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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탄 당신, 노예! 벗어나려면?

[장석준의 '적록 서재'] 이반 일리치의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생태주의'라고 하면 우리는 으레 '환경 위기'부터 떠올리게 된다. 실제로 20세기 생태주의의 본격적 출발은 산업 문명이 초래한 공해의 충격이었다.

흔히 생태주의의 첫 번째 고전으로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김은령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원서 : 1962년)을 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62년에 나온 이 책은 농업 혁명의 기반인 살충제가 오히려 농업을 파괴하고 뭇 생명을 위협한다는 것을 폭로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 공해에 더해 '에너지 위기'가 부각된다. 석유 가격 폭등이 다른 사회적 요인들과 결합돼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초유의 위기 상황을 낳았고 이 때문에 전후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막을 내렸다. 그 동안 값싼 에너지 사용을 당연시해온 세계인들(특히 제1세계인들)에게는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때맞춰 로마 클럽의 <성장의 한계>(김병순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원서 : 1972년), 제러미 리프킨의 <엔트로피>(이창희 옮김, 세종연구원 펴냄, 원서 : 1980년) 같은 책들이 나와 이런 분위기에 이론적 틀 거리를 제공해주었다.

요즘도 생태주의 서적들은 대체로 이런 위기론으로 시작한다. 최근의 주된 소재는 기후 변화와 석유 생산 정점(Peak Oil)이다. 화석 에너지 남용으로 인한 지구 온난화 그리고 그 화석 에너지 자체의 고갈이 인간 생활양식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물론 21세기를 사는 지구인 중 그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중대한 문제 제기다. 나 역시 이런 생각에 공감한다.

하지만 이것이 생태주의의 전부냐 하면, 그건 아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흐름은 생태주의의 '한' 계보일 뿐이다. 생태주의 안에는 그 발원지가 좀 다른 '또 다른' 계보도 존재한다. 위의 계보가 주로 인간 문명과 그 문명 바깥인 '환경' 혹은 '지구' 사이의 모순에서 출발한다면, 또 다른 계보는 문명 자체의 모순에서 논의를 풀어나간다. 여기에서는 자연의 위기 이전에 이미 깊이 병들어 있는 인간 삶 자체의 위기가 문제다.

논리적으로 극단화한다면, 이 입장에서는 인간 생활양식의 전환은 공해나 에너지 위기가 없더라도 절박하게 필요한 과제다. 할리우드 영화에서처럼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할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동해에서 엄청난 매장량의 유전을 발견할지라도, 문명의 대전환은 시급히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이 흐름에 속한 사상가들은 생태주의 안에서도 더욱 근본적인 입장에 있다고 하겠다.

이 계보의 선구자이자 동시에 대표적 사상가는 이반 일리치다. 국내에서도 1980년대에 운동권 서적깨나 읽었던 분들 중에서는 파울루 프레이리와의 '탈학교 논쟁'(<의식화와 탈학교>(존 L. 엘리아스 지음, 김성재 옮김, 사계절 펴냄, 1984년)이나 <병원이 병을 만든다>(박홍규 옮김, 미토 펴냄) 같은 기서(奇書)를 통해 일리치를 기억하는 이들이 꽤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름은 주체 사상과 마르크스-레닌주의가 한국 운동권을 평정한 이후 더 이상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녹색평론> 같은 예외적 매체를 제외하면 말이다.

도발적 문제 제기자 이반 일리치

이반 일리치의 생애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정보는 1926년에 태어나 2002년에 사망했다는 것, 출생지는 오스트리아 비엔나라는 것 그리고 가톨릭교회 신부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의 삶은 이들 정보에서 유추할 만한 방향과는 오히려 정반대 길로 나아갔다.

비록 중부 유럽 태생이지만 그의 활동 무대는 남북미를 아우르는 광활한 지역이었다. 특히 그의 사상이 탄생한 곳은 사제로 봉직한 남미 푸에르토리코였다. 또 그는 죽을 때까지 신부는 아니었다. 교황청과의 마찰 때문에 1969년 사제직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이 무렵 가톨릭교회는 이미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거쳐 일정하게 혁신한 다음이었지만, 일리치라는 인물은 그 정도의 변화를 넘어서는 그릇이었다.

아직 사제로 활동하던 당시, 일리치는 남미에서 해방 신학이 막 태동하던 현장에 함께 있었다. 저 세상이 아닌 이 세상에서 가난한 이들의 구원을 바란 해방 신학의 초기 문제의식은 고스란히 일리치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해방 신학의 전개 방향과 일리치의 사상 및 실천 역정 사이에는 상당한 각도 차이가 있다. 해방 신학은 그 주된 대화 상대를 마르크스주의로 삼고 이 대화의 창조적 긴장 속에 발전해갔다. 그러나 일리치가 이야기를 나눈 상대는 달랐다.

