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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바로 이것 때문에 역사가 재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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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명박, 바로 이것 때문에 역사가 재평가한다!"

[인터뷰] 김성오 한국 협동조합 창업경영지원센터 이사장

"협동조합은 공동으로 소유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하여 공통의 경제, 사회, 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인 조직이다."

세상의 일은 항상 양면적이다. 밝은 면이 있으면, 분명히 어두운 면이 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과가 있다면 공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자신이야 '한반도 대운하'에서 시작해 '4대강 살리기'로 끝난 4대강을 비롯한 국토 곳곳을 파헤친 토목 공사를 공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평가는 정반대다.

그렇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진짜 공은 무엇일까? 100년이 지난 후 역사학자들이 이명박 정부의 공으로 두고두고 후하게 평가할 가능성이 가장 큰 일은 바로 협동조합기본법의 시행이다. 이명박 정부는 대선을 앞둔 지난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을 발효했다. 이로써 한국에서는 5인 이상이 결의를 하면 누구나 협동조합의 설립이 가능해졌다.

이 협동조합기본법의 효과는 강력했다. 이 법이 시행된 지 100일이 된 지난 10일 기획재정부는 전국에서 신청된 협동조합만 647건이며, 이 중 74퍼센트인 481건이 신고 수리 또는 인가되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발 빠르게 국내 최초로 네 곳의 협동조합 상담 센터를 만들었고, "앞으로 10년 안에 협동조합을 8000개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정말로 대한민국에서 협동조합의 시대가 열릴까? 남보다 먼저 협동조합을 고민했던 소수의 협동조합주의자는 이런 난리법석을 보면서 희망과 불안이 교차한다. '협동조합 대한민국'을 꿈꾸는 기대 한편으로 '혹시 잘못되면…' 하는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때문이다. 1991년부터 협동조합주의자로 살아온 김성오 한국 협동조합 창업경영지원센터 이사장도 그렇다.

김성오 이사장은 20대 후반인 1991년에 협동조합주의자가 되었다. 그 후 1992년 <몬드라곤에서 배우자>(윌리엄 화이트·캐서린 화이트 지음, 김성오 옮김, 역사비평사 펴냄, 2012년)를 출간해, 협동조합 선진국이 포진한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던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을 한국에 처음 소개했다. 그리고 지난 20년간 직접 협동조합을 만들고 또 교육했다.

최근의 협동조합 붐을 바라보면서 김성오 이사장은 "한국에서 협동조합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는 데 자신의 힘을 보태야겠다"고 생각하며 뜻이 맞는 지인과 함께 오는 18일 한국 협동조합 창업경영지원센터를 시작한다. 센터 출범에 맞춰서 다른 협동조합 전문가와 공동으로 <우리, 협동조합 만들자>(겨울나무 펴냄)도 펴냈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프레시안 회의실에서 김성오 이사장을 만나서 협동조합 시대의 문턱에서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는 솔직한 심정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강양구 기자가 진행했고, 정리는 김윤나영 기자가 맡았다. 다음은 한 시간에 걸쳐 진행한 인터뷰 전문이다. <편집자>

▲ 김성오 한국 협동조합 창업경영지원센터 이사장. <몬드라곤의 기적>(역사비평사 펴냄) 저자. ⓒ프레시안(김봉규)

"우리, 협동조합 만들자!"

프레시안 : '한국 협동조합 창업경영지원센터'를 만들고 <우리, 협동조합 만들자>도 펴냈다. (☞바로 가기 : 한국 협동조합 창업경영지원센터)

김성오 : 지난해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고 나서 지금까지 3개월 동안 약 650개의 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올해 말이면 협동조합 수가 2000개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확실히 협동조합 설립 '붐'이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솔직히 말하면, 걱정이 크다.

나는 (이렇게 최근에 신설된 협동조합이) '자동차가 다니는 길거리에 내놓은 아이'같이 느껴진다. 협동조합을 만들기 전에 먼저 협동조합이 무엇이며, 협동조합은 주식회사나 개인 사업과 어떻게 다른지 또 협동조합을 만들 때 유념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지 등을 알아야 한다.

