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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사태, 영국에서 일어났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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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정원 사태, 영국에서 일어났다면?

[정치경영연구소 유럽르포]<11>좋은 정치를 만드는 힘은…

'정치경영연구소의 유럽르포'는 우리 시민들로 하여금 유럽의 정치사회와 경제사회에 친밀감을 갖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연재물입니다.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해방 후 지금까지 지나칠 정도로 미국 편향적인 모델을 지향해왔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는 시점에 즈음하여 우리 시민들도 이제 새로운 모델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이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것이 그 증거입니다.

경쟁과 성장 그리고 효율성의 가치만을 강요해온 과거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연대와 분배 그리고 형평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들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치경영연구소는 우리 시민들이 이제 미국이 아닌 유럽사회를 유심히 관찰해보길 원합니다. 특히 유럽의 합의제 민주주의와 조정시장경제가 어떻게 그곳 시민들의 삶을 그토록 느긋하고 여유롭게 만들어주었는지 자세히 살펴보길 바랍니다.

'유럽르포'의 작성자들은 현재 유럽의 여러 대학원에 유학 중인 정치경영연구소의 객원 연구원들입니다. 투철한 문제의식으로 유럽을 배우러 간 한국의 젊은이들이 보고하는 생생한 현지의 일상 생활을 <프레시안>의 글을 통해 경험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유러피언 드림'을 같이 꾸길 염원합니다. 필자 주

국가정보원 사태

외국에 나와 있으니, 오히려 한국 정치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지는 듯하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실시간으로 뉴스를 접할 수 있다는 편리함도 한 이유지만, 다른 나라의 정치 현실을 매일 접하고 있노라면 부지불식간에 '한국에서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비교해 보는 습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서 가장 큰 정치 이슈는 단연 국정원이다. 대북 심리전을 빙자해 불법적으로 국내 정치에 개입한 것이 지난 정권의 일이라면, 원장이 국정원의 이익을 빙자해 국익을 저버리고 남북정상회담 문건을 자의적으로 공개한 것은 현 정권의 일이다.

이 사건들은 민주주의가 취약해질 때 정보기관이 얼마나 쉽게 권력의 시녀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만들어 놓은 민주적 제도라는 것들이 누가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허술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아마 과거 한국 정치에서는 늘 해오던 것처럼, 이번에도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가장 합리적인 대안으로 등장할 것이다. 그런데 정치적 주체가 그런 제도를 지켜야 한다는 자각이 없고, 그 제도를 지키지 않아도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런가?' 하는 정도라면,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지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까?

2010년 영국 총선

그런 점에서 지난 2010년 영국 총선 직후 벌어진 사건은, 한국 정치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데 유용한 하나의 사례가 될 법하다.

지난 총선 결과, 영국에서는 어느 정당도 과반을 얻는데 실패하였다. 1980년 이후, 17년간의 보수당 정부와 13년간의 노동당 정부가 번갈아 지속된 후 처음 맞는, 일종의 권력 공백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각 정당이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제도는 거의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각 정당은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민주적 절차를 통해 협상을 해 나갔다. 그리고 선거 5일 후 영국에는 보수당-자유민주당의 연립정부가 수립되었다.

당시에 보기에는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였던 일이, 지금 국정원 사태를 접하면서 되새겨 보면 결코 그렇게 당연한 일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영국 총선을 되돌아보며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민주적인 제도가 명백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지키려는 의도가 거의 없는 경우에 발생하는 일들과, 별다른 제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적인 상식에 의해 정치가 운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에 발생하는 일들의 차이다.

지극히 예외적인 영국의 연립정부

의회제를 채택하고 있는 많은 유럽 나라에서는 헌법이 연립정부에 의한 통치를 바람직한 것으로 상정하고 있고, 실질적으로도 선거가 끝나면 곧바로 연립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협상이 그다음의 정치과정으로 관례화 되어 있다.

