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의 <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어크로스 펴냄)가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새로운 글을 보충해서 다시 나온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정재승 지음, 어크로스 펴냄)와 함께 엮어서 서평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속내는 이 기회에 정재승의 책을 읽어 보자는 것이었다. 전에 나왔던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정재승 지음, 동아시아 펴냄)도 읽어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책꽂이 한 쪽에 묻혀있던 <영화는 좋은데 과학은 싫다고?>(김상욱 지음, 한승 펴냄)도 같이 읽고 물리학자가 쓴 '영화 속 과학'에 대한 책에 대한 서평을 쓰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자주 만나고 지내는 이들 물리학자들은 영화를 도대체 어떻게 보고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두 사람은 같은 영화를 또 어떤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을까. 이렇게 없던 궁금증도 호기심도 막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내 책꽂이에는 읽지 않은 '영화 속 과학 이야기' 책들이 몇 권 더 있었다. 이 책들을 다 읽고 그야말로 '영화 대 과학' 또는 '영화 속 과학' 이런 주제로 긴 서평을 한번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진짜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마음에 붙잡혀서 포로가 되자 이성을 잃고 말았다. 그렇다면 시중에 나와 있는 모든 '영화 속 과학' 책들을 읽자는 과한 욕심이 비온 다음날 아침의 죽순처럼 마구 솟아올랐다.
<영화는 좋은데 과학은 싫다고?>를 먼저 꺼내들었다. 쉽게 잘 읽혔다. 신문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은 것이라 글 한 편 한 편의 분량이 좀 짧은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그 제한된 지면 속에 영화를 좋아하는 팬으로서의 감상과 물리학자의 눈으로 본 영화 속 과학 이야기를 절제된 문장으로 균형감 있게 넣어 놓은 솜씨가 돋보였다. 깔끔한 서울깍쟁이 아가씨 같은 <영화는 좋은데 과학은 싫다고?>는, 질펀한 넋두리도 있는 김상욱의 더 긴 영화 속 과학 이야기를 읽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게 하는 책이다.
▲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정재승 지음, 어크로스 펴냄). ⓒ어크로스 |
여기까지는 좋았다. 책을 읽어가는 대장정의 발걸음도 가볍고 힘찼다.
다음 책을 읽기 위해서 내가 갖고 있던 '영화 속 과학' 책들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고민이 생겼다. 서너 권의 책들이 모두 마음에 잘 와 닿지 않는 것이었다. 한두 쪽 읽다가 다른 책으로 옮겨가고 다시 원래의 책으로 옮겨오기를 반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심지어는 혹시 또 다른 책들이 있는지 인터넷 서점을 뒤지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서평을 쓰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지은이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책에 대한 나 자신의 호불호를 떠나서 충분한 시간을 투자해서 정독한 후 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지은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해 왔다. 다시 말하면 좋든 싫든 서평을 쓰려면 그 책을 정독하고 완독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이 작업이 무척 고통스럽다. 특히 마음에 잘 맞지 않는 책을 대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일단 정성을 들여서 읽어야 하는데 그 자체가 쉽지가 않은 것이었다. 당연히 고통이 따랐다.
지난 추석 연휴 전에 김상욱과 정재승의 책들에 대한 서평을 올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나의 무모한 대장정 욕심 때문에 다른 책들을 뒤적거리느라 여러 날을 소비했고 결국 두 사람의 책에 대한 서평을 쓰겠다던 소박한 소망마저 이루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서평은 이렇게 끝을 맺을 예정이었다. '이번 추석 연휴 동안 이 책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사치를 누려보면 어떨까.'
시간이 많이 흘렀고 대장정의 꿈은 그저 아스라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다른 '영화 속 과학' 책들을 다시 책꽂이에 꽂았다. 주문하려고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또 다른 '영화 속 과학' 책들도 모두 장바구니에서 비워버렸다. 이와 함께 내 마음 속 고통도 없어졌다. 작은 소망이나마 이루자는 현실주의자로 돌아왔다.
같은 학교 같은 연구실 선후배 사이이기도 한 영화를 사랑하는 두 물리학자는 왜 영화 속에서 과학을 찾아 나섰을까.
"박사 학위 논문을 쓰느라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면 슬며시 기숙사 방으로 돌아와 영화를 보며 틈틈이 이 책을 쓰면서 삶의 위안을 얻었다. 그때는 책을 낸다는 기쁨만으로 글 쓰는 고통을 이겨내며 책을 썼다. 박사 논문이 학계에 던지는 실험 보고서라면, 이 책은 세상에 던지는 상상 보고서였다."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때로 과학자들은 세상과 유리되어 살아가는 존재로 여겨진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생각하고 자기들끼리 공유하는 문화가 있다. 한 마디로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쉽고 재미있는 일인지 보여 주고 싶다." (<영화는 좋은데 과학은 싫다고?>)
물론 그들이 기본적으로 영화의 광팬이기도 했겠지만 '영화 속 인물에 공감하기도 하고, 때론 적대감을 표출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얻게 되는 건 연민과 동정의 눈물이다.'(<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이 책들은 그들 자신의 소중한 경험을 토로해내는 자기 고백이기도 한 것 같다. 그들이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런 소중한 경험을 물리학자의 눈을 빌어서 '가장 저렴하면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적인 문화 코드'인 영화 속 과학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시대적 흐름이었던 것 같다.
