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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한국인, 일본에서 나가라!" 진격의 '극우'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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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더러운 한국인, 일본에서 나가라!" 진격의 '극우'는 누구?

['재특회'와 '일베'의 어리석음] 야스다 고이치 강연 및 인터뷰

"짓밟힌 꽃의 이름조차 모른 채 / 땅에 추락한 새는 바람을 애타게 기다리네 / 기도만 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 지금을 바꿀 수 있는 건 싸울 각오다 / 시체를 밟고 넘으며 전지하려는 의지를 비웃는 돼지들아 / 가축의 안녕, 거짓된 번영, 굶주려 죽어가는 이리에게 자유를! / 포획당한 굴욕은 반격의 효시다 / 성벽 너머에서 사냥감을 도륙하는 사냥꾼! / 솟아오르는 충동에 온몸을 불사르며 / 저녁놀에 붉게 타들어가는 홍련의 화살."

이상은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저패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주제가 '홍련의 화살' 가사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건 <거리로 나온 넷우익>(야스다 고이치 지음, 김현욱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을 읽고 난 직후였다.

▲ 아라키 테츠로 감독의 <진격의 거인>. ⓒ諫山創・講談社/「進撃の巨人」製作委員会

대중문화와 특정 사회적 현상을 일대 일로 비교하는 건 매우 위험한 선택이지만, 이를테면 한 시대의 정서를 반영하거나 큰 영향을 미친 작품들은 분명 존재했다. 이를테면 90년대 말의 '버블 경제' 속, 세기말에 대한 기이한 흥분과 권태와 혼란스러움이 뒤섞인 상황에서 안노 히데아키의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 시리즈가 미친 영향을 떠올려 보라. 그 시리즈는 하나의 현상이 되었고, 인류를 멸종시킬 수도 구원할 수도 있는 거대한 존재에 대해 어떤 종류의 동경심이 널리 퍼졌던 것이다. 마치 나를 파괴할 수 있는 신적 존재에 대해 굴복과 애정이 뒤섞인 열락에 빠져들 듯이.

그렇다면 지금 전세계적인 불황의 시대의 정서인 분노를 반영하는 작품은, 적어도 일본과 한국에선 <진격의 거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만화책으로 출간 중인(한국에선 학산문화사에서 출간 중이며 10권까지 소개되었다) 이 작품이 마침내 TV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된다는 사실에 수많은 팬들이 들떴고, 한 화 한 화 방송될 때마다 수많은 패러디물과 해석이 난무하는 중이다. 그런데 <거리로 나온 넷우익>을 읽고 난 후 저 가사를 보았을 때 자연스럽게 어떤 연상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거리로 나온 넷우익>(야스다 고이치 지음, 김현욱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후마니타스
일본의 재특회(在特會,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 혹은 넷우익들은 자신들을 50미터 성벽에 갇혀 제한된 평화를 누리던 인간으로 상정하고, 그 벽 너머에서 찾아와 인간을 도륙하는 거인 괴물을 자신들의 특권을 빼앗는(다고 주장하는) 모든 종류의 타자와 동일시하고 있지는 않을까. <진격의 거인> 1화 오프닝에 나오는 내레이션을 보라. "그날 인류는 떠올렸다. 그들이 지배하던 공포를. 새장 속에 갇혀 있던 굴욕을." 그리고 애니메이션 속 인간들은 거인에게 처절하게 짓밟힌 뒤 더 이상 두려워하며 살지 않기를, 거인과 목숨을 걸고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는데, 아마도 재특회는 "인류의 힘을 맛보아라!"하며 거인에게 칼을 꽂는 그 장면에서 더할 나위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끼진 않았을까. 높은 벽 너머로 흘끗 붉고 잔인한 얼굴이 떠올랐을 때, 그 붉은 거인 뒤를 좇는 좀 더 인간 형상에 가까운 혐오스러운 거인들이 인간을 우적우적 씹어 먹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모욕당하고 짓밟히고 무시당하고 있다는 '진실'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그래서 '반격의 효시'로서 더 힘을 내어 거리로 뛰쳐나와 "핵무기가 없는 사회 대신에 조선인이 없는 미래를!", "바퀴벌레 조선인을 일본에서 쫓아내라!", "짱개들을 도쿄 만에 처넣어라!"라고 외치는 건 아닐까.

일본의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야스다 고이치의 <거리로 나온 넷우익>은 여러 모로 이 시대의 부름에 대답하는 책이다. 그는 재특회라는 혐오스러운 집단을 인류학적 관심사라는 필터를 통해 '객관적'으로 관찰한 게 아니라, 그 속으로 직접 뛰어들었다. 그는 거리낌 없이 싸우고 분노하고 혹은 호기심에 가득차서 재특회 회원들과, 혹은 재특회 이외의 극우조직들인 '주권 회복을 도모하는 모임'·'배해사'·'NPO 외국인범죄추방운동'·'일본을 지키는 시민 모임' 등과 접촉하며 능숙한 몰이꾼처럼 일본 극우 세력의 뿌리와 배경을 넓게 더듬어 하나의 핵심으로 좁혀 간다. "재특회는 '태어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낳은' 것이다"라는 돌이킬 수 없는 진실로 말이다. 그리고 이 결론은 결코 한국의 '일베'로 대표되는 '넷우익'들과도 무관하지 않다.

