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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오죽했으면 망치 들고 남양유업 본사 찾아갔겠나"

[인터뷰] 남양유업 피해자대리점협의회 이창섭 회장과 유경현 대의원

남양유업의 '밀어내기', 대리점으로부터 '부당한 돈 갈취' 등 불공정 거래 횡포가 세상에 알려진 지 두 달이 지났다. 하지만 변한 건 없다. 피해 대리점주들과 남양유업 본사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생기고 갈등이 첨예화되었을 뿐이다. 남양유업 피해자대리점협의회 이창섭 회장이 노상 단식을 결행한 지 5일로 17일째다. 서울 중구 남양유업 본사 앞 단식 농성장에서 남양유업 피해자대리점협의회 이창섭 회장과 유경현 대의원을 지난달 28일 만났다. <기고자>

최창우 : 단식이라는 쉽지 않은 길을 선택했습니다. 지난달 19일 남양유업 본사를 상대로 한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나서부터인데요. 왜 결렬됐습니까.

이창섭 : 회사 측의 교섭 의지, 태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밀어내기'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게 교섭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데, 남양유업은 미리 정해 놓은 자기 목적에 따라 모든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시간 끌기였습니다. 특히 어용 단체(현직 점주들로 구성된 대리점 협의회. 피해 대리점주들은 이 협의회를 남양유업이 조직한 '어용' 단체로 보고 있다. <편집자>)를 방패막이 삼아 끊임없는 논란을 일으키고 시간을 끌었습니다.

최창우 : 언론 플레이를 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창섭 :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어용 단체와 협상을 타결한 걸 내세워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포장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비공개를 약속한 협상 내용을 입맛대로 해석해 보도자료로 만들어 언론에 배포한 것입니다. 세 번째는 논의된 사실도 아닌데 가짜로 사실을 지어내서 우리를 상식이 통하지 않고 돈에 혈안이 된 세력으로 매도하는 것입니다. (남양유업은 피해 대리점주가 7000억 원에 가까운 손해배상금을 요구했다고 주장하며, 이를 교섭이 결렬된 주요한 배경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피해 대리점주 등은 7000억 원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맞서고 있다. <편집자>) 이와 같은 언론 플레이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우리 피해자대리점협의회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서 밀어내기를 포함한 각종 불공정 거래 구조를 숨기고 국면을 바꾸려는 시도입니다. 남양유업은 언론도 속이고 국민도 속였습니다.

최창우 : 그간 총 8차례의 교섭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교섭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이창섭 : 회사 측이 진지하게 교섭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구걸'을 강요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협상을 오로지 국면 전환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것 같아 허탈감을 느꼈습니다. 교섭이 거듭되면서 점점 '나가서 싸워야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섭으로 문제 해결이 가능했다면 우리도 노상에서 이렇게 삭발하고 단식 투쟁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삭발 투쟁, 단식, 1인 시위. 모든 것이 난생처음이라 어색하기만 합니다.

▲ 지난달 19일 남양유업 피해자대리점협의회 이창섭 회장(오른쪽)과 유경현 대의원은 남양유업에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삭발을 했다. 이창섭 회장은 이날 단식을 시작해 5일로 단식 17일째를 맞았다. ⓒ최창우

최창우 : 남양유업 대리점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이창섭 : 2010년 2월 1일에 대리점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땐 부푼 꿈을 안고 시작했어요. 물량 할당 및 밀어내기와 같은 부당한 일이 생길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사실 영업을 하면서도 처음엔 잘 몰랐어요. 대리점들은 결산을 잘 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다 3개월쯤 지나서야 내가 주문한 물량보다 많은 양이 대리점에 들어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최창우 : 밀어내기를 인지하신 거네요. 그래서 어떻게 대응했나요.
이창섭 : 담당 영업 직원에게 우선 항의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관례'라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개선하겠다'는 형식적인 말도 덧붙였습니다. 2년 정도 대리점을 운영하며 총 6명의 영업 직원을 경험했는데 모두 한결같았습니다.

유경현 : 저도 영업 직원에게 하소연을 많이 했습니다. 한 번은 '죽어가고 있다. 지금 너무 힘들다'라고 호소했더니 영업 직원은 '망해 버리세요', '죽어 버리세요'라고 말하더라고요. '자신 있으면 지점에 와서 한판 뜨자!' 이런 말도 들은 일이 있습니다. 가슴이 터집니다.

이창섭 : 주문한 것보다 물량이 더 많이 온 것이 실수가 아니고 '강제로 밀어내기'를 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좌시하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이 안 되잖습니까. 그래서 불공정 행위를 입증할 근거 자료를 꼼꼼히 모아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대리점주들을 만나봤는데, 다들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일부 지역만의 문제도 아니었고요.

유경현 : 제가 오죽했으면 지난해 말 망치까지 꺼내 들고 남양유업 본사를 찾아갔겠습니까. 본사 사무실이 있는 건물 10층에 올라가 망치로 유리창을 깨고 떨어져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날 이 농성장 자리를 한참 서성였습니다. 자살을 행동으로 옮기기로 하고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는데, 갑자기 가족이 생각났습니다. 전화를 꺼내 들었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요. 그런데 가족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 하나 죽어 봤자 한강 물에서 물 한 바가지 퍼내는 정도의 일에 불과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집으로 돌아갔지요.

