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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 결과를 만든 초대형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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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 결과를 만든 초대형 방정식

[프레시안 books]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사의 구조>

가라타니 고진과 국가의 문제

2010년 이 책의 일본판이 나왔을 때, 빨려들듯 읽었던 기억과 함께 지금과는 다른 문제의식을 갖고 가라타니 고진의 생각을 대했던 것을 떠올리게 된다. 그때의 문제의식이란 불평등의 영구적 기초 위에 서 있는 자본주의 체제의 극복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하는 지점이었다. 물론 지금이라고 그러한 문제의식이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2012년 대선의 결과에서 오는 충격을 수습하면서 읽게 된 그의 책은 내게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세계사의 구조>(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펴냄)를 처음 읽으면서 느낀 바는, 이 책의 이론적 풍부함과 사유의 정밀함에도 불구하고, 또 인간의 자유로운 상호 관계를 구축하는 협동 사회를 통해 국가를 지양하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자는 그의 논지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여겨졌다는 것이었다. 현실에서 겪고 있는 정치경제적 격차를 해소하는 방법과 목적으로서 그게 과연 가능하겠는가 하는 질문을 거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다시 그의 책을 읽으면서 그가 제기한 "국가의 문제"를 보다 절박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무슨 착시가 있었던 것일까? 2012년 대선을 생각해보면, 그 결과의 필연성 또는 구조적 요인을 극복하기 어려운 역사적 조건의 힘은 없었는가 하는 의문을 지우기 어렵게 된 것이다.

2012년 대선의 본질적 문제

▲ <세계사의 구조>(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펴냄). ⓒ도서출판b
이는 대선 결과를 놓고 선거 전략이나 전술 또는 여론의 향배 등의 문제에만 집착할 경우 보지 못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어찌 보면 우리는 이기기 대단히 어려운 싸움을 했고, 안타깝기 짝이 없지만 이만한 결과를 가져온 것도 사실은 상당한 성취였을 수 있다. 잘 들여다보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보다 깊은 인식에 도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 체제가 단지 상품 생산이나 화폐 경제의 압도적 주도권 또는 부르주아 계급의 정치적 기구의 존재 같은 것으로만 설명될 수 없고, 대단히 오랜 시간 축적되어온 다양한 조건이 서로 치밀하게 결합된 결과라는 점에 주목할 때 그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이는 이미 마르크스가 그의 <자본>에서 치열하게 분석한 바 있다.

이는 하나의 역사적 체제로서의 자본주의가 형성되는 과정은 물론이고 그것이 해체되어가는 조건을 이해하는 것 역시 대단히 종합적인 인식이 요구됨을 말한다. 그것은 하나의 지배 체제가 작동하는 데에는 그 사회 도처에서 이를 유지하고 에너지를 순환시키는 구조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결국, 한 사회의 변화란 바로 그 도처의 지점에서 다른 사회로 이행하려는 의지와 조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쉽지 않음을 뜻한다.

상호 자율성의 세계

그런 뜻에서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사의 구조>는 국가를 넘어서는 미래를 만들자는 주장과는 별도로, 세계 체제에 대한 그의 접근 방식과 인식의 틀이 매우 주목되는 저작이다. 그는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에서 생산양식이 아니라 교환과정의 특질을 부각시키고, 이를 통해 씨족 공동체 이전의 인간 사회에서 존재했던 상호 협동적 삶(그는 이를 호수성(reciprocity)이라고 표현한다)을 회복시키는 작업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논리를 여기서 간단히 해설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요지는 "자본=네이션=국가"가 인간 사회의 불평등을 구조화시키는 현실에 대항해서 이뤄내야 하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상호 자율성과 상호 보살핌의 관계를 회복시키자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헤겔로부터 국가와 시민 사회, 그리고 자본의 총체적 인식을 가져오고 마르크스로부터는 자본의 작동 방식을 해체하는 논리, 그리고 칸트로부터는 국가가 지양된 상태에 대한 이해를 가져왔다. 그리고 헤겔이 역사적 과정을 돌아보는 미네르바적 사후의 사유에 집중했다면, 칸트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기 전 그것을 직시하려는 사전의 미래 인식을 하려 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관점을 차용했다.

자본-네이션-국가의 세계

가라타니 고진이 말하는 "자본=네이션=국가"의 이해는 다음과 같다.

"먼저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방치되면 반드시 경제적 격차와 계급 대립으로 귀결된다. 그에 대해 네이션은 공동성과 평등성을 지향하는 관점에서 자본제 경제가 초래하는 모순들의 해결을 요구한다. 그리고 국가는 과세와 재분배나 규칙들을 통해 그 과제를 해결한다. 자본도 네이션도 국가도 서로 다른 것이고 각기 다른 원리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서로를 보완하는 형태로 결합되어 있다. 그것들은 어느 하나를 결여해도 성립하지 않는 보로메오의 매듭이다."