지난 6월 3일 서강대 다산관에서 열렸던 저자 야스다 고이치 강연과 뒤이은 관객과의 대화, 그리고 <프레시안>과의 인터뷰를 이 자리에서 재구성하여 소개한다. 통역은 <거리로 나온 넷우익>의 번역가 김현욱이 맡았다. <편집자>


제가 <거리로 나온 넷우익>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재특회'라는 조직입니다. 정식 명칭은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입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매주 '반재일 코리안', '반한국', '반북한'을 슬로건으로 한 데모와 가두시위가 일어나는데, 그 중심 세력이 재특회입니다. 그들은 일장기를 들고 모여서 거리를 걸으며 '다케시마(독도) 탈환',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 구출'. '재일특권 폐지' 등을 주장합니다. 그렇지만 데모의 내용은 사실 한국과 재일 코리안에 대한 차별과 비방, 중상모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거리로 나온 넷우익>의 저자 야스다 고이치. ⓒ프레시안(최형락)
그들은 인터넷에서 쓰는 말을 그대로 거리에서 외칩니다. 일각에선 걸어다니는 인터넷 게시판이라고들 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보수 혹은 우익이라고 주장하지만 반공이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재특회가 보기에 일본에 해악이 되는 것은 이제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한국 그리고 재일 코리안입니다. 참고로 재특회가 보기엔 한국도 북한도 똑같은 존재입니다. 같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은 모두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요. 일본 자민당도 전혀 신용하지 않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아베 정권이 우익정권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웃음) 재특회에게 그런 얘길 하면 웃어버릴 것입니다. 아베는 박근혜에게 무릎을 꿇은 매국노라고 생각하고, 자민당을 비롯한 보수 세력도 자신들을 방해하는 존재로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특회 집회장에는 "재일 코리안을 일본에서 쫓아내라", "조선인을 죽여라", "조선인은 독을 먹고 죽어라" 같은 추악하기 짝이 없는 구호가 오갑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추악하고 저열한 운동이 인기를 끄는 것일까? 도대체 왜 이 사람들은 이러한 운동에 빨려 들어가는 것일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재특회 관계자에게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운동을 쫓은 것이 이 책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주간지 기자로 일했습니다. 여러 사건 사고를 취재하고 기사로 쓰는 것이 제 일이었습니다. 많은 사건들을 취재해 왔지만, 제가 라이프워크로 삼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외국인 문제'입니다. 일본에 사는 외국인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가? 어떤 생각으로 일본에 온 것일까? 그리고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그러한 질문을 주로 '뉴커머(New Comer)'로 불리는 외국인에게 물었습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여러 분야에서 외국인이 일하고 있습니다. 특히 공장 등의 제조업, 서비스산업, 지방의 농업 등에서 외국인의 존재가 요즘은 불가결해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취재하다보니, 특히 21세기에는 인터넷에서 외국인을 차별하는 말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는 걸 알았습니다. 저는 그러한 사실이 너무나도 신경 쓰였던 것입니다.

프레시안 : 당신은 그동안 일본 내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천착했고, 기존의 저서들 중에도 <르포 차별과 빈곤의 외국인노동자><외국인연수생 살인사건> 등이 있지요. 여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야스다 고이치(이하 '야스다') : 오랜 세월 동안 일본에서 '외국인'은 '미국인'이었습니다. 미국인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지요. 그렇다면 다른 외국인은 어떨까요? 취재를 해본 결과 차별이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느낀 것은 그런 상황을 용서할 수 없다는 분노였고, 그래서 이들이 같이 살아가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들도 같은 인간임을 알리고 싶었고, 미국인에게는 고개를 숙이면서 다른 아시아인들에게는 거만하게 구는 일본 사회를 고발하고 싶었습니다. 거기서 일본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지금도 여러 외국인을 취재하는 것은 일본이 무엇인지 어떤 나라인지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외국인 중에 재일 코리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재일 코리안에게는 다른 외국인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먼저 대부분 태어날 때부터 일본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 문제를 빼놓고 재일 코리안을 논할 수 없지요. 일본인은 재일 코리안에게 애증을 동시에 느끼고 있습니다. 친근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반면에 증오 또한 생기기 쉽습니다. 이 문제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기 때문에 언제나 망설이게 됩니다. 언론에서도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그래서 전 아무도 안한다면 제가 하고 싶다고 나선 겁니다.

"외국인이 일본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외국인 때문에 일본의 치안이 나빠졌다", "외국인 때문에 마을이 더럽혀진다"라는 악담이 인터넷에 오가기 시작했습니다. 나아가 일부 네티즌들은 뉴 커머 외국인들만이 아니라, 올드 커머(Old Comer)라고 불리는 외국인, 즉 재일 코리안에게도 공격의 칼날을 들이댔습니다. "외국인 주제에 왜 일본인과 똑같은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재일 코리안은 일본의 복지에 무임승차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가 안 좋은 것은 재일 코리안 때문이다" 같은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안타깝게도 일본에서는 예전부터 재일 코리안을 차별하는 사람들이 존재했습니다. 가난한 재일 코리안이 일본의 치안을 어지럽힌다, 재일 코리안은 범죄자가 많다라는 이야기는 결코 새롭지만은 않습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서 유통되는 재일 코리안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된 세대의 '위에서 내려다보는 차별'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지금 일본의 일부에서 떠들고 있는 '재일 코리안이 일본을 지배한다'는 '밑에서 올려다보는 차별'입니다. 그것은 유대인을 박해한 옛날 유럽의 분위기와 비슷한지도 모르겠습니다.