그러나 영국은 의회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연립정부를 이상적인 통치 체제로 보지 않는다. 실제로 영국에서 연립정부가 수립된 경우는 지극히 예외적이다. 이전까지 세 번의 연립정부는 모두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인한 일종의 거국내각이었다.

그 원인은 무엇보다 다른 대부분 유럽국가와 달리 소선거구제를 기반으로 한 단순다수대표제를 선거제도로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대통령과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와 마찬가지로 승자독식주의다. 바로 이 선거제도 때문에, 영국은 의회제 국가이면서도 다당제 혹은 연립정부와 친화성을 갖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오랜 양당제 전통으로 인해 합의제적 요소가 거의 없다. 여당은 정부와 의회를 모두 책임지고 운영하고, 집권 기간 동안 여론에는 다소 민감할지 몰라도 야당의 반대에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상대를 존중하기는 하되, 그들과 협상하거나 타협할 필요는 없다.

다시 말해, 영국 의회제는 승자가 책임을 지고 통치하는 체제이지, 패자와 연합하거나 상대와 타협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운영되어 왔다.

그런 점에서 연립정부 수립이 필수적이었던 2010년은 대단히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즉, 헌법과 선거제도, 무엇보다 정치적 전통이 연립정부와 우호적이지 않은 가운데 그것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순간이었다.

▲ <5월의 5일>(<5 Days in May> 앤드루 아도니스 지음, Biteback Publishing 펴냄) ⓒ이관후
대립과 경쟁이 정치적 전통인 곳에서 대화와 타협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상황, 그러나 그것을 규정하는 법이나 제도도 부재하고, 심지어 그런 타협을 이루어 본 역사가 거의 없는 상황. 이것이 바로바로 2010년 총선 직후의 영국이었다.

한 달 전인 지난 5월 8일, 이 연립정부의 탄생 비화를 공개한 한 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5월의 5일>(<5 Days in May> Biteback Publishing 펴냄)은 2010년 5월 6일 영국 총선 이후, 11일 보수-자민당 연립정부가 수립되기까지 5일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당시 노동당 정부의 핵심 인사였던 앤드루 아도니스가 썼다. 더 타임즈가 출간 하루 전 두 면에 걸쳐 핵심적인 부분들을 발췌 수록할 정도로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이하의 내용은 이 책에서 밝혀진 몇 가지 일들이다.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권력 : 헝 의회 (Hung Parliament)

대부분의 유럽과 달리 소선거구제와 단순다수대표제를 기본으로 하고 양당제 전통이 강한 영국에서는 1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노동당이 주요 정당으로 등장한 이후에는 1929년과 1974년 두 번 있었을 뿐이다. 1929년 총선 결과는 287-260-59 (노동-보수-자유)였다. 이때는 노동당의 '소수당 정부(minority government)'가 출범했다.

하지만 소수당 정부가 출범하게 되면, 정부정책을 뒷받침할 법안의 통과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의회제의 목적이 상실된다. 의회제는 원내 다수파가 내각을 안정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정부와 여당이 책임정치를 운영하는데 그 취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수당 정부가 출범하는 경우 빠른 시일 내에 재선거를 실시할 것이 요구된다. 1929년 내각은 재선거가 있기도 전에 대공황으로 인해 붕괴되었다.

1974년에는 297-301-14 (보수-노동-자유)였는데, 보수당 수상이 바로 사임하지 않고 자유당과 연립정부 수립을 위한 협상을 벌였다. 이것이 선거에서 패배한 수상이 바로 사임하지 않은 유일한 사례였는데, 수상에게는 그럴 권한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전임수상이 스스로 사임하지 않는 한, 왕이 그 수상을 해임하거나 새로운 수상을 임명할 권한이 있다고 볼 수 없다. 물론 과반 정당이 있는데도 소수당 수상이 물러나지 않으면 위헌이 되겠지만, 과반 정당이 없는 경우라면 그 자체로 문제 될 것은 없다.

