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6월 27일 오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조약 서명식을 마치고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
양국은 한중 미래비전 공동성명에서, 한반도 비핵화 실현 및 한반도 평화와 안정 유지가 공동이익에 부합함을 확인했다. 박 대통령은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핵보유는 용인할 수 없고, 양국 관계 발전의 기본 원칙으로 상호 이해와 신뢰 제고를 강조했다. 한·중 FTA 협상의 조속 타결, 에너지·기술·해양 협력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경제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것은 박 대통령의 가장 두드러진 방중 성과였다. 박 대통령은 시안(西安)까지 가서 한국의 중국 서부대개발 참여 확대를 선언했고, 칭화대(淸華大)에서는 동북 3성 개발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칭화대 연설에서 박 대통령은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남북한 구성원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된다면 동북 3성 개발을 비롯해 중국의 번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 문제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만 사라진다면, 한국과 중국은 동북아 지역의 풍부한 노동력과 최고의 자본과 기술을 결합해 세계 경제를 견인할 것이고, 이를 위한 양국의 경제협력은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성과 뒤에 가려진 아쉬운 점
한편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차 미국을 방문했을 때, 박 대통령은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 언급했었다. 중국이 탈북자들을 북송하는 것은 인도적 차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중국은 그들을 남한으로 보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필자는 지난 6월 6일자 칼럼에서 (☞관련기사 보기 : 朴 대통령, 미국 가서 했던 말 시진핑에게도...) "미국에서 했던 말, 시진핑에게 직접 하라"고 썼다. 박 대통령은 특히 '원칙'을 중시하는 정치인이기 때문에 중국을 방문했을 때, 그 같은 소신을 전달할 것이라고 내심 기대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의 방중 시점이 라오스 탈북청소년 9명의 북송문제가 국제적 이슈가 되었던 뒤끝이었기에, 필자는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 어떤 수준에서건 탈북자 문제가 거론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탈북자 문제는 한중 정상회담의 의제에서 빠져 있었다. '한중 미래비전 공동성명'이나 공동기자회견 보도 내용 어디에서도 탈북자 북송 문제에 대한 언급이나 표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상회담 의제가 많아서 거론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탈북자 문제를 불편해 하는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이번 방중에서는 일부러 언급하지 않은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미국에서는 인도적 차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던 탈북자의 인권 문제를, 북송의 현장인 중국에서는 막상 말도 꺼내지 않았던 것이다. 많은 성과가 있었던 방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탈북자의 인권 문제가 빠졌다는 아쉬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박 대통령이 말하는 '새로운 한반도' 와 '새로운 동북아' 비전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도 늘어나는 중국 내 탈북자와 그들의 북송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문제다. 혹시라도 탈북자 문제를 비켜가고자 하는 중국 당국의 입장을 의식해서 그랬다면 칭화대 연설에서라도 잠시 언급을 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중국의 젊은 학생들은 탈북자 북송 같은 인도적 문제에 대해서 전향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칭화대 연설에서 바로 그 문제를 중국어로 언급했더라면 박 대통령은 중국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 민주주의 정치지도자로 각인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박 대통령의 방중에 아쉬움을 말하는 이들은 이번 방중이 중국을 움직여 북한의 태도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물론 탈북자 문제는 경제, 정치, 안보 분야의 다른 의제와 비교해봤을 때 당장 우리에게 실리를 가져다주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통일한국을 지향하는 우리나라의 최고 당국자가 중국까지 가서 탈북자 문제를 꺼내지 않았다는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길 것이다. 이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주권국가인 대한민국의 정통성, 진정성, 신뢰의 문제와도 통하기 때문이다.
한중 간에 놓인 지뢰밭, 그래도 문제제기는 계속해야 한다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양국 사이에 해결해야 될 문제 중 북핵과 탈북자 문제는 지뢰밭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양측은 경제교역 분야에 치중하면서 상대적으로 협조가 어려운 정치 관련 문제는 뒷전으로 미뤄놓았다. 이것이 이른바 '구동존이(求同存異)'이다. '구동' 즉, 쉽게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분야인 경제·문화 분야에선 유례없는 관계 진전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북핵문제나 탈북자 문제 같은 분야에서는 합의는 차치하고 협의 개시조차 쉽지 않은 '존이'의 분야로 방치돼 왔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불거졌던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 중국 전문가들은 국제사회가 중국의 국내법을 짓밟고 도전한다고 항의한다. 그러면서 한국이 탈북자 북송 문제를 정식 의제로 다루려고 한다면 결국 서로의 원론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밖에 없는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탈북자 문제에 대한 중국의 정책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꽤 높은 수준의 외교 전략과 전술이 필요할 것이다. 탈북자 문제는 인도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문제이지만, 현실적으로 중국의 대북정책과 관련해서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중국의 고충을 이해해 달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인간의 생명과 신체의 자유는 가치와 원칙의 문제이다. 탈북자 북송 문제를 중국의 '고충'을 고려해 계속 '존이'의 영역에 남겨놓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중국도 최근 들어, 특히 2010년대 들어 인권정책과 제도가 개선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중국이 탈북자 문제를 불편해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눈치보기'로 일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바꿔 말해 중국에 당당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협조를 구하는 대담한 외교를 할 필요가 있다.
지난 6월 초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한 시간이나 할애하면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신형대국관계'를 설명했다. 중국이 미국에 제안한 '신형대국관계' 는 중국이 '책임대국'이 될 테니 미국도 중국을 그렇게 대접하라는 메시지였다. 앞으로 중국이 미국과 '신형대국관계'를 이루면서 국제사회의 '책임대국'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인권문제를 더 이상 '고충'이나 '존이'라는 명분으로 비켜갈 수만은 없을 것이다.
▲ 최근 라오스에서 적발돼 북한으로 송환된 청소년들이 지난 6월 20일 평양에 있는 고려동포회관에서 열린 좌담회에 참석했다. ⓒ로이터=뉴시스 |
지난 5월 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라오스 탈북청소년 9명이 비록 강제로 북송되기는 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 같다. 국제사회와 우리국민들이 계속 문제를 제기하니까 북한도 차마 그들을 처형하지 못한 것 같다. 북한은 그들 9명의 청소년을 처형하는 대신. 오히려 말끔히 옷을 입혀 대남비방과 체제선전에 활용했다. 그들이 비록 대남비방과 북한체제 홍보에 이용되고 있을망정, 국제사회의 문제 제기와 우리 국민들의 관심 때문에,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으로 안전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탈북자 문제와 관련해 지금까지의 '조용한 외교'는 더 이상 효용성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탈북자 처리와 관련해서 국제적 인권 기준을 흔들림 없이 적용하면서 중국을 지속적으로 설득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도록 하자고 한중 양국이 의견을 모은 일과도 무관하지 않다. 북한으로 하여금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도록 하는 데 있어, 탈북자의 인권문제도 북핵문제 못지않게 중요하다. 앞으로 우리 정부가 탈북자 문제와 관련해서도 신뢰를 바탕으로 중국과 소통해 나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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