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저 멀리~ 랄랄랄 힘차게 나는~" 40대 중반 이후 세대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애니메이션 <우주 소년 아톰>의 주제곡 시작 부분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원조이면서 한국에서도 수많은 어린이의 영웅이었던 아톰은 덩치는 작지만 엄청난 괴력을 지녔고 위험을 무릅쓰고 악의 무리를 물리치는 철인이었다. 아톰이 가진 힘의 원천은 몸속에 있는 초소형 원자로였다. 조금 비틀어 말하면 아톰은 결과적으로 원자력 홍보 대사였고 아톰은 우리들의 우상이었다.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이 불러온 동화 속의 주인공이 후쿠시마 핵폭발로 돌아온 것이다. <우주 소년 아톰>과 <밀림의 왕자 레오>의 원작자 데츠카 오사무는 의학 박사이자 반전 평화주의자로 진보적인 지식인이었다. 그도 이른바 핵의 평화적 이용의 적극적 지지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열광하고 지지했던 과학 발전의 이면에는 첨단 기술과 무지가 한 덩어리로 뒤엉켜 있다. '퀴리 부인'으로 우리에게 더 친숙한 폴란드 태생의 프랑스 물리학자 마리 퀴리(1867~1934년)는 폴로늄과 라듐이라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발견했다. 그는 폴로늄과 라듐의 발견과 연구로 물리학상을, 5년 후에는 다시 화학상을 받았다.
마리 퀴리는 이 공로로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이자 당시까지 두 번이나 노벨상을 받은 유일한 수상자라는 영광을 안았다. 67세로 사망한 그녀의 사인은 백혈병이었다. 그녀를 부검했던 의사는 "일생동안 방사선을 과도하게 쪼인 그녀의 모든 생체 기관이 서서히 파괴면서, 죽음에 이르렀다"고 했다.
마리 퀴리의 삶을 다룬 전기에 의하면 실제로 그는 라듐을 목걸이나 팔찌처럼 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의 남편과 딸도 방사선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거나 직접적인 사인이 되어 사망했다. 1930년대에 라듐은 미국에서 자양강장제 음료, 화장품, 치약으로 개발되어 시판되기도 했다. 아마추어 골프 챔피언 출신인 어떤 백만장자는 이 음료를 1000병 이상 마셨다가 51세의 나이에 피골이 상접한 상태로 사망했다고 한다.
마리 퀴리와 노벨상을 공동 수상 했던 남편 피에르 퀴리는 1903년 노벨상 수상 기념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라듐은 범죄자들의 손에 들어가면 위험한 물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자연의 비밀을 캐는 것이 인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그 비밀을 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인류는 성숙한가, 아니면 오히려 해로운 지식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닌가?"
100년이 지난 오늘 코피 아난 유엔 전 사무총장도 같은 말을 한다.
"체르노빌은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이름이다. 체르노빌은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보이지 않는 적과 알 수 없는 근심, 걱정을 담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버린 사건이다"
과학에 대한 열망과 무지가 뒤엉킨 가운데 본질은 보지 않고 이중적인 잣대로 또 다른 오류를 범하는 일들도 생겨나고 있다.
남북 관계가 경색되어 있는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전략으로 대북 정책에 임하고 있다. 핵심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도발을 중지한다면 북한을 적극 지원하고 이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한반도 프로세스의 성공 여부는 좀 더 지켜볼 일이지만 북한 핵을 그토록 반대하면서도 남한 핵발전소는 여전히 지속, 확대라는 정책 기조를 유지하려고 한다.
북한 핵과 남한 핵발전소는 어떻게 다를까? 우선 하나는 공격용 무기이고 다른 하나는 평화적 이용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는 위험한 것이고 하나는 안전하거나,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과연 그런가?
이전에는 훨씬 많았지만 2013년 현재 전 세계 핵무기는 1만7200기가 조금 넘는다. 이중에서 실전에 사용된 경우는 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두 번 뿐이다. 이에 비해 지금까지 가동했던 핵발전소 577기 중에서 폭발이나 노심 용융(멜트다운)의 심각한 사고는 6번 일어났다. 이래도 핵무기보다 핵발전소가 덜 위험하다고 할 수 있을까?
당연히 북한 핵이 덜 위험하다는 궤변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양손에 폭탄을 들고 있으면서 둘 다 같은 폭탄이라는 본질을 잊고 한 쪽만 폭탄인 듯한 태도를 놓고서 하는 말이다. 더구나 모든 나라들의 실증적인 경험에서 보아도 핵발전소를 가동하는 한 재처리를 통한 핵무기 개발이라는 유혹의 덫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프레시안(손문상) |
연일 전력 경보가 발생하고 핵발전소 비리는 그보다 더 끝을 알 수 없는 것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급기야 국무총리의 입에서 그동안 반핵 진영에서만 사용하던 비판적 개념인 '핵 마피아'라는 말도 나왔다. 정부는 대책 발표에서 12만5000건의 지난 부품 시험 결과를 전수 조사하고 학맥, 인맥의 차단과 부품에 대한 이중 점검 시스템을 통해서 비리 재발 방지에 나선다고 한다.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런데 2012년 내진 시험 성적 위조 파문이 생겼을 때도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10년간의 시험 성적 전수 조사와 10년간 입찰 제한을 발표했지만 6개월 입찰 제한으로 봉합되고 말았다. 따라서 이러한 방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핵 마피아'는 단순히 특정 학교나 인맥의 유착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적 이익'을 매개로 학계,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 자회사, 국책 연구소, 정부 관료, 핵발전소 플랜트 기업, 부품 납품 회사, 정치권, 언론과 국제적인 핵발전소 설계, 건설 업체 등의 '핵발전소 동맹'에 '핵발전소 이데올로기'와 '조직 문화'가 더해진 강고한 카르텔이다.