2010년의 상황은 어느 때보다 복잡했다. 주요정당의 의석수는 보수 307, 노동 258, 자유민주 57이었다. 보수당은 선거의 승리를 의미하는 과반정당(majority party)이 되는데 실패했다. 전체 의석수가 650석이기 때문에 일반의 통념상 정부수립에 필요한 과반의석수는 326석이었고, 보수당은 여기에 19석이나 부족했다. 그들은 1위 정당(largest party)에 만족해야 했다.

그렇다고 노동당과 자유민주당의 연립정부가 곧바로 수립되기도 어려웠다. 이 둘을 합쳐봐야 315석이니 과반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무소속이나 군소정당을 더 끌어들여야 했다. 두 정당이 소수당 정부를 수립하겠다고 한다면, 보수당에게도 기회가 없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 복잡한 상황들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었다. 무엇은 되고 무엇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규정한 성문헌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5월의 5일>에 나오는 표현대로, '모든 것이 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 2010년 4월 29일 자 <가디언> "What would a hung parliament mean for Cardiff?"라는 제목으로 "중단된 의회"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영국 의회가 교수대에 매달려 있다. ⓒ가디언

각 당의 상황

사실, 연초만 해도 보수당은 넉넉히 과반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었고, 선거전이 본격화되기 직전인 3월 말에만 해도 이 예측에는 큰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선거전에서 보수당은 부자 몸조심 하듯 수세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결과는 과반 실패였다.

노동당은 물론 패배했다. 보수당이 이긴 건 아니지만 노동당이 패배한 것만은 분명했다. 집권당이 정부를 유지하기 위한 조건, 즉 과반을 얻는데 완전히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주 참패는 아니다. 노동당 입장에서 보면 '잘 지기'에 성공한 선거전이었다.

우선 선거전부터 패배 자체는 예상되었던 바라, 노동당에 대한 관심은 '얼마나 지느냐'에 오히려 맞추어져 있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예상 의석수에서도 당초에 220, 심할 때는 218까지 밀렸는데 255 정도로 마감된 것만으로도 한숨을 돌릴 만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패배하기는 했지만, 보수당의 승리를 막아냈다는 사실에 있었다.

선거에서 자유민주당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이번 선거전 내내 최고의 관심을 끌었던 당수 닉 클렉은 선거 다음 날, '몹시 안타깝고 실망스러웠던 밤'이라고 토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의석수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두 번째로 투표일 직전까지도 27~8%에 달했던 지지율이 막상 투표함을 열어보니 23% 정도에 불과했다. 지난 선거에 비해 지지율은 겨우 1% 늘었고, 의석수는 오히려 1석 줄게 생겼다. 선거기간 한때 정당지지율에서 1위를 위협했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100석을 바라보던 의석수도 제자리걸음을 했다. 쓰디쓴 결과다. 그러면 얻은 게 없을까? 전혀 그렇지는 않았다.

우선 모든 언론이 닉을 킹메이커로 인정했다. 둘째로, 자유민주당의 공약이었던 선호투표제로의 선거법 개정 문제가 영국 정치의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닉은 무엇보다 '자유민주당이 23% 득표에 단지 9.5%의 의석밖에 가져가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정치부패의 원인'이라고 선언했다. 선호투표제는 자유민주당이 항구적으로 득표수에 근접한 의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었고, 실행되기만 한다면 영국 정치에 중대한 전환점이 될 만한 일이었다.

노동당 수상 고든 브라운, 사퇴를 거부하다

그래서 진짜 승부는 선거가 종료된 시점에서 개시되었다. 우선 첫 번째 선택권은 수상에게 있었다. 수상 고든 브라운은 사퇴할 수도 있었고 아닐 수도 있었다. 고든 브라운이 곧바로 사퇴한다면 노동당은 집권 의지가 없는 것으로 해석될 것이었다.