그래서 저는 이 농성장에 오는 일이 힘듭니다. 그날 저 건물 10층에서 떨어졌으면 바로 이 농성장쯤이 제 무덤 자리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까요.

남양유업은 집에 빗대어 말하면 '주춧돌'이 썩은 집입니다. 까도 까도 악취가 나는 썩은 양파처럼 말이죠. 회사 측은 법 관념도 없습니다. 남양유업 홍원식 회장은 그간 수도 없이 '대한민국에서 법 지키면서 어떻게 사업하느냐'는 말을 했습니다. 올해 신년사를 했을 때도 같은 말을 반복했고요.

이창섭 : 지난해 초부터 남양의 밀어내기 횡포는 특히 극심해졌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정위 신고 절차도 알아보고 필요한 자료도 확보하고 사람들도 모았습니다. 1월 들어서는 1인 시위와 집회도 연달아 열었습니다. 1월 25일에는 공정거래위원회에 남양유업을 신고했고, 1월 27일에는 저희가 아는 언론사라는 언론사에는 모두 연락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반응이 미약했습니다. 도와주겠다며 연락이 온 언론이나 시민 단체도 당시에는 없었습니다. 외롭긴 했습니다만 결국 우리가 해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스로 힘을 모아 싸워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더욱 결의를 다졌습니다.

최창우 : 남양유업의 경영 철학이 '인간 존중'이더군요. 피해 대리점주들과 진솔한 대화와 타협을 하지 못하는 남양유업의 현재 모습은 '인간 존중'이란 경영 철학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이창섭 : 네. 그런 걸 느끼게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1월 말 집회 신고를 하기 위해 경찰서를 방문했더니, 회사 측이 이미 방어 집회 신고를 해놓았더라고요. 무사히 신고를 한 구역에는 차를 미리 세워놓고 집회를 차단하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남양유업은 저희 대리점주들을 명예 훼손, 사기, 전기통신법 위반 혐의(녹취록 공개) 등으로 고소했습니다.

회사에서 이렇게 나올수록, 저희는 뜻을 함께할 점주 모집에 더욱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여수, 순천, 제주 안 가 본 데가 없습니다. 피해 사례가 접수되면 즉시 달려갔습니다. 제주에는 2월 말 방문했었습니다. 남양유업 제주지점 앞에서 7시간가량 집회를 열기도 하고, 제주 지역 대형 마트 앞이나 오일장 앞에서도 남양유업의 불공정 거래 행태를 알리는 1인 시위를 벌였습니다.

▲ 남양유업 임직원들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5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양유업 본사 앞에서 남양유업 피해자대리점협의회 회원들이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창우 :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한 뒤에는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이창섭 : 1월 이후 본격적으로 활동을 전개하자 여기저기서 밀어내기와 떡값 증거가 쏟아졌습니다. 4월이 되면서 검찰 고소 준비를 했고요. 4월 23일 홍 회장과 김웅 대표 등 임직원 10명을 공갈 혐의 등으로 고소했습니다. 5월 3일 검찰의 압수수색이 있었고 5월 9일 회사 측의 대국민 사과가 있었습니다. 국민에겐 사과한다면서도 피해 대리점에 대한 사과도 빠지고 불공정 거래를 막을 대책도 없었습니다.

최창우 : 공정한 거래를 내걸고 싸우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낀 적이 있나요.
이창섭 : 우리가 뭉쳐서 밀어내기 등 불공정 거래를 문제 삼은 이후 '갑을 관계'가 사회 문제가 되고, 다른 업종에 있는 분들이 '밀어내기가 상당히 줄었다'면서 고맙다는 전화를 할 때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남양의 불공정 행위 같은 악습이 한국에서 없어지고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리는 나섰고 지금도 그런 목표를 가지고 싸우고 있습니다. 갑의 횡포와 을의 굴종이 아니라 갑과 을이 없는 수평 관계가 확산해야 합니다.

최창우 : '어용' 비판을 받는 다른 대리점 협의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이창섭 : 각자 사정은 있겠지만 밀어내기를 하는 회사를 알게 모르게 감싸고 문제를 바로잡는 일을 막는 행태가 얼마나 많은 가맹점주·대리점주와 그 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건지 헤아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전국에는 70만이나 되는 대리점이 있습니다. (전국에 전 업종에서 약 70만 개의 대리점이 영업 중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중 남양유업 대리점은 1128개다. <편집자>) 그 가족까지 생각하면 수백만 명의 삶이 달린 문제입니다. 나 하나 살자고 다른 수많은 대리점에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 유통 재벌과 대기업은 문제가 생기면 '어용 단체'를 만드는 수법을 남양에서 배워 써먹을 것입니다.

최창우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이창섭 : 남양유업 사태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기업은 다수의 사람에게 크나큰 영향을 끼칩니다. 남의 일이라 생각하거나 관심을 안 가지면 결국 피해는 자신이 보게 됩니다. 지금까지 많은 힘을 주셨듯, 앞으로도 큰 힘과 관심을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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