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대통령 출마 선언과 함께 갑자기 세간의 관심이 쏠린 인물이 있다. 바로 전 경제부총리 이헌재다. 이헌재는 김대중 정부에서 금융감독위원장을 맡으며 재벌 개혁과 금융 시장 개혁을 총괄 지휘했던 인물이고, 또 노무현 정부에서도 1년 3개월간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맡았었다.
여의도 증권가는 벌써부터 화색을 감추지 못하는 듯하다. 주식 투자자, 개미 투자자는 벌써부터 '이헌재 수혜주' 분석에 착수했다. 재테크에 유능한 금융 시장 투자자와 투기꾼은 이헌재의 재등장을 그리 나쁘지 않게 바라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속칭 이런 이헌재의 등장을 놓고 여의도 증권가 바깥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모피아의 대부인 이헌재와 함께 하는 안철수라니, 의외다"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도 보이고, 더 나아가 "이헌재와 함께 어떻게 경제 민주화를 이룩할 수 있다는 건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이런 우려는 특히 재벌과 모피아(재정경제부 출신 관료) 두 세력을 한국 경제를 왜곡하는 두 핵심 축으로 지목하고 '재벌 개혁'과 '모피아 타도'로 집약되는 경제 민주화를 주창해온 인사들로부터 제기된다.
그렇지만 과연 그럴까? 과연 안철수+이헌재의 조합은 잘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이헌재와 함께 하면 경제 민주화가 불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나는 앞으로 이 글에서 다음의 세 가지 명제를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설득할 작정이다.
첫째, 안철수와 이헌재의 조합은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둘째, 이헌재와 함께라면 안철수는 이른바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를 잘 해낼 수 있다.
셋째, 안철수가 이헌재와 함께 이룩할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는 13년 전 김대중 정부 시대와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를 '리틀 아메리카(Little America)'로 바꿀 것이며, 그리하여 우리 사회를 미국처럼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금융 투기꾼과 재테크 세력이 판을 치는 곳으로 만들 것이다. 따라서 안철수와 이헌재의 조합은 한국 경제의 쇠퇴와 몰락을 더욱 재촉하게 될 것이다.
이 명제가 맞는지 확인하고자 읽어야 할 두 권의 책이 있다. 하나는 이헌재가 최근 출간한 <경제는 정치다 : 이헌재의 경제 특강>(로도스 펴냄)이고, 다른 하나는 지난 7월 말에 출간된 <안철수의 생각>(김영사 펴냄)이다.
안철수는 시대정신의 화신인가?
▲ <경제는 정치다 : 이헌재의 경제 특강>(이헌재 지음, 로도스 펴냄) ⓒ로도스 |
혹시 이 책이 애초부터 안철수 후보를 위해 기획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안철수 후보에 대한 찬사가 가득하다. 이헌재에 따르면 안철수 현상은 그저 지나가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새로운 가치관과 세계관, 즉 새로운 시대정신(Zeitgeist)의 출현을 의미한다.
"안철수 현상은 하나의 시대적 흐름이다. 사회 저변에서 꿈틀대는 새로운 가치관의 상징이다. (…) 이미 시대는 새로운 사람, 새로운 시스템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 안철수 현상은 이미 1999년에 시작되었다. 김대중 정부는 인터넷이 우리나라의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며 전국 144개 주요 지역을 초고속 정보통신망으로 연결했다. (…) 열린 사회를 향한 변화가 촉발된 셈이다" (23쪽)
1999년이라는 시점이 의미심장하다. 바로 김대중 정부 시기였고, 이헌재가 그 정부에서 금융감독위원장으로서 금융 개혁과 재벌 개혁을 총괄 지휘하던 바로 그 때였다. 당시 30대였던 386 세대가 열렬하게 외쳤던 구호가 바로 "관치 금융과 재벌 체제를 타도하고, 벤처 기업 위주의 경제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구질구질한 굴뚝 산업(제조업) 대신에 정보통신(IT) 산업, 지식 산업 위주의 경제를 만들자"는 구호가 난무하던 시기였다. 그것이 곧 '경제 민주화'로 말해지던 시기였다. 이헌재는 그러한 경제 민주화의 요구를 관료로서 충실하게 집행한 유능한 관료였다.
물론 그 이후 판명된 바와 같이, 그 모든 것은 허상에 불과했다. 경제 민주화의 실체는 경제 자유화 즉 신자유주의의 무비판적 도입에 불과했다. 그리고 재벌 개혁과 금융 개혁의 실체 역시 미국 월스트리트를 모델로 우리나라 대기업과 금융 회사들을 개조하는 것이었다. 386 세대 전체가 이런 착각과 허상에 빠져 있던 시절이었고, 소액 주주 운동이 마치 선(善)이요 정의(正義)인양 대접받은 시대였다. 이헌재는 그러한 시대적 요구를 충실하게 집행한 유능한 관료였다.
