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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뒤에서 무릎 꺾기를 시전하더라도…너는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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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뒤에서 무릎 꺾기를 시전하더라도…너는 청춘!

[TV PLAY] 학원 청춘물 <사춘기 메들리>와 <학교 2013>

사방에 시원하게 펼쳐진 푸른 밭두렁 사이를 걸어가는 교복 입은 소년을 카메라가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시원해지고 마음이 개운해지는 장면이다. 한편으론 울컥한 마음에 '인생이 쉽냐? 내가 학교생활 한 번 꼬이게 해줄까?'라며 속으로 이죽거리는 소년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카메라가 있다. 정작 꼬이고 어렵게 되는 건 그 소년의 학교생활이라는 것을 아는 터라 짐짓 입꼬리가 올라간다. KBS 드라마 스페셜 <사춘기 메들리>를 보면서 다시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늘 학원물을 좋아했다는 것을. 청춘물이라 불러도 좋겠다. 푸를 靑, 봄 또는 움직일 春. 덜 익어서 푸르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마음이 있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 KBS 드라마 스페셜 <사춘기 메들리>. ⓒKBS

학교를 다녔을 뿐 학생이라 부르기 민망한 '꼬꼬마' 시절에는 조숙한 동경을 품었던 것 같고, 교복을 입기 시작했을 때는 평범한 나의 일상과 달리 특별한 TV나 영화 속 학교가 신기했던 것 같다. 더 이상 귀밑 2cm 단발머리를 강요받지 않게 된 뒤로는 주로 애틋한 마음을 품으며 봤던 것 같다. 추억이나 그리움과는 좀 다른, 안타까움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그 시절을 졸업한다고 해서 더 나은 날이 기다리고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되어서, 더 나을 것 없는 그 세상을 공고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부채감도 있었다.

적어도 TV 드라마의 장르로서 학원물의 힘은 한동안 그리 크지 않았다. 성장, 첫사랑, 우정, 성(性)적 호기심, 입시와 현실 비판 등 다양한 결을 품을 수 있는 학원물은 로맨스부터 코미디, 공포물까지 다양한 장르와 혼합 변종될 수 있다. 하지만 보편적인 대중을 타깃으로 삼기 어려워 여름이면 잊지 않고 찾아오는 공포물처럼 학생들의 방학 특수를 노리며 기획되어 딱 그 정도의 목표에 맞는 결과를 얻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2011년 KBS 드라마 스페셜 연작시리즈 <화이트 크리스마스>나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방송된 KBS 미니시리즈 <학교 2013> 같은 작품들은 좀 다른 마음을 품었던 작품들이었다. 장르적 야심일 수도 있고 외면할 수 없는 안타까움일 수도 있는 마음 말이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공포물의 가장 흔한 배경이 되는 학교 자체를 공포의 근원으로 설정한 심리 추리극이다. 박연선 작가 스스로 <10 아시아>와 한 인터뷰에서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학원물도 성장물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고등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파워와 에너지와 갈등이 제일 재미있고 섹시하다"는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학원물이라는 장르가 먼저가 아니라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와 인물에 적합한 장소로 학교가 선택되었다.

한편, <학교 2013>은 KBS <학교> 시리즈의 이름을 빌려 왔지만 방점은 '2013' 쪽에 찍힌다. 이현주 작가가 이 작품을 쓴 동력 중에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아파서도 있었다. 물론 대한민국의 10대가 입시와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싶다. 하지만 자생 능력을 상실하고 있는 공교육과 계급과 소득 수준에 종속되는 사교육 사이에서 점점 더 일찍 포기와 좌절을 배우는 지금의 학생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작가의 마음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겼다.

▲ KBS 드라마 <학교 2013> ⓒKBS

<사춘기 메들리>의 정우(곽동연)와 <학교 2013>의 남순(이종석)은 있는 듯 없는 듯 교실을 메우는 학생이다. 정우가 아버지의 잦은 전근으로 열세 번의 전학을 경험하며 친구들과 거리 두는 것에 익숙해졌다면, 남순은 과거의 잘못으로 자신을 스스로 유배한 경우였다. 정우는 다시 전학을 앞두고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사고를 친다. 이름을 모를 정도로 관심 없던 짝 덕원(곽정욱)을 괴롭히는 선배 영복(박정민)에게 대들고, 좋아하지도 않는 반장 아영(이세영)을 곤란하게 만들 마음으로 사귀자고 고백한다. 심지어 아무도 원하지 않는 <전국노래자랑>에 학교 대표로 나가겠다고 자원하기까지 한다. 순식간에 유명 인사가 된 건 빤한 수순이다. 남순 역시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려는 정호(곽정욱)에 의해 얼떨결에 학급 회장이 되면서, 학교에서 엎드려 자는 것 외의 일을 경험하며 비로소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된다.

다만 <사춘기 메들리>를 보는 마음은 <학교 2013> 때처럼 조마조마하지 않다. 물론 아버지가 전근을 포기하면서 전학을 갈 수 없게 된 정우의 앞날이 위태롭지 않은 건 아니다. 인생이 정우에게 '뒤에서 무릎 꺾기'를 시전하신 탓에 교실 의자는 말 그대로 가시방석이 되었고 다크서클은 무릎까지 내려올 기세다. 하지만 <전국노래자랑>에 나갈 젊은 사람을 차출해야 하는 시골의 고등학교에 다니는 정우와 친구들의 좌충우돌은 어쩐지 안전한 기분이 든다. 게다가 이들은 '가로 본능 폰'을 쓰는 10년 전의 아이들이니 말이다. 올드 팝 'only you'와 장나라의 'Sweet Dream'이 흘러나오는 <사춘기 메들리>의 세계는 과하게 뽀얀 화면이 오히려 어색한 방해로 느껴질 만큼 풋풋하고 그래서 귀엽다. 시골이라서, 과거라서 학생들이 지금보다 덜 불행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사춘기 메들리>가 선택한 이 시공간이 어느 정도 보호막의 역할을 하고, 그 덕에 이 드라마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나 <학교 2013>의 도발이나 공감을 성취할 순 없어도 지극히 '평범한' 학생들의 잠시 독특했던 한때를 맑게 보여주는 장점이 있다. '깨끗하게 맑게 자신 있게' 웃는 학생들을 보며 실실 웃는 기분이, 생각보다 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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