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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법원이 아닌 역사가 다시 심판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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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법원이 아닌 역사가 다시 심판할 것

[박동천 칼럼] 대법원은 인혁당 재판의 수치를 모르는가?

결국 대법원은 곽노현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나는 대법원이 법의 목소리를 외면할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면서도, 그래도 진실과 이치와 양심의 흔적이 이번에 표현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이런 바람은 일단 짓밟혔다.

하지만 이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가깝게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남아 있지만,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이 사건이야말로 역사의 법정에서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재판한 이상훈, 신영철, 김용덕은 대법관이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곽노현의 선의를 함부로 처벌했지만, 역사의 법정에서는 바로 이 세 사람이 피고인석에 서게 될 것이다.

법관의 지위를 이용해 함부로 법을 무시한 사례는 무척 많지만, 세 가지만 예시한다.

1975년 대한민국 대법원은 소위 "인혁당 재건위원회 사건" 피고인들에게 사형을 확정했다. 이 사건은 주지하다시피 이 나라 사법의 역사상 가장 큰 오점으로 기록되었다. 2007년 서울중앙지법에 의해 판결이 뒤집혔고, 박근혜조차도 며칠 전에 이를 인정했다. 박근혜가 즐겨 쓰는 문구 "역사의 판단"이란 이를 말하는 것이다.

프랑스 현대사에서 사법부의 수치는 드레퓌스 판결이 대표한다. 드레퓌스 대위는 1894년 조작된 증거에 의해 유죄 선고를 받았고, 1896년에 증거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오히려 그 사실을 밝혀낸 피카르 중령이 좌천당하고 말았다. 이를 항의하던 에밀 졸라는 궐석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1906년 재심에서 모든 혐의가 풀리고, 과거의 재판이 잘못이었음이 만천하게 공표되었다.

미국 사법의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사건 중에는 드레드 스코트 사건이 있다. 스코트는 노예제가 금지된 위스콘신 주 등지에서 거주한 사실이 있기 때문에 자기는 이미 자유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연방대법원은 미국에 거주하는 흑인은 미국 시민이 아니라 노예 소유주의 사유 재산이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할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뉴시스
이 사건은 사회 안에 격렬한 분쟁을 일으키고, 결국 남북전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 수정헌법 제13, 14, 15조에 의해서 무효가 되었다. 연방대법원 판결은 7대 2로 이뤄졌는데, 소수의견을 낸 매클린 대법관은 "법이 아니라 다수파의 입맛에 따른 판결"이라고 자리매김했다.

곽노현을 재판한 항소심 판결이 법이 아니라 입맛에 휘둘렸다는 사실을 나는 전에 밝힌 바 있다. (☞관련 기사 : "곽노현 항소심 판결문에는 논리가 없다") 대법원 판결문에서도 이 치명적인 결함이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판결문은 이렇게 올바른 전제에서 출발하는 척 가장한다.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는 후보자이었던 사람이 후보자를 사퇴한 후 그에 대하여 이루어지는 모든 이익 제공·수수 행위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후보자를 사퇴한 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후보자이었던 사람에게 이익 등을 제공하는 행위와 후보자이었던 사람이 위와 같은 이익 등을 수수하는 행위에 한하여 이를 처벌한다."

모든 이익 제공·수수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대가를 목적으로' 제공하는 행위에 한하여 처벌한다는 말이다. 이는 맞는 말이지만 가장에 불과하다. 가장이 아니려면, 곽노현이 건넨 돈이 '대가를 목적으로' 준 것인지를 따져야 하는데, 1심에서도 2심에서도 이를 따지지 않고 넘어가 버렸다. 따라서 법률심인 대법원은 마땅히 1심과 2심 재판이 근대 형사 재판에서 가장 기초적인 형식 요건도 갖추지 못했으므로 파기했어야 맞는다. 아니면 대법원 스스로 '대가를 목적으로' 돈이 건너갔다는 논증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판결문 어디를 봐도 이 핵심 쟁점이 논의되는 기미가 없다. 단지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 감정을 가진 일반인이라면 위 규정의 적용 대상자와 구체적으로 금지되는 행위의 내용을 충분히 알고 이에 비추어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수" 있다고 우길 뿐이다.

나는 "위 규정의 적용 대상자와 구체적으로 금지되는 행위의 내용"을 전혀 모르겠다. 곽노현은 이렇게 물었다. 만약 문재인과 안철수가 상호 합의한 절차에 따라 단일화해서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가정할 때, 그가 취임한 후에 상대방을 국무총리에 임명한다면 "사후 매수 죄"에 걸리는가 안 걸리는가? 나는 이 질문의 답을 "충분히 알고"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한 명도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곽노현을 재판한 1심과 2심의 판사들은 물론이고, 대법원의 이상훈, 신영철, 김용덕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이를 "안다"고 말할 사람은 꽤나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아는" 것과 "안다고 우기는" 것을 분간하지 못하는 자폐증 환자일 뿐이다.

인혁당 재건위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판결했다. 당시 대법원은 민복기·홍순엽·이영섭·주재황·김영세·민문기·양병호·이병호·한환진·임항준·안병수·김윤행·이일규 등, 열세 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들도 자기들이 한국 사법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판결을 내리고 있는 줄은 몰랐을 것이다. 드레퓌스를 재판한 프랑스 군사법원도 수치를 몰랐고, 스코트를 재판한 미국 연방대법원장 태니도 수치를 몰랐다.

왜 수치를 몰랐을까? 법을 자기들이 재단한다는 착각에 빠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위가 역사의 법정에서 심판받게 되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이를 깨닫지 못했을까? 증거에 충실하지 않고 시류에 영합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진실과 정의와 양심의 목소리가 내면에서 올라오는 데도 억누르고, 법관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한다. 사후 매수라는 개념이 형사법적으로 성립하려면 사전 합의를 반드시 전제해야 한다. 곽노현 사건에서 이보훈과 양재원 사이에 오간 대화는 자체로 어떤 의무를 수반하는 합의일 수 없을 정도로 엉성하고 애매모호할 뿐만 아니라, 애당초 이보훈이 곽노현을 대리했다고 볼 여지도 전혀 없다. 판결문들을 읽어보면 1심과 2심 그리고 이번 대법원의 재판부조차, 사전 합의가 없었다는 취지를 백분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엉뚱하게 사후 매수가 성립한다는 듯이 우겨대고만 있다. 이것은 법이 아니라, 판사 개인들의 사리사욕일 뿐이다. 보수파의 기득권과 보수파가 지어낸 여론에 굴복한 것 말고는 어떤 의미도 여기에는 없다.

이 나라에서는 이렇게 인혁당 사건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인혁당 사건의 재판부가 역사의 법정에서 심판받는 데는 32년이 걸렸다. 드레퓌스 재판의 경우는 12년, 스코트 재판의 경우는 8년이 걸렸다. 판결은 뒤집혔지만, 법의 이름으로 불의를 자행한 어떤 판사도 개인적으로 처벌받지는 않았다.

나는 곽노현 재판은 이보다 빠르게 역사의 법정에서 심판받을 것으로 믿는다. 그날, 이상훈, 신영철, 김용덕에게 잘못한 만큼 개인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면, 한국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해서 정의의 표준이 크게 향상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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