한국의 핵발전소는 90퍼센트 이상의 가동률을 자랑해 왔다. 그러나 일반 부품은 물론이고 핵심적인 제어 기능을 하는데 필요한 케이블마저 위조된 시험 성적으로 납품한 것을 보면 지금까지 대형 사고 없이 '버틴 게 기적'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 것 같다. 기적은 지속될 수 없기에 기적이라고 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발전 차액 제도(FIT)를 없애버린 것처럼 핵발전소 확대 정책은 그 대안인 재생 가능 에너지 산업이 설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고인이 된 독일연방 국회의원이었던 헤르만 셰어도 <에너지 주권>(배진아 옮김, 고즈윈 펴냄)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핵 카르텔'을 해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17대, 18대 국회에서 산업자원위원회와 지식경제위원회(현재는 산업통상자원위원원회)에서 '핵 마피아'들을 접하면서 그들의 거미줄 같은 관계와 비밀주의 그리고 집요함에 나는 번번이 절벽을 마주하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최근 핵발전소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외신 기사가 있다. 지난 6월 8일 미국 전력 회사 남캘리포니아에디슨(SCE)은 캘리포니아 남부에 있는 핵발전소 2기를 폐쇄하기로 했다. 이유인 즉, 지난해 1월 교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증기 발생 장치 배관에 마모 현상으로 방사성 물질과 미량의 물이 새어 나왔고 연이어 다른 핵발전소에서도 같은 사고가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문제의 증기 발생 장치는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이 납품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미국 원자력 규제 위원회(NRC)는 두 핵발전소의 가동을 중단 시켰다. 이후 전력 회사는 발전소 재가동을 추진하였지만 지역 주민의 거센 반발로 폐쇄 결정을 하였다. 더불어 미쓰비시중공업에 검사와 수리 비용 1억 달러는 물론이고 핵발전소 폐쇄에 따른 추가 손해 배상도 청구할 예정이라고 한다. 여론의 압력과 손익 계산서, 이 두개의 타산이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 것이다.
한국의 주류들이 늘 강조하는 시장 경제의 원리로 보아도 핵발전소는 더 이상 대안이 아님이 분명하다. 최소한 10만 년 이상을 안전하게 관리해야 하는 폐로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관리하는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지 계산이 불가능하다. 그것도 10만 년에서 수십만 년을 아무런 사고 없이!
1956년 영국에서 핵발전소가 상업 운전을 최초로 시작한 이래 70년이 되어 가지만 영구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을 완성한 국가는 단 한 나라도 없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철저한 시장 경제 국가인 미국이 왜 스리마일 섬 사고 이후로 더 이상 핵발전소를 짓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지 한국의 시장론자는 모른 척 할뿐이다. 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현실적 이익'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시장론자가 시장 경제의 원리를 스스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기회는 있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박근혜 정부가 성공해 주기를 바라는 한 사람으로서 충심으로 고하자고 한다. 현재의 원자력안전위원회로는 핵발전소의 안전성을 제대로 감시, 규제할 수 없다.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 사람 몇 명 바꾼다고 달라질 수가 없다. 우리 학계와 전문가 집단은 극소수를 제외하고 핵 마피아에게 궤멸 당한 지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분명한 조사, 토론, 발표, 건의의 권한을 가진 독립적인 감시 기구가 발족되어야 한다. 총리 직속의 중앙 행정 기관이 아니라 20011년 출범 당시처럼 대통령 직속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여기에는 정부와 한국전력 관계자는 물론 찬핵론자도 참여할 수 있고 반핵 진영의 전문가, 시민 단체도 동수로 참여하여야 한다.
전문가위원회의 구성, 운영도 획기적으로 재구성 되고 운영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내일 하는 회의 자료가 전날 밤 9시에 도착하고, 안건에도 없던 '가동 승인'을 끼워 넣기로 통과 시키는 일들이 더 이상 반복 되어서는 안 된다.
나아가 근본적으로 새로운 에너지 정책의 수립과 이를 관장하는 기구가 필요하다. 현재 에너지기본법에 의한 국가에너지위원회는 '핵 마피아' 혹은 '핵 카르텔'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에너지기본법의 제정 과정에서 발의자로 원안이 누더기가 되어 가는 것을 지켜본 나로서는 단언할 수 있다.)
국가에너지위원회를 독립적으로 구성하는 것은 물론, 사무국과 필요한 권한을 가진 위원회로 재구성하고 여기에서 장기 에너지 정책-핵발전소 정책, 재생 가능 에너지 정책-은 물론이고 저준위,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 시설에 관한 감독과 건설 논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독일의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의 경우처럼 재생 가능 에너지 사업자도 참여할 수 있어야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러한 방법이 가능하려면 대통령의 결단 밖에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다. 연일 터져 나오는 핵발전소 비리와 전두환 비자금 문제를 놓고서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 정권은 도대체 뭘 했느냐?"며 분노를 표출했다. 다음 정권에서는 이런 말이 나오지 말아야 한다. 정권의 문제보다 국가와 국민의 문제를 우선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기대를 갖고 싶다.
시간이 많지 않다. 설계 수명이 끝났거나 수명이 임박한 핵발전소가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는 우리 현실에서 지금의 납품 비리와 전력난 소동이 현실화될 재앙의 시작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생각은 지나친 기우일까?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이런 시도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이 아닌 '초록 대안'을 찾으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활동의 일부분입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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