▲ 오이타에서 열렸던 재특회의 '지부 발족 기념집회'. ⓒ후마니타스

"일본 언론이 재일 코리안 편을 드는 것은 재일 코리안이 언론을 차지해 버렸기 때문이다", "일본의 모든 자본이 재일 코리안에게 조종당하고 있다", "정치인의 대부분이 재일 코리안에게 돈을 받고 있다", "일본인의 생활이 어려운데, 재일 코리안은 호화롭게 살고 있다" 같은 이야기가 인터넷 게시판에 확산되어, 지금은 SNS에서도 많이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아무 근거 없는 음모론입니다. 원래 선거권도 없는 재일 코리안이 일본을 지배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를 믿는 사람이 갑자기 늘었습니다.

정당한 정치 담론이 아니라, 순전히 음모론입니다. 한국인과 재일 코리안에게 "죽어", "죽여"라며 저열한 말을 내뱉고 있는 걸 보면, 개인적으로는 '보수'도 '우익'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민족주의자도 아닙니다. 저는 '인종차별주의자', '배외주의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즉 그들은 인간을 자의적으로 분류해서 차별하는 단순한 '레이시스트'입니다. 유럽의 네오나치, 미국의 KKK 등과 같은 이미지입니다. 그렇지만 레이시스트라는 말이 아직 일반적이지 않아서, 일본에서는 '넷우익'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넷우익이라는 말에는 주장의 논거를 모두 인터넷에 의존하여 인용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한국에서 지금 주목받고 있는 '일베'를 상상하면 알기 쉬울 겁니다. 동시에 일본의 넷우익은 오프라인 행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행동도 모두 인터넷으로 공지되고, 인터넷에서 동원을 주도하고 있는 것도 넷우익의 특징입니다. 그리고 '반공' 같은 주장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주장이 인종차별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부분이 기존 보수나 우익과는 다르기 때문에 일본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재특회는 그 '넷우익'의 중심 세력인 것입니다.

프레시안 : 재특회가 가장 자주 쓰는 말이 "인터넷에서 진실을 알았다"라는 게 흥미롭습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유의 말이 자주 오가고 있으니까요. 덧붙이자면 '진실' 대신 '팩트'라는 말을 더 자주 쓴다는 게 차이점일까요.(웃음) 이런 이들이 인터넷에서 파편적으로 제시되는 '팩트'를 보고 전체적 진실을 알았다고 생각하게 되는 메커니즘이 좀 흥미로운데요, 한국에서는 수학능력시험에서 국사가 선택과목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라며 개탄하는 목소리들이 높습니다. 올바른 교육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건데요. 야스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야스다 : 음, 공부를 별로 안 한다고 생각은 합니다.(웃음) 그렇지만 일본의 상황은 한국과는 좀 달라요. 일본 학교에선 예전부터 종군위안부 문제나 식민지 문제 등 역사를 아주 잘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특회는 일본의 교육을 좌익 교육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역사 교육이 부족한 게 아니라 그런 좌익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거지요. 교사를 적으로 생각하고, 교과서가 공산주의에 젖어있다고 하고, 일본의 교육을 관할하는 문부과학성에 대해서도 항의하고, 자신들은 잘못된 교육의 피해자라고 주장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건 거짓이고 진실은 인터넷 안에만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 반발이 넷우익의 원동력 중 하나입니다.

재특회가 발족한 것은 2007년입니다. 발족부터 지금까지 회장을 맡고 있는 사람이 사쿠라이 마코토라는 인물입니다. 현재 41세입니다. 사쿠라이는 원래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던 평범한 젊은이였습니다만, 인터넷 게시판에서 예전부터 유명인이었습니다. '2채널' 같은 인터넷 게시판에서 한국, 북한, 중국, 그리고 재일 코리안을 격렬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인터넷의 '카리스마'라고까지 불렸습니다. 그러한 그가 2007년 재특회를 결성하고, 오프라인에 등장했습니다. 발족 당시 회원은 500명, 참고로 지금은 1만 3000명이니까 6년 동안 회원 수가 26배나 늘어난 것입니다. 결성 당시에는 한국이나 재일 코리안이 얼마나 나쁜지를 학습하는 스터디 모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안 있어 행동에 나서 인종차별적 시위나 가두선전 등을 하게 됩니다. 즉 거리로 뛰쳐나왔던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회원들은 급증하였습니다. 왜 회원이 늘었는가? 바로, 재특회 활동의 자초지종을 동영상 사이트에 올리면서부터라고들 말합니다.