IT 산업의 핵심인 인터넷, 그 인터넷을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하는 '안철수 연구소'라는 회사는 바로 그런 시대적 분위기에서 등장했다. 그리고 안철수 연구소는 김대중-이헌재 정부 하에서 가장 큰 수혜를 얻은 벤처 기업, 말하자면 386 세대 및 IT 세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기업이었다. 이만하면 안철수를–적어도 그 당시에는-386 세대와 IT 세대를 대변하는 시대정신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러한 벤처 기업을 출범시키고 육성하는데 성공한 이헌재가 안철수 현상을 자신의 (그리고 김대중 정부의) 자랑스러운 업적으로 내세우는 게 자연스럽지 않은가? 게다가 이헌재에 따르면 1999년을 관통했던 그 시대정신은 과거형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더구나 우리의 미래이다.
"인터넷 대중화의 원년이라 할 수 있는 1999년에 시작된 새로운 시대의 물결 (…) 이제는 10년이 넘는 세월과 함께 거대한 물결이 되었다. (…) 구체제는 물러가고 변화의 욕구가 새로운 시스템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변화의 물결을 타고 새로운 시대로 도약할 것인가, 혼돈의 늪으로 계속 가라앉을 것인가. 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26쪽)
그렇다. 이러한 기로에서 드디어 안철수라고 하는 시대의 영웅, 시대정신의 총화가 등장했다. 그렇다면 이헌재는 안철수와 함께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그것은 바로 '공정한 시장 질서의 구축'이다. 그렇다면 공정한 시장 질서란 무엇인가? 그것은 먼저 "중소기업들이 대기업 계열사와 공정하고 자유롭게 경쟁하는" 그런 질서이다.
이를 위해서는 재벌 개혁이 필요하고, 기업의 투명성을 확보하여야 하고, 재벌 계열사들의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해 족쇄를 채워야 한다. 그런데 이헌재는 이미 1999년에 자신이 지휘한 김대중 정부의 주주 자본주의적 재벌 개혁을 통해, 대기업의 회계 투명성 강화라는 역사적 사명을 완수한 바 있다(179쪽).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벤처 창업을 다시 육성해야 하며, 그리하여 청년들이 벤처 창업을 통해 활기차게 기업가 정신을 고취하는 놀이마당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이헌재는 그 구체적인 정책 방안도 새롭게 제안한다(230쪽). 그런데 그 구체적 제안의 내용이 매우 참신하다. 특히 젊은 벤처 창업자들을 위한 회계, 법률 서비스 지원과 창업자들의 유한 책임 원칙은 벤처 창업의 고난을 겪어본 안철수 같은 기업가들이라면 몸소 절실하게 고민했을 주제들일 것이다. (실제로 <안철수의 생각>에는 이와 공명할 만한 내용이 많다.)
더구나 이헌재는 이 책에서 '안철수 재단'과 같은 공익 재단을 활용한 벤처 캐피탈 투자 펀드 조성까지 제안하는데, 이 문장에 이르러 나는 안철수+이헌재 조합이 얼마나 멋진 콤비 플레이를 하면서 참신한 발상의 전환을 이루어낼 수 있는지 상상이 되었다.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과 <경제는 정치다>라는 두 책은 이렇듯 서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양자 모두 '열린 시장주의(신자유주의)'의 프레임 속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구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양자 모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철회를 말하지 않으며, 양자 모두 투기적인 주식 시장과 투기적인 외환 금융 시장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를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청년들의 벤처 창업을 과도하게 강조할 경우, 창업에 실패한 (실제 대다수가 실패하는 것이 벤처 창업의 법칙인데) 청년들이 신용 불량자로 전락한다는 위험성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박정희 경제 체제를 해체하고 열린 시장 주도형 경제로
더구나 이헌재는 이 책의 곳곳에서 박정희 경제 체제, 즉 정부 주도형 경제 성장 체제와 토건주의를 해체해야 한다고, 그리하여 "열린 시장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는 정치다>의 제3장에서 이헌재는 '잘 살아보세'로 집약되는 과거 군사 독재 시절의 국가주의 경제 성장 전략을 비판한다.
그리고 본래 경제 관료로서 입문하여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공유했던 자신이 1980년대에 레이건과 부시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미국 유학 생활 속에서 어떻게 시장주의(자유주의)로 사상 전향하게 되었는지를 서술한다. 이헌재를 포함하여 오늘날 모피아로 통칭되는 관료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신자유주의를 신념과 교조로 학습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170쪽).
