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을 선언한 지 1주일이 지났습니다. 2000명 가까운 분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해 주셨고, 응원과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한국일보>의 이희정 선임기자는 칼럼을 통해 '협동조합 전환 결의문'에 나타난 우리 언론의 남루한 현실에 공감을 표하면서 "누구도 가지 않은 길로 어렵게 첫 발을 뗀 프레시안의 용기를 지지하고 응원한다"고 밝히셨습니다. (☞관련 기사 : 프레시안의 새 실험)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은 <경향신문> 칼럼에서 협동조합 실험이 "단순히 돈을 더 내줄 후원 회원을 찾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프레시안의 변신이 의미를 가지려면 "자신이 알고 싶은 정보와 자신이 깨우치고 싶은 지식의 방향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능동적인 독자, 편집진과 기자들의 역량과 양심에 신뢰를 가지고 그들의 성과를 냉철히 평가하면서 또 어려움을 함께 짊어질 책임 있는 공동체 성원을 찾아 일으켜 세우는 과정이 돼야 한다"고 충고해 주셨습니다. (☞관련 기사 : 언론 매체의 협동조합 실험)
조합원으로 가입한 한 독자께서는 협동조합 전환이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고 또한 불확실한 결정"이라면서도 "의미 있는 시도"이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시도"라고 평가해 주셨습니다. 특히 이 독자께서 지적한 우리 사회의 언론 현실은 당초 <프레시안>이 출범할 때와 문제의식과 너무나도 똑같아 그저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바로 보기 : 협동조합 프레시안을 바라보며)
이 독자께서는 "무엇보다 '기사'를 읽어도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을 때가 태반"이라면서 "보수냐 진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사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말을 말하느냐는 것이다. 누구의 이야기가 더 들을 만하고 더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느냐는 것이다. 좋은 언론이란 사람들이 이러한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기사를 쓰는 언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프레시안>을 시작했을 때의 문제의식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진보/보수의 편 가름보다 깊이 있는 보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보다 깊이 있게, 보다 넓은 맥락에서 독자들에게 제대로 보여주는 것, 이것이 언론 본연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판단은 독자들의 몫입니다. 저희가 전문가들의 역할을 강조했던 이유는 '공공의 가치에 충성하는 전문가'들이야말로 바로 이러한 임무에 적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2년이 지난 지금, 이러한 문제의식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되돌아봅니다. 분명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원인은 복합적입니다. 생존에 급급해야 하는 우리 언론 현실의 구조적 문제점 외에도 내부 구성원의 변화, 개인적 나태함 등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도처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대결 상황에서 일단 약자를 대변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이 사회적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방해한 측면도 있을 것이고, 역량 자체의 부족도 있을 것입니다.
출범 초기에 비해 읽을 만한 기사가 적어졌다거나 뻔한 주장들이 많아졌다는 지적,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사회적 진실을 전하겠다는 <프레시안> 구성원들의 충정만큼은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프레시안(손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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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부터 고민했습니다.
시작은 경영난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먹고사는 문제가 우선이더군요. 그러다가 한 기업과의 합작이 유력하게 논의됐습니다. 편집권이 보장되는 가운데 안정적인 경영 환경에서 일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편집권 독립만 100퍼센트 보장된다면 특별히 문제 될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프레시안> 기자들과 필자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독립성과 정체성에 중대한 훼손이 올 것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3개월여 동안 오랜 논의와 진통이 있었습니다. 예상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기업과의 합작을 포기하고 독자 생존 방안을 선택하게 된 데는 지난해 말 발효된 협동조합기본법이 한몫을 했습니다. 협동조합이라는 새로운 틀을 통해 언론의 '품위 있는 생존'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프레시안>이 출범할 때에도 주식회사보다는 비영리 시민 단체 형태로, 광고보다는 콘텐츠 유료화에 의한 운영을 원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우리 언론 생태계에서 '뉴스 콘텐츠는 공짜'가 상식이었기 때문입니다. 뉴스 콘텐츠의 생산에 돈을 대는 것은 주로 대기업과 정부 등 사회적 강자들입니다. 독자 등 수용자들의 경제적 기여는 극히 미미합니다. 결국 우리 언론 생태계에서 일반 서민 대중을 위한 언론은 생존하기가 극히 힘든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도 이런 언론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기사의 클릭 수를 늘리고자 제목 장사를 해야 했고, 그 결과 일정 부분 초심을 잃은 것도 사실입니다.
협동조합이라면, <프레시안>의 뜻과 지향에 동의하는 시민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해 도와주신다면 안정적 경영과 가치 있는 콘텐츠 생산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독자 조합원과 기자 조합원이 힘을 합쳐 강자의 이익에 봉사하는 뉴스가 아닌, 공동체의 앞날을 위한 뉴스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지난 12년간 <프레시안>이 해온 일에 부족함은 있을지라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하신다면 도와주실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한 달쯤 전, 유기 농업으로 유명한 홍성군 홍동면에 다녀왔습니다.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세상이 물신주의로 미쳐 돌아가는 와중에도 이 마을은 생명을 존중하며 높은 문화적 수준의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농촌이 인구가 감소하는 것과는 달리, 이 마을의 인간다운 삶에 이끌린 타지 사람들이 몰려와 매년 40퍼센트씩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양극화와 탐욕이 판치는 세상 속에서 '품위 있는 삶'을 지키는 소중한 근거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이런 근거지가 쉽사리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찬갑, 주옥로 선생님 같은 선각자들이 풀무학교를 세운 게 1958년이라고 하니 50년 이상의 노력이 있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협동조합을 통한 '프레시안 뉴스 공동체'라는 실험은 이제 시작입니다. 준비도 많이 부족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례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목표는 분명합니다.
권력과 금력에 휘둘리지 않는 소신 있는 언론을 만들고자 합니다. '더 들을 만하고 더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뉴스를 만들려 합니다. 공동체를 위한 '좋은 언론'의 근거지가 되려 합니다. 나아가 구성원들끼리 '지속 가능한 좋은 삶'을 위한 지혜를 모으는 자리가 되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이 힘을 모아주신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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