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가 돌아왔다. 6년 만의 재집권이다. 기사회생은 어울리지 않는다. 와신상담도 아닌 듯하다. 실상은 어부지리에 가깝다. 민주당의 자멸이 자민당의 복권을 낳았다. 그래서 '우경화'의 징후로 단정 짓기도 섣부르다. 일본 사회의 분위기는 차라리 막막한 무기력에 가깝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고삐를 쥐지 못한 채, 떠밀려 가는 형세다. 그래서 더 위태롭다. 그 표류의 종착지를 가늠하기 힘들다.
절치부심이 아니었기에, 아베의 생각이 크게 변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6년 전 출간된 <아름다운 나라로(美しい国へ)>를 다시 들추어 보았다. 진작 처분했을 책인데, 자그마한 신서판이라 용케 남아 있었다.
머리말부터 전투적이다. '싸우는 정치가'를 표방한다. '극우반동'의 딱지도 개의치 않고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행동파 정치가임을 자부한다. 노선 또한 선명하다. '전후 체제의 탈각'이다. 그래서 평화헌법의 개정을 추구한다. 정상 국가, 보통 국가가 되겠다는 것이다. 헌데 이상하다. 근대 국가의 꼴을 갖춘다는데 '우경화'나 '군국주의화'라고 비판한다.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딱 들어맞지도 않는다.
매우 미묘한 지점이 있다. 아베는 '전후 체제'를 반세기 이상 이끌어 왔던 자민당 주류와 어긋난다. 그가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를 계승함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헌데 기시 또한 자민당의 적통은 아니었다. 전후 일본의 뼈대를 세운 이는 요시다 시게루이다. 요시다의 지휘 아래서 평화헌법과 미일 동맹의 모순이 공존하는 '전후 민주주의' 체제가 다듬어졌다.
요시다 노선이 철저한 대미 협조에 기반을 둔다면, 기시는 속 깊이 반미(反美)를 품었다. 그래서 '패자의 자립'과 '독립의 완성'을 꾀했다. 기시를 잇는 아베 역시 '전후 체제'를 극복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정통 보수'와 차별적이다. 그래서 '개헌 보수'라고도 한다. 이를 보수의 '진화'라 할지, '퇴행'이라 할지 판단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보수의 대부, <요미우리신문>의 회장 와타나베 츠네오는 아베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불쾌감을 표한 쪽은 미국도 있다. 아시아를 우회삼아 아베의 역사 인식을 따지고 들었다. 기실 미국이야말로 '전후 일본'의 막후 설계자이다. 미일 동맹과 평화헌법은 미국이 전후 일본을 관리하는 핵심 방편이었다. 나아가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를 지배하는 수단이었다. 군사적 족쇄를 채우고도, 경제적으로 부활한 일본은 냉전기의 모범이었다.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설파하고 근대화론을 전파하는 데 역할 모델 노릇을 톡톡히 한 것이다.
그런데 첫 전후 세대 총리였던 아베가 전후 일본을 미국 점령 체제(의 연속)라고 간주했던 것이다. 우리는 지나치게 일본과 아시아의 역사 분쟁에만 관심을 쏟았다. 편향이고 편견이다. 기실 일본/아시아의 뒤틀림은 미국/일본의 곡절과도 깊이 결부되어 있다. 폭발력은 미일 간 역사 인식 차이가 더할지도 모른다. '대동아'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거에 전후의 주박을 허물어뜨릴 만한 복병이다. 그만큼 오래 내연(內燃)하고 있었다.
진보와 진화
▲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P=연합뉴스 |
그래서 '전후 체제의 탈각'에는 일정한 주체적 계기가 작동한다. 미국이 강요한 인식/제도/체제를 고쳐 잡자는 것이다. '종속 국가'의 위상을 타파하자는 것이니, 소위 '양심적 세력'이라는 자유/혁신 진영보다 더 리얼한 문제의식일지 모른다. 적지 않은 일본인들도 내심으로 공감하는 편이다. 내가 벗한 친구들도 은근히 공명하는 바 있었다. 그들이 결코 '우익'도 아니다. 좌/우라는 낡은 잣대를 거두자면, '개헌 보수'야말로 피로감이 누적된 전후 체제와의 결별을 꾀한다는 점에서 진화한 셈이다. 반면 자유/혁신 세력이 현 체제를 옹호하고 고수한다는 점에서 '보수적'이다.
이 기묘한 착종을 지켜보노라면, 전후의 성취에 홀린 쪽은 오히려 자유/혁신 진영인 것 같다. 정권 (재)교체 후 <아사히신문>의 신년 사설을 읽고 나는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국가의 상대화'를 역설하고 있었다. 결국 또 자유주의다. 전후의 회귀이다. 진부하고, 상투적이다. <아사히신문>, 이와나미서점 등으로 대표되는 자유/혁신 세력이야말로 미국이 선사한 역사관과 가치관에 충실하다. 평화헌법과 민주주의를 금과옥조마냥 애지중지 하는 것이다. 이 커다란 역설이 못내 눈에 밟힌다.
