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런 갑작스런 협동조합 붐이 얼마나 실속 있는 성과로 이어질지 회의적인 목소리도 높습니다. 작년(2012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고 나서 1000개가 넘는 협동조합이 설립 신고를 했지만, 정작 제대로 협동조합 활동을 벌이는 곳은 반 정도라는 조사 결과도 이런 우려를 부추깁니다.
당장 협동조합을 설립하는데 치중하다 보니, 정작 협동조합을 둘러싼 논의 자체가 실용적인 관심 위주로 흘러가는 것도 우려할 만한 상황입니다. 그동안 한국의 협동조합 운동이 비록 더디기는 했지만 토론과 실천이 긴장 관계를 이루면서 한 발씩 전진해온 역사를 염두에 두면 더욱더 그렇습니다.
▲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왼쪽), 박승옥 한겨레두레공제조합 공동대표. ⓒ프레시안(최형락) |
그래서 이번 '프레시안 books'에서는 한국에서 협동조합 운동의 담론을 풍성하게 하는데 기여했던 두 분의 협동조합 고수를 모셨습니다. 박승옥 한겨레두레공제조합 공동대표와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 두 분이 협동조합 붐에 대한 단상부터 시작해서 한국 협동조합 논쟁의 포인트를 짚고 같이 읽어볼 책을 두루 펼쳐놓습니다.
알다시피 <프레시안>은 지난 6월 1일자로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했습니다. 이번 대담은 프레시안 협동조합이 한국 협동 사회의 담론을 더욱더 풍성하게 하는데 기여하겠다는 약속의 한 예입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 여러분이 '함께 사는 협동 사회'를 한 번 더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습니다.
이 대담은 지난 4일 오전 마포구 서교동 프레시안 협동조합 회의실에서 이뤄졌습니다. 대담 진행은 강양구 기자, 정리는 김용언 기자가 맡았습니다.<편집자>
1997년 외환 위기, 협동조합의 기적은 없었다
프레시안 : 지난 6월 1일 프레시안 협동조합의 창립 총회가 있었습니다. 이로써 <프레시안>은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첫 언론이 되었는데요. 기획재정부와 서울시에 따르면, 작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고 나서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첫 사례라고도 하더군요.
이번 자리는 프레시안 협동조합 창립에 맞춰서 협동조합을 둘러싼 담론을 한 번 정리해 보자는 취지에서 마련했습니다. 두 분은 오랫동안 협동조합 운동을 전개해 오셨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협동조합을 둘러싼 토론에도 많은 기여를 해오셨으니 맞춤한 대담자란 생각이 듭니다. (웃음) 우선 독자를 위해서 두 분의 활동을 소개하는 데서 시작해 볼까요?
박승옥 : 제가 몸담고 있는 한겨레두레공제조합부터 얘기해 보죠. 2009년부터 장례를 비롯한 애·경사 사업의 시장 조사를 해봤어요. 잘 알다시피, 장례 업체나 예식 업체 등이 사람들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리베이트(뒷돈)를 노골적으로 챙기는 등 고질화된 문제점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이걸 협동조합 방식으로 바꾸고자 1년 반 정도 준비를 했어요. 시장 조사를 하고, 직거래 공동 구매 시스템이 어떻게 가능한지 기획하고…. 2010년 12월 리영희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 한겨레두레공제조합에서 처음 그 장례식을 치르면서 공식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시작이 순탄치는 않았죠. 내부에서 논쟁도 많았습니다. 좋은 상조 회사를 만들자는 게 큰 흐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너도나도 좋은 상조 회사를 표방하며 시작하지만, 결국은 '좋은' 성격이 사라지며 그렇고 그런 상조 회사가 되는 모습을 많이 봐왔으니까요.
기왕에 협동조합으로 상조 회사를 꾸린다면, 협동조합의 한 축인 상호부조의 인적 결사를 강조하는 어려운 길을 가기로 했죠. 다행히 구성원이 동의를 해줬습니다. 이제 3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손익 분기점에 다다르지는 못했습니다. (웃음) 대신 활동가의 헌신 덕분에 조합원이 늘었고 기반이 어느 정도 닦였죠. 앞으로 낙관하고 있습니다.
