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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아이들의 학교, 개학이 두렵다?

[서리풀 논평] 건강한 삶을 준비하는 학교

건강한 삶을 준비하는 학교

대부분 학교가 곧 개학한다. 학년이 달라지는 것도 그렇지만 입학은 더욱 큰 환경 변화를 불러 온다.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어떤 기대 또는 불안감으로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한국인에게 학교는 개인적 삶의 전망이 결정되는 장소로 각인되어 있다. 상상을 넘는 진학 '전쟁'을 생각해 보라. 보통 사람들의 직업적 성취와 사회적 성공은 거의 전적으로 학벌로서의 대학에 좌우된다. 그러니 모든 교육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예비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는 학생과 학부모의 관심도 학업이 첫 번째 자리에 올라 있을 것이다. 좀 더 나은 삶을 바라는 소망이 온통 학교에 투영되는 한, 우울과 불안이 희망과 행복을 압도하는 학교 교육을 벗어나기 어렵다.

사실 학교 교육은 늘 근본주의적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자본주의의 불평등 구조를 유지, 심화시키는 주범이라는 비판은 맵고 날카롭다. 이반 일리치가 대표적이지만, 학교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은 때로 체제를 넘어선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이쯤에서 멈추는 것이 좋겠다. 당장 다음 주에 학교를 바꾸거나 학년이 올라가는 젊은이들에게 특히 그렇다. 학교의 한계는 생각해 볼 도전이기는 하나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 대신 오늘은 좀 더 현실에 가까운 '건강한 삶을 위한 학교'에 도전해 보자. 보기에 따라서는 에두르는 것이 근본에 닿는 또 다른 우회로일지도 모른다.

ⓒ뉴시스

많은 보건 전문가들은 건강과 학교를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본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안하는 '건강을 증진하는 학교'라는 개념과 전략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바로 가기) 흔히 '건강한 학교'라고 줄여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한 개인이 평생 건강하게 살아가는 데에 학교가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길게 되뇔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동과 청소년 시기가 중요하다는 데에 토를 달지 못한다면 학교의 중요성은 또 보태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학교는 우호적인 환경과 적대적 환경을 동시에 제공한다. 좋은 쪽으로 보자면 건강에 도움이 되는 행동과 개인적 능력을 기를 수 있는 효과적인 조건을 갖고 있다.

억지로라도 운동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 좋은 학교 급식이라면 균형 잡힌 영양을 얻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이 이런 예에 속한다. 학교를 통해 평생 건강하게 사는 데에 필요한 지식과 습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기대다.

물론, 집단으로서의 학교는 건강에 적대적인 조건도 된다. 학업 성취의 부담과 경쟁이 지나치면 정신 건강을 위협한다. 유례없이 높은 한국 청소년의 자기 파괴는 이를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담배와 술, 약물, 폭력과 같은 위험요인 역시 마찬가지다.

이처럼 학교가 학생의 현재와 미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나라에서 17, 18세기부터 교육과 보건을 연결시키려는 노력을 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근대 교육이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학교 보건이 시작되었다.

이미 어렴풋하게나마 모두 알고 있는 것들이다. 몇 년 전부터 교과목에 '보건'이 포함된 것만 하더라도 그렇다.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학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학교의 역할은 매우 좁게 규정되어 있고 다들 그런 좁은 범위를 당연하게 여긴다. 보건 교사 또는 보건실 정도가 보통 이해하는 건강한 학교의 전체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그나마 그런 인력과 시설도 빈약하다. 전국 학교 세 곳 중 하나 꼴로는 보건 교사도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건강은 그리 나쁠 리 없다. 질병이나 사고 같이 눈에 보여야 나서는 것이 보통의 반응이다. 소극적 역할에 머물러 있는 것도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우선순위가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도 어느 정도까지는 이해할 만하다. 교실과 운동장, 화장실 같은 기본 시설마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데, 건강을 위한 투자가 가당키나 한가. 그러고 보면 건강을 위해 투자가 더 필요하다는 주장은 학교에서조차 상투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들릴 참이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여기서 투자와 인력 배치가 더 필요하다는 소리를 되풀이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학교의 건강, 건강한 학교를 생각하는 틀을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선 급한 대로 중요한 몇 가지 '전환'의 포인트를 생각해 보자.