일리치는 마르크스주의보다는 칼 폴라니에 주목했다. 폴라니는 당시만 해도 아직 극소수 지식인들에게나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었다. 당연히 그의 사상에 대한 이해도 그리 깊지 못했다. 하지만 일리치는 누구보다 먼저 폴라니 사상의 깊이에 육박했다. 그는 여기에서 '경제'라는 물신화된 영역을 '인간의 살림살이'로 다시 사고하고 변형시켜 나가야 한다는 근본 과제를 확인했다. 이 문제의식에서 1970년대 일리치의 빛나는 저작 활동이 시작됐다.

일리치의 대표작들은 대체로 1970년대에 저술되었다. 위에 소개한 <병원이 병을 만든다> 등이 모두 이때 쓰인 저작들이다. 국내에서는 미토 출판사가 '이반 일리치 전집'이라는 이름으로 주로 이 시기 저작들을 번역하여 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요즘 이 시리즈를 서점에서 구하기 힘들다. 대부분 품절 상태다. 안타까운 일이다. 어느 출판사에서라도 다시 내줬으면 좋겠다.

(Ivan Illich 지음, Marion Boyars Publisher) ⓒMarion Boyars Publisher
지금 내가 손에 든 책은 바로 이 '전집'의 한 권으로 나온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라는 책이다(박홍규 옮김, 미토 펴냄). 원서는 1974년에 처음 나왔고, 본래 제목은 'Energy and Equity(에너지와 공정성)'이다. '역자 해설'까지 포함해 150쪽밖에 안 되고 큼지막한 활자에 성긴 편집이어서 한 달음에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단행본보다는 팸플릿에 가까운 느낌이다.

하지만 그 깊이는 보통의 단행본들 이상이다. 일리치의 글 쓰는 스타일이 이렇다. 그는 장황하게 말하지 않는다. 단숨에 핵심을 향해 꽂힌다. 그것은 그만큼 시원하기도 하고 또한 아프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너무도 당연시하는 상식들을 여지없이 깨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는 곤란한 처지로 우릴 내몰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그는 도발적 문제 제기자다. 사정 봐주지 않고 우리를 뒤흔들어 놓는다. 누구든 그의 책을 읽으면 아마 고대인들이 붓다나 예수, 소크라테스 같은 이들에게 느꼈을 법한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에너지 위기가 아니라 삶의 위기다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는 1974년 석유 파동이 한창일 때 나온 책이다. 에너지 위기를 배경으로 멕시코에서 열린 세미나에 제출한 일리치의 보고서를 단행본으로 낸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처음 운을 떼는 주제도 '에너지 위기'다.

그런데 일리치는 통상의 생태주의자들처럼 '에너지 위기'를 강조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그것이 "어떤 모순을 은폐하고 나아가 어떤 환상을 신성화하고 있다"(10쪽)고 비판한다. 어떤 모순인가? "공정성과 산업 발전을 함께 추구하는 것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모순"이다. 어떤 환상인가? "기계의 힘이 인간의 힘을 무제한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믿는 환상"이다.

물론 일리치가 "대량의 에너지 소비"가 "필연적으로 자연 환경을 파괴"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이미 1970년대에도 명백히 드러난 사실이었다. 그가 강조하고자 한 것은 에너지 위기의 이 측면을 강조하면서 정작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보다 근본적인 위험이었다. 그것은 "대량 에너지 소비"가 자연 환경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제 관계도 타락시킨다"(10쪽)는 점이다.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의 주제인 '교통' 문제는 이 점을 선명히 드러내는 한 사례다. 교통은 에너지 남용의 모순이 가장 첨예하게 나타나는 영역이다. 우선 에너지 소비에서 차지하는 총량 자체가 크다. 일리치에 따르면, 1970년대 당시 미국에서는 에너지 총사용량의 최소 25퍼센트, 최대 45퍼센트를 수송에 쏟아 붓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쉽게 실감할 수 있는 지표인 속도의 무제한한 증가로 나타나고 있었다.

오늘날도 교통은 에너지 문제의 아킬레스건이다. 재생 가능 에너지로 화석 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다는 낙관론이 먹히지 않는 게 교통 영역이다. 태양 전지판을 이고 가는 승용차란 석유로 가는 마차만큼이나 시답잖은 농담일 뿐이다. 영국 자본주의의 상징이던 증기 기관차부터 미국 자본주의의 엔진인 개인 승용차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화석 에너지와 운명을 함께 하는 게 다름 아닌 수송 수단이다.