냉소는 이미 자욱하다. 도쿄에 머물던 시절이다. 마침 전후 60년을 맞는 2005년이었다. 나는 응당 이와나미서점에서 발간하는 진보적 월간지 <세카이(世界)>를 즐겨 읽었다. 헌데 비아냥조의 질문을 심심찮게 접했다. 요즘에도 <세카이>를 읽나? 그 어감이 어딘가 익숙했다. 한국에서도 아직도 <창비>를 읽어? 하는 말을 종종 듣곤 했던 것이다. 돌아보면 반세기를 지탱해 주었던 민주, 자유, 진보 등이 이미 그 역사적 시효를 다한 시점이 아니었나 싶다. 깨달음은 항상 늦다. 대만의 민진당을 시작으로 일본과 한국의 민주당이 연달아 패한 2012년의 동아시아가 우연으로만 보이지가 않는다. 동아시아의 민주/진보 진영이 20세기에 고착되어 있는 것이다.
일본의 민주/진보가 '국가의 상대화'라는 전후 가치를 답습하는 반면에, 보수는 국가의 재건을 통한 반동과 반전의 위태로운 경계에 서 있다. 개인의 존엄을 강조하던 자유주의적 교육기본법도 이미 수정했다. 그 첫머리를 "공공의 정신을 존중하고 전통을 계승하며…"라는 조항으로 대체해 버렸다. 보수의 근간은 국가이며, 국가의 근간은 역사와 문화, 즉 전통이다. 민주/진보 진영은 '국가주의' 심화로 개인의 양심을 억누를 것이라는 우려를 반복한다. 그에 비하자면 '아름다운 일본'의 복원을 주창하는 (신)보수가 도리어 진취적이며 도전적이다.
물론 '정체된 진보'보다 '진화한 보수'의 문제의식에 일정한 공감을 표한다 해서, 그 해결 방향에도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평화헌법을 수정하고 자주헌법을 만들어 명실상부 주권 국가가 되겠다는 포부는 기묘하게도 북조선과 겹쳐 보인다. 여차하면 핵무장도 따라하고, '선군정치'도 흉내 낼 판이다. 그리고 그 자주헌법과 국방군 창설이 중국 봉쇄의 전위를 맡는 미국의 아시아 사령부가 되기 십상이라는 역설도 간단치 않다. 일본 본토마저 오키나와처럼 기지화 될 판국인 것이다. 북조선화도, 오키나와화도 일본이 가야할 길은 아닐 것이다.
보수의 품격
결이 다른 보수도 있다. '개헌 보수'보다 더 근본적이고 발본적이다. 이들은 '보통 국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평화헌법을 고수하자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헌법과 민주주의에 담긴 근대의 가치를 반문한다. 근대 세계의 획일화에 맞서 일본 고유의 정서를 회복하는 '고고한 나라'를 표방한다.
그래서 계몽과 이성에도 비판적이다. 인간은 논리와 합리의 동물이 아니다. 논리를 신봉하는 비합리의 극점에 공산주의가 있었다. 모든 생산 수단을 모두가 공유한다. 그래서 생산물도 공유한다. 빈부 차이가 없는 평등하고 행복한 사회이다. 결국 국가도 사라진다. 진공 상태의 논리적 귀결이다. 그래서 소련이 실패했다. 논리/합리/이성의 실패이다. 논리는 언뜻 산뜻하고 상쾌하다. 그러나 이론에 투철할수록 현실은 더 빨리 배반한다. 파탄과 파국도 일찍 찾아온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은 논리의 산물이 아니다. 진화의 귀결이다. 진화는 수많은 우연과 착종의 소산이다. 수학조차 진즉에 '불완전성의 원리'에 굴복했다. 하물며 인간과 사회를 논리만으로 감당할 수는 없는 것이다. 차라리 도리가 소중하다.
애당초 인간에게는 자유도 없다. 태어난 순간부터 자유는 한 움큼도 없었다. 오로지 (근대)법전 속에 있을 뿐이다. 도리어 근대인은 자유를 지켜달라며 법의 구속과 지배 아래 있는 꼴이다. 존 로크는 국민의 자유롭고 평등한 계약의 산물이 국가라 했다.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토마스 제퍼슨도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자유와 행복 추구권을 부여받았다고 했다.