재특회는 시위나 가두선전을 동영상 사이트에서 생중계합니다. 동영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가시화했을 뿐만 아니라 가두선전 도중에 일어나는 트러블(예를 들어 시위나 가두선전에 대해 항의하러 온 사람들과의 사소한 분쟁이나 난투극, 경찰과의 공방 등)까지도 모두 편집 없이 보여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재특회는 사회의 악과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다는 이미지가 정착된 겁니다. 그런 필사적인 모습에 감동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프레시안 : 일본 내 공공 행동이 1970년대 전공투 이후로 막을 내리지 않았습니까? 3.11 이후 원전 반대 대규모 집회가 큰 화제를 모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야스다 : 눈에 보이는 운동은 1970년대보단 줄었지만,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은 꾸준히 존재했습니다. 문제는 그런 운동의 대의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입니다. 보다 이해하기 쉬운, 자신의 불만을 곧바로 흡수하고 해소할 수 있는 운동으로 쏠렸던 거지요. 제 생각에 재특회 운동은 무척 불행한 운동입니다. 무언가를 획득하기 위한 운동이 아닙니다. 무조건 한국이, 재일 코리안이 싫다고 얘기하기 위한 운동입니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운동이 아닙니다. 그들 자신도 행복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척 슬픈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한국에 대한 정보가 일본에 정말 많습니다. 그걸 일상생활에서 항상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아졌지요. 일본의 진보 세력 중에는 한국에 불만이 있더라도 식민지 시대를 떠올리면서 그런 불만을 입 밖에 내지 말라고 하는 태도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거기에 욕구불만을 느끼는 이들도 많아요. 전 그런 식의 태도에 대해서도 바람직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과 일본이 언론을 통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재특회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한 올바른 언론 싸움은 힘듭니다.

저 자신도 한국 언론에 대해서는 불만을 가지고 있어요. 원폭이 신의 징벌이라고 썼던 최근 <중앙일보> 칼럼(☞바로가기 "아베, 마루타의 복수를 잊었나")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 내용에 일본인들도 물론 화가 났지만, 재일 코리안 중에도 피폭당한 분들이 많습니다. 같은 한국인도 원폭에 희생당했다는 걸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한국의 그런 보도에 대해 반론을 하고 싶어도 재특회 회원 같은 사람 취급을 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망설여집니다. 인종차별이 추악한 이유는 그런 정당한 논쟁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한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논쟁하기 위해서라도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은 일본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재특회 식의 운동을 꼭 추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특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10대의 중학생부터 시작하여 70대 노인까지 망라합니다. 학생, 일반 회사원, 중소기업 경영자, 가정주부, 아르바이트생, 무직자 등 다양한 구성원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 사회의 축소판입니다. 그러면 왜 재특회에 참가하는가? 취재할 때마다 저는 되풀이 물었습니다. 대답은 다양합니다.

한 청년은 "내 손으로 일본을 되찾기 위해서"였다고 했습니다. 그는 한국이나 북한, 중국이 일본을 침략하려고 한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 정치가도 미디어도 도무지 싸우려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시민의 손으로 싸울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다른 젊은이는 재일 코리안이 일본을 무너뜨리려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외국인에게 친절하기 짝이 없다. 재일 코리안 등 외국인은 복지를 탈취하고 마침내는 일본을 지배할 것이다"라고 내게 호소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지금 한국영화와 드라마, K-POP 등의 인기가 높습니다. 일례로, 원래 일본인은 축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스모와 야구를 훨씬 좋아합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시합이 열려도 관심이 없어요. 그런데 한국과 일본 축구 경기가 시작되면 평소 축구를 안 보던 사람도 텔레비전을 켭니다.(웃음)

▲ 2010년 10월 '조선학교 무상교육 반대'를 호소하며 조선학교까지 시위 행진을 하고 있다. 가운데 안경을 쓴 남자가 재특회 회장 사쿠라이 마코토다. ⓒ후마니타스

다시 말해 좋든 싫든, 일본은 아침부터 밤까지 한국을 의식합니다. 소녀시대도 카라도 무척 좋아합니다. 여성들은 배용준을 아직도 좋아합니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좋다는 일본인도 많습니다. 그만큼 한국이 가까운 나라인 겁니다. 무시하고 싶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인도 수상이 일본을 비판한다고 해도 뉴스에 안 나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일본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면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에서 난리가 납니다. 2012년 러시아가 쿠릴열도에 전함 두 척을 파견할 것이라 발표했지만, 그 지역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갈등을 빚고 있는(이른바 '북방영토') 일본은 무척 조용했습니다. 얼마 뒤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에 상륙했을 땐 하루 종일 법석이었습니다.

지리적, 정신적으로 너무 가까운 나라, 그게 바로 일본에서의 한국의 위치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이 하는 모든 일에 신경을 쓰게 됩니다. 일본인이라면 소니와 도시바가 얼마나 팔리는지만 신경 쓰면 되는데 삼성의 판매율도 신경 씁니다. 한국 경제가 좋아지면 어쩐지 좀 분합니다. 한국 축구가 좀 잘하면, 싸이가 미국에서 큰 공연을 열면 분하다고 느낍니다. 일본인에게는 한국인의 움직임이 좀 신경에 거슬리고 마는 겁니다. 여러 가지 사건들도 일본에 빠르게 전해집니다. 중국에서 연쇄 살인사건이 벌어져도 보도가 안 되지만, 한국의 살인사건은 일본에도 바로 보도됩니다. 좋은 정보, 나쁜 정보를 그만큼 열심히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호소하는 여성도 있었습니다. 그녀는 제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일본 예능계, 텔레비전 방송국이 한국이나 재일 코리안에게 계속 잠식당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 문화가 없어지고 말 것이다. K-POP이 유행하는 것은 한국과 재일 코리안의 음모다." 영토 문제나 북한의 납치 문제를 계기로 애국심에 눈떠 재특회에 참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정부는 전쟁하겠다는 기개가 없다. 그래서 우리가 싸울 수밖에 없다. 이것은 항의 행위가 아니고, 시민전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공통점은, 다들 '자신들이야말로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차별하는 쪽은 자신들이 아니라, 자신들이야말로 재일 코리안에게 차별당하고 있다는 의식이었습니다.

