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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부, 감옥에 열두 번 갇힌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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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부, 감옥에 열두 번 갇힌 이유는?

[마녀의 '도서관 편지'] '여성' 정치를 찾아서

정치를 회의하던 젊은 그녀들에게

편지를 쓰려고 펜을 들긴 했으나 수신인을 쓰는 것부터 고민이 됩니다. 우연히 찻집에서 당신들을 어깨 너머로 봤을 뿐, 어디 사는 누군지 말 한마디 나눈 적 없는 생면부지의 인연이니까요.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겠다는 건 아줌마 특유의 오지랖이 분명합니다. 낯선 아가씨의 치마에 붙은 실밥을 떼어주거나 묻지도 않은 길을 가르쳐준다고 나서서 길손을 놀라게 하는 오지랖 때문에 여러 번 눈총을 받았음에도 또 이렇게 편지를 쓴다고 나섰으니…. 하지만 그냥 넘기기엔 그날 찻집에서 들은 당신들의 말이 너무 쟁쟁합니다.

당신들 넷이 우르르 내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을 때 솔직히 달갑지 않았습니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데 셋도 아니고 무려 넷이나! 약속 시간 전에 읽던 책을 끝내려던 나로선 괴로운 일이었지요. 그런데 공연한 걱정이었습니다. 모두들 자분자분 얘기를 하니까 여간 귀를 열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 어려울 정도였지요. 처음엔 좋았습니다. 한데 어느 순간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안철수, 문재인, 박근혜, 익숙한 이름들이 들리는 순간 눈앞의 책은 저리 가고, 접시가 깨질 만큼 크게 말했으면 싶더군요. 20대 중후반쯤, 당신들처럼 젊은 여성들이 정치를 화제 삼아 이야기하는 걸 근자에 본 적이 없는지라 부쩍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투표 할 거니? 난 고민이야. 찍고 싶은 사람이 없어.
난 안 할 거야. 지난번에도 안 했어.
그래도 해야 하지 않을까? 안 하면 찜찜한데….
기권도 선택이다. 투표 한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누가 되든 똑같아.
난 정치에 관심 없어. 정치란 게 원래 더럽잖아.
여자는 좀 다르지 않을까? 여자는 아무래도 깨끗하고 권력욕이 없으니까 대통령이 되면 바뀔지도 몰라.


정교한 논리나 강력한 근거로 무장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당신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나는 깊이 공감했습니다. 정치는 중요하고 여성에게는 더욱 중요하며 이 세상에 정치적이지 않은 건 없다고 믿는 나지만, 야권 단일화 과정이나 진보 진영의 사분오열을 지켜보며 과연 투표를 하는 게 의미가 있는지, 한다면 누구를 찍어야 할지, 모든 게 오리무중이었던 터라 당신들과 고민을 나누고 싶더군요.

그래서 늦었지만 당신들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당신들의 나이를 이미 지난 선배로서 한 수 가르치고 훈수 두려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시대 같은 땅에서 남녀평등지수 세계 108위(135개국 중)의 차별을 견디며 사는 여성 동료로서, 투표를 꼭 해야 하는지부터 지금 이곳에 필요한 정치는 무엇인지까지 함께 짚어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면 누구를 찍거나 찍지 말아야 할지도 알게 되겠지요.

당신들은 정치인은 다 똑같다고 했습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니 어느 당의 누가 되든 바뀔 건 없다고요. 많은 이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정치판은 더러운 곳이며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나 다를 것이 없다고, 어느 정부에서나 먹고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인데 투표는 해서 뭐하냐고. 맞는 말입니다. 권력형 비리는 어느 정권에서나 있었고, 부패한 정치인은 여야를 가리지 않으며, 재벌의 위법 행위엔 눈치만 보면서 노동자 파업엔 공권력부터 동원하는 관행은 어느 정부에서나 한결같았습니다. 투표 무용론, 정권 교체 무용론이 나올 만하지요.

▲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제임스 길리건 지음, 이희재 옮김, 교양인 펴냄). ⓒ교양인
하지만 미국의 정신의학자 제임스 길리건이 쓴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이희재 옮김, 교양인 펴냄)를 읽으니 생각이 좀 달라집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엔 나 역시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그렇듯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도 별 다를 게 없다고 여겼습니다. 한데 길리건이 제시한 자료들을 보니 그렇게 쉽게 말할 일이 아니더군요. 그는 1900년에서 2007년까지 100여 년간의 통계를 통해, 자살률과 살인율 모두 공화당이 집권한 59년 동안은 상승하고 민주당이 집권한 48년 동안은 하락했으며, 실업률도 공화당 정부 때 증가하고 민주당 때 감소했으며, 경제 불평등을 드러내는 80/20소득 비율 또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공화당 대통령 때 늘어나고 민주당 대통령(지미 카터만 빼고) 때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많은 이들에게 본질적으로 똑같다고 비판받는 공화당과 민주당조차 현실 정치에서는 수만 명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큰 차이를 드러낸 것이지요. (본질부터 다른 정당이라면 더 큰 차이를 만들지도 모릅니다.) 사정이 이렇다면 원칙과 최선을 앞세워 정치인들은 다 같다거나 정치가 무슨 소용이냐고 말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그보다는 성에 차지 않더라도 주어진 한 표를 행사해서 작은 변화라도 만들어내는 것이 좋겠지요. 더구나 당신들과 내게 주어진 그 한 표는 수많은 여성들이 100년 넘게 목숨 걸고 싸워서 얻은 것. 감옥에 끌려가고, 폭탄을 투척하고, 쇠사슬로 자신의 몸을 묶고, 달리는 경주마 아래 몸을 던져가며 얻은 것이니까요.