첫째, 학생과 학교의 건강을 더 폭 넓게 보아야 한다(포괄성의 원리). 세계보건기구가 말하는 건강한 학교 만들기만 하더라도 한두 가지 사업이라기보다는 크고 전반적인 종합 프로그램이다.

세계보건기구의 짧은 설명 안에도 많은 구성원과 지역 사회를 모두 포함하고, 신체와 정신 건강뿐 아니라 사회적 지지와 여가, 환경을 같이 다룬다. 아직도 학교를 뒤흔들고 있는 학교 폭력 문제는 아무리 엄격하게 구분해도 건강 관점을 보태야 한다.

담배, 약물, 스트레스 같은 문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청소년 문제'나 '사회 문제'라는 틀을 넘는 것이 급하다. 해결의 방법으로만 보더라도 건강 문제, 공중 보건 문제로 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모든 것을 건강 문제로 보고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는 '건강 제국주의'가 아니다. 새롭게 보면 새로운 해결책이 더 풍부하게 나타난다.

둘째, 건강한 학교 만들기에는 민주주의와 참여의 원리가 작동한다(민주성의 원리). 학교와 학생의 건강은 학생, 교사, 지역 사회 구성원 모두의 책임과 뗄 수 없다. 건강이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되고 또 증진된다는 것 때문에 이는 당연한 듯 들린다.

그러나 참여의 필요는 단지 모든 사람이 협동해야 효과적이라는 도구적 차원을 넘는다. 학교 공동체의 주체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하는 민주성의 원리가 곧 건강한 학교가 좀 더 보편적 가치를 갖게 되는 출발점이다. 특히 학생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한국적 맥락에서 지역 사회의 참여와 협력은 또 다른 도전이다. 선진국의 학교 보건이 지역 사회와 연계하고 협동하는 역사는 이미 오래 되었다. 건강 문제와 해결 방법의 특성을 생각하면, 단지 수단으로만 보더라도 지역사회의 참여는 더 커지고 넓어져야 한다.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지역 사회의 참여는 또한 민주주의가 심화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건강한 학교 만들기가 더 나은 정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중요한 실천의 장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셋째로 강조할 것은 전체 학교 교육에 체계적으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통합성의 원리). 생활과 삶은 근본적으로 통합적이고, 건강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학생의 시각에서 보면 더욱 더 그렇다.

건강한 습관이나 정신 건강, 폭력 문제가 어느 교과목이나 특정 분야 교사의 전유물이 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수학과 국어에서도 금연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때때로 어느 계기를 통해 전문성을 드러내는 것이 불가피하더라도 잘 조정된 통합이 삶의 원리에 부합한다.

마지막으로, 건강한 학교 만들기는 체계 없이는 불가능하다(체계화의 원리). 잘 만들어진 계획과 역할 분담, 리더십 없이 이런 것을 해 나가기는 어렵다. 농어촌 학교 되살리기 같은 것을 비슷한 예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냉소하지 말 것. 현재의 학교 현실이 어느 것 하나 만만하게 생각할 수 없는 형편이라는 것을 잘 안다. 제도 교육의 봉건성과 전근대성 역시 모르지 않는다. 이를 뒷받침하는 대중의 자기 이해는 더 절망적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새로운 현실은 또한 지향성에서 나온다. 그리고 먼저 실천할 사람이 중요하다. 건강한 삶이 중요하고 학교의 역할이 또한 그렇다면, 새로운 때를 맞아 또 새롭게 꿈꾸는 것이 시작이다.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매주 한 차례 발표하는 '서리풀 논평'을 동시 게재합니다. (사)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비영리 독립 연구기관으로서,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연구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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