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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시대, 희망은 있다!

[서리풀 논평] 2013년을 꿈꾸다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매주 한 차례 발표하는 '서리풀 논평'을 동시 게재합니다. (사)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비영리 독립 연구기관으로서,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연구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2013년을 꿈꾸다

곧 새로운 정권이 출발하는 때에 새해를 맞았다. 5년 전에도 비슷한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새로움과 희망을 말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살아가는 날은 계속된다. '멘붕'의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이 더 많음을 잊지 말자. 2013년 이들의 고통은 줄고 행복은 커져야 한다.

당선인이 인수위원회를 구성하고 곧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벌써부터 몇 사람 인사를 두고 아니나 다를까 실망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아직은 애써 조금 더 지켜볼 일이다.

새해, 새 정부가 잘 해나가길 바라기 때문이다. 아직 마음이 내키지 않는 사람도 많겠지만, 적어도 이성적으로는 그런 바람이 마땅하다. 이유는 딱 한 가지, 그래야 어려운 사람이 더 어려워지지 않는다.

새 정부가 국정을 잘 운영하는 데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라도 올 한 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중요하겠다. 첫 번째 초점은 공공성 훼손이다.

새 정부가 건강과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전면적으로 부인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공공은 최소화, 시장은 최대화"라는 이명박 정부의 기조 역시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감시와 비판, 그리고 대안을 가지고 요구하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영리법인 병원, 민영화, 의료 산업과 시장화 등이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그대로일 것이다. 익숙한 문제들이 꼭 같은 또는 새로운 얼굴로 되돌아올 공산이 크다. 정권 재창출은 괜한 말이 아니다.

건강 보장(국민건강보험과 의료급여 모두)의 보장성을 확대하고 강화하는 과제가 그 다음이다. 그나마 이미 내놓은 공약이라도 소홀하지 않도록 눈을 크게 뜨고 잘 지켜보아야 한다. 그러나 벌써부터 긴장과 불화를 각오해야 할 것 같다. 국회에서 예산이 통과되면서 의료 급여 예산이 크게 줄어든 것을 보면 '민생'과 '서민'은 그냥 해보는 말처럼 보인다.

건강을 위협하는 다른 요인들은 변화를 기대하기 더욱 힘들다. 안타깝지만 사정이 더 나빠질 것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른다. 가난과 소득 감소, 실업과 해고, 여러 가지 양극화와 불평등이 그렇다. 선거 과정에서 무엇이라 말했든, 새 정부 역시 비즈니스 '프렌들리' 에 건강 '언프렌들리'를 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새해에 할 일 한 가지는 건강을 나쁘게 만드는 근본적 요인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이다. 민영화와 건강 보장을 넘어, 건강을 악화시키는 '사회적' 요인을 더욱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뉴시스
감시하고 비판하는 일만 해서는 충분치 않다. 새로운 전망을 만들고 변화의 토대를 구축하는, 보기에 따라서는 더 어려운 일이 남아있다. 아니, 이쪽이 더 앞서야 할지도 모른다.

새로운 비전을 만들고 나누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사이 너나 할 것 없이 비전과 전망은 쪼그라들었고 단편적인 대응에 급급했다. 그러나 희망의 동력은 '반(反)' 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수십 년 앞, 전세계를 조망하는 '그랜드 디자인'만 찾을 것은 아니다. 1년이든 5년이든 발걸음을 내디딜 방향이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선거 과정에서 보았듯, 한국에서 건강 문제는 이미 실무와 정책 차원을 넘었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문제가 좋은 예이다. (꼭 그런 표현을 쓴 것은 아니지만) 권리와 비용 부담을 두고 다투는 '보통' 사람들의 논쟁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건강 정책은 전문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이미 정치와 이념의 문제가 되었다.

그러니 더 미룰 수 없다.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정치 공동체를 설득할 수 있는 정책, 제도, 사람, 삶의 모습을 더 명료하고 구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일이 긴요하다. 여기서 명료성과 구체성은 기술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이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 범위에 무슨 치료를 넣으면 얼마나 더 든다는 계산은 일부분일 뿐이다. 어떤 이유로 그만한 부담을 더 하기로 하자는 사회적 동의와 공감대가 앞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다. 무상 의료가 왜 정의인지를 설득해야 한다.

특히 포괄적인 건강 체계(건강 레짐)의 전망을 가다듬는 일을 빼놓을 수 없다. 보건의료를 알 만한 사람이라면 모두가 건강 의제가 치료와 병원, 보험의 범위를 넘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끼리끼리 '의료 너머'를 되뇌는 것은 공허하다. 빈곤과 소득, 노동, 주거를 넘나드는 사회적 요인까지 말하자면 갈 길이 더욱 멀다. 전문적이고 특수한 것이라는 인식을 넘어 건강과 보건의료의 (넓은 의미에서) 사회정치적 본질을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의료를 넘고 건강을 넘어선 자리에서 다시 보건의료와 건강을 봐야 새로운 건강 체계의 틀이 열린다. 2013년 한 해, 차분하지만 뚜렷한 성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전망과 비전을 만들어 가는 일과 함께 할 일이 있다. 작고 큼에 관계없이 변화의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토대란 로베르토 웅거 식으로 말하면 '맥락 보존적'인 활동을 만들고 강화하는 것을 뜻한다(<주체의 각성>(로베르토 웅거 지음, 이재승 옮김, 앨피 펴냄)).

맥락 보존적 활동이란 일상의 실천을 가리킨다. 그러나 일상이라고 해서 보수나 수구, 또는 단순한 개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웅거는 맥락 보존적 실천과 맥락 변혁적 활동의 틈이 가능한 한 좁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조를 바꾸려는 싸움은 구조 안에서 진행되는 실천의 연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변혁은 일상적인 것이 된다. 새로운 대안은 부분적으로는 오늘 이 자리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새해, 변화의 토대를 만든다는 것은 곧 이러한 일상적 실천을 준비하고 시작하는 것을 뜻한다. 맥락 보존적 활동은, 조금 비약하자면, 에른스트 비그포르스가 말하는 '잠정적 유토피아', 에릭 올린 라이트 등이 주장한 '리얼 유토피아'와도 맥이 닿는다.

일상의 삶과 분리되지 않는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요청이다. 더구나 궁극적인 비전의 틀 속에서 일상을 실천하는 것은 더욱 소중하다. 어렵지만 감당해야 할 일이다.

실천의 내용은 건강 불평등과 건강정의, 공공성, 민주적 참여를 중심으로 아우른다. 이들 과제는 공허한 추상이 아니라 현실이고 역사이다. 이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긴 시간동안 온 몸으로 만들어 온 이 시기의 고통과 꿈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새해에는 온갖 삶의 터전에서 구체적인 맥락과 조건에 맞는 실천을 만들어 내자고 제안한다. 가정과 직장, 학교, 동네를 가릴 것 없다. 작고 큼, 높고 낮음, 안과 밖을 나누는 것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 넓어지면 결국 서로 통하고 만날 것으로 믿는다.

더 많이 듣고 공부하고 생각하자. 그리고 더 자주 만나고 토론하며 실천하자. 다른 무엇보다, 깊고 넓은 전망을 가지고 건강 체계(건강 레짐)를 바꿀 실마리를 찾고 '실험'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자면, 담대하게 그리고 새롭게 꿈꾸는 것이야말로 새해 가장 먼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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