일리치는 인간의 에너지 사용량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어떤 위험에 빠지게 되는지를 교통의 '속도'를 사례로 보여준다. 수송 수단의 속도가 어떤 한계를 초과하면, 사회는 새로운 심각한 문제들에 봉착하게 된다. 그 첫 번째는 공정성의 파괴, 즉 불평등이다.

교통의 속도가 전반적으로 빨라졌다고 해서 만인의 이동 시간이 줄어드는 게 아니다. 대다수 서민들은 속도 증가에 따라 새로운 시간 목표를 강요받고 여기에 억지로 적응하게 된다. 이제 그/그녀는 자신의 두 발로 걷던 거리의 범위를 넘어서 출퇴근해야 하고, 통근 시간에 맞추기 위해 길거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것이 새벽 일찍 일어나 몇 시간이나 교통 체증과 싸우며 일터로 향하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서민들이 이동에 소요하는 시간은 더 늘어나고만 있다. 이동 시간이 단축된 것은 오직 소수 부유층뿐이다. 이들은 엄청난 에너지를 써대며 비행기를 타고 '지구화'를 만끽한다. 일리치는 이렇게 지적한다.

"미국에서 사람들이 노상에서 보내는 모든 시간의 5분의 4는, 비행기를 타는 경우가 결코 없는 통근자와 물건을 사려는 손님들이 보내는 시간이다. 한편 회의나 휴양지에 가기 위하여 이용하는 항공기 비행거리의 5분의 4는, 매년 정해진 인구 중 동일한 1.5퍼센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32쪽)

"수송 산업이 없는 나라에서는 (…) 그 사회의 시간 예산 가운데 교통에 할애하고 있는 것은 겨우 3~8퍼센트에 불과하지만 미국의 경우에는 28퍼센트에 이른다. 부유한 나라의 교통이 가난한 나라의 교통과 다른 점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활시간을 체험하는 속도가 빠르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수송 산업에 의해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대량의 에너지를 더 많은 시간동안 소비하게끔 강제된다는 것이다." (34쪽)

불평등만 늘어나는 게 아니다. 비합리성도 증가한다. 대다수 서민들에게 이동의 총거리가 늘어나고 이동에 걸리는 생활시간의 총합이 증가한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의 사회적 총량이 늘어난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교통의 평균 속도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역설적으로 비효율성과 낭비가 증가하는 것이다. 교통 문제를 에너지 사용 전체로 확대하면, 이것은 곧 에너지 사용량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공정성과 비합리성이 증가하게 된다는 명제가 된다.

근본적 독점 상태 : 마르크스 '사회화'론의 맹목 지점

이쯤 되면, 논의가 '공공 대중교통 확대'로 이어지겠구나, 하고 짐작하게 된다. 이게 좌파의 통상적인 논의 전개였다. 더 빨라진 수송 수단을 공적 소유로 바꿔 민주적으로 운영하자! 그러면 불공정성이나 비합리성을 극복하고 사회 전체의 자유 시간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리치는 여기에 '아니오!'라고 답한다. 물론 그가 공공 대중교통에 반대하면서 개인 승용차 천국을 받아들이자는 것은 아니다. '공공 대중교통'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핵심에서 비껴났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쾌속'의 운수 기관을 모든 사람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교통의 유토피아가 생겨나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생활에 대한 교통의 지배를 더욱 확대하는 것이 될 것이다. (…) 이 어리석은 사람들의 낙원에서는 모든 승객들이 평등하나, 똑같이 평등하게 수송에 사로잡힌 소비자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자동차화된 유토피아의 시민은 각자가 발의 효용을 빼앗기고, 증대되는 수송 기관망의 노예가 될 것이다." (68쪽)

여기에서 일리치가 에너지 과소비 체제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생각한 게 드러난다. 그것은 자율성의 침해다. 인간의 독자적인 활동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줄어들고 그것을 산업이 지배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일리치는 '근본적 독점' 상태라 규정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일리치 사상의 핵심과 마주하게 된다. 길지만, 그의 문장을 직접 인용해 보겠다.

"자연스러운 이동력에 대한 수송 산업의 이러한 지배가 낳은 독점은, 포드가 자동차 시장에 대하여 획득하는 상업적 독점이나, 자동차 제조 회사가 전차와 버스의 발전에 대항하여 행사하는 정치적 독점 따위보다도 훨씬 침투력이 강하다. 이 독점은 음성적이고 밑바닥에 거점을 구축하여 구조화하는 성격을 갖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근본적 독점'이라고 부르고 싶다. 여러 욕구는 과거에는 개인적 대응에 의해 처리되었으나, 산업이 그 욕구를 충족시키는 강력한 수단이 되면, 그것은 지금 서술한 뿌리 깊은 독점을 행사하는 것이다.

