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인 에너지 사용량이 늘고 있다. 지금은 전구 하나를 밝히고 라디오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사는 세상이 아니다.
수많은 가전제품의 소음이 집안을 장악한다. 미세한 냉장고 소리, 컴퓨터 하드디스크 구동음, 메시지가 왔다는 스마트폰의 울림 등이 이미 내가 많은 전기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앞으로 통신망을 기본으로 모든 전자 제품을 제어하는 유비쿼터스 도시에 살게 된다면 기본적인 전기 에너지 사용량은 더 늘어날 것이다.
에너지 효율이 좋은 제품이 쏟아져 에너지 사용량이 줄 수도 있지만 효율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안락함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는 제품들도 나올 것이다. 우리는 분명 그런 제품들을 사용할 것이고, 그때마다 일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점점 증가할 것이다.
그 많은 에너지는 어디에서 구해야 할까? 우리가 사용하는 핵에너지와 화석 연료만으로 그 에너지를 충당할 수 있을까? 위험성과 환경 파괴라는 부담을 지면서까지 우리는 그 에너지를 계속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미 두 에너지의 사용량이 지나치게 높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재생 가능 에너지를 찾자!', '대안 에너지가 답이다!' 이런 사실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 <에너지 명령>(헤르만 셰어 지음, 모명숙 옮김, 고즈윈 펴냄). ⓒ고즈윈 |
"순전히 경제학적인 에너지 토론에 관여하는 것은 극히 근시안적이고 미래를 망각하는 시각이다. 이런 에너지 토론은 논쟁을 실제적인 가격 비교의 단순한 형태로 환원한다. 에너지 변화에 결정적인 것은 재생 가능 에너지의 사회적 의미와 시각이다." (329쪽)
그러나 지난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 그 누구도 에너지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아니 토론하지 않았다. 단지 이 추운 겨울, 핵발전소를 가동 못해 블랙아웃을 걱정하는 정부가 "전기를 아껴 쓰자"고 외치고만 있을 뿐이다.
미래에 우리는 어떻게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을까? 검소함과 절약을 익혀 누구나 에너지를 아끼고 소중히 하며 살고 있을까? 아니면 지금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며 살려고 할까? 불행히도 지금 내 대답은 후자에 더 가깝다.
대선 후보들의 슬픈 에너지 공약
지난 18대 대선의 화두는 단연 '경제 민주화'였다. 그러나 각각의 후보마다 내용이 다른 '경제 민주화'라는 용어 때문에 공약의 차별성이 보이지 않았다. 공약에 투표하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에너지 공약 또한 차별성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핵에너지와 화석 연료 의존도가 각각 31퍼센트, 65퍼센트인 상황에서 단번에 에너지 전환을 이끌어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인가 핵 발전에 대해서는 국민의 안전을 고려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짧은 에너지 공약을 통해 보였을 뿐이다. 핵발전소의 위험성이야 누구나 아는 일이니 신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재생 가능 에너지에 있다. 대선 후보들은 재생 가능 에너지 공약은 자신들의 대통령 임기가 끝나고도 한참 후인 2030년쯤으로 미뤄버렸다. 어떤 재생 가능 에너지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지 고민한 흔적도 없었다. 구체성도 결여되어 있었다. 단지 먼 미래에는 재생 가능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만을 읽을 수 있을 뿐이었다.
셰어의 말을 빌려 표현하면 지난 대선 주자들의 재생 에너지 공약은 다음과 같은 행동 양식을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을 주저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그 방향으로 성큼성큼 빨리 나아가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적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또 이런 구실로 시간을 벌어서, 지금까지 해 왔던 것을 가능한 오래 유지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이들은 종래의 에너지 공급 구조를 깨부술 용기가 부족하다. 또 누군가는 에너지 변화를 어떻게 실제로 구현할 수 있을지 방책도 구상도 없다." (14쪽)
대선 후보들의 에너지 공약이 슬픈 가장 큰 이유는 자신들이 끌어나갈 시간 동안 그 누구도 집중적 에너지 공급 정책을 바꿀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너지는 권력이다. 에너지원이 집중되면 권력도 집중될 수밖에 없다. 핵에너지가 매혹적인 이유는 그 에너지가 권력과 함께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방 자치를 얘기하는 대선 후보들은 지방에 더 많은 권한을 주겠다고 약속하면서도 지방 분권에 필수적인 지방세 재원 마련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기존의 정치가 그랬듯 말 잘 듣는 지방 정권을 유지하기 위함일 것이다. 핵에너지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들도 핵이라는 에너지 권력의 매력에 빠진 게 아닐까?
아직까지는 돈이 곧 권력이다. 돈줄을 움켜쥐고 있는 자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에너지 소비가 점점 증가하고, 기존의 전통적 에너지가 점점 부족해지는 미래에는 에너지를 가진 자가 더 강력한 권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핵에너지의 속성이 권력 의지를 반영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박원순 서울 시장님께
절대 왕정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독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우리는 몸소 배워왔다. 지배와 피지배의 사슬을 벗어나는 길은 권력을 분산하는 데 있다.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에너지를 생산하고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에너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기반을 지닐 수 있다.
누구나 에너지를 소유할 수 있는 권한은 자연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는 자연이 제공하는 공기와 물에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내리쬐는 햇빛과, 귓불을 스치는 바람에도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구나 이용 가능한 자연 에너지에도 비용을 지불해야 할까? 그렇다!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최소한 자연 에너지를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 에너지로 바꾸고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비용은 누가 감당해야 할까? 바로 그 에너지를 사용할 우리가 감당해야 한다.