<5월의 5일>에 따르면 실제로 당내 주류는 집권 의지가 없었다. 특히 토니 블레어는 당의 중진들에게 '수상이 즉시 사퇴하지 않는다면 노동당의 명예에 먹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종용했다.

그러나 고든 브라운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선거일 다음 날 새벽 3시 26분, BBC의 정치부 수석기자 닉 로빈슨이 고든 브라운의 핵심 참모였던 이 책의 저자 아도니스에게 문자를 보냈다. "협상 가능성이 있는가?" 저자가 답했다.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인다(Everything looks possible)."

고든 브라운 수상은 자유민주당과 연립해서 집권을 연장할 의욕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선거일 다음 날 아침 그는 "나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말하고 다우닝 10번가에서 정상적으로 업무를 개시함으로써 당장 사퇴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보수당은 다소 당황한 듯 보였다. 데이비드 캐머론은 "노동당은 정부를 유지할 국민의 위임을 상실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제 모든 관심이 킹메이커 닉 클렉(현 부수상, 연립 내각에서 중도파 자유민주당을 이끌고 있다)에게 집중되었다.

ⓒ이관후

클렉 독트린

자유민주당 당수 닉 클렉은 '클렉 독트린'이라고 불린 원칙을 제시했다.

"과반정당이 없을 경우, 정부를 구성할 우선권은 1위 정당인 보수당에게 있다. 다만 보수당은 국가 이익(National interest)을 지켜나갈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 발언은 두 가지 뜻을 담고 있었다. 하나는 보수당에게 우선권이 있다고 밝힌 것이다. 향후 자유민주당의 연립정부 구성을 위한 협상력, 즉 킹 메이커로서의 운신의 폭을 좁힐 수 있는 발언이지만 그는 이 점을 분명하게 해 주었다. 자유민주당과 연립정부 구성 협상을 벌여야 할 노동당 입장에서야 '뭐 그렇게까지…'라고 속 쓰려 할 발언이었지만, 한편으로 보면 용기 있는 발언이었다. (이에 대해 고든 브라운은 닉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한다고 밝혔다. 실은 다른 수도 없었지만….)

두 번째는 보수당에게 우선권이 있을 뿐이지 그들이 그 권한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있다는 것이다. 즉, 보수당과 캐머론이 국민이 인정할만한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에 대해 비난을 아끼지 않았다. 크게 두 가지다. 클렉 독트린에는 어떠한 헌법적 정당성이 없고, 의회제를 채택하고 있는 어떤 다른 유럽국에서도 이런 원칙은 없다는 것이었다. 즉, 내부적으로 보아도 역사적으로 관례가 없고, 그렇다고 외부적으로 보아도 그런 사례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물론 노동당의 입장이다. 이 클렉 독트린은 협상 과정에서 철저하게 준수되었고 공식적으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자유민주당의 협상은 우선 보수당과 시작되었고, 노동당은 같은 수위의 협상에서 항상 뒷순위였다. 가령 닉 클렉이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론을 먼저 만나고 그다음 노동당의 고든 브라운을 만나는 식이다.

클렉 독트린이 보기엔 신사적인 것 같지만, 실질적인 이유도 있었다. 수상 고든 브라운의 대중적 인기는 처참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노동-자유민주 연립정부가 수립될 경우, 고든 브라운은 당분간 수상직에 있기를 원했다. 1~2년 정도 안에 경제 위기를 스스로 타개한 후 명예롭게 물러나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클렉 독트린은 공식적으로 노동당을 협상에서 뒷순위로 밀어냄으로써, 설사 노동-자유민주 연립이 성사되더라도 고든 브라운을 수상직에서 끌어내리는데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클렉 독트린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그 원칙이 사람들이 보기에 합당하고 신사적인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보수당이 이기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노동당이 진 것은 분명했다.