▲ 야스다 고이치. ⓒ프레시안(최형락)
어느 재특회 멤버는 제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도, 거기 사는 일본인도, 한국이나 재일 코리안에게 많은 것들을 빼앗겨 버렸다. 복지를 빼앗기고, 역사를 빼앗기고 영토를 빼앗기고 텔레비전 채널을 빼앗겼다. 그런데도 정치가나 언론은 한국이나 재일 코리안 편밖에 없다"라고. 지금 자신이 속한 곳이 마땅히 그래야 할 일본 본연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세상의 모든 부조리를 '적'의 책임으로 전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고용 불안도, 경제적 어려움도, 복지 후퇴도, 한류 드라마와 K-POP의 융성도 모두 '적'의 음모인 것입니다. '재일 코리안이 일본을 지배하고 있다'고 하는 황당무계한 주장까지도 이 '빼앗긴 사람들'에게는 그럴싸하게 들리는 것입니다. 지리멸렬하지만 명쾌합니다. 어쩐지 알기 쉽습니다. 재일 코리안 등 외국 국적 주민을 침략자로 비유하는 극단적 상징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프레시안 : 애니메이션 <우주전함 야마토>를 본 이후로 "그 희생정신을 저는 동경했습니다. 애국심이 없으면 삶의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라며 극우에 가담한 남자의 일화도 흥미로웠습니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요. 천황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이 대중문화에도 자연스럽게 배어들어가 있기 때문에 내셔널리즘의 효과가 극화되는 건지, 혹은 대중문화에서부터 자신의 뿌리를 찾는 오타쿠적 특성이 재특회에도 드러난다고 봐야 할지 궁금합니다.

야스다 : 대중문화와는 좀 다른 의미에서, 천황에 충성을 맹세하는 상위하달식 문화가 일본 사회에 전반적으로 뿌리박혀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일본의 좌익 운동도 상위하달 식이었고 어떤 의미에선 군대와 비슷했지요. 이데올로기와 상관없이 그런 자기희생 정신은 곳곳에 박혀있습니다.

서브컬처에 대해 말하자면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이들이 재특회에 많은 건 사실입니다. 인터넷에 자신들을 선전할 때 애니메이션을 자주 차용하기도 해요. 재특회 본부 사무실 위치가 아키하바라, 애니메이션의 본산지라고 할 수 있는 그곳에 있기도 합니다. 실제로 일반 재특회 회원뿐 아니라 회장 사쿠라이도 애니메이션 팬이에요.

전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걸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개인적 추측이지만, 현실 사회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은 건 사실입니다. 재특회 역시 현실 사회와 제대로 대면하지 못하고 있고, 실재하는 재일 코리안과 마주치려 하지 않으며 단지 욕설을 퍼부을 뿐이죠. 어떤 의미에선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겠습니다. 게임 속에서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재일 조선인과 싸우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로 현실 사회에서 도망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제 주변에도 재특회 회원들 중 왜 그렇게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지 연구하는 움직임이 시작됐습니다. 아직 답은 안 나왔어요. 애니메이션은 일본의 자랑이라는 자부심이 재특회가 애니메이션을 고집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그 역시 현실 사회를 모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저패니메이션 제작 현장은 일본에서 철수한 지 오래니까요. 저패니메이션을 만드는 건 대부분 중국인입니다. 재특회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지요. 이건 중국옷을 입고 중국인을 욕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애니메이션과 재특회의 연관성은 저도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앞으로 좀 더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인터넷은 그런 분노의 열기를 들끓게 하는 최적의 도구이기도 합니다. 상식을 일축하는 듯한 '터부 깨기'의 쾌감도 있을 것입니다. 경제생활의 불안감, 정체성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무언가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던 기존의 가치관이나 상식이 단순한 권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 것입니다.

재특회 홍보 담당자는 "우리의 운동은 계급투쟁이다"라고 제게 잘라 말했습니다. "좌익이든 노동조합이든 그렇게 잘 사는 사람들이 없어요. 그런 사람들이 재일 코리안 같은 외국인들을 비호하고 있습니다. 차별받고 있는 건 우리예요." 이것이야말로 넷우익이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피해 의식입니다. 재일 코리안에게 "바퀴벌레", "죽어"라고 외치는 것은 그들의 논리를 빌리자면, 강자에 대한 저항운동입니다.

