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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33, 민주주의는 다시 피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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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33, 민주주의는 다시 피가 필요하다

[장석준 칼럼] 20년마다 봉기가

민주주의에 대한 무서운 격언이 하나 있다.

"민주주의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

토머스 제퍼슨이 했다는 말이다. 이 문장은 1787년, 그러니까 미국 독립 혁명이 승리한 지 4년 뒤 그리고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기 2년 전에 당시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이던 제퍼슨이 윌리엄 S. 스미스라는 옛 혁명군 동지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보다 정확하게 인용하면, 이렇다.

"한 두 세기마다 발생하는 약간의 인명 손실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자유의 나무는 때때로 애국자들과 압제자들의 피를 먹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유의 나무에 주는 천연 비료입니다." (<토머스 제퍼슨 : 독립 선언문>, 차태서 옮김, 프레시안북 펴냄, 2010년, 80쪽)

원문 그대로 보니 더 무시무시하다. 카를 마르크스나 블라디미르 레닌 같은 사람이 꺼낸 이야기라면, '피에 굶주린 좌익'의 생생한 사례로 즐겨 인용되었을 법하다. 그러나 우익 선동가들에게는 안타깝게도 이것은 미국 '독립 선언' 작성자의 발언이다. 미국 민주주의의 비조 중 한 명께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니 나는 이 두려운 문장을 감히 진실이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5월도 절반을 넘어선 지금, 나는 한 노동 운동가가 쓴 동시대사 기록을 한창 독서 중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연맹의 고참 활동가 이근원이 인터넷 매체 <레디앙>에 연재한 글들을 모은 <아빠의 현대사>(레디앙 펴냄)라는 책이다. 저자 이근원은 민주 노조 운동과 진보 정당 운동에서 늘 최전선에 서길 마다하지 않은 투사다. 그 최전선의 이야기가 <아빠의 현대사>에 오롯이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저자의 회고담이면서 또한 저자가 풀어놓는 지난 30여 년간의 민중 운동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의 출발점도 어김없이 1980년 5월이었다. "하필이면(?) 나는 그 해, 대학생이 된다"(<아빠의 현대사>, 23쪽)는 회고처럼, 이근원은 1980년 '서울의 봄'에 대학 신입생이었다. 그는 5월 15일 서울역 광장에 10만 명의 학생들이 모여 "전두환 퇴진하라!"를 외치다가 무력하게 해산하고 만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 자리에 그도 있었다. 그러고 나서 3일 뒤, 광주에서 학살이 시작되었고, 항쟁이 뒤따랐다. 그 때 그는 대학생 군사 훈련장에서 공수부대의 살기와 마주하고 있었다.

광주에서는 애국자들의 피가 뿌려졌다. 오직 애국자만이었다. 압제자들은 아니었다. 패배한 봉기였다. 그러나 성급한 판단이었다. 봉기는 다만 짧지 않은 휴지기에 들어갔을 뿐이었다. 1980년대를 다루는 <아빠의 현대사> 제1장 '저항'을 읽으며 이 사실을 새삼 절감했다. 봉기의 풍문은 이근원 같은 수많은 어린 대학생들을 삽시간에 투사로 만들어 놓았다. 그들은 "학살자 전두환 심판!"을 외치기 위해 밧줄에 몸을 매단 채 고공 시위를 벌였고, 감옥으로 향했다. 혁명 운동의 고전들을 등사본으로 탐독하기 시작했고, 1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공장으로 향했다. 광주의 전투는 끝난 게 아니었다. 단지 확산되고 있을 뿐이었다.

7년 만에 첫 번째 거대한 승리가 있었다. 1987년의 6월 항쟁과 그 해 여름의 노동자 대투쟁이었다. 물론 이근원의 회고처럼, "노태우의 집권으로 인해 (…) 보수 집단은 후퇴할 시간을 벌었고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1987년이 기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다."(142쪽) '절반의 승리'였다.