여기서 가라타니 고진은 특히 국가의 존재에 주목한다. 헤겔이 국가를 모든 모순이 변증법적으로 지양된 체제라고 인식한 반면, 마르크스가 경제적 토대의 변화에 따라 국가의 해소가 가능하다고 본 반면, 가라타니 고진은 국가의 주체적 능동성을 분석하면서 이것이 자본과 네이션을 이끌고 가고 있는 현실을 부각시킨다.

이러한 분석을 위해 그가 동원하는 지식의 체계는 결코 만만치 않다. 문화인류학에서부터 시작해 문명사, 세계체제론과 정치철학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역사적 체제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그의 방식은 방대하다. 그런 까닭에 그의 책을 요약해서 설명하는 일은 벅찰 지경이다. 그러나 가라타니 고진에게 있어서 독특한 것은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징과 국가의 역할에 대한 분석이다.

자본주의의 역사적 특징

그는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적 특징을 이렇게 해석한다.

"산업자본의 획기성은 노동력이라는 상품이 생산한 상품을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다시 산다는 자기 재생적 시스템을 형성한 점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교환과정의 틀에서 노동자가 자본에 대항해서 유리한 지점에 설 수 있는 것은 노동자가 상품을 소비하는 유통의 과정이라고 본 것이다. 이는 자본이 강제할 수 없으며 국가가 강요할 수도 없다. 그런 점에서 상호 자율성을 근거로 하는 협동조합식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 자본=네이션=국가의 구조를 넘어설 수 있는 조건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는 개개의 생산과정에서는 예속된다고 하더라도, 소비자로서는 그렇지 않다. 유통과정에서는 역으로 자본은 소비자로서의 노동자에 대해 예속관계에 놓인다. 그렇다면 노동자가 자본에 대항할 때 그것이 곤란한 장이 아니라 자본에 대해 노동자가 우위에 있는 장에서 행하면 된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비자본주의적 경제권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라타니 고진에 따르면 이러한 논리가 전개된다.

"자본은 자기 증식을 할 수 없을 때, 자본이기를 멈춘다. 따라서 언젠가 이윤율이 일반적으로 저하되는 시점에서 자본주의는 끝난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으로 전 사회적인 위기를 분명히 초래할 것이다. 그때 비자본제 경제가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것이 그 충격을 흡수하고 탈 자본주의화를 돕는 일이 될 것이다."

분배 정의와 자본 그리고 국가의 문제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서는 무엇이 문제였는가? 가라타니 고진의 존 롤스에 대한 비판은 이런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

"롤스가 말하는 정의는 분배적 정의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가 가져오는 격차를 국가에 의한 재분배를 통해 해소하는 것이다. 그것은 불평등을 낳는 메커니즘은 손을 대지 않고, 그 결과를 국가에 의해 시정하려는 것이다. 한편 교환적 정의는 격차를 낳는 자본주의 경제를 폐기하자는 사고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 사회는 지독한 격차 사회로 이미 진입해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자본과 국가의 공모결과이며 이는 네이션이라는 국민국가 내부를 분열시키고 있다. 여기서 통합이라는 위기 교정의 화두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며, 이는 진영을 불문하고 복지 정책을 앞세우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행할 주체가 국가로 집중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자본의 문제는 은폐되거나 책임이 물어지고 있지 못하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재분배의 정의를 요구하는 동시에 이를 관철할 강력한 국가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격차 해소를 위한 본질적 접근인 동시에 비자본제적 협동 사회의 구축인데, 이것을 국가를 통해 일거에 해결하려는 욕망이 앞서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비판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국가가 자원을 고도로 집중하고 있는 시스템이니 이를 해결할 책임이 당연히 있다.

국가의 권력이 강화되는 복지 시스템, 그리고 우리의 "도처에서, 동시에"

그러나 가라타니 고진의 논지에 따라 생각해보면, 자본의 작동 방식을 은폐하는 상태에서 재분배의 정의와 강력한 국가가 결합되는 순간 국가의 권력을 전면에 배치하는 보수적 선택이 우위에 서게 될 수밖에 없다. 2012년 대선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결국, 이제 다시 정리해봐야 하는 것은 자본과 국가에 대항해서 노동자를 비롯한 일반 서민이 유리한 지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사회 도처의 지점에서 새로운 균열을 만들어 내도록 해 자유로운 인간의 삶을 위한 정치경제적 조건을 축적해가는 일이다.

서로가 서로를 보살펴 나가면서 그와 동시에 자율적이며 협동적인 인간 사회를 이루어내는 일은 국가에게 맡겨서 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그런 지향과 가치를 가지고 "도처에서, 동시적으로" 진력해나가야만 되는 일일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이 "세계 동시 혁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주제를 내걸면서 동시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것이 올 수 있겠는가"라고 묻고 있다. 맞다. 격차를 낳는 부정의하고 비인간적인 교환 시스템을 폐기하는 노력이 여기저기서 쌓여가야 하고, 바로 그것을 새로운 역사의 주도권으로 만들어가는 부단한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피할 수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현실의 역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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