사회에 불신감이 쌓이면서 속설이나 음모론에 달려들기 쉬운 멘털리티가 조성되는 듯합니다. 그것이 현실과는 다른 상상의 적을 만들어 내서, 공격해도 좋다는 기분에 출발신호를 보냅니다. 안타까운 대립 구조입니다. 결국 재특회는 자신들의 싸움에 취해 있을 뿐인지도 모릅니다. "많은 것들을 빼앗아가는 거대한 적과 싸우고 있는 자신"에게 고양감을 주고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과격할수록 세상에 강하게 자신을 어필할 수 있고 침투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 재특회가 작성한 '조선진주군'에 관한 전단지. 여기에는 출전도 근거도 전혀 없다. ⓒ후마니타스

재특회는 극단적인 예입니다만, 많은 평범한 일본인들이 재특회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에 저는 더 큰 위기감을 느낍니다. 지금의 일본 사회에는 강한 국가를 요구하면서, 강한 태도를 취하면 불만이나 불안으로 가득한 일상을 리셋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기대가 있는 것 같습니다. 평화헌법을 둘러싼 논의를 봐도 그렇게 느낍니다. 아베 정권의 탄생에도 같은 문맥이 감춰져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이 책에서 "재특회는 증오의 지하 수맥과 연결되어 있다"고 썼습니다. 재특회는 일본 사회의 치부입니다. 그렇지만 어딘가에서 대중의 기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넷우익을 포함해 많은 이들이 내셔널리즘에 대해 큰 기대를 걸게 되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일본에는 한국만큼의 내셔널리즘은 없었어요. 강요를 하지 않으면 아무도 일장기를 들거나 기미가요를 부르려고 하지 않았거든요. 사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일본이라는 나라의 형태에 대해 무관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 아시아에서 가장 내셔널리즘이 희박한 나라가 일본이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렇지만 오랜 경제 불황을 겪으면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면 세계 넘버 2가 될 수 있다'는 기존의 생각이 흔들렸습니다. 세계인들의 관심은 일본에서 중국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일본인은 자신감을 잃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도 불안정하고 국가가 불안정할 때 무엇에 의존할 수 있는가? 거기서 중요해지는 건 우익이라는 문맥보다 '강한 국가'라는 의식입니다. 다시 말해 내셔널리즘의 융성입니다. 이런 내셔널리즘은 인종주의와 결합한다는 측면에서 위험합니다.

일본인들은 내셔널리즘을 어떻게 길들이고 상대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애국자'가 늘어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재특회도 애국자라기보다, 국가로부터 사랑받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들인 겁니다. 그들의 주장은 일본에게 우리를 버리지 말라는 주장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여러분이 꼭 알아주시기를 바라는 점이 있습니다. 일본이 계속 좌경화되었다고 주장하는 재특회와 달리, 일본의 우경화를 근심하는 분들도 이 자리에 많을 겁니다. 하지만 제 생각엔, 지금 분위기가 여러분이 걱정하는 진정한 우경화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극우를 주장하는 정치인이 승리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극우파들은 종군위안부 문제가 포함되지 않은 교과서를 만들었지만, 현재 이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전체의 1퍼센트도 채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일본 사회가 무척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극우들의 주장을 실제적으로 받아들일 환경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일본인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하시모토의 종군위안부 발언 이후 그의 지지율은 급격하게 떨어졌습니다. 여성으로부터의 신용을 잃은 겁니다. 보수적인 <산케이 신문>부터 진보적인 <아사히 신문>까지 모두 그를 비판했습니다. 역에서 팔고 있는 타블로이드 신문조차 "하시모토, 그만해!"라고 제목을 달았습니다. 아베 수상도 지금은 한국과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자고 발언합니다. 이것 또한 일본 사회의 분위기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 재특회와 진지하게 싸우는 일본인들도 많습니다. 요즘 들어 재특회가 데모를 하면, 그 양 옆으로 많은 항의 집단이 모습을 나타냅니다. 항의에 참가하는 사람의 수가 재특회 데모대보다 많습니다. 모두 각자의 생각이 담긴 플래카드를 들고 재특회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레이시스트는 꺼져라", "레이시스트는 일본의 치부다", "인종차별을 그만두어라", "재특회를 용서할 수 없다", "한국인, 재일 코리안과 사이좋게 지내자" 그러한 플래카드를 든 사람이 수백 명이나 모이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도 인터넷을 통해 모인 사람들입니다. 압도적인 다수의 사람들이 그저 평범한 무명의 시민들이며 어떤 운동 조직에도 소속되지 않았습니다. 다들 각각 재특회에 대한 분노를 느끼고, 자신의 의지로 항의 활동에 참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특회를 거리에서 쫓아내자는 서명운동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국회에서도 문제가 되어, 제가 무척 싫어하고 아마 여러분들도 좋아하지 않을(웃음) 아베 수상조차 "재특회 등의 데모는 몹시 유감스럽다"고 답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본 사회의 문제인 이상, 일본인이 주체가 되어 자신의 치부인 재특회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지금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을 한국의 여러분에게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프레시안 : 재일 코리안들이 그런 항의 집회에 가장 앞장서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이유는 역시 튀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요.

