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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룩 실즈의 '끝없는 사랑'? 아니, '기괴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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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룩 실즈의 '끝없는 사랑'? 아니, '기괴한 사랑'!

[김용언의 '잠 도둑'] 스콧 스펜서의 <끝없는 사랑>

10대 남녀가 열렬한 첫사랑에 빠지고 부모가 반대하며 둘을 못 만나게 한다…. 이 전제까지 들으면 그저 그런 평범한 청춘 성장물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스콧 스펜서의 <끝없는 사랑>(안정효 옮김, 청미래 펴냄)은 그런 예상을 가뿐하게 뛰어넘는다.

소설이 아니라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영화 버전으로 <끝없는 사랑>을 먼저 접한 사람일지라도, 라이오넬 리치와 다이애나 로스의 감미로운 주제가 'Endless Love'의 분위기에 취해 첫사랑을 추억하며 '므흣하게' 브룩 실즈의 전성기 시절 미모를 감상하다가 뜻밖의 사건 전개에 정신줄을 놓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스콧 스펜서의 소설은 그보다 한술 더 떠 '사건'이 일어난 시점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니까 첫사랑의 기승전결이 아니라 바로 결부터 시작하여, 기승전에 어떤 일이 있었던가를 천천히 들려주고 결 이후의 또 다른 결에 이르기까지, 다시 말해 '끝없는 사랑'이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결코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이라는 맹세를 하기까지의 참혹한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끝없는 사랑>은 장르 소설은 아니지만, 이를테면 '미친 사랑 이야기'라는 하나의 관습 속에서 사랑의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이들의 심리 상태가 궁금한 이들에게는 흥미로운 과제로 다가올 것이다.

▲ <끝없는 사랑>(스콧 스펜서 지음, 안정효 옮김, 청미래 펴냄) ⓒ청미래
소설의 첫 페이지. 1967년 8월 12일, 주인공 데이비드 액셀로드는 열일곱 살 소년이다. 그는 "세상에서 그 어느 누구보다도 사랑하며, 그들의 가정을 내 부모님의 가정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기던 사람들이 사는 집에 불을 질렀다." 앤과 휴 버터필드 부부, 그들의 아이 키스와 새미, 제이드가 전부 집 안에서 평화로운 저녁 시간을 보낼 때 데이비드는 그 집에 불을 질렀다. 왜? "버터필드 가족이 나를 만나게 하기 위해서."

데이비드는 제이드와 사랑에 빠졌고 몇 개월 동안 성적 욕구의 극한까지 치달았다. 1960년대 말 '개방'을 의식적으로 실천하던 버터필드 부부의 동의를 얻어 데이비드와 제이드는 매일 밤을 함께 보냈다. 어느 순간 제이드는 자기처럼 어린 나이에 이런 열정에 빠져든다는 것에 스스로 불안감을 느꼈고, 그제야 아버지 휴는 권위를 내세우며 두 사람이 한 달간 못 만나도록 조치를 취했다. 불을 지르던 날 데이비드는 이미 17일 동안 제이드를 만나지 못한 상태였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추방, 내 삶의 중심으로부터 갑작스럽게 쫓겨난다는 것이 모든 생각과 느낌의 핵심을 이루었다."

하지만 버터필드 가족은 의식의 확장을 실험하기 위해 LSD를 복용한 상태였고 갑작스런 화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뒤늦게 공포에 휩싸인 데이비드가 집에 뛰어 들어가 그들을 이끌고 나왔다. 그리고 병원에서 정신을 차리자마자 "내가 불을 질렀어요"라고 자백했다. 그는 정신병원에 입원되었다. 이것이 소설의 24쪽까지 나오는 이야기다(이 책은 총 493쪽이다. 여기에 비견할 만한 사건 전개의 속도는 아마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나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 <아내의 유혹>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데이비드와 제이드의 사랑은 미쳤다. 데이비드는 이것을 "비상사태", "모든 규칙을 무시하는 그런 사태"라고 불렀고, 제이드 스스로도 이것이 정상이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에 뒤늦게 가족들에게 '나를 제재할 것'을 요구했다.

"우리들만의 세계 속에서 사는 거. 우리들이 느끼는 것이 다른 모든 것들과는 별개의 것이라는 신념. 우린 같이 붙어 있는 거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고, 다른 모든 것은 현실이 아니었어."

제이드의 불안에 대해 데이비드는 이렇게 항변한다.

"우리 두 사람이 다 믿을 땐 그렇지 않아. 미친 사람들은 홀로이고, 아무도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하지만 우린 그렇지 않아. 우리 두 사람이 다 알고, 그건 완전히 합리적인 생각이니까. 두 사람이 다 믿을 때, 그것을 참된 삶으로 만들 때, 그건 미친 게 아냐. 그리고 기억하겠지. 다른 사람들도 그걸 믿었어. 우리를 믿었지. 우리를 알고, 우리가 같이 지내온 걸 본 모든 사람이. 우린 그걸 믿게 만드는 힘이 있어."

두 사람의 사랑이 두 사람의 세계에서만 그쳤다면 어쩌면 모든 불행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의 법칙 앞에서 굴복하지 않는 첫사랑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저 남들보다 훨씬 세고 강렬한 한 시절을 보냈다는 기억에 그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주변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든 전염시켰다.