협동조합 선진국에는 전 사회적으로 협동조합 문화가 뿌리를 내렸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역사적 배경 없이 협동조합기본법이 통과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협동조합을 만들고 경영하는 방법을 안내하고자 한국 협동조합 창업경영지원센터를 만들었다. <우리, 협동조합 만들자>라는 책은 그 안내서이고.

프레시안 : 방금 새로 설립된 협동조합을 두고 '차가 다니는 길거리에 내놓은 아이'같다고 표현했는데, 어떤 점이 가장 우려되나?

김성오 : 협동조합은 조직 원리와 의사 결정 방식, 마케팅 포인트, 다른 회사와 관계 맺는 방식이 개인 사업이나 주식회사와는 다르다.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도 다르다. 협동조합은 단순한 돈벌이 외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심지어 협동조합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 도움을 주도록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

나는 <우리, 협동조합 만들자>에서 협동조합을 만들면 세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첫째, 기업으로서 성공해야 한다. 둘째, 조합원을 만족시켜야 한다. 셋째, 지역 사회 전체에 도움이 돼야 한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 중 한 마리 토끼를 잡기도 어렵다. 하지만 협동조합은 적어도 이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걸 지향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협동조합이 이 세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부족하다.

프레시안 :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놓고서 얘기를 해보자. 지난 3개월 동안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라고 독려하거나, 혹은 적극적으로 말린 경우가 있을 텐데, 소개해 줄 수 있나?

김성오 : 얼마 전 서울의 한 구청장이 지역 주민이 협동조합을 통해서 살림에 보탬이 되는 길을 생각해 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지역 구민이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요양 병원 협동조합'을 시작해 보라고 권유했다. 요양 병원을 차로 30분에서 1시간 거리인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 시·군과 연계해 짓되, 조합원은 해당 구민으로 구성하는 거다.

구민이 요양 병원 협동조합을 만들면 개별적으로 어르신을 요양 병원에 모시는 것보다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된다.

첫째, 가격 거품이 빠진다. 둘째, 요양 병원 운영 상황에 대해 자식이 적극 개입할 수 있다. 내 부모가 무엇을 드시고, 어떤 약을 처방받으며, 어떤 운동을 하는지 등 서비스 상황을 상세히 파악할 수 있다. 셋째, 자식으로서 부모를 병원에 모시는 게 심적으로 덜 미안하다. 구민이 주도해서 만든 요양 병원을 '아들딸이 만든 제2의 집'이라고 여길 수 있을 테니까.

구청 입장에서는 40~50대 베이비붐 세대의 지역 구민이 구를 떠나지 않고도 부모를 가까이 모시게 할 수 있다. 한 요양 병원 협동조합에 너무 많은 사람이 참여하면, 소통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5000명 정도의 조합원이 적당하다. 앞에서 언급한 구가 5000명 정도가 참여하는 요양 병원을 5개를 만들면 분명히 협동조합 성공 사례가 될 것이다.

프레시안 : 협동조합을 적극적으로 말린 사례는?

김성오 : 물론이다. 훨씬 많다. (웃음) 외부 초청 강연에 다니다 보면 사회단체 사람들이 간혹 이렇게 묻는다.

"우리 단체 회원끼리 결속력을 유지하고자 협동조합으로 무엇을 할 수 있나요?"

협동조합의 원리를 완전히 잘못 이해한 질문이다. 협동조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통의 요구를 발견하고, 그것을 달성하고자 하는 열망을 조직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전제되지 않으면 협동조합은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단순히 어떤 모임의 결속력을 유지하고자 협동조합을 설립하는 일은 괜한 에너지 낭비다.

더구나 협동조합은 비즈니스다. 설사 공통의 요구가 있고 또 그 요구를 달성하려는 강한 열망이 있더라도 비즈니스가 가능하지 않으면 협동조합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서울·수도권에서 주택 소비자 협동조합을 만들려는 사람이 있다. 주거 문제를 해결하려는 그 요구와 열망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지금처럼 땅값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서울·수도권에서 주택 소비자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조합원이 돈을 모아 집을 지으려면 땅을 사야 한다. 그 땅이 바로 주택 소비자 협동조합의 자산이다. 그런데 그 자산 가치가 계속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그런 주택 소비자 협동조합에 참여를 하겠나? 이런 협동조합은 추진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농촌 지역의 '패시브 하우스(passive house : 단열을 극대화해 냉·난방에 들어가는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한 주택) 협동조합'은 고려할 만하다.