다만 본인도 석연치 않았던 모양이다. 단서를 달아 두었다. 그 권리는 신이 주신다는 것이다. 천부인권이다. 허나 터무니없는 소리다. 그런데도 지금껏 열심히 배우고 외운다. 그리고 믿는다. 즉 민주 또한 과학적 근거가 박약한 믿음과 신념의 체계이다. 천주의 속성을 속 깊이 계승한 것이다. 자유도 평등도 민주도 태초의 말씀을 따르는 신앙체계에 가깝다. 민주/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의 9할이 근대의 신도들이다. 한때 전지전능한 신을 저주하였듯, 지금은 국민의 수준을 탓함이 차이라면 차이겠다.
물론 민주는 천주만큼이나 매혹적이다. 단 그 전제는 치명적이다. 인간이 사물과 세계에 대한 성숙한 사고와 비판을 할 수 있다는 조건 하에서만 최고의 정치 체제이다. 그러나 그러한가?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민주주의가 확산되어간 지난 20세기를 냉철하게 복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하지 않으면 공산주의 못지않은 맹목과 교조의 혐의를 피하기 어렵다. 뇌 과학과 인지 과학, 사회 생물학 등도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인간은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부러 공부할 것도 없다. 스스로를 돌아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신뢰는 신에 대한 믿음만큼이나 허술하고 허약하다.
즉 삼권 분립만큼이나 '민주' 자체를 견제하고 통제해서 균형을 취해야 한다. 민주의 질주는 군주 개인의 폭정보다 더 큰 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기실 일본과 독일의 폭주도 다이쇼와 바이마르가 누렸던 민주주의 이후의 산물이다. 즉 누천년 인간이라는 종의 실상과 실태를 직시한다면, 민주가 최상이고 최적의 정치 제도라고 자신하기 힘들다. 인류는 신석기 이래 진화를 멈추었다. 그 대부분의 시기를 비민주적 체제 하에 살았다. 그래서 지금껏 존속해 왔는지도 모른다. 여타 생물에 견주노라면 인류(의 일부)가 민주제를 영위하고 있음은 기이할 정도로 예외적인 것이다. 자유로울지는 몰라도, 자연스럽지는 않다. 게다가 행복과 건강이라는 가치는 민주와 직결되지도 않는다.
너무 멀리 왔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 근대의 막다른 길이다. 그리고 민주는 근대의 최후의 보루이다. 서둘러 주술에서 헤어나야 한다. 미망에서 먼저 깨어난 쪽은 안타깝게도 보수 같다. 반(反)전통으로 내달렸던 민주/진보의 관성과 달리 그들에게는 옛 것을 애호하는 근성(根性)이 있다. 혹여 일부나마 수긍이 된다면, 후지와라 마사히코의 <국가의 품격>(오상현 옮김, 광문각 펴냄)을 읽어보길 권한다. 전후 60년을 내달렸던 일본에서 큰 화제를 뿌렸던 책이다. 아베와는 또 다른 보수의 품격을 맛볼 수 있다.
태평양과 대동아
다시 아베 신조로 돌아간다. 그가 정치 인생을 시작한 것은 1993년이다. 소련 해체 이듬해였다. 냉전 체제가 해체되자 전후 일본의 불만도 곧바로 표출되었다. 역사 수정에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자민당 산하 역사 검토 위원회가 발족한 것도 1993년이다. 아베는 줄곧 핵심 멤버였다.
그 산물로 발간된 것이 <대동아 전쟁의 총괄>이다. 1995년 8월 15일이었다. 전쟁이 끝난 지 꼬박 5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 전쟁은 한동안 '태평양 전쟁'으로 불렸다. 반세기 만에 본래의 이름을 되찾은 것이다. 일종의 정명(正名) 작업이었다. 따라서 일본의 역사 수정이 애당초 겨냥한 과녁은 아시아라기보다는 차라리 미국이었다. 태평양을 거슬러 대동아를 복구해낸 것이다.
새천년 하고도 13년. 역사 인식은 마땅히 수정되어야 한다. 다만 어떻게 수정되어야 할 것인가가 화두이다. 도리어 수정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없음이 민주를 천주처럼 떠받드는 20세형 진보의 병통이다. '개헌 보수'가 앞서 그 임계를 넘어서고 있다. 게다가 1930년대 이후의 제국 일본을 향수한다. 대동아에 투영되었던 '근대를 초극하자'던 열망도 되지피고 있다. 그래서 위태롭고 아찔하다. 기시감도 인다. 다케우치 요시미라면 '불 속의 밤 줍기'라고 했을 것이다.
억압된 것은 결국 되돌아온다. 우리도 외면하긴 힘들다. 직시하고 진검 승부를 할 때가 되었다. 봉인해 두었던 대동아를 진지하게 천착해 볼 일이다. 다음 글에서 '불 속의 밤' 대동아 전쟁을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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