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참치, 꽁치, 돌고래가 물귀신 옆으로 모여든다. 그리고 이들은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해상 투쟁이다. 난데없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지 얼른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제주도 강정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구럼비 바위의 폭파가 예정되자 평화 운동가들은 집결했고,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무장 경찰의 폭력 진압과 도로 봉쇄로 육로가 막히자, 평화 운동가들 사이에서 바다를 가로지르는 진입 작전이 제안되었다. 해상 준설공사를 하는 바지선과 구럼비 발파 저지를 위한 계획이 세워진 것이다.
여기서 "물귀신"은 송강호의 별명이고, 오징어를 비롯한 바다 어종의 이름은 모두 물속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마린 보이들이다. 그렇게 해서 짜여진 해상 투쟁 팀은 제주 강정 마을의 평화 운동을 한 단계 위로 올려놓았고, 송강호라는 존재를 우뚝 서게 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실천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신학자가 이런 일을 벌이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쟁과 재난의 자리에서
그러나 그의 족적을 살펴보면 그것은 필연적 경로다. 르완다, 보스니아, 소말리아, 동티모르, 아프가니스탄, 반다아체, 카슈미르, 그리고 아이티 등에서 그는 전쟁과 재난의 현장이 겪는 고통을 함께 해온 사나이다. 그가 옮기는 발걸음마다 생명과 평화에 대한 갈망이 깊게 스며있고, 그가 겪는 위험의 순간순간 도리어 평화의 힘은 자라났다. 그리고 어느새 그의 몸은 강정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송강호는 제주도 강정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에 대해 이렇게 그 유기적 의미를 짚어낸다.
"우리의 싸움이 제주 해군기지 건설 사업단과의 싸움이 아니라 전쟁을 일으켜 권력과 부를 사취하는 군산복합체와의 싸움이요, 이는 전국에서 또 전 세계에서 수만은 동지들이 싸우고 있는 거대한 싸움의 일부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강정의 싸움은 평택의 싸움과 연계되어 있고, 오키나와와 디에고가르시아(영국령 도서로 미국의 군사 기지가 있는 인도양의 섬), 남사군도의 군사 요새화와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정확한 파악이다. 강대국의 전쟁 체제가 얽어놓은 거대한 군사 기지의 지구적 그물망의 하나로 제주도 강정의 해군 기지의 의미를 읽어내지 않으면 우리는 제주도 강정 주민들의 투쟁이 가지고 있는 시대적 가치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게 된다.
군사 기지의 지구적 그물망
▲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송강호 지음, IVP 펴냄). ⓒIVP |
"미국과 중국, 일본과 같은 강대국들은 태평양과 인도양, 남지나해 등지의 많은 섬들을 군사 기지로 만들려고 한다. 섬은 고립되어 있는데다가 주민들이 적어서 정당한 권리를 빼앗거나 강제로 쫓아내도 국제 사회의 큰 주목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송강호는 이런 제주도 강정 마을 주민들의 목소리가 되고, 몸짓이 되고 노래가 되고 행진이 되어갔다. 그를 강정에 휘말리게 한 것은 영화평론가 양윤모였다. 양윤모 역시 강정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에 나서면서 옥고를 치룬 인물이다. 그는 옥중에서 42일간의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구속되기 전까지 3년간 구럼비 바위 위에서 천막을 치고 그곳을 중덕사라고 이름 짓고 살았다. 송강호는 그 중덕사의 후계자가 된 셈이었다.
구럼비 바위는…
그렇다면 이 구럼비 바위란 어떤 것인가?
"구럼비 바위는 제주도 어디에나 있는 흔하디흔한 여느 바위와는 전혀 다르다. 구럼비 바위는 너비가 1.2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통바위로, 깊은 바위 밑에서 용천수가 솟아나와 지친 이들의 샘물이 되고 해수와 만나 천연 풀장과도 같은 멋진 물웅덩이를 만들어 낸다. 구릿빛 얼굴의 해녀들은 이 천혜의 물웅덩이에서 하루치 고된 노동에 지친 몸을 씻어낸다. 이 물웅덩이는 민물습지여서 멸종 위기 보호 대상 양생 동식물들인 붉은발말똥게, 제주새뱅이 등 뭇 생명들을 품고 있는 생명의 바위이기도 하다."
이 구럼비 바위가 폭파 대상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2005년 노무현 정부의 해군기지 건설 결정이 그 출발점이 된다. 2007년, 강정 마을의 동의를 얻는다는 명분 아래 당시 마을회장이 불과 87명의 주민 동의를 박수로 끝냈고, 이에 분노한 주민들은 마을 회장을 해임하고 전체 주민 투표 연령 구성원 1050명 정도에서 725명이 참가해 680명, 그러니까 94퍼센트가 해군 기지 반대를 결의했다. 그러나 해군은 공사를 강행하기 시작했고, 강정 마을의 비극은 4.3제주항쟁의 역사와 겹치면서 제주도의 가슴에 못질을 해댔다.
