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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신화 넘나드는 음모론, 사랑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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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신화 넘나드는 음모론, 사랑스러워!

[이명현의 '사이홀릭'] 콜린 윌슨의 <우주의 역사>

"이 책은 나의 50번째 저서지만, 사실은 나의 처녀작이었어야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열 살 때부터 이런 책을 쓸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콜린 윌슨은 숙부로부터 선물 받은 책에서 화성에 운하가 있다는 로웰의 이야기를 읽은 것이 계기가 되어 도서관에서 천문학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수많은 책을 쓰게 만든 동인이었음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윌슨이 <우주의 역사>(한영환 옮김, 범우사 펴냄)의 머리말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나는 앞으로도 그 해답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다고 믿으려 한다. 이 <스타 시커즈>의 이야기는 지금도 나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인간의 놀라운 능력이 거기에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자기 자신의 숨겨진 능력의 본질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우주의 기원이 점차 이해될 것이다."

<우주의 역사> 머리말의 끝 문장은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다. 윌슨은 어린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아인슈타인 숭배자로 불렸고 과학자를 꿈꿨다. 하지만 그는 "과학이 모든 의문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지 않나 하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머리말에 고백한 것처럼 과학자의 길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과학의 경이로움 자체 보다는 오히려 과학적 발견을 찾아가는 과학자들의 여정에 더 관심을 보이고 애착을 느낀 것 같다.

이 책도 그의 이런 전형적인 태도가 만들어낸 흥미로운 결과물이다. <우주의 역사>의 원제가 위 문장에서 윌슨이 언급한 <스타 시커즈(Star Seekers)>다. 이 책의 내용이나 윌슨의 서술 스타일로 봐서도 번역된 책에 붙은 제목 보다는 원제가 훨씬 잘 어울리고 이 책의 의미를 더 잘 함축하는 것 같다.

▲ <우주의 역사>(콜린 윌슨 지음, 한영환 옮김, 범우사 펴냄). ⓒ범우사

<우주의 역사>는 내가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책이다. 교양천문학 책으로서만 평가를 해서 점수를 주자면 50점도 겨우 줄까말까 할 정도로 높게 평가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매혹적인 책이다. 교양천문학 책이라면 마땅히 보여주어야 할 과학 자체의 경이로운 결과와 그것에 관한 기술적인 서술이 많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50점을 감점했다. 하지만 나머지 50점은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든 느낌과 생각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크게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내밀하게 속삭이듯이, 약간의 노출증과 약간의 관음증을 동반한 몽환적인 분위기로 친한 사람들에게 속닥속닥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화랑세기>(김대문 지음, 이종욱 옮김, 소나무 펴냄)를 처음 읽었을 때의 기분과 비슷했다. 그 책 속의 이야기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었지만 개연성이 있었다. 사실이었는지의 여부를 떠나서 개연성 속에 살아 숨 쉬는 사람 냄새가 났었다. <우주의 역사> 속에서도 사실 여부를 떠나서 천문학자들의 속내를 공감할 수 있었다.

윌슨은 에드거 앨런 포가 <유레카>라는 책에 써놓은 직관적인 발상 이야기를 하면서 <우주의 역사>를 시작한다. 포가 오늘날 빅뱅 우주론이라고 불리는 팽창 우주의 개념을 이 책 속에서 이미 직관적으로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꽤 유명한 일화여서 많은 교양천문학 책에서 양념처럼 에피소드로 다루고 있다. 윌슨은 포의 직관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에 바로 이어서 '뇌는 좌우 기능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꺼내면서 소위 좌뇌와 우뇌 이야기를 이어간다. 직관과 논리적 판단에 대한 이야기를 천문학 이야기와 엮어보겠다는 포석이었다.

'고대인은 탐지자였다'라든지 '마술에서 과학으로' 같은 소제목이 표출하는 것처럼 <우주의 역사>에서는 인간의 우주 이해의 역사를 좌뇌와 우뇌의 기능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와 교차시키면서 전개하고 있다. 직관적인 능력의 중요성과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세상을 지나서 논리적 판단이 득세하는 근대로 넘어오면서 벌어지는 우주론의 변화 과정을 사람 중심으로 풀어가고 있다. 그쯤에서 인간의 무의식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역설하고 있다.

때로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촌스러운 음모론에 가까운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귀엽게 봐 줄 수 있는 정도의 것이었다. 그의 '우주의 역사' 아니 '인간의 우주 이해의 역사' 이야기가 갖는 진짜 매력은 촌스러울 수 있는 음모론적인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점일 것이다. 야사로서의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역사적 개연성을 부여해서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는 능력은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개연성 있는 상상의 세계로 갈 수 있었다. 그 속에서 자유로운 역사의 세상을 마음껏 여행할 수도 있었다. 현실과 상상의 줄타기를 하는 아찔한 재미, 윌슨은 우리를 그런 경계 지역으로 데리고 가는 여행 가이드였다.