▲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
김기태 : 우리 집이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열심히 일을 하시는데도 계속해서 빚만 늘어나는 거예요. 당시에는 정상적으로 교육을 받은 고등학생답게 (웃음) 부모님이 농사 경영을 잘못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우연히 <신동아>를 읽었는데 그 호의 특집이 농가 부채였어요.
농가 부채는 국가의 잘못된 정책이라는 주장이 100쪽에 달해 실려 있었습니다. 농산물 가격을 지나치게 낮게 책정한 문제부터 시작해서 당시의 농가 부채의 원인을 구조적으로 해명한 글이었죠.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그 글을 읽으면서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그런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대학에서 농업경제학을 전공했고, 수업 시간에 협동조합을 처음 접했죠.
그러고 나서 선후배와 함께 서울대학교 농업정책연구회를 만들어서 20~30여 명이 농업과 협동조합을 토론하고 공부했습니다. 그 후 가톨릭농민회 교육부장과 조직홍보부장으로 일하면서 초기 생활협동조합의 실무를 익혔습니다. 특히 농업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협동조합으로 매개되는 전 과정에 눈을 뜬 셈이죠.
이런 고민은 자연스럽게 2000년대에 지역 농업 네트워크를 통해 농업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구체적 모델을 만드는 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2008년부터 한국협동조합연구소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게 되었죠. 사실 원래는 농촌을 살리는 구체적 모델을 협동조합으로 구현하는 방안을 연구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이름이 한국협동조합연구소잖아요?
결국 이름이 활동을 규정하게 됐습니다. (웃음) 농협뿐만 아니라 생협을 비롯한 다양한 협동조합을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 되었죠. 그러다 아예 제대로 된 협동조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2008년부터 3년 정도는 그 작업에 집중했죠. 바로 그 때 마련한 협동조합법이 바로 지금의 협동조합기본법의 모태가 되었죠.
물론 당시만 하더라도 법이 이렇게 쉽게 제정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웃음) 아무튼 이번 협동조합기본법이 마련되는데 작은 기여라도 했다는데 자부심이 있습니다. 작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된 후로는 새로 시작하는 여러 협동조합이 제몫을 할 수 있도록 돕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 : 얘기를 듣고 보니, 오늘 얘기할 주제가 대충 가늠되는 것 같은데요. (웃음) 우선 협동조합기본법 얘기부터 해보죠. 오랫동안 협동조합 운동을 해온 입장에서 최근의 협동조합 붐이 기대도 되고 염려도 되는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실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런 희망과 우려를 모두 얘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기태 : 기본법이 제정된 지 6개월 정도 지났죠.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선 협동조합기본법 첫 해에만 협동조합이 3000개 만들어질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처음 들었을 땐 너무 무리한 예측이 아닌가 싶었는데, 지금 벌써 1000개 정도의 협동조합이 설립 신고를 했습니다. 정말 3000개가 만들어질 것 같아요. (웃음)
하지만 수가 워낙에 급격히 늘어나다 보니, 조사를 해보면 막상 신고를 한 협동조합의 절반 이상이 사업을 안 하고 있어요. 좋은 의지로 협동조합을 만들었지만, 사업 자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거나 혹은 이해를 했더라도 비즈니스 모델을 명확하게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죠.
초창기에 이런 경우가 많아지면 '협동조합이 해보니 별 거 아니네' 하는 편견이 생길까봐 좀 걱정스럽긴 합니다. 앞으로 선배 협동조합이 이런 새내기 협동조합에 대한 교육에 힘써서, 그런 부분을 좀 완화시키는 게 급선무가 아닐까 합니다. 한국협동조합연구소도 지금 이런 점을 가장 신경 쓰고 있습니다.