귀농·귀촌을 하려는 은퇴 후 베이비붐 세대의 가장 큰 고민은 농촌에 살 집을 마련하는 것이다. 자식은 출가하고 부부끼리 농촌에 살 집을 마련하려면 66제곱미터(약 20평) 정도의 집이 필요하다. 그런데 기름보일러에 의존하는 기존의 농가 주택은 냉·난방비가 엄청나다. 패시브 하우스는 난방비가 30~40만 원가량 절감된다.

농촌은 땅값이 문제가 안 된다. 그런데 건축비가 문제다. 패시브 하우스를 단독으로 지으면 건축비가 많이 든다. 대신 여러 채를 같이 지으면 건축 단가가 절반으로 떨어진다. 즉 똑같은 주택 협동조합이지만 비즈니스가 불가능한 수도권 주택 협동조합은 반대했지만, 비즈니스가 가능한 패시브 하우스 협동조합은 장려했다.

"협동조합, 우선 살아남자!"

프레시안 : 방금 비즈니스를 강조했는데, 사실 협동조합을 놓고는 두 가지 오해가 있다. 하나는 결사체 모델만 강조하는 경우이고, 또 다른 하나는 비즈니스 모델만 강조하는 경우다.

그 간극이 상당히 크다. 전자만 떠올리는 사람은 협동조합에서 곧바로 '협동', '희생', '공동체' 심지어 '반(反)자본주의' 이런 것을 떠올린다. 이런 편향의 가장 큰 문제는 협동조합을 평범한 사람이 일상생활에 참여하는 어떤 것으로 보지 않고 '운동의 수단' 같은 것으로 보고 지레 거부감을 갖는 것이다.

후자의 문제도 심각하다. 이들은 협동조합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만 바라본다. 협동조합이 주식회사나 개인 사업과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에게 아까 얘기한 협동조합의 다른 목적, 즉 조합원을 만족시키고 사회 전체에 기여하는 것은 허울좋은 겉치레일 뿐이다.

김성오 : 그런 양극의 편향 때문에 국제협동조합연맹(ICA) 내에서 '협동조합이 무엇인가'를 놓고서 오랜 기간 논쟁이 벌어졌다. 사실 (기사 맨 앞에 인용한) 협동조합의 정의에는 그 두 가지 얼굴, 즉 결사체와 기업의 모습이 다 포함되어 있다. 특정한 협동조합이 현실에서 어떤 얼굴로 활동할지는 그 주인인 조합원의 생각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여기 똑같이 유기농 먹을거리를 파는 소비자 협동조합 A, B 두 곳이 있다. 이들 협동조합이 잉여금(이윤) 3억 원을 어디에 쓸 것인지를 두고 조합원 총회를 했다고 가정하자. A 협동조합은 '시장에서 살아남고자 물류, 유통 혁신을 하는 데 더 많은 돈을 투자하자'고 결정하고, B 협동조합은 '조합원에게 파는 물건 값을 깎아주자'고 결정했다.

물론 B 조합도 기업으로서 살아남으려면 물류 혁신이 필요하고, A 조합도 조합원의 복리후생 수준을 올려야 한다. A 조합은 투자에 2억 원, 물건 값 인하에 1억 원을 배분하고, B 조합은 물건 값 인하에 2억 원, 투자에 1억 원을 배분했다고 하자. 이렇게 어느 쪽이든 2대1 정도로 배분한다면 괜찮다. 다만, 한 쪽에 아무것도 배분하지 않는 것은 잘못되었다.

이처럼 조합원이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똑같은 업종의 똑같은 협동조합일지라도 활동 모습이 다르다. 어느 것이 더 좋다, 나쁘다를 단정 지을 수 없다. 그래서 조합원의 생각과 문화가 중요한 것이다. 어느 것이 더 옳은 결정이었는지 여부는 장기적으로 해당 협동조합의 발전 여부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다. (나는 이것을 '진화'라고 표현한다.)

프레시안 : 협동조합의 두 얼굴, 즉 결사체 모델과 비즈니스 모델은 긴장 관계가 있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둘 중의 어느 것을 강조해야 할까?

