저자들은 우리가 추구할 대안까지 구체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문제의 핵심이 아파트라는 공동 주거 형태 자체에 있기보다는 아파트 '단지'에 있다고 일갈한다. 인구 과밀 때문에 공동 주택이 불가피하더라도 '아파트 공화국'의 병폐를 극복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단지형 아파트에서 벗어나, 거리와 직접 맞닿고 그래서 마을 전체와 분리되지 않은 단독형 아파트(사실 서구의 공동 주택은 대부분 이런 형태다)의 가능성을 탐색하자는 이야기다. 쟁점은 단독 주택이냐 공동 주택이냐가 아니다. 동네를 향해 열린 주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이다.
흥미로운 주장이지만, 좀 더 자세히 논하기에는 힘도 부치고 지면도 모자란다. 다만 사족처럼 꼭 덧붙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반추다. 이 글을 쓰는 이 또한 지금 서울의 전형적인 단지형 아파트에 전세를 살고 있다. 남 이야기처럼 썼지만 사실은 모두 다 내 문제다. 이 콘크리트 동굴을 벗어나는 것은 곧 나와 내 가족의 현안이다.
그러고 보니 역시, 다른 게 아니었다. 삶을 바꾸는 것과 사회를 바꾸는 것은.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