▲ 박승옥 한겨레두레공제조합 공동대표. ⓒ프레시안(최형락) |
박승옥 : 우려가 큰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변해야만 합니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곳이죠. 많은 이들이 그렇다면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야 하는가를 문제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 대안 중 하나가 협동조합이고요. 지금의 협동조합 붐은 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그런 욕구가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해요.
물론 김기태 소장님 말대로, 그 중에 성공한 사업 모델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협동조합은 극히 적을 거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아니라 '자본'을 앞에 놓으면, 설사 사업 모델로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런 협동조합이 한국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적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협동조합 붐을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일종의 문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프레시안>의 협동조합 전환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요. 한국 사회의 변화의 흐름을 언론사가 온몸으로 끌어안아 실천하는 모습이니까요. <프레시안>의 직원 조합원과 독자 조합원이 이 점을 확실히 인식했으면 좋겠습니다.
프레시안 : <시사IN>의 차형석 기자가 신성식 아이쿱(iCOOP) 생활협동조합 생산법인 경영대표를 인터뷰해서 낸 <당신의 쇼핑이 세상을 바꾼다>(알마 펴냄)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신성식 대표가 박승옥 선생님을 정면 비판해 놓았더군요. (웃음) 평소 박 선생님이 생협에 쓴 소리를 많이 하셨으니 거기에 대한 반론이라고 할 수 있겠죠.
박승옥 : 네 저도 그 책은 읽었습니다. (웃음)
프레시안 : 해당 대목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아이쿱생협은 1997년에 여섯 개의 생협(부평생협, 부천생협, 안산생협, 수원생협, 대전한밭생협, 볕내생협)이 모여 탄생한 연합 조직이에요. 대전에 있는 한밭생협은 한살림이 시작했던 1986년에 창립했으니까 이 여섯 개의 생협이 길게는 11년, 짧게는 5~6년 동안 사업적으로 어마어마하게 실패를 본 거예요.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 할 수 없이 모인 게 아이쿱생협의 시작입니다. 몇몇 멤버들은 이념적으로 비슷했지만,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어요. 사업적 실패를 어떻게든 막아보자고 뭉친 것이죠. 반면 시민 단체나 종교 쪽에서 주도한 생협들은 사업보다는 가치를 우선합니다. '사업은 실패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사업을 강조하면 '사업 강조=기업'으로 인식하는 겁니다. '협동조합은 성장하면 안 된다'라거나, '성장을 하게 되면 사업 중심으로 흘러가면서 협동조합의 초기 목적이나 초심이 바뀐다'라고 생각하는 거죠. 성장 자체를 반대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들이 모범 사례라고 생각하는 스페인의 몬드라곤, 이탈리아의 레가, 일본의 생협은 그 규모가 한국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당신의 쇼핑이 세상을 바꾼다>, 49쪽)
사실 협동조합은 그 정의부터 두 가지 요소가 긴장 관계를 유지하죠. 조합원의 이익을 달성하기 위한 사업을 중심하는 흐름과 결사체로서의 가치를 중시하는 흐름이요. 박승옥 선생님은 일관되게 가치를 중시하는 결사체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입장이고, 신성식 대표는 그런 흐름을 "이념의 과잉"이라고 비판하며 거리를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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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쇼핑이 세상을 바꾼다>(신성식‧차형석 지음, 알마 펴냄). ⓒ알마 |
프레시안 : 한겨레두레공제조합 같은 경우도 신성식 대표의 지적대로 성장 쪽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면 훨씬 더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웃음)
박승옥 : 일단 오해부터 풉시다. 한겨레두레공제조합 같은 경우도 당연히 성장을 지향합니다. 손익 분기점을 맞추고자 저를 비롯한 활동가들이 정말로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웃음) 저는 성장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성장을 위한 성장'에 문제를 제기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성장을 위해서 협동조합의 애초 정체성 혹은 자생성을 훼손하는 그런 방식이요.
이를테면, 1997년 외환 위기 때 국내의 신용협동조합은 죄다 참담한 상황에 처했어요. 700개 정도의 신협이 문을 닫았죠. 그리고 협동조합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 제2금융권으로 가게 됐습니다. 2008년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유럽 지역의 신협은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왜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했을까요? 신협이 애초의 정체성 또 자생성을 잃었기 때문이죠.