김성오 : 동전의 양면이다. 하지만 아직 협동조합 사회의 태동기인 한국에서는 기업으로 살아남는 것이 대전제이다. 대부분의 협동조합이 만들어진 지 채 1년도 못 버티고 망한다면 협동조합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에 치명적이다. 일반 협동조합은 기업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

물론 사회적 협동조합은 조합원에 대한 편익을 제공하는 게 더 중요하지만. 사실 한국 협동조합 창업경영지원센터는 일반 협동조합 설립을 지원하고자 만들어졌다. <우리, 협동조합 만들자>도 정확한 책 제목은 "우리, '일반' 협동조합 만들자"가 맞다. 성공하는 기업으로서 일반 협동조합을 만들자는 것이다.

당장 가장 걱정스러운 일은 올해 말까지 협동조합이 2000개 생기고 나서 2, 3년 뒤에 그 10분의 1인 200~300개만 남고 나머지는 망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협동조합 해봤자 망한다"는 식의 패배 의식이 확산된다. 빨리 성공 모델을 만들어서 대중에게 협동조합의 성공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 현재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다.

그래야 사람들이 망하지 않는 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데 익숙해지고, 또 그런 성공의 경험자들이 협동조합을 설립하려는 이들에게 전수할 노하우가 축적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비전이 없는 협동조합을 만들려는 사람을 말리거나, 부족한 점을 보충하도록 조언하는 활동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프레시안 : 상당수 협동조합이 기업으로서 성공하기에는 초기 출자 금액이 모자라는 등 장애물이 많다.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하고 있을 텐데, 하나만 소개한다면?

김성오 :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천사 조합원(엔젤 투자자)의 출자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현재 협동조합기본법은 특정 협동조합 출자금의 3분의 1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고액 출자를 허용하고 있다. 창업투자회사들이 주식회사의 주식뿐만 아니라, 기업으로서의 성공할 가능성이 큰 협동조합에 출자해서 윈윈(win-win)할 수 있다.

한국 협동조합 창업경영지원센터는 성장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신생 협동조합에 창업투자회사처럼 고액 출자 능력이 있는 개인, 법인이 천사 조합원으로 참가하도록 적극적으로 다리를 놓을 예정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자본이 성공한 협동조합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고, 또 가능성 있는 협동조합이 생존해 협동조합 경제가 커지는 것을 촉진할 수 있다.

프레시안 : 1980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27회 국제협동조합연맹(ICA) 대회에서 발표된 <레이드로 보고서>는 "협동조합이 시장에서의 성공 혹은 조합원의 편익만 추구할 게 아니라 비조합원을 포함한 지역 사회, 혹은 사회 전체가 직면한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서야 한다"는 자성을 촉구했다.

결사체 혹은 기업을 넘어선 사회적 역할을 협동조합에 적극적으로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얘기를 듣고 보니, 한국의 협동조합에 이런 요구를 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든다. <레이드로 보고서>의 비판은 오랫동안 협동조합의 역사가 축적된 서구의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도 드는데….

김성오 : 앞에서 지적한 대로 우선 한국에서는 협동조합이 제대로 자리 잡고 확산하도록 경제적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에서도 협동조합이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과제가 무엇인가? 고용의 질을 높이는 것이 관건이다.

협동조합이 한국 사회에서 고용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앞의 예로 돌아가 보자. 여기 잉여금 3억 원이 남았다. 물류 혁신과 같은 일에 1억5000만 원, 조합원의 물건 값 인하에 5000만 원을 썼다면, 나머지 1억 원은 고용의 질을 높이는 데 쓸 수 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기존 직원의 임금을 높이는 식으로.

아까 협동조합이 잡아야 할 세 마리 토끼를 언급했다. 현재 시점에 맞는 가장 이상적인 협동조합 잉여금 배분의 황금비는 기업으로서 존속과 발전에 50퍼센트, 조합원 편익에 15~20퍼센트, 고용의 질 향상에 30퍼센트를 주는 것이다. 물론 이 비율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또 이를 위한 기본 조건은 협동조합이 기업으로서 생존하는 것이다.

"협동조합기본법, 이명박 정부의 치적"

ⓒ프레시안(김봉규)
프레시안 :
협동조합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명박 정부에서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 시행되었다. 사정을 모르는 이들로서는 의아스러운 대목이다.