야스다 : 그렇습니다. 재일 코리안들은 눈에 띄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재특회가 등장하기 전에도,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이전부터 재일 코리안은 편견의 눈초리를 받아왔고 공격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일본 사회에서 주목받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재일 코리안 여성이자 저널리스트인 제 친구는 재특회 집회를 보고 몹시 슬퍼했습니다. 그녀는 항의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고 말하며 울었습니다. 자신이 항의하며 나선다면 반드시 공격당할 것이고, 더 이상 고통을 받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재특회 반대 집회에 나선 일본인들은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피해자들은 전면에 내세우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왕따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보고 나서서 싸우라고 하는 건 잔혹합니다. 왕따당한 사람이 아니라 왕따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일베가 아직까진 온라인에서만 활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재특회도 창립 초기엔 그랬어요. 물론 일베도 추악한 주장, 차별주의적인 주장을 많이 발설하겠죠. 그 얘기를 하면 입이 더러워지기 때문에 그저 '특수한 일부 바보들'하고 말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자신도, 일본의 진보 세력들도 인터넷에서 '조선인은 죽어라'라고 외치는 사람을 그렇게 치부했습니다. 어차피 머리 나쁜 애들이 인터넷에서 놀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많은 이들이 그 점에 대해 무척 반성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의 극우들을 과소평가했던 겁니다. 사실 "조선인은 죽어라"라는 말이, 일부 일본인들의 '혼네(속마음)'이었던 겁니다. "한국은 싫다!"라고 큰 소리로 외칠 수 없던 이들을 대신하여 그들이 소리높인 것입니다. 결코 소수의 머리 나쁜 외침이 아니었고, 일본인의 속마음을 비춰주는 거울 같은 것이었습니다. 일본인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인터넷 상의 그런 기분 나쁜 얘기도 결코 사라지지 않아요.

국가간의 정치적 대립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격렬한 논쟁도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인종차별만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지금 재특회가 하고 있는 짓은 개인적으로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고 인간의 생존권마저 빼앗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를 허용하고 있는 사회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시민들과 함께 앞으로도 재특회에 대해 결연한 태도로 마주하려 합니다. 동시에 재특회를 만들어낸 일본 사회의 불관용도 충분히 의식하면서 그 원인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것은 기자로서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김치는 죄다 노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다, 반도에는 괴물들만 살고 있다 등의 극우들의 세뇌를 풀기 위해서 실재하는 한국인, 실재하는 재일 코리안과 만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인 중에는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도 섞여 있듯 한국인도 마찬가지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실재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람끼리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얘기해주고 싶은 겁니다. <거리로 나온 넷우익>은 저와 재특회 사이의 싸움의 기록인 동시에 교류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싸움의 기록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다면 제 책을 읽어봐 주시길 바랍니다. 긴 시간 동안 감사합니다.

프레시안 : 저 역시 현재 한국에서 일베가 너무 많은 지면에 등장하는 것에 대해 사실 복잡한 심정입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중 하나에 불과한 이 모임의 극우성을 너무 호들갑스럽게 보도함으로써 오히려 그들의 존재가 실제보다 더 커지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야스다 :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무시하는 쪽보단 비판하는 게 낫다고 봅니다. 언론은 일베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국사회는 일베의 그런 주장을 거부한다는 메시지를 되풀이 전달함으로써 일베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베 회원들의 생각 자체를 바꿀 수야 없겠지만 그런 움직임을 통해 일베 사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형성될 수 있을 겁니다. 일베는 한국사회에서 소수파이고 궁지에 몰린 존재라는 사실을 언론의 힘으로 확실하게 보여줘야 합니다.

프레시안 : 하시모토 도루 시장의 위안부 발언에 대해 유명 평론가 아즈마 히로키도 동조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정치인이나 지식인이 반드시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 면에 있어서 적어도 재특회보다는 좀 더 나은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까. 재특회가 일부 인터넷 '찌질이'라고 폄하할 게 아니라, 이런 식의 편견에 찬 인식이 사회 상층부에도 퍼져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스다 : 제가 얼마 전에 아즈마 히로키와 대담을 했습니다.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철저하게 대립했지요.(웃음) 일본의 지식인보다… 음, 일본사회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이 있든 없든 별 상관이 없어요. 그 사람이 역사를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고 머리가 좋더라도,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역사를 보는 시각은 상관이 없습니다.

종군위안부에 대해서는 일본 사회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만, 21세기 이전까지는 그래도 일본의 치부라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1993년 당시 내각관방장관직을 맡고 있던 고노 요헤이가 위안부에 대해 사과했던 '고노 담화'라든가, 1995년 당시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했던 '무라야마 담화'가 아무런 반대도 없이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었지요.

그러다가 일부 보수파로부터 종군위안부는 거짓이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60년이 지났는데 일본은 언제까지 한국이나 중국에 사과를 해야 하냐는 주장이 폭발하고 만 겁니다. 그들은 종군위안부 문제가 자기 아버지나 할아버지를 모욕하는 것 같아 고통스럽다고 느낍니다. 누구나 비판당하는 건 힘들고 사과하는 것도 싫어합니다. 그래서 종군위안부는 없었다, 혹은 종군위안부가 뭐가 나쁘냐는 얘기가 나온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종군위안부에 강제성이 있었냐 없었냐 여부에 대한 논쟁만이 존재합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한 문제지만, 식민지 주권의 의미라든가 여성 인권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하시모토 도루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만에 하나 하시모토 말대로, 전장의 병사들을 위해 여성들이 필요했다고 가정해보더라도, 왜 그 여성들에게 감사하지 않는 건가요? 여성들은 자신이 몸으로 병사들을 식혔는데, 그들을 두고 매춘부라고 부르는 건 용서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시모토의 논리대로라면, 그 여성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해야 하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지식인이든 대중이든, 여성에 대해서 그리고 당시 식민지 조선인들에 대해서 깔보고 멸시하는 시각이 똑같이 존재합니다. 역사에 대해 불성실한 태도이자, 동시에 인종차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중으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런 시각이 있는 한, 위안부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을 할 수 있을 리 없다고 봅니다.