제이드의 부모 휴와 앤은 1960년대 말 미국의 자유분방한 '혁명'의 분위기에 심취하여 자신들의 가정을 개방했고 약물과 섹스와 정신의 자유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했다. 그러나 데이비드가 끼어들면서 그들은 멈칫한다. 오히려 그 순간 그들의 보수성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휴는 데이비드 때문에 자신이 아버지 혹은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했다고 느끼며 분노한다. 앤은 "두 사람은 반쯤 잊었다가 갑자기 되살아난 우리들의 모든 낭만적인 환상이었고, 두 사람을 부정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을 부정하는 셈이니까"라고 둘의 사랑을 인정했지만, 그 환상을 부러워하면서도 거기에 가닿을 수 없는 자신을 자각하면서 절망과 희망의 양극단을 널뛰듯 오간다.

"모든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되든지 전혀 걱정하지 않고, 두 사람만 눈에 보이고 서로 상대방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느끼고, 그리고 사랑이라는 변형된 의식의 상태임을 아는 두 사람이 존재한다는 바로 그 사실을, 솔직히 얘기하면, 나로서는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때도 있었어.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내 인생을 파괴했나봐."

결과는 비극적이었다. 그 누구의 눈에도 무서울 정도로 열정적인 데이비드와 제이드의 첫사랑은 가까운 이들에게 자신들이 잊고 있던 것, 자신들이 집착하는 것, 자신들이 실망하고 있는 현실을 일깨우며 환상과 분노를 동시에 자아냈다. 누군가 죽고,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며, 누군가는 궁극적인 포기를 한다. 그리하여 데이비드는 마침내 이런 고백에 다다른다.

"나는 드디어 끝에 왔어. 내 사랑은 결코 끝나지 않았지만, 내 얘기는 이제 끝났어. 나는 더 이상 아무런 욕망도 느낄 수 없어. 내 삶은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야. (…) 내가 너를 사랑할 때 붙은 불은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타오르고 있어. 하지만 이제 그건 네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테고, 마땅히 그래야겠지. (…) 나는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네가 아니라 세계를, 우리들이 사로잡혀 있는 신비를 포옹하려고 해. 오케스트라도 없고 관객도 없는 한밤중의 극장은 텅 비었고, 세상의 모든 시계는 재깍거리며 돌아가지. 그리고 이제 처음으로, 제이드, 나는 걱정도 하지 않고, 이것이 광증인지도 물어보지 않으며, 나는 너의 얼굴을 보고, 나는 너를, 너를 보고, 나는 이 모든 좌석 하나하나에서 너를 보고 있어."

이 미친 사랑 이야기가 절절하게 와 닿는 것은 소설 전체가 데이비드의 기나긴 회상록이기 때문이다. 앤의 말마따나 "진실을 얘기한다는 건 고백을 하는 것과 같아. 고백하지 않으면 진실도 없지." 이 1인칭의 기나긴 서술은 어쩌면 두 번째로 정신병원에 수감된 데이비드라는 정신병자의 일기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데이비드와 제이드가 재회했을 때 나누는 섹스에 대해 그 모든 동작과 신체 부위의 변화와 내면의 묘사를 전부 기록하려는 과도한 묘사(거의 50여 쪽에 달한다)는 에로틱하다기보다는 기괴한 낯섦 쪽에 가깝다.

매일 밤 잠자리에서 데이비드가 되풀이 상상했거나 기억했을, 앞으로는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그 신성한 체험을 자동기계처럼 되풀이 스스로에게 구술하는 듯한 느낌마저 주는 것이다. 작가 스콧 스펜서가 어쩌면 영화를 의식하면서 카메라조차도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에는) 가닿을 수 없는 정밀하고 폭력적이며 전적으로 욕망에 치우친 신체 언어를 끄집어내는 것에 소설 언어의 운명을 걸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마지막 순간, 데이비드가 병원에서 퇴원한 후 제이드와 주고받는 편지의 절절한 감동마저도 그가 꾸며낸 상상 속의 산물일 수 있다. 앤이 소설 쓰기에 계속 실패하면서 "난 거짓말을 하면 항상 발각되고 말아. (…) 만일 거짓말을 보다 쉽게 할 능력만 있다면 내 작품들은 훨씬 훌륭해지겠지. 하지만 난 의족을 단 <보바리 부인>의 그 가엾은 남자처럼 내 삶에 실재하는 사실들을 끌고 다니지"라고 자기 분석한 것처럼, 데이비드는 끝내 이뤄지지 못할 제이드와의 사랑을 그런 식으로 '승화'시키려는 부단한 내면의 고백을 실시했는지도 모른다.

데이비드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사랑이 끝날 것이라는 가능성이 아니었다. 그는 이 사랑이 끝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고, "내 삶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대신 "나는 똑같은 사람이어서 아직도 똑같은 것들을 원하며, 그것들을 소유하게 될 가능성만 훨씬 낮아질 따름이었다. 참된 가능성이 없는 똑같은 정열, 내가 맞게 될 광증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차라리 '참된 가능성' 자체를 제거하면서 스스로의 사랑을 어떤 진공 상태, 무중력 상태, 더 이상 누군가의 죽음이나 불행을 끌어들이지 않을 수 있는 어떤 무균질한 상태에 올려놓았을 수도 있다. <끝없는 사랑>이라는 거대한 환상의 텍스트를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고 세상을 위로하고 모두 앞에 속죄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으로써 데이비드의 소망대로 그 사랑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상처받고 일그러진 채로 봉인되어, 어떤 무덤 안에 깊숙하게 파묻힌 채로, 죽은 이의 썩어가는 육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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