종교나 신화나 설화는 원형이 되는 이야기에 그 이야기를 전파하는 사람들 개개인의 이야기가 눈덩이처럼 덧붙여지기도 하고 조약돌처럼 물에 깎여나가기도 하면서 생명력을 얻어서 허구의 스토리가 된다. 그리고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증폭되어 나간다. 과학은 관측과 실험의 검증을 통해서 모형을 수정하거나 폐기하면서 자기 혁신을 통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면서 생명력을 유지한다. 하나는 어쨌든 원형을 지키려는 관성으로 다른 하나는 원형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권역을 유지해 나간다.

<우주의 역사>에서 윌슨은 자칫 종교나 신화가 될 뻔한 야사들을 과학의 영역을 넘보는 개연성 있는 이야기로 재생산해 내고 있다. 가끔씩 아찔한 순간이 있긴 하지만 허구와 음모론을 재미라는 도그마 속에 묶어두는 기지도 발휘하고 있다. 종교와 신화와 음모론이 재미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벗어나서 실체 행세를 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윌슨은 노련한 조련사처럼 그 경계를 즐기면서 천연덕스럽게 스토리텔링을 이어간다. 나를 매혹시킨 것이 바로 그 지점이다.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는 과학도 문화와 유착되어 있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간파한 사람인 것 같다. 과학적 경이로움을 이야기 하는 것도 사람이고 그것을 발견해내는 과학자들도 사람이다. 마땅히 과학을 문화로 바라보아야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윌슨의 이야기는 그래서 섬뜩하거나 황량하지 않고 따뜻하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큰 소리로 홍보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귀에 윌슨이 내게 했듯이 그저 나지막하게 속삭여주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우주의 역사>는 다른 사람들 앞에 선뜻 내어놓기엔 부끄러운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의 원서가 처음 출간된 것이 1982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윌슨은 당시의 천문학의 경이로운 발견을 담아내는 작업에 여전히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 혁명기의 천문학자들의 속내를 들춰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이후 현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는 사건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그저 그렇고 그 속에서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별다른 특징 없이 나열되고 있다. 기술적인 발전을 따라가는 윌슨의 인문학적 소양이 그 한계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다. <우주의 역사> 앞부분에서 보여주었던 모든 미덕이 뒷부분에서는 사라져 버렸다. 아쉬운 장면이다.

특히 <우주의 역사>의 마지막 소단원인 '열쇠는 무의식에 있는가'에 가면 앞부분에서 보여주었던 재치 있는 발상과 과감한 상상력은 보이지 않고 과학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허망한 몰이해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질문은 늘 도전적이고 멋진 일이지만 질문의 내용은 엄밀하게 따져보고 평가해야할 것이다. <우주의 역사> 앞부분에서 그가 제기했던 발랄한 문제 제기와는 다르게 뒷부분에서는 맥이 빠지는 질문을 에필로그처럼 남겼다.

"밀른은 특수 상대성 이론뿐만 아니라 일반 상대성 이론의 일부에도 반대했다. 먼저 그는, 빛의 속도는 단지 실험적 사실에 불과하며 그것을 자연의 법칙이라 부르는 데는 뭔가 잘못이 있다고 주창했다. 뒤이어 그는 아인슈타인의 중력의 법칙도 납득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공간이 휘어 있다는데 도대체 뭐가 휘어 있는가? 공간이 팽창하고 있다면 팽창하는 것은 도대체 뭔가? 정말로 이 방의 공간이 팽창하고 있단 말인가? 그럼 왜 우리 태양계는 팽창하지 않는가?'"

예를 들면 윌슨은 밀른의 주장을 옮겨 적으면서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 이런 질문은 교양천문학 책에서 상대성 이론을 설명하기 위한 도입부에 미끼처럼 던지는 흔한 질문이다. 그리고 이런 질문에 대해서 현대 천문학적인 답을 하나하나 설명해 나가는 것이 교양천문학 책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서술 방식이다. 윌슨의 질문은 재미가 없다. 별 의미도 없다. 앞부분에서 보여줬던 패기도 호기도 없다. 그의 질문은 시시하다. 당연히 에필로그 부분에서의 그의 주장도 허망하다. 1982년에 쓰인 책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상상력이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상상력의 기본은 과학적 사실일 텐데 현대 천문학에 대한 윌슨의 탐구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우주의 역사>를 향한 내 사랑이 식은 것은 아니다. 화려했던 시절의 애인의 늙은 모습마저도 안타까우면서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우주의 역사>는 내겐 그런 책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이다. 더 큰 기대는 애당초 과욕이었는지도 모른다. 50번째 책으로 나온 <우주의 역사>가 그의 마음속 처녀작이었던 것처럼 그의 마지막 책은 <스타 시커즈 2(Star Seekes II)>였으면 좋겠다. 그 책 속에는 <우주의 이해>에서 다하지 못한 현대 우주론을 만든 천문학자들의 이야기가 담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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