바로 그런 역사의 교훈에서 배우자는 겁니다. 아이쿱생협이든 한살림이든 지금 한국 생협은 한창 성장 중입니다. 최근 몇 년 새 아이쿱생협의 성장은 눈부시죠. 더 성장해야 합니다. 그걸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혹시 성장에만 신경을 쓰면서 꼭 챙겨야 할 것들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는 거예요.
김기태 : 협동조합 사업과 협동조합 운동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지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앞으로도 이 논쟁은 계속될 것 같아요. (웃음) 우선 용어 문제부터 지적하고 싶습니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의 협동조합의 정의에 포함된 "autonomous association"을 보통 "자발적 결사체"라고 번역하죠.
'결사체'는 원래 '맺을 결(結)'에 '단체 사(社)'입니다. 그런데 한자의 원래 뜻보다 우리말은 훨씬 더 엄숙한 또 무거운 느낌이 있어요. (웃음) 그러니까 협동조합을 "자발적 결사체"라고 번역하는 데서부터 협동조합에 대한 특정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가급적 '인적 조직'이라고 번역하는 편입니다.
그렇다면, 인적 조직과 사업 모델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요? 김기섭 박사의 <깨어나라! 협동조합>(들녘 펴냄)이 상당히 설득력 있는 방안을 내놓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돈이 주가 되기보다는 삶이 주가 되는 조직의 경우에는 인적 조직과 사업 모델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겁니다.
어떤 사업에 투자할 때, 돈만 내면 충분한 경우에는 주식회사가 유리합니다. 이를테면 철도 회사를 만들든지 혹은 철강 회사를 만들 때는 투자자를 모은 다음에, 나중에 돈(배당)으로 보답하면 끝이죠. 하지만 소매 유통처럼 초기 자본뿐만 아니라 고객 관리, 지식 노동 등의 추가 비용이 계속해서 들어가는 사업이라면 소비자와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게 유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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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어나라! 협동조합>(김기섭 지음, 들녘 펴냄). ⓒ들녘 |
박승옥 : 언론사 역시 돈이 주가 보다는 삶이 주가 되는 곳이니 협동조합에 어울리는 사업이라고 할 수 있겠죠. (웃음)
김기태 : 협동조합의 성장을 놓고도 논쟁이 계속 진행 중입니다. 그러니까 협동조합의 적정한 규모를 둘러싼 논란이죠. 1인 1표의 의사 결정권이 존재하는데 조합원 숫자가 수백 명, 수천 명이 되면 각자의 의견이 협동조합의 의사 결정에 반영되기 쉽지 않죠. 그래서 협동조합의 적정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의 문제가 생깁니다.
아이쿱생협이나 한살림의 조직이 크다고들 하지만, 농식품 전체 유통으로 보자면 1퍼센트 정도입니다. 협동조합이 이 유통 체계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지려면 좀 더 커져야 합니다. 이게 바로 신성식 대표의 고민이죠. 하지만 여기서 곧바로 앞에서 언급한 의사 결정 문제가 나오죠. 성장은 도모하되 민주적 의사 결정의 과정은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조직 방식을 궁리해야죠.
프레시안 : 생협 간의 매장 중복 문제도 골칫거리죠.
김기태 : 장기적으로는 생협전국연합회가 만들어져서 통일된 가이드라인이 생겨야 합니다. 농협 같은 경우에는 500미터 근방에 또 다른 매장이 생길 때 조정을 하거든요. 그런데 정작 생협같은 경우는 아직 조정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단위가 없다 보니, 그런 진통이 반복되는 거죠.
프레시안 : 생협 간의 논쟁을 지켜보면, 아무래도 각각의 생협의 역사에 따른 조직의 성격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김기태 : 정확한 지적입니다. 한살림 같은 경우에는 초기에 주도한 곳이 가톨릭농민회다 보니 농업의 문제가 항상 핵심에 놓여 있죠. 농촌에서 시작해 도시로 간 경로잖아요. 반면에 두레생협이나 행복중심생협(구 여성민우회생협)은 시민 운동에서 시작했죠. 아이쿱생협은 과거 진보 정치 운동을 하던 이들이 지역 운동을 하면서 시작했고요.