단지 고든 브라운이 인기가 없어서 자유민주당이 노동당과 연립정부를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언론은 물론이고 고든 브라운을 싫어하는 국민들마저도 그 이유에 동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과반정당이 되지 못한 보수당, 냉정하게 현실을 인정하다

자유민주당이 클렉 독트린을 천명하고, 노동당의 고든 브라운이 수상직을 사퇴하지 않자 이제 공은 보수당에게 돌아갔다. 보수당은 착잡했다. 당수 캐머론은 '집권 노동당이 선거에서 졌다', '확실한 것은 노동당 정부를 국민이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었다. 요컨대, '승리'를 주장하지 못했고, 그럴 권리가 아직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보수당의 정부구성권은 이제 말 그대로 공중에 붕 떠서 대롱대롱 매달린 상태(Hung)가 되어버렸다.

노동당을 맹비난하면서 자유민주당을 협박할 여지가 없지 않았다. 국민 여론을 동요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판단이 흐려질 가능성도 있었고, 그럴 유혹이 없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보수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보수당 당수 데이비드 캐머론은 우선, 자신들에게 우선권이 있다는 점을 확인해 준 닉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소수당 정부보다는 당연히 다수당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옳으며, 대화를 시작할 것을 자유민주당에 제안했다. 물론 자유민주당의 제안인 선거법 개정의 필요성에 동의한다고 밝히고, 빠른 시간 내에 합의점을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물론 여기에도 실질적인 이유가 있었다. 개표 다음날 발표된 BBC의 여론조사에서 캐머론이 수상이 되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과반이 못 되는 48%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총선 투표 결과와 상통하는 맥락이다. 물론 고든 브라운을 수상으로 계속 인정하겠는가에 대해서는 66%가 반대를 표명했지만, 캐머론이 자신에 대한 지지를 확실히 끌어 올리지 못하는 한 원하는 수상 자리를 쉽게 차지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개표 이틀째 날부터 협상이 시작되어 보수-자유민주당 연립정부가 수립되는 데 걸린 시간은 5일이었다. 자유민주당은 보수당과의 협상에서 의료복지(NHS), 교육 (대학등록금) 등 핵심 공약에서 난항을 거듭했다. 반면 노동당과의 협상에서는 고든 브라운의 수상직 고수가 문제였다. 그는 4일째가 되어서야 수상직을 포기하겠다고 제안했다.

한편으로 보면, 고든 브라운 때문에 노동-자유민주 연립정부가 수립되지 않은 것 같지만(대체로 지금까지 그렇게 알려져 왔다), 그러나 고든 브라운만이 노동당이 주도하는 연립정부에 의욕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수상직 포기 선언이야말로 협상의 종료나 다름없었다.

노동당, 마지막 순간까지 주도권을 놓치지 않다

보수-자유민주 연립정부를 수립시킨 것은 고든 브라운이었다. 그가 결정지었다. 수상직 포기를 제안한 후에도 노동-자유민주 협상은 크게 진전되지 않았다. 사실 보수당에 비하면 거의 쟁점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도 지지부진이었다. 그리고 5일째 되던 다음 날, 고든 브라운이 닉 클렉에게 최후통첩을 했다. '우리와의 협상에 진정성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사임하겠다.' 이렇게 되자 오히려 궁지에 몰린 것은 자유민주당이었다.

<5월의 5일>이 기록한 노동당 정부 마지막 순간은 이렇다. 고든 브라운이 데이비드 캐머론과 협상 중인 닉 클렉에게 전화를 걸었다. "닉, 나는 즉시 사임하겠소. 더 이상 이 불안정한 권력 상태(this hanging on to power)를 그냥 둘 수 없어요." "아닙니다. 고든, 우리는 이제 겨우 대화를 시작했을 뿐이에요." "닉, 나는 우리 여왕과 국가에게 올바른 일을 해야겠어요." "왜요?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겁니다." "닉, 당신은 좋은 사람이오. 하지만 나는 우리 국민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닉은 애원했다. "제발 사임하지 마세요. 나를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이럴 필요가 없어요. 겨우 5일이 지났단 말입니다." 고든 브라운이 확실하게 매듭을 지었다. "아니오, 닉. 나는 당장 궁으로 가겠소.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소. 당신이 잘 되기를 바라겠소."

