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저축은행 사태와 고위직 인사 불이익 등 이명박 정부 하에서 '당한' 게 많은 부산의 표심은 신공항의 향배에 따라 출렁일 조짐이다. 현재 부산의 부동층은 10퍼센트를 훌쩍 넘는다. 부산의 유권자수가 290만여 명인 것을 감안하면 30만 표 이상이 아직 오리무중이라는 이야기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지난달 30일 부산을 찾아 "부산 시민이 바라고 계신 신공항, 반드시 건설하겠다는 약속을 드리겠다"고 했다. 듣기에 따라선 박 후보가 신공항을 부산에 주겠다는 공약을 내건 것처럼 들린다. 서병수 사무총장 등 부산에 지역구를 둔 새누리당 의원들도 신공항의 가덕도 유치를 기정사실화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지역 언론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박근혜, 새누리당의 '신공항 꼼수'
지역 언론은 물론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까지 박 후보의 발언에 의구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박 후보가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거쳐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부산 가덕도가 최고 입지라면"이라는 전제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다. 즉 '객관적 평가'를 통해 대구·경북이 미는 밀양이 최적지로 결론이 난다면 밀양에 신공항을 건설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부산 지역에서는 "PK와 TK 표심을 동시에 얻기 위해 절묘하게 줄타기" 하는 것이라며 '립서비스' 아니냐는 반응이 많다. 실상 이 발언 직후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도 "신공항 입지는 객관적 조사 뒤에 결정된다. 입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못을 박았다. 결국 부산의 한 언론은 "새누리당이 부산 가덕도 신공항을 놓고 '교묘한 말'로 유권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쓰기에 이르렀다. "이명박 대통령도 후보 시절 신공항을 추진한다고 해놓고도 안 했는데, 이런 애매한 표현을 어떻게 믿느냐"는 것이다.
사실 지난달 22일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격렬하게 반대해 온 대구·경북 지역의 시민·사회단체 '남부권신공항범시도민추진위원회'가 국회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가덕도 신공항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자 민주당 부산 선대위는 긴장했다고 한다. 부산의 선거판이 요동치는 것을 차단하려는 새누리당이 어차피 박 후보에 대한 충성에 변함이 없을 TK의 양해를 구하고 가덕도 신공항을 공약화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만약 박 후보가 이를 공약으로 내 걸 경우 부산 사람들은 "박근혜가 TK를 뒤로 물리면서까지 부산을 챙겨주려 하는구나"라고 감동하며 박 후보 쪽으로 완전히 넘어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 후보가 교묘한 줄타기 발언을 하고 새누리당은 곧이어 입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못을 박는 모양새를 종합해 보면 이들 머릿속에 '가덕도 신공항'은 없는 듯하다. 특히 대구·경북 시민·사회단체가 신공항은 "반드시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전문가의 입지 선정 결과에 대해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을 보면 박 후보와 새누리당, 그리고 TK 간엔 모종의 '꼼수'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 가덕도 신공항 조감도. ⓒblog.naver.com/dragoner |
재주는 부산이 부렸는데 돈은 TK가?
동남권(부산·울산·경남) 신공항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부산시가 곧 포화 상태에 이를 김해공항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정부에 건의하면서 시작된, 부산의 숙원 사업이다. 2003년엔 부산의 상공인들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게 김해공항 이전을 건의해 노 당선자가 검토를 지시하게 된다. 이후 부산·경남의 복합 물류 체계의 완성을 위해 부산신항이 들어선 강서구 가덕도 지역이 추천됐으니 이는 완전무결한 부산의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2007년 이명박 후보가 영남에 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대통령이 된 2008년 대구를 방문해 "대구·경북 지역이 이제 하늘이 열리고 (…) 경쟁력 있는 도시로 변하게 될 것"이라며 TK 지역에 신공항 건설을 거의 기정사실화하다시피 했다. 한국 사회 보수 기득권 세력의 거점인 TK 그리고 현 정부의 젖줄인 '영포 라인'이 끼어든 것이다. 이후 명칭도 '동남권'에서 '영남권' 신공항으로 바뀌게 되고 갑자기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밀양이 유력 입지로 떠오르게 된다. 부산이 추진했던 사업인데 이게 가시화 되는 와중에 TK 쪽이 권력을 잡으니 낚아채려 한 것이다. 이후 대구와 부산이 말 그대로 피터지게 싸우게 된다.