에너지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상품(자동차화된 수송)의 강제적인 소비는, 풍부한 사용 가치(본래의 자율적 이동 능력)를 향수하기 위한 여러 조건을 제약한다. 여기서 교통은 일반적인 경제 법칙의 보기가 된다. 곧 '산업적 생산물은 어떤 것이라도 1인당 사용량이 일정 한도를 넘어서면 욕구의 충족에 대하여 근본적 독점을 발휘한다'고 하는 법칙의 범례가 된다." (63쪽)


바로 이 지점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일리치의 생태주의 사상이 극명히 갈라진다. 카를 마르크스라면, 동일한 사태를 두고 "생산의 사회화"가 극도로 진전된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라면, 이 사태 자체를 문제시하기보다는 이러한 생산의 사회화와 사적 소유 사이에 발생하는 모순에 주의를 환기시킬 것이다. 이 경우 필요한 것은 사적 소유를 철폐해 생산의 사회화에 조응하는 사회적 소유 체제를 구축하는 혁명이다.

그러나 이러한 처방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지난 150년 동안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한 번도 이 처방이 실현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환기해 보자. 마땅히 이 혁명의 주역이어야 할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이런 혁명을 진지하게 시도해본 적이 없다. 왜 그랬을까? 마르크스주의와 대별되는 일리치의 시대 인식은 이 물음에 일말의 단서를 제공한다.

일리치는 '생산의 사회화'의 동전 반대 면은 '근본적 독점'이며 이것은 대중의 삶의 자율성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뜻한다고 지적한다. <공산당 선언>의 저자들에게 혁명의 목표는 '자유인의 연합'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즉, '자유'의 감각을 어렴풋하게라도 지닌 이들이 자본과 국가에 맞서 그것을 전면적으로 확대해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근본적 독점'은 '자유'의 감각 자체를 질식시킨다. 이것은 자본과 국가에 대해 비판과 저항의 거리를 확보한 대중운동이 등장하는 것을 차단한다.

즉 마르크스주의가 낙관적으로 바라본 생산력 발전의 이면에는 대중이 그 새 주인으로 등장하는 것을 가로막는 어두운 힘이 작동한다. 이 힘은 대중의 삶의 자율성을 파괴하는데, 기실 이러한 자율성 없이는 혁명도 없다. 어쩌면 이것이 지난 한 세기 동안 서구 자본주의 역사가 보여준 기본 논리 아니었을까.

그럼, 일리치의 대안은 무엇인가? '탈학교' 논쟁에서 보여준 그의 고집스런 입장(학교 '제도'의 부정)이나 말년에 암 치료를 거부한 일화를 얼핏 아는 이들은 그의 대안을 일종의 반(反)과학주의, 전근대-회귀주의로 오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일면적' 이해다. 그는 훨씬 복잡한 사유를 전개한 사상가다.

일리치는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에서 "과잉 산업화"가 문제일 뿐만 아니라 "저설비" 역시 극복해야 할 상태라고 단언한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과잉 산업화'가 "인간을 자신들이 숭배하는 도구의 노예로 만든다"면, '저발전'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저설비' 국면 역시 "인간이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원시적인 상태에 몰아 넣는다". 일리치가 제시하는 대안은 "기술적인 성숙" 상태다(98쪽).

"각 시민에게 자전거 1대를 할당할 수 없고, 또는 타인을 자전거로 운반하고 싶은 사람에게 5단계의 변속기를 공급할 수 없는 나라는 저설비의 나라로 분류될 수 있다. (…) 사회생활이 수송 산업에 의해 지배되고 그 산업이 계급적 특권을 결정하며 시간의 결핍을 강요하고, 산업이 부설한 제도에 국민을 더욱 묶어 두고자 한다면 그 나라는 과잉 산업화된 나라로 분류될 수 있다.

저설비나 과잉 산업화의 세계와는 별도로 탈산업적인 효율을 갖춘 세계를 위한 여지가 있다. 그곳에서는 산업적인 생산 양식이 다른 자율적인 생산 양식을 보충한다. 달리 말하자면 기술이 성숙된 세계를 위한 장소가 있는 것이다. 교통의 면에서 그것은 자전거를 타는 것에 의해 일상의 행동 범위를 3배로 넓히는 사람들의 세계이다." (96~97쪽)


더 많은 생산력이 아니라 민중이 생산력의 고삐를 쥐는 사회를!