김성오 :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협동조합이 적극적인 역할을 한 예를 전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럽 금융 위기가 터지면서 스페인 경제는 굉장히 어려워졌지만 몬드라곤 (협동조합) 그룹에 고용된 노동자는 고용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다.

이탈리아도 마찬가지다. 이탈리아 경제 자체는 엉망이지만 협동조합 경제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볼로냐는 괜찮다. 이렇게 세계 금융 위기를 지역에 기반을 둔 협동조합이 극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명박 정부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협동조합기본법을 추진한 것이다. 협동조합이 고용의 질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협동조합기본법이 이렇게 서둘러 제정, 시행된 데는 보편 복지를 견제하려는 의도도 한몫 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 때 봇물처럼 터져 나온 보편 복지에 대한 요구에 반응해서, 협동조합이나 혹은 사회적 기업을 대항마로 내세운 것이다. 복지 수요를 (보편 복지가 아니라) 협동조합으로 해결하자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의도가 설사 있었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는 앞서 언급한 측면 즉 세계 금융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협동조합의 가능성에 좀 더 방점이 찍혀 있었다고 본다. 그 의도야 어찌 되었던 100년 후에 역사를 돌아본다면, 협동조합기본법 통과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치적이 될 것이다.

프레시안 : 협동조합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도 여전하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이 있지 않나? 우리나라처럼 토론과 타협을 통해서 공동의 의사 결정을 도모하는 문화가 부족한 상황에서, 사공(주인)이 많은 협동조합이 잘 될 턱이 없다는 냉소적인 시선이 분명히 있다. 오너 경영에 대한 신화도 이런 분위기를 부추기고.

김성오 : 지적한 문제는 협동조합의 부정할 수 없는 단점이다. 하지만 유럽의 오래된 협동조합에서는 그런 문제가 적다.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경영자의 위치가 확고하다.

사실 주식회사든 협동조합이든 지배 권력이 형성되고 작동하는 것은 비슷하다. 단지 지배 권력을 뽑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주식회사는 1주 1표 혹은 1원 1표의 원리를 적용하지만, 협동조합은 1인 1표의 원리를 적용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협동조합 역시 선출된 지배 권력 즉 경영자를 존중하되 책임을 묻는다.

여기서 중요한 게 협동조합의 '정관'이다. 한국에서는 경영자의 권한과 책임을 정관에 분명하고 세세하게 명시함으로써 토론 문화의 부재와 같은 일천한 협동조합 문화를 제도로 보완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궁극적으로는 한국 사회에서도 토론을 통한 공동의 의사 결정과 같은 협동조합 문화가 확산될 것이다.

프레시안 : 비슷한 지적인데, 한국에서는 '동업'에 대한 혐오 혹은 악명이 있지 않나?

김성오 : 협동조합은 노골적인 동업이다. 참여하는 사람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규칙, 즉 '규약'을 명확히 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부모형제 사이가 동업하더라도 계약서를 명확하게 작성하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문화가 없다. 협동조합을 통해서 제도적 뒷받침(명확한 규약 제정)이 확산되면 동업에 대한 악명도 사라질 것이라고 본다.

이탈리아에도 가족 기업이 많다. 형제지간에도 이해관계에 따라 다툼이 생길 수 있으나, 정해진 규칙에 따라 운영되므로 다툼의 여지가 적다. 나는 한국에서 특히 친한 사이가 협동조합을 만들수록, 규약을 명확하게 제정하라고 조언한다. 다툼의 소지가 있는 사항을 명문화해야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

프레시안 : 듣고 보니, 협동조합의 리더의 가장 큰 자질이 '화해의 기술'인 것 같다.

김성오 : 맞다. 협동조합의 리더는 '화쟁', 즉 싸움을 화해시키는 자질을 갖춰야 한다.

프레시안 : 한국 협동조합 창업경영지원센터에서 '화쟁자' 역할을 하는 리더를 키워내기 위해서 마련한 프로그램이 있나?

김성오 : 오는 4월 15일 '협동조합 창업 스쿨'이 개강한다. 화쟁의 정신을 가진 협동조합 리더를 키우는 프로그램이다. 교육은 크게 기본 과정, 심화 과정, 연찬 과정으로 이뤄졌다.