박승옥 :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따라서 협동조합의 구체적 현실이 다르듯이, 한국의 생협 운동도 각기 다른 조건과 다른 필요에서 만들어졌으니 차이는 당연한 겁니다. 다만, 사업의 편의성 때문에 인적 결사, 저는 계속 이 용어를 사용하겠습니다, (웃음) 등이 훼손될 가능성을 주의하자는 겁니다.
저도 아이쿱생협이 조합비 제도와 같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사업의 규모화에 성공한 사실에 감탄합니다. 하지만 결사체와 사업체의 긴장 관계를 끊임없이 환기하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한살림 서울의 회원이 약 10만 명입니다. 예전부터 너무 많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요. 이를 두고도 논쟁이 필요하죠.
협동조합을 이해하는 세 가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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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동조합, 참 좋다>(김현대‧하종란‧차형석 지음, 푸른지식 펴냄). ⓒ푸른지식 |
우선 협동조합 초심자 입장에서는 <협동조합, 참 좋다>(김현대‧하종란‧차형석 지음, 푸른지식 펴냄)가 '참 좋은' 협동조합 입문서인 것 같아요. (웃음) 저는 아무래도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 전환 실무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서 <우리, 협동조합 만들자>(김성오‧김장전‧김희제‧김혁‧이성수‧문천오 지음, 겨울나무 펴냄)도 유용했습니다.
김기섭 박사의 <깨어나라! 협동조합>과 신성식 대표의 <당신의 쇼핑이 세상을 바꾼다>는 생활협동조합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고요. 한살림에서 자체 역사를 정리했던 <죽임의 문명에서 살림의 문명으로>(모심과살림연구소 지음, 한살림 펴냄)는 생명 운동과 협동조합 운동의 연결 고리를 짚은 책이죠.
김기태 : 협동조합 책들이 최근에 꽤 많이 나오고 있어요. 2009년만 해도 단 1권이 출간되었는데 2012년에만 16권이 나왔습니다. (웃음)
몇 권 소개하면요. 시중에서 파는 책은 아닙니다만, 농협경제연구소에서 다운받을 수 있는 신기엽 박사의 <협동조합 길라잡이>도 추천하고 싶습니다.(☞바로 보기) 농협 중심으로 기술되긴 했습니다만, 협동조합 이슈를 50문 50답으로 정리해 놓아서 입문서로 충분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레그 맥레오드의 <협동조합으로 지역 개발하라>(이인우 옮김, 한국협동조합연구소 펴냄)도 있습니다. 멕레오드는 캐나다 퀘벡 지역에서 협동조합 운동을 펼친 협동조합 이론가이자 활동가입니다. 멕레오드는 이 책에서 몬드라곤 모델을 비판적으로 점검하면서 그것의 성공 요인과 또 다른 지역에서의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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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협동조합 만들자>(김성오‧김장전‧김희제‧김혁‧이성수‧문천오 지음, 겨울나무 펴냄). ⓒ겨울나무 |
그런 면에서는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 <만물은 서로 돕는다>(김영범 옮김, 르네상스 펴냄)와 <앎의 나무>(움베르토 마투라나‧프란시스코 바렐라 지음, 최호영 옮김, 갈무리 펴냄)를 추천합니다. 인간이 왜 협동해야만 살 수 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들이죠.
김기태 : 협동조합에 관한 책을 제 기준에서 분류하자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첫째 정확한 묘사, 둘째 사례를 통한 협동조합 원리의 정리, 셋째 협동조합 이론, 이렇게요. 존스턴 버첼의 <협동조합운동>(장종익 옮김, 들녘 펴냄)과 <한국 생활협동조합운동의 기원과 전개>(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엮음, 푸른나무 펴냄)는 첫째 유형에 속하는 책입니다.