지은이들이 원하는 또는 제시하는 이 책들의 관점 포인트는 이렇다.
"과학을 즐기려면 우선 과학을 알아야 한다. 이 책이 과학 지식을 습득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알고 싶다는 동기만 부여된다면 그 다음은 독자 스스로 공부하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희망을 품어 본다." (<영화는 좋은데 과학은 싫다고?>)
"영화를 보는 순간에도 과학의 시선을 버리지 않는 것, 과학의 눈으로 미래를 떠올려보고 내가 알고 있는 과학적 지식과 합리적 추론으로 감독의 상상력과 뜨겁게 만나는, 바로 그 경험이 중요하다."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영화 이야기를 하지만 그들은 어쩔 수 없는 과학자들이다. 영화를 보면서도 과학 생각을 하고 독자들도 그러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지은이들의 의도대로 곧이곧대로 따를 필요는 전혀 없다. 그냥 영화도 즐기고 이 책들도 즐겁게 읽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과학의 창을 통해서 본 영화는 그 너머의 경이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두 해설자가 '과학의 창'이라는 안경을 쓰고 영화를 입체적으로 보라고 유혹하고 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감독의 과학적 의도와 과학자들의 판정 및 해설을 즐겨보는 것도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좋은데 과학은 싫다고?>와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그리고 <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에는 여러 분야를 가로지르는 숱한 과학 이야기와 더불어 당연히 많은 영화들이 소개되고 있다. 두 물리학자의 시선 차이 때문인지 이들 책이 쓰인 시간의 간극 때문인지 두 지은이가 함께 다루고 있는 영화는 의외로 많지 않았다. <아웃브레이크>, <살인의 추억>, <메멘토>, <콘택트> 그리고 <스타워즈> 정도였다.
"과연 우주에 인간 이외의 지적인 생명체가 존재할까? 이런 질문을 가장 진지하게 하는 사람들이 바로 SETI 계획에 참여하고 있는 과학자들이다. 영화 <콘택트>는 SETI 계획의 홍보 영화라 할 만하다. 외계의 지적 생명체에 대한 논의는 단순히 과학의 문제뿐 아니라 윤리, 종교, 철학의 여러 문제를 제기한다. 지금 보아도 손색이 없는 특수 효과와 긴장감 넘치는 줄거리로 인상 깊지만, 필자가 아는 가장 진지한 공상 과학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는 좋은데 과학은 싫다고?>)
"영화 <콘택트>는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와 함께 '내가 가장 아끼는 SF 영화' 중 하나다. 내가 <콘택트>를 좋아하는 이유는 '인간과 우주에 대한 경이로움'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SF 영화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감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인간은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지만 우리를 둘러싼 이 우주와 자연은 만물을 탄생시키고 생명을 잉태할 만큼 위대하며, 그것을 깨달으며 그 속에 살고 있는 인간 또한 더불어 '위대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데 있다."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SF 영화도 <콘택트>다. 위의 두 글에서도 단적으로 나타나듯이 지은이들이 이 책들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영화도 과학도 아니고 바로 우리들의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권하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두 물리학자가 같은 영화를 어떻게 봤고 또 어떤 다른 (또는 같은) 이야기를 써놓았는지를 비교하면서 보는 것이다. 참, 요즘에는 '공상 과학 영화'라는 용어는 쓰지 않는다. SF 작가들 앞에서 이 용어를 썼다가는 다른 많은 선의에도 불구하고 진의를 의심 받을 수 있다. 그들이 주로 사용하는 SF 영화, SF 소설, 과학 소설, 이런 용어를 같이 사용하는 것이 예의일 것 같다.
"진심으로 바라건대, 이 책을 읽다가 도저히 못 참고 책에 소개된 영화를 뒤적여 보거나, 봤던 영화를 한 번 더 찾아보는 독자들이 생겼으면 한다." (<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
그동안 여러 다른 기회에 다른 목적으로 <콘택트>를 봤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또 다시 <콘택트>가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또 <톰과 제리>에 꽂혔다. 정재승의 바람대로 영화가 보고 싶어졌지만(만국의 과학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콘택트>는 빼고), 보고 싶은 영화는 김상욱이 선보였던 <웰컴 투 동막골>이었다. 두 물리학자, 1승 1패로 무승부. 흩날리듯 날아가는 팝콘이 보고 싶다. 치아 교정 전의 강혜정의 앳된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오늘 '불금'은 <콘택트>와 <웰컴 투 동막골>과 함께 불살라야겠다. 여러분들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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