비록 우리 할머니들도 1898년에 이미 여성 참정권을 천명하고 독립 투쟁에 헌신하며 자신의 권리 확보를 위해 애쓰긴 했지만, 여성의 독자적 정치 운동이 미약한 상태에서 미국의 영향으로 쉽게 권리를 얻은 탓인지 한국의 여성들은 자신이 누리는 평등이 얼마나 큰 희생과 투쟁의 결과물인지 종종 잊는 것 같습니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여성들이 낙태, 피임, 남녀평등임금 지원법 등에서 여성 편에 선 버락 오바마를 자신들의 힘으로 당선시켜 (여성 53퍼센트가 투표하여 55퍼센트가 오바마를 지지했고, 특히 미혼 여성은 67퍼센트나 몰표를 줬지요) 확실한 정치적 역량을 과시한 것과는 퍽 다른 모습이지요.

그러므로 이제는 투표장에 가는 데에서 나아가 여성으로서 어떤 투표를 할 것인지, 누구를 찍을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여성 후보가 전례 없이 많은 데다 여성 대통령론을 주장하는 후보도 있으니 여성 대통령을 뽑으면 되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마거릿 대처가 온몸으로 보여주었듯이, 타고난 성이 여성이라 해서 그녀가 하는 정치가 여성의 정치인 것은 아니지요. 그럼 무엇이 여성이 바라고 요구하는 여성의 정치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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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속과 과속의 부조화, 페미니즘>(사빈 보지오-발라시 외 지음, 유재명 옮김, 부키 펴냄). ⓒ부키
그 답을 찾아 일주일 넘게 도서관 서가를 뒤졌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역사학자 사라 에번스의 <자유를 위한 탄생-미국 여성의 역사>(조지형 옮김, 이화여대출판부 펴냄), 조르주 뒤비 등 여러 역사학자들이 함께 쓴 <여성의 역사 4>(권기돈 외 옮김, 새물결 펴냄), 사빈 보지오-발라시 등이 공저한 <저속과 과속의 부조화, 페미니즘>(유재명 옮김, 부키 펴냄)을 부지런히 섭렵했습니다. 다행히 이 책들에 드러난 근현대 여성의 역사를 보니 알 것 같더군요. 부유하고 화목한 집안의 주부였던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무려 12번이나 감옥에 갇히고 단식 투쟁을 하면서 죽는 날까지 참정권을 주장한 것은 단지 남성과 똑같은 권력을 누리며 똑같은 정치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음을.

그저 남성처럼 대접받으며 살고 싶었다면,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 여성들이 맨 먼저 베르사유로 돌진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미국 독립 전쟁의 선봉에서 영국군을 막다가 화형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30여 년간 흑인 노예와 연대해 노예 해방을 위해 싸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제1차 세계 대전의 광풍 속에서 창당한 미국 여성 평화당에 무려 2만5000명이나 되는 여성이 참여해 반전을 외치는 일도, 최초의 여성 하원의원 재닛 랜킨이 1917년의 선전포고에 반대표를 던지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역사는 그녀들이 여성뿐 아니라 모든 인간이 자유와 평등과 평화를 누리는 세상을 위해 싸웠으며, 그런 세상을 만드는 정치를 꿈꿨음을 보여줍니다. 100년 넘게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요구하며 싸운 것은, 성장이란 이름으로 경제 불평등을 옹호하고, 안보를 내세워 사상을 통제하고, 기득권 세력과 결탁해 권력을 누리는 구태 정치를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120년 전 여점원들의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백화점과 싸웠던 부유한 여성 고객들처럼, 50여 년 전 냉전에 반대하여 "인도적 경쟁이 아닌 군비 경쟁은 중단하라!"고 외치며 행진했던 5만여 명의 여성들처럼, 연대와 평화의 정신으로 세상을 이끌기 위해서이지요.

여성이든 남성이든 새로 대통령이 되어 국정을 맡은 이가 해야 할 정치는 바로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유권자로서 내가 격려하고 요구하고 지원해야 할 정치도 바로 그것이고요. 그러므로 나는 12월 19일 아침 일찍 일어나 투표장에 갈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와 평등과 평화의 세상을 위해 애써왔던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입니다. 그럴 듯한 미래를 약속하는 말이 아니라 지금 내가 누리는 한 줌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기꺼이 헌신했던 삶에 투표할 것입니다. 정치는 결국 삶이니까요.

이제 장황하게 이어온 이 편지도 끝낼 때가 되었습니다. 당차고 아름다운 당신들 덕분에 머리에 쥐가 나도록 책을 읽고 고민하며, 헝클어졌던 내 생각을 돌아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부디 내가 쓴 이 중언부언이 당신들의 선택에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었기를, 그리하여 우리들의 선택이 모두 함께 웃는 새해를 가져올 수 있기를!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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