기본 과정에서는 정의와 역사, 마케팅, 재무 회계, 법률 문제 등 협동조합에 대한 기초적인 소양을 쌓는다. 실무 과정에서는 자금 조달, 천사 조합원을 끌어들이기 위한 사업 계획서 작성 방안, 다툼을 최소화하기 위한 규약 작성 방식을 배운다. 마지막 연찬 과정이 바로 화쟁자를 키우는 리더십 교육이다.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과 토론하고 타협하는 과정을 배우는 것이다. 일본에서 시작한 야마기시 공동체(1960년대 이래 일본에 생겨난 무아집, 무소유를 추구하는 자급자족 공동체 )가 있다. 야마기시 공동체에서 생각이 다른 사람이 모여서 토론하고 타협하는 과정을 가르치는 교육이 바로 '연찬'이다.

"협동조합, 이 세 가지를 기억하라!"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협동조합 창업 혹은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꼭 염두에 둬야 할 사항을 세 가지로 요약하면?

김성오 : 첫째, 해당 협동조합이 사람들의 절실한 요구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를 점검하라. 준비 중인 협동조합이 성립할 수 있는지를 판가름하는 요건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요구에 기반을 둔 협동조합을 만들려고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주체들의 요구가 있는가 또 그 요구가 절실한가 이 질문에 답이 있어야 한다.

둘째, 해당 협동조합의 사업 계획이 현실성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주체들의 욕구가 있더라도, 실제로 기업으로서 성립하고 작동하는가는 다른 문제다. 현실성이 있는 비즈니스인지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으면, 좋은 뜻을 가졌더라도 시도해봐야 망한다. 이런 협동조합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셋째, 소통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소통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능하면 작은 규모로 협동조합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규모를 넓혀 가는 걸 권한다. 특히 협동조합을 주도적으로 만들려는 분들이 조합원과의 소통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좋은 일을 한다고 시작해 사람을 규합하고, 사업 계획도 세웠는데 소통에서 부딪치면 곤란하다.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덧붙이면 그렇게 만들어진 협동조합이 다른 협동조합과 어떻게 소통하고 연대할 것인가를 염두에 둬야 한다.

프레시안 : 한국에서 협동조합의 전망은 어떨까? 과연 성공할까?

김성오 : 협동조합기본법이 이렇게 제정, 시행된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한국 사회는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또 그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좋다. 우리나라가 정보통신 선진국이 되기까지 시간이 얼마 안 걸렸듯이 협동조합 선진국도 될 수 있다고 본다. 잘만 하면 오랫동안 협동조합을 도입해왔던 유럽보다 더 활력 있는 협동조합 경제를 만들 수 있다.

협동조합은 앞으로의 저성장 시대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협동조합 공화국'으로 전환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재벌 중심' 기업 지배 구조에 염증을 느낀 시민이 많고, 그에 대한 대안적인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은 개개인이 모두 똑똑하고, 정보에 접할 수 있는 권한도 거의 평등화됐다.

똑똑함의 평준화야말로 협동조합을 하기 위한 가장 유리한 조건이다. 개인의 의지를 모으면 폭발적인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한국 사회를 바꿀 협동조합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지금, 협동조합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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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협동조합 만들자>(김성오 외 5인 지음, 겨울나무 펴냄). ⓒ겨울나무
협동조합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보려는 이들은 <우리, 협동조합 만들자>의 97~109쪽을 주목하자.

이 부분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협동조합으로 창업하기에 유명한 업종을 정리해 둔 것이다. 김성오 이사장은 "약 3개월에 걸쳐 집필된 이 책의 내용 중에서 이 부분을 집필하는 데만 한 달을 투자했다"고 각별한 애정을 표현했다.

소비자 협동조합 추천 업종 : 통신 소비자 협동조합 / 석유 소비자 협동조합 / 항공사 협동조합 / FC 충청 협동조합 / 애완견 동물병원 협동조합 / 요양 병원 협동조합 / 대안 학교 협동조합 / 미디어 협동조합

직원(노동자) 협동조합 추천 업종 : 애플리케이션 개발 협동조합 / 버스 협동조합 / 커피숍 협동조합 / 실버 노동자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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