결국 부담을 느낀 이명박 정부는 2011년 4월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발표한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가 백지화 대신 결국 한 곳을 선택했더라면 그것은 과연 어디였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명박과 이상득이 버티고 있고 박근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당시 집권 세력이 부산에 줬을 리는 만무하다. 다만 너무 속보여서, 특히 부산의 민심 이반에 부담을 느껴서 할 수 없이 미뤘을 뿐이다.
사실 입지 조건으로는 가덕도와 밀양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문재인 후보는 "확장 가능성에서 부산 가덕도가 적절한 것 같다"고 했다. 안철수 전 후보도 "항공 수요와 배후 산업 단지, 국제적 접근성 등 합리적 기준에서 따져보면 객관적으로 답은 이미 나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부산이 고향인 사람들의 편파적 판단일까. 아니다. 최근 새누리당 관계자는 "수개월간 검토했으나 (밀양처럼) 산을 깎아서 대형 공항을 만드는 나라는 없는 것 같다"고 실토하기까지 했다. 거기에 철도와 항만을 연계한 복합 물류 기능이나 산업과의 연계, 소음 문제, 환경 파괴 등까지 종합해 보면 가덕도와 밀양은 애초에 비교 대상이 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후보는 밀양과 가덕도를 (적어도) 동동한 입지 후보지로 보고 있을까. 그간의 진행 과정을 보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지난 총선 직전 박 후보는 대구시장과 지역 국회의원들을 만나 밀양에 신공항 유치를 다짐했다. 그리고 그 당위성을 위해 충청, 호남까지 아우른다는 모양새를 내려고 그 명칭을 이번엔 '남부권' 신공항으로 다시 한 번 바꾼다.
'TK 식민지' 부산의 박근혜 사랑 : 우리가 거덜 날 때까지?
부산·경남은 원래 전통적 야도(野都)였을 뿐 아니라 부마 항쟁을 통해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의 유신 독재를 무너뜨린 저항의 도시였다. 그러나 1990년 김영삼이 노태우, 김종필과 '3당 야합'이라 불리는 3당 합당을 하면서 TK와 함께 '영남'으로 묶이게 됐고 곧 보수의 본거지로 변신한다. 이후 신한국당, 한나라당, 그리고 지금의 새누리당에 몰표를 주는 '묻지 마 투표'의 대표적 지역이 돼버렸다. TK 못지않은 새누리당 표밭이다.
그 결과는? 400만에 육박하던 인구가 지난 10여 년간 350만으로 줄었다. 세계 어디에 10여년 만에 인구가 10퍼센트 이상 줄어든 도시가 또 어디 있을까. 산업도 다 빠져나가 일자리가 없고 그러니 젊은 사람들이 떠나는 바람에 도시 노령화가 전국 최고다. 자살률은 세계 최고다.
그래도 부산은 변치 않고 새누리당에 표를 준다. 사실 전통적 보수 기득권 세력인 대구·경북의 새누리당 몰표나 독재 정권의 핍박을 받은 호남의 민주당 몰표는 이해가 되지만 이도저도 아닌 부산·경남의 새누리당 몰표는 한마디로 비상식이고 보기에도 안쓰럽다.
이제까지 부산의 새누리당 몰표는 한마디로 '퍼주기'였다. 다 퍼줬다. 바닥에 구멍이 나게 퍼줬다. 자존심도 없다. 그쪽 사람들이 부산 등 경남 지역을 '남(南)도'가 아니라 '하(下)도'라 부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쪽을 같은 편, 같은 '영남'으로 착각하고 지냈다. 결국 얻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부산은 지금 신공항마저 또 퍼주려 한다. 이번에도 그들은 선거 때가 되니까 교묘한 줄타기 발언으로 먹을 것 줄 것처럼 하다가 표만 얻고 뒤로 빼돌리려 하고 있다. 원래 부산 것이었는데 말이다.
부산 사람들의 새누리당 지지세가 과거완 다르다고 하지만 박근혜에 대한 충성도는 변함이 없다. 야권이 2010년 부산 시장 선거에서 44퍼센트, 올해 총선에서 41퍼센트를 얻었다고 하는데 지금 새누리당은 이를 40퍼센트 밑으로 잡아두면 '박근혜 대통령'이 확실하다고 보고 있다. 맞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TK 식민지 부산'은 또다시 5년 연장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