송강호의 고통, 제주 강정의 비극
송강호는 이 평화 운동의 과정에서 차와 아스팔트 사이에 끼어 이가 부러지는 고통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연행 과정에서 경찰에게 폭행을 당한다.
"나는 부당한 체포 연행에 맞서 승차에 저항했고, 그 과정에서 나를 무리하게 차에 집어넣으려다가 몸이 거꾸로 차문 밑에 놓이게 되었다. 상체가 차의 바닥에 떨어지게 되어 손에 잡히는 차체를 당기다 보니 상체는 점점 차 바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경찰 여러 명이 다리를 붙잡고 잡아 당겨서 머리가 차와 아스팔트 바닥 사이에 끼었다. 나는 비명을 질렀으나 경찰은 아랑곳없이 더 세게 다리를 잡아당겼다. 목에서 턱까지 차체 하단의 철 구조물에 걸려 있는데다가 하체는 여러 사람이 잡아당겼고, 나는 격하게 신음소리를 뱉어냈다. 경찰들이 더 세게 잡아당기자 치아가 부서기지 시작했고 부스러진 이들이 모래처럼 입안에서 씹혔다. 목에서는 으드득으드득 소리가 들렸다. 머리가 몸통에서 떨어져나갈 것만 같은 공포감이 느껴졌다."
바로 이 모습이 강정 마을이 당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용산 참사가 이렇게 해서 일어났고, 제주 강정 마을이 이런 식으로 난도질당해 이가 부러지고 목이 몸에서 분리되어나갈 지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상대가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아무런 관심이나 책임감도 없이 힘으로 누르고 짓밟고 있다. 군사 기지라는 것이 본래 그런 것이며, 모든 것이 다 거대한 폭력을 앞세워 생명과 평화를 압살하려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단지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주민들의 동의를 얻는 절차상의 문제가 해소되면 해결되는 사안이 결코 아니다. 또한 중국의 군사력 팽창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논리도 결국 유사시에 제주도 주민들은 이렇게 차와 아스팔트 사이에 끼어 죽어도 할 수 없다는 식이 된다. 이것은 안보를 강조하면서 안보의 대상이 되는 국민들을 희생시키는 논리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해군기지 건설을 놓고 내부 대립과 갈등이 격화되면서 강정 마을에 있던 이전의 공동체는 무너지고 말았다. 국가가 한 마을의 아름다웠던 인심을 이렇게 뭉개버리고 만 것이다.
평화의 예인선, 제주도
송강호는 이런 현실을 아파하면서 다음과 같은 소망을 간절하게 밝힌다.
"제주도가 또다시 비행장과 해군기지에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 폭탄들을 장착한 폭격기와 군함, 핵잠수함이 들락거리는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일본이 대중국 전략을 염두에 두고 제주도에 붙인 이름)'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주도만이라도 군사 기지나 군인 없는 비무장 평화의 섬이 되어, 멀지 않은 훗날 대한민국 전체를 비무장 평화 중립 국가로 이끄는 예인선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중국과 미국,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서 중재와 조정을 통해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견인해나가는 것이 우리나라의 시대적 사명입니다."
대선의 과정에서 송강호가 부르짖고 있는 이 육성을 담아내는 후보를 보았으면 좋겠다. 제주도 강정 마을과, 그 마을을 넘어서 있는 평화의 미래를 꿈꾸는 정치 지도자를 말이다.
송강호는 바람 많은 제주에 부는 바람이다. 그런데 그것은 애초에 미풍이었다. 손으로 가리면 곧 수그러드는 것으로들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새 제주도 강정 마을의 뜨거운 역사가 되고 있다. 하늘의 숨결이 인간의 육신에 스며들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게 됨을 송강호는 믿는다. 아니나 다를까, 도대체 지치는 기색도 없다.
송강호, 그가 딛고 서 있는 자리마다 이내 평화의 진지가 되고, 그가 발걸음을 옮기는 곳 마다 꽃들이 피어난다. 시리도록 푸른 바다 물결이 힘차게 달려오다가 부서지듯 멈추던 구럼비 바위 터에 눈물이 흐르고, 그는 장엄한 깃발을 펄럭이며 그 위에 우뚝 선다. 그가 있어 우리는 제주 강정의 미래를 본다. 평화의 길을 걷는 그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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