통화를 마친 고든 브라운은 저녁 7시 19분, 버킹엄 궁을 향해 떠났고, 약 한 시간 여 뒤인 8시 45분에 데이비드 캐머론이 다우닝 10번가에 도착해서 자유민주당과의 연립정부를 수립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닉 클렉이 보수당과의 연립정부 수립에 대해 당내 표결에서 찬성이 나왔다고 선언한 시간은 자정이 넘어서였다.

마지막 순간, 영국적 원칙을 스스로 놓친 자유민주당

협상 과정 내내 수세에 몰렸지만 노동당은 그렇게 호락호락 나라를 넘겨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순전히 자유민주당과 보수당을 곤경에 빠뜨리려는 심산 때문은 아니었다. 닉은 '다른 유럽 국가들은 한 달에서 길게는 두 달까지도 연립정부 수립 협상을 한다'고 항변했지만, 고든의 판단대로, 영국 국민은 그렇게 긴 권력 공백에 익숙하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그것은 영국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 부분에 있어서만은, 닉은 클렉 독트린이라는 창의적인 룰과는 반대로 다른 나라의 예를 생각하면서 느긋해하고 있었다. 물론 그 결과는 참담했다. 퇴로가 없어진 자유민주당은 핵심 공약에서 보수당에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무상의료와 대학등록금을 지키겠다던 자유민주당의 공약은 연립정부에서 사라졌다. 문을 닫는 병원이 속출했고, 그해 겨울은 등록금 인상을 반대하는 학생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학생들은 보수당이 아니라 자유민주당에게 책임을 묻고 있었다.

두 핵심 공약을 넘겨주고 대가로 받은 선거법 개정 시도의 결과는 더 참혹했다. 1년 뒤 벌어진 선호투표제로의 국민투표에서, 국민들은 보수당의 일방적인 감세 정책에 아무런 제동도 걸지 못하는 자유민주당을 냉혹하게 심판했다.

총선 직후 여론조사에서 50%를 상회하던 선거법 개정 여론은 1년 뒤 국민투표에서 찬성 32%, 반대 68%로 바뀌어 있었다. 총선에서 23%의 지지를 받았던 자유민주당의 2013년 6월 16일 기준 지지율은 10%다 (더 타임즈). 같은 조사에서 극우파 정당인 영국 독립당(UKIP)은 14%를 얻었다.


제도가 아니라 선례(善禮)가 좋은 정치를 만든다

<5월의 5일> 동안 영국 정당의 리더들은 대체로 그들의 헌법과 정치제도를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것을 실천했다. 이들은 좋은 사례를 만들어 나감으로써 정치가 정당성을 얻어나갈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또한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은 국면에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비합리적인 권력욕의 유혹을 잘 견뎌냈다.

선거 다음 날인 5월 7일 밤, BBC에 출연한 한 정치 평론가는 '세 명의 정당 대표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들은 이 선거가 의미한 것, 그리고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고,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고 평했다.

그 순간 내가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우리는 언제쯤 저런 얘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었다. 단순히 우리를 비하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를 냉정하게 바라 볼 필요가 있었다.

이기지 못하고도 이겼다고 주장할 것이고, 졌으면서도 안 졌다고 할 것이고, 3등이면서도 협상을 통해 어떻게 자기 정당의 이익이나 좀 챙겨볼까 하는 속셈이 판을 치지는 않았을까. 오히려 영국처럼 제도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제도를 하나도 따르지 않고 서로를 비난하지 않았을까. '정치란 원래 냉정한 것'이라면서 몽니를 부리는 상황이 연출되지는 않았을까.