협동조합 선구자들의 평전을 정리해 놓은 <선구자들>(윤형근 엮음, 그물코 펴냄)도 좋은 책이죠. 앞에서 언급한 그레그 맥레오드의 <협동조합으로 지역 개발하라>는 둘째 유형에 해당합니다. 김성오 한국협동조합창업경영지원센터 이사장의 <몬드라곤의 기적>(역사비평사 펴냄)과 같이 읽으면 좋은 책이죠.
지금은 절판된 아르네스트 포아슨의 <협동조합공화국>(진흥복 옮김, 선진문화사)이나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스테파노 자마니‧베라 자마니 지음, 송성호 옮김, 북돋움 펴냄)는 협동조합의 이론화를 시도한 책이죠. 특히 자마니 책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넘어서는 제3의 길을 찾는데 협동조합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찰한 책입니다.
프레시안 : 읽을 책들이 정말로 많군요. (웃음)
박승옥 : 이런 수많은 책 중에서, 자신의 관심사에 맞춰서 찾아 읽어야죠. (웃음)
협동조합, 국가와 자본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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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임의 문명에서 살림의 문명으로>(모심과살림연구소 지음, 한살림 펴냄). ⓒ한살림 |
박승옥 : 협동조합 운동의 주체에 달린 문제죠. 마르크스는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도 못했잖아요. (웃음) 객관적 정세를 강조하는 분들이 흔히 망각하는 게, 변화의 주체가 인간이라는 사실입니다. 협동조합 운동을 하는 이들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제대로 하느냐가 핵심이죠. 처음부터 안 될 거라고 단정 짓는 건 구조 결정론일 뿐이죠.
김기태 : 협동조합에 어떤 기대를 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를 완전히 넘어선 새로운 사회 구성체를 만든다는 기대가 있다면 그 기준이 너무 높기 때문에 현실 속 어떤 운동도 마음에 들지 않겠죠. 협동조합은 개인의 자발성(인적 조직)과 새로운 사업(사업 모델)을 결합시킬 수 있는 영토를 만들어 줍니다. 지금까지 그 둘이 떨어져 있다고만 여겼는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것만으로도 지금까지 협동조합 운동은 충분히 많은 일을 했다고 봅니다.
물론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길 열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협동조합 은행의 제대로 된 연대를 통해서 금융 자본주의의 폐해를 완화시킬 수 없을까, 이런 고민이요. 아직 그 대안이 명확하진 않지만, 현재 자본주의가 금융 자본주의의 해악을 막을 답을 못 찾고 있다면, 협동조합 쪽에서 그럴듯한 대안이 나올 수 있습니다.
저는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자본주의가 또다시 새로운 자기 혁신을 통해 인간적인 자본주의로 변한다면 협동조합은 그렇게 변신한 자본과 맞서야겠죠. 하지만 자본주의가 자기 혁신을 하는데 실패한다면, 그래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유지되거나 혹은 더 나빠진다면 협동조합이 좀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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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몬드라곤의 기적>(김성오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 ⓒ역사비평사 |
박승옥 : 사람들의 생각이 경쟁에서 협동이라는 가치로 옮겨가는 데 있어 <프레시안>이 큰 기여를 했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생협, 신협, 신규 협동조합의 요구가 무척 다양합니다. 하지만 기존 매체들은 이런 요구를 다 담지 못하거나 관심이 없어요. <한겨레>가 최근 협동조합 지면을 새로 만들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프레시안>이 명실상부한 협동 사회 경제의 담론을 모으는 매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김기태 : 인터넷 매체 중에서 첫째, 둘째를 겨루는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되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사회적으로 많은 임팩트를 줬어요. 자랑스럽습니다. 이제는 살아남아야죠. 협동조합 언론에 걸맞은 새로운 사업 모델 개발이 최우선입니다. 더 나아가서 독자-소비자 조합원이 단순한 기사 소비에서 나아가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앞으로 행운을 빌겠습니다.
프레시안 : 두 분 선생님의 격려와 질책도 계속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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