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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의 옛 연인이 미치게 궁금하다!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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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의 옛 연인이 미치게 궁금하다! 도대체 왜?

[박수현의 '연애 상담소']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②

유일하고 대체 불가능한 사람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재룡 옮김, 민음사 펴냄)을 읽은 내 여자 친구들은 사비나보다는 테레자 쪽에 더욱 많이 그리고 깊이 공감하였다. 테레자는 토마시에게 유일한 여자가 되고 싶은 소망으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의 육체를 유일하고 대체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와 함께 산 것이다."(103쪽)

그녀는 성장 과정에서 어머니가 자기 육체를 일부러 하잘 것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모습에 환멸했다. 자신의 육체만은 유니크한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자신의 육체가 다른 모든 여자들과 동등하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악몽이다.

그러나 토마시는 이 악몽을 지속적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토마시는 사랑과 섹스는 별개라는 사상을 끊임없이 테레자에게 주입하지만, 그녀는 끝내 용납할 수 없다.

상대에게 유니크한 존재가 되고 싶은 소망은 그러나 연인들을 먹여 살리는 주식(主食)과 같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평생의 연인이었지만 상대가 다른 이성을 만나는 것을 금지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다른 이성과 맺은 관계(그러니까 바람피운 이야기!)를 서로에게 시시콜콜히 보고하기를 즐겼다. 다른 이성과 어떤 체위로 섹스를 나누었는지, 그때 감정의 추이는 어떠했는지.

이런 보고 행위가 그들을 평생의 애인으로 남게 했을 것이다. 그들은 세간의 시선으로 이해되지 않을 만큼 자유분방한 이성 관계를 즐겼다. 그런 그들에게도 '유니크'하다는 자의식은 필요했나 보다.

저이에게 유니크한 사람이라는 자의식은 연애 관계의 핵심이다. 테레자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그래서 대체로 사람들은 상대에게 자신만을 사랑할 것을 요구한다. 뿐만 아니라 그가 가졌던 혹은 가질지도 모르는 과거와 미래의 연인들 중에 제가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남기를 소망한다.

이런 독점 욕구를 배제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역시 '유니크'에의 욕망의 필연성만은 인정했기에, 서로의 연애 행각을 모두 알려주는 행위로 '유니크'함을 확인시켜주고 확인했을 것이다. 이 행위가 그들 관계를 지속하게 만든 최후의 안전 지대였을 것이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민음사 펴냄). ⓒ민음사
토마시에게 유일하고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고픈 테레자의 소망은 지속적으로 좌절된다. 그래서 테레자는 우회로를 택한다. 그녀는 토마시에게 고백한다. 그와 함께 여자 친구들의 집으로 가서 직접 그녀들의 옷을 벗겨주고 그에게 데려다주길 원한다고. "그녀는 두 사람이 양성을 지닌 육체로 변하고 다른 여자들의 육체는 두 사람이 공유하는 장난감이 되길 바랐다."(112쪽)

테레자는 토마시의 다른 여자들을 손아귀에 넣음으로써, 수동적 대상인 그녀들과 다른 위치를 점함으로써, 자신의 유일성을 증명하길 바랐던 것이다. 그녀는 많은 정부들 중 한 명인 지위를 너무나 끔찍하게 여긴 나머지, 포주의 지위라도 획득함으로써 유일성을 확인하고자 한다.

직접적인 독점 욕구가 좌절된 여인은 이렇게 슬프게도, 욕망을 변형시켜 충족하려고 한다.

그녀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소설은 실제로 테레자가 다른 여자들을 방문한 장면을 기록하지 않는다. 오로지 사비나의 경우만 서술한다. 테레자는 사비나를 방문하여 그녀의 나체를 사진 찍겠다고 제안한다. 사비나는 난감했지만 테레자 앞에서 옷을 벗는다.

그런데 사비나는 곧이어 테레자에게도 옷을 벗으라고 요구한다. 두 여자는 알몸으로 서서 기묘한 도취감을 느끼며 큰 소리로 함께 웃는다. 인상적인 이 장면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랑에 빠진 이의 감수성은 폭발한다. 호기심도 폭발한다. 그는 갑자기 많은 것을 궁금해 한다. 그 중 라이벌에 대한 호기심만큼 강렬한 것이 또 있을까. 라이벌을 알고 싶다. 이 열망에 그는 미친 짓도 서슴지 않는다.

라이벌은 현실의 존재일 수도 있지만 과거의, 심지어 상상 속의 존재이기도 하다. 앞서 본 '히치하이킹 놀이'의 여주인공의 경우를 상기해 보자. 그녀는 거의 상상 속의 라이벌들을 궁금해 했다.

연인의 과거 또는 현재 애인에 대해 알고 싶은 욕망은 때로 탐욕스럽게 흐른다. 연애 중 발생하는 모든 욕망은 쉽사리 탐욕이 된다. 자주 정도를 넘고, 끝이 없다. 인식욕 또한 그러하다.

테레자가 사비나의 알몸을 요구한 것은 탐욕스러운 인식욕의 극단을 보여준다. 알몸이란 타인에 관한 지식의 마지막 보루이니까. 사람들은 알몸을 보면 그를 다 알았다고 생각하니까.

테레자의 알몸 역시 사비나에게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사비나라고 테레자를 알고 싶은 욕구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들은 어쨌든 토마시를 사이에 둔 라이벌 관계였으니까.

두 여자는 서로의 알몸을 앞에 두고 기이한 도취감을 느껴서 큰 소리로 웃어 재꼈다. 그들의 도취는 욕망을 남김없이 충족한 이후의 포만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욕망을 충족하면 누구나 느긋해지고 유쾌해지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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