아직은 많은 비용을 감당해야 하기에 기존의 에너지와 재생 가능 에너지의 발전 단가를 비교해 가며 핵에너지가 가장 싼 에너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주 많다. 특히 에너지를 소비할 줄만 아는 대도시 시민들은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값싸고 좋은 에너지원을 당신들이 사는 도시에 놓겠다고 하면 그때부터 사정이 달라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지금은 서울 시장이 된 박원순의 '원순닷컴'을 보면 "송전탑을 보며 에너지의 분권화를 생각한다"는 짧은 글이 있다.
"제가 언젠가 독일을 여행할 때 독일은 전기의 생산을 지역마다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마을 단위로 작은 발전소를 가지고 있기도 하였습니다. 그것은 원거리를 송전함으로써 누전도 방지하고 동시에 발전의 집중으로 인한 사고의 위험도 방지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에너지 분권, 발전의 분산-저 큰 송전탑을 보면서 해 본 생각입니다." ('원순닷컴', 2010년 6월 18일)
서울 시장이 된 지금도 그 생각을 유지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박원순 시장님, 그 많은 송전탑이 어딜 향해 있는지 알고 계시죠? 바로 특별하고도 특별한 서울특별시입니다. 바쁘시겠지만 혹시 서울특별시가 소유한 가장 많은 재생 가능 에너지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셨나요? 바로 똥과 쓰레기입니다. 1000만 시민이 배출하는 똥과 쓰레기로 재생 가능 에너지에 도전해 볼 생각은 없으신가요? 제 상상이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그러나 제가 에너지 분권을 상상하며 자료를 찾을 때 국내에서는 처음 발견한 글이기에, 시장님의 글이 마음에 남아 있어 이렇게 적어봅니다."
그래도 에너지 분권이 답이다
서울특별시만 놓고 보면 에너지 분권은 쓸모없는 개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서울과 경기 일부에 집중된 인구를 분산시키고 균형 있는 지역 발전을 꿈꾸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분산하고 재생 가능 에너지 사용을 늘리는 에너지 분권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새로운 에너지 생산을 위한 입지의 인가권을 얻는다면, 이와 함께 사회적 보상을 배려할 가능성도 생긴다." (252쪽)
최소한 신도시를 개발하거나 도시를 재정비할 때 고려해 볼 만한 사항부터 생각해 보자. 새롭게 짓는 아파트 옥상마다 태양광 설비를 놓는 것은 어떨까? 최소한 공용 전기만이라도 자연으로부터 얻고, 관리비 지출을 줄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미 목포옥암 푸르지오에서 실천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좀 더 나아가 에너지 분권이 더해진 지방 분권 도시를 상상해 본다. 만약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 에너지 값을 할인해 주는 도시가 있다면 당신은 그 도시로 이주할 생각이 있는가? 전기 에너지 사용량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이주를 고민해 볼만하다. 각각의 도시들이 에너지 자립 기반을 갖는다.
도시의 특성에 맞는 재생 가능 에너지를 생산하고 그 에너지원을 기반으로 지방 자치를 실현해 간다. 지방자치단체가 도시에 맞는 에너지 정책을 수립하고 에너지 가격을 결정할 수 있다면, 든든한 에너지 기반을 갖춘 도시에는 당연히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릴 것이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집 앞의 핵에너지와 화석 연료 사용은 지방자치단체 스스로 자제할 것이다.
미래 우리는 이런 도시 광고를 접할 수도 있다.
"우리 ○○시는 시민이 사용하는 에너지 가격을 20퍼센트 인하합니다." "△△시로 오시면, 다른 지역보다 전기료가 10퍼센트 저렴합니다."
에너지 기반을 갖춘 도시가 사람들에게 손짓한다. 에너지 사용량이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도시로 이주해갈 것이다.
이제 18대 대선은 끝났다. 새로운 정부는 에너지 분권이 가능하도록 초석을 마련해야 한다. 핵발전소가 필요하다는 뉴스보다는, 핵발전소가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원이라는 광고보다는, 재생 가능 에너지가 필요한 이유와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를 희망한다.
재생 가능 에너지만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에너지를 충당하기에는 아직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생 가능 에너지 활성화를 꿈꾸는 이유는 지구상 모든 에너지의 근원인 태양이 있기 때문이다. 인류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1만 배 정도의 햇빛이 지구를 비추고 있다. 이 정도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사용할 수만 있다면 인류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있다.
정부가 재생 가능 에너지 개발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과학자에게는 기술 개발을 독려하며, 기업이 재생 가능 에너지의 단가를 낮출 수 있는 길을 찾아 준다면, 대한민국의 재생 가능 에너지 미래도 어둡지만은 않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재생 가능 에너지는 에너지 특성상 핵에너지와 같은 집중 구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에너지 분권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이다. 또 지방 정부에게 에너지 권한을 넘겨줄 때 지속 가능한 지방 자치도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유치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상상도 해본다. "저 푸른 초원 위에 효율 좋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백년 살고 싶어~" 언젠가는 내가 사용하는 에너지를 내 손으로 온전히 생산해 내는 그런 집에서 살고 싶다. 그때가 너무 늦지 않게 찾아오기만을 바랄뿐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