하지만 그래도 전투는 계속됐다. 1991년 5월 투쟁이 있었고, 1996~97년의 노동법 개악 반대 총파업이 있었다. 민주 노조 운동이 전진했고, 진보 정당의 시도들도 끊이지 않았다. <아빠의 현대사> 2부와 3부가 전하는 투쟁담들이 20여 년간 지속됐다. 이 모두가 1980년 광주에서 폭발한 봉기의 여진이었다. 그래서 이근원은 말한다. '386 세대'가 아니라 '광주 세대'라고.

"'386 세대'가 언론이 붙여 준 이름이라면 나는 '광주 세대' 혹은 '5·18 세대'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벌어진 항쟁의 역사가 그 시대를 살아 온 모두를 짓누르고 있다. 그리고 그 '짓누름'은 아마도 우리 아버지 세대의 한국 전쟁의 무게만큼 우리 세대 전체에게 이어지고 있다." (19쪽)

▲ 우리의 5월은 광주의 5월일뿐만 아니라 촛불의 5월이기도 하다. 5년 전 촛불이 이 계절을 뜨겁게 달궜었다. ⓒ프레시안

그런데 가장 최근인 2000년대를 서술하는 <아빠의 현대사> 3부는 그 제목이 '혼돈'이다. 이 시기에 민주노총은 점점 더 무력해졌고, 한때 대안으로 등장하는 듯싶던 진보 정당은 짧은 절정기를 마치고 곧바로 혼란의 나락에 빠져들었다. 그 반대편에서 5월의 여진의 또 다른 계승자 노무현 정부는 '민주' 세력에 대한 환멸만을 남겨놓은 채 임기를 마감했다. 2012년 대선 결과는 이 환멸의 뿌리가 너무나 깊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었다.

이러한 현재 한국 사회 상황에 위의 제퍼슨의 경구를 대입해본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의 나무의 양분이 소진하고 있다고. 5월 광주로부터 시작된 민주주의의 에너지가 고갈되고 있다. 광주 세대는 벽에 부딪혔다. 그들이 어느덧 '386', '정규직' 등등으로 불리게 되면서 이런 장벽은 예고된 것이었을지 모른다.

이 대목에서 다시 제퍼슨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스미스에게 보낸 그의 편지는 위 인용문 바로 앞부분에서 이런 주장도 한다.

"봉기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채 20년 세월이 흐르는 것은 불가능하도록 신이 정해두었습니다. (…) 인민들이 저항 정신으로 무장해 지배자들에게 수시로 경고를 보내지 않고도 자유를 보존할 수 있는 나라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토머스 제퍼슨 : 독립 선언문>, 79쪽)

20년마다 봉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유를 보존할 수 있다. 즉, 민주주의가 생명을 지속한다. '20년'이 무슨 공식은 아닐 것이다. 대략 한 세대를 말하려던 것 아닐까. 즉, 제퍼슨은 각 세대마다 자신들의 봉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 세대의 봉기가 그 에너지가 소진될 때마다 다음 세대의 봉기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민주주의의 생명 법칙이라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5월은 광주의 5월일뿐만 아니라 촛불의 5월이기도 하다. 5년 전 촛불이 이 계절을 뜨겁게 달궜었다. 이근원의 <아빠의 현대사>는 자신의 딸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형식을 취한다. 그의 딸 이은지는 촛불 세대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것도 촛불 항쟁 당시 딸과 나누던 대화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부제도 "'미래를 향한 회상'―광주 세대가 촛불 세대에게"다.

나는 무엇보다도 이 점이 마음에 든다. <아빠의 현대사>가 전하는 광주 세대의 찬란했던 순간들도 좋지만, 그보다도 이 책이 취하는 포즈가 더 끌린다. 이 책은 그 포즈를 통해 지금 한국 사회에서 거대한 벽에 가로막혔다고 느끼는 모든 이들이 착수해야 할 일의 핵심을 드러낸다. 그것은 미래의 궐기를 예비하고 그것을 앞당기는 일이다. 아직 분명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 주역들에게 말을 걸고 이들과 함께 모의하는 것이다.

촛불이 그런 궐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예행연습이었던 것은 아닐까. 광주의 5월이자 촛불의 5월에 우리의 또 다른 봄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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