▲ 일본 쿠데타를 꿈꾸는 극우 조직 '요멘 친위대'의 훈련 광경. ⓒ후마니타스


<거리로 나온 넷우익> 중에서

"재특회의 모체가 된 것은 '2채널'(일본 최대의 인터넷 익명 게시판으로, 보수 우익적 성향의 네티즌이 주류를 이룬다-옮긴이) 같은 인터넷 게시판에서 보수적 의식을 가지고 활동해 온 사람들입니다."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애국·반조선·반중국·반좌익 등을 호소하는 이들을 일반적으로 '넷우익'이라고 부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컴퓨터나 휴대전화를 붙들고 "조선인은 죽어 버려"라고 필사적으로 글을 올리는 이들의 존재는 인터넷이 일반화된 1990년대 이후 급속도로 눈에 띄게 되었다. 원래 넷우익은 이른바 변형 '오타쿠'로 불렸다. 익명성을 방패로 삼아 차별적인 발언을 일삼는 모습 때문에 공격적인 은둔형 외톨이라는 야유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넷우익 사이에서도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실제적인 연대와 단결을 지향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인터넷으로 이용해 정보 수집, 교류, 호소를 하면서 인터넷 밖으로도 '싸움의 장소'를 넓힌 것이다.(재특회 홍보국장 요네다 류지, 48쪽)

요네다는 인터넷 언론이 오른쪽으로 크게 쏠린 요인으로 한일 월드컵과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방북(2002년 9월 17일 당시 총리가 김정일과 양국 간 국교 정상화 논의를 시작하자고 합의. 그 과정에서 북한 당국이 1960~70년대에 일본 민간인 10여 명을 납치한 사실을 인정, 여론 급속도로 악화, 한국 국적을 포함한 재일 코리안 전체에 대한 일본 사회의 시선도 차가워졌다)을 들었다. 둘 다 2002년의 일이다. 그 중에서도 월드컵은 "인터넷 언론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라고 단언했다.

"한일 양국이 공동 개최한 월드컵이 남긴 것은 한국에 대한 실망과 혐오였습니다. 갖가지 난폭한 경기, 이본 선수들에 대한 응원단의 야유 등 정말로 너무했어요. (…) 실제로 제 주위에서 그때까지 한국에 친근감을 갖고 있던 사람들조차 '월드컵 때문에 눈을 떴다'며 갑자기 혐한 감정을 키운 경우가 많아요."(49쪽)

"일본에서 특권을 가장 많이 누리고 있는 외국인은 같은 '재일'이라도 재일 미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국은 일본의 경제 부흥을 도와줬죠. 긍정적인 측면이 많아요. 일본을 괴롭히는 한국이나 북한과는 다릅니다. (…) 인터넷. 그리고 텔레비전이죠. 활자가 싫어서 책은 잘 안 읽어요." (재특회 회원과의 대화, 130쪽)

"재특회에 들어가서 놀랐던 것은 조선인을 진짜로 무서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조선인을 멸망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재특회에서 만난 한 여성은 '일본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재일 코리안'이라고 진지하게 믿고 있더군요. 한편에서는 조선인을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열등한 민족이라고 욕하고 있으나, 생각해 보면 그런 열등한 민족에게 지배받고 있는 일본인은 정말로 한심한 거죠. (…) 공격하기 쉬운 목표를 찾은 데 신이 났는지도 모르죠. 재일 조선인은 불쌍한 약자이고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상식에 얽매여 왔던 우리에겐 터부를 깨는 쾌감이 있었어요. 비뚤어진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저 자신도 터부를 깨뜨림으로써 세상의 권위나 권력과 싸우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재특회 간부였던 사람과의 대화, 198쪽)

"반체제도, 반권력도, 지금은 오른쪽의 전유물입니다." 인터넷 사정에 밝은 프리랜서 작가 시부이 데쓰야의 말이다. (…) "인터넷에서는 '좌익=모범생'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한마디로 재미가 없어요. 그에 비하면 우익은 파괴력이 있고, 재미있고, 무엇보다도 자극적이죠." 시부이에 따르면, 예를 들어 '차별은 나쁘다'는 이야기는 인터넷에서 전혀 인기가 없다고 한다. 학교 선생님 같다. 맞는 이야기인 것은 사실이지만 어딘가 권위의 냄새가 난다.

신문, 방송, 잡지 등의 기존 언론에서는 표현할 수 없는 '속마음'이 인터넷 언론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차별은 나쁘다'가 아니라 '차별은 정말 나쁜 것일까?'라고 도발하는 행위가 요구되는 것이다. 그것은 학교 선생님처럼 점잔을 빼는 거대 언론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터부를 깨는 쾌감이죠." (349~3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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