교통 문제를 사례 삼아 논의를 출발한 일리치는 저설비와 과잉 산업화 사이의 대안으로 '자전거'를 제시한다. 자전거, 너무도 간단한 도구다. 하지만 우습게보지 마시라. 자전거를 구성하는 기술의 골격은 자동차와 다르지 않다. 일리치는 자전거와 자동차 모두 볼베어링 기술 혁명의 산물임을 지적한다. 같은 기술 발전 단계 안의 두 선택지인 것이다.

동일한 기술 수준을 전제하면서도 자전거가 자동차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그것이 인간의 자력(自力)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화석 에너지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이 두 다리에만 의존했을 때보다 몇 배의 활동력을 갖도록 해준다. 근본적 독점의 덫에 빠뜨리지 않으면서 대중의 삶의 자율성을 지키고 강화해주는 탈것인 셈이다. 그래서 이 책의 국역본 제목도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이다.

그렇다고 일리치의 대안이 고작 이재오, 유인촌, 오세훈 유의 자전거 광(狂)이 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전거'는 어쩌면 상징이다. 저설비와 과잉 산업화 사이의 미묘한 균형점, 즉 '사회적인 최적의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을 결정하고 이에 따라 사회 전체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는 과제의 상징이다.

일리치는 이러한 에너지 정량은 대중이 직접 참여하여 결정할 수밖에 없다고 못 박는다. 기존 체제의 불평등과 비합리성에 똬리를 틀던 기득권 세력, 엘리트 지배자들에게 결정을 맡겨둔다면, 100년이 가도 변화는 없다. 민중 자신만이 누가 길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지 결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결정들에 바탕을 둬야만 참여 민주주의 역시 강화된다. 자동차가 아니라 자전거를 선택한 민중만이 거리를 정치의 공간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일리치의 정식화에 따르면, "참여 민주주의는 저(低)에너지 기술을 요구한다. (역으로) 오직 참여 민주주의만이 합리적인 기술을 위한 조건을 만들어낼 수 있다."(14쪽)

시장이나 관료 기구가 아니라 대중이 직접 참여하는 정치 과정을 통해 한 사회의 살림살이를 짜나가야 한다는 구상, 이것은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이상과도 만난다. 하지만 커다란 근본적 차이가 있다.

비록 마르크스 자신의 사유에는 많은 머뭇거림이 존재하지만(이것만을 주제로 삼은 책이 존 벨라미 포스터의 <마르크스의 생태학>(이범웅 옮김, 인간사랑 펴냄)일 것이다), 결국 그 큰 줄기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자본주의가 풀어놓은 생산력을 이어받아 (이제는 사적 소유의 제한을 받지 않고) 더욱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이었다. "혁명은 역사의 기관차"라는 마르크스의 언명에서 다른 어떤 인상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일리치에게 '해방된 민중'의 과업은 차라리 기관차의 폭주를 일단 정지시키는 것이다. 생산력 발전을 그 끝까지 몰아붙이는 게 아니라 그것을 선별하거나 조절, 제어하는 일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좋은 삶을 살 수 있게 해줄 생산력 발전의 적정 수준이 무엇인지 숙고하고 이런 집단적 판단에 따라 고삐를 채우는 일이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혁명은 (역사의 기관차가 아니라) 역사라는 자전거의 페달 밟기"다.

이 새로운 해방관에 완전히 전향한 사람이 일리치와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 출신인 당대의 뛰어난 마르크스주의자 앙드레 고르였다. 그는 일리치라는 문을 통해 생태주의를 받아들였고, 생태 사회주의라는 비옥한 대지를 일구기 시작했다. 그의 대표작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이현웅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은, 감히 단순화해 말하면, 일리치의 문제 제기에 대한 전(前)-마르크스주의자의 웅대한 화답이었다.

지금 한국의 전(前)-진보파들은 "잘 살아보세"라는 40여 년 전 구호의 역습과 그 압도적 승리에 당황해 있다. 이 상황에서, 민주주의 혁명의 깃발을 결코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들이 마주해야 할 것은 "잘 살아보세"의 저 "잘 산다"는 말을 곱씹어보는 일이다. "잘 산다"는 것의 참뜻이 무엇이며 혹시 우리가 이제까지 그 박정희식 의미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한다.

어떤 현대인보다도 먼저, 그리고 더 깊이 이 "잘 사는 것"의 참뜻을 캐물었던 사람이 다름 아닌 이반 일리치다. 우리가 지금 뒤늦게, 하지만 더없이 시의 적절하게 그를 다시 읽고 더불어 대화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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