이런 염려 때문에 제도적 대안 마련을 주창하는 목소리는 항상 있어왔다. 그러나 제도는 스스로 작동하지 않는다. 쿠데타 방지법이 쿠데타를 막아줄 리가 없다. 그런데 이것은 잘 알고 있으면서, 국회 폭력 방지법이 결코 작동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잘 생각하지 못한다. 사람이 제도도 만들고, 그것을 해석하고, 그것을 따를지도 결정하고, 또 그러면서 정치를 만들어 간다.

우리는 이번에 새롭게, 국가정보원법이라든지, 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 같은 것들이, 지키지 않으려고 마음먹은 사람들과 그것을 분간 못하고 용인하는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한지 잘 보고 있다. 아마 이번에도, 저 두 법을 개정하는 선에서 문제가 봉합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이 문제의 본질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결국 좋은 정치를 만들어가는 것은 선례(善禮)와 그에 대한 지지가 아닐까. 불문법 전통의 의회제 국가에서나 정치적 관례와 전통이 중요하고, 성문헌법을 기초로 삼권분립제도를 확립한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법과 제도만 잘 지키면 된다는 식으로 우리가 정치를 이해해 오지는 않았는가, 오히려 그것이 우리 정치의 발목은 잡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영국정치를 보면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에필로그,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를 다시 생각한다

<5월의 5일>은 총선 이후 정확하게 3년이 지나 출간되었다. 보수-자유민주 연립정부가 집권 중반을 넘긴 후다. 누가 봐도 원고 정리에 시간이 걸린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원고는 연립정부 수립 직후에 쓰여졌음이 분명하다. 책을 파는 것이 목적이라면, 연립정부 수립 후 3개월 뒤쯤 발간하는 것이 순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나오는 데는 3년이 걸렸다. 왜일까? 협상의 이면을 들추어냄으로써 가뜩이나 불안정해 보이는 연립정부의 출범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밖에는 할 수 없다.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정상회담 회의록을 마구잡이로 공개하는 한국 정치에서 본다면 비상식적이다. 그렇다고 이것을 '역시 영국 정치는 신사적이군'이라고만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이런 종류의 일은 대체로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야 일어난다.

저자와 노동당이 염두에 두었음에 분명한 것은 대중의 판단이다. 이제 막 출범한 연립정부의 비화를 공개하는 것이, 오히려 대중들에게 '비열하다'는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그리고 노동당을 더욱 불명예스럽게 만들고, 그 결과 지지율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즉, 신사적이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당의 이익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신사적인 정치다. 이런 종류의 '신사성'이야말로, 실은 어떤 제도적 측면보다 훨씬 발본적인 차원에서 상생의 정치, 원칙과 정도를 지키는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일 것이다.

사적 이익이 공적 이익과 합치되도록 하는 것, 어떤 경우에도 신사적인 외형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정당성을 얻는 것, 로마 공화정의 위대함이라고 키케로가 역설했던 덕목이 이런 사소한 정치 행위들에 깃들어 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물론 여기에는 신사적이지 않으면 안 되도록 강제하는 국민의 매서운 눈초리가 가장 바탕에 자리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특정한 제도를 떠나 정치가 신사적이지 않으면 안 되도록 하는 것은 역시 정치인들 스스로의 역량뿐만 아니라 그 국민들이 얼마나 깨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 민주주의는 단순히 그 안에 존재하는 제도를 넘어서기 때문에 힘을 발휘한다. 정당의 이해관계와 사적 권력욕을 억제시킨다. 명예와 상호존중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에서 어긋나는 정치를 경계한다. 그런 점에서 힘 있는 민주주의다. 이 민주주의는 살아 있다.

반면 제도 탓을 하고 제도로만 보완하려는 정치에서는 실은 어떤 제도도 허깨비에 불과하다. 이 정치는 어떤 제도도 어길 준비가 되어 있으며, 불명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적 욕망을 위해 어떠한 국가 이익도 저버릴 태세를 갖추고 있다. 그리하여 정치는 국민의 힘, 즉 민주주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2013년, 대한민국의 정치는 어디쯤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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