이미 지난 6월에 출간된 이헌재의 또 다른 책 <위기를 쏘다>(중앙books 펴냄)에서 이헌재는 자신이 김대중 정부 하에서 어떻게 재벌을 개혁하고 해체했는지, 은행과 금융 시장을 어떻게 개혁하였는지에 관하여 썼다. 그리고 그 책의 출판 기념회에는 안철수가 몸소 참석하여 이헌재에 대한 존경을 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안철수의 행보는 원로에 대한 통상적인 존중이 아니다. <안철수의 생각>은 그 증거다. 이 책의 곳곳에서 안철수가 김대중 정부와 이헌재가 1990년대 말에 추진했던 재벌 개혁과 금융 개혁의 큰 틀에 동감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헌재와 안철수는 어떤 점에서 시쳇말로 '통'했을까?
하지만 이헌재가 자랑하고 안철수가 존경을 표한 김대중 정부 시절의 재벌 개혁과 금융 개혁이야말로 투기 자본에 대기업과 은행을 매각하고, 공기업을 민영화하였으며, 그리하여 국내외의 재테크 세력이 판치는 세상, 따라서 재테크 잘하는 부자 아빠가 되지 않으면 기를 펼 수 없을 정도로 빈부 격차가 심화된 그런 세상을 만들어냈다.
중도적 시장주의 : 이헌재와 안철수의 공통점
이헌재는 자기 자신을 중도적 시장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세계 경제 위기를 계기로 대혼란에 빠진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를 구출할 대안적 해법을 시장주의에서 찾는다.
"어떻게 새로운 도약을 이룰 것인가? 문제가 생긴 자본주의를 치료할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 나는 그 해법을 시장에서 찾는다. 열린 시장을 가진 사회만이 발전할 수 있다. (…) 불공정한 차별이 없는 틀 내에서 모든 것이 활발하고 자유롭게 거래되고, 투명하게 경쟁할 수 있는 하나의 시스템을 말한다. (…)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시장을 열어주자. (…) 누구나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할아버지의 부동산이 얼마나 되는지에 관계없이, 의지와 능력만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그런 열린 시장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 중소기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계열사와 공정하고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동반 성장이라는 시혜성 정책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장다운 시장, 사회 시스템으로서의 시장이 열릴 때 가능하다. (…) 정치든 정책이든 경쟁과 시장을 복원해야 한다." (8~9쪽)
개방된 시장 경제, 공정한 시장 경쟁 질서에서 한국 경제와 세계 경제의 해법을 찾는다는 점에서 그의 정신은 안철수의 정신과 합치된다. 게다가 이헌재 역시 안철수와 마찬가지로 좌도 우도 아닌, 진보도 보수도 아닌 중도가 많아져야 사회와 경제가 건강해진다고 생각한다.
미국 리버럴 수준의 갑갑한 복지 구상
게다가 안철수와 이헌재가 만나는 점은 또 있다. 1999년과 달리, 이제는 이헌재 역시 안철수와 마찬가지로 시종일관 사회 복지와 사회 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이헌재가 안철수처럼 사회 복지 관련 과외를 많이 받은 것은 아니었는지, <안철수의 생각>에 비해 <경제는 정치다>에서 사회 복지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은 별로 읽을 것이 없다.
그렇지만 안철수와 이헌재에게 공통되는 큰 틀은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다. 즉 둘 다 스웨덴이나 북유럽과 같은 야심찬 수준의 복지 국가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안철수가 구상하는 복지는 필시 현재 민주통합당의 대통령 후보 문재인이 이야기하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수준의 복지, 즉 앞으로 10년 뒤에야 오늘날 미국 수준의 복지에 도달하는 구상에서 머무를 것이다.
더구나 더 중요한 점은 <안철수의 생각>에 그 이후의 미래 복지 국가에 대한 구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안철수의 복지 구상은 우리나라보다는 조금 나은 편이지만 아무튼 선진국 최악의 복지 국가(?)인 미국 수준의 복지를 하겠다는 것 이상의 꿈이 없다. 미국 민주당 수준의 복지 정책을 넘어서는 더 높은 꿈도 없고 더 나아간 장대한 구상도 없다. 그리고 이러한 안철수의 갑갑함은 그대로 이헌재에게서 반복된다.
안철수의 세계관 : 미국 리버럴의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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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의 생각>(안철수 지음, 제정임 엮음, 김영사 펴냄) ⓒ김영사 |
안철수와 이헌재, 문재인과 경제 민주화 학자들의 생각은 2008년 금융 위기로 무너진 미국 경제와 금융 시장을 살리기 위해 약간의 사회 복지와 금융 규제로 보완은 하겠지만 여전히 현재의 월스트리트 주도형 경제 구조를 적당히 고쳐서 쓰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클린턴, 오바마 정부의 로버트 루빈-로렌스 서머스-티모시 가이트너 같은 '진보적 시장주의(진보적 신자유주의)' 경제 관료의 그것과 일치한다. 지금 미국 민주당 주류파의 경제 정책이나 금융 정책을 바로 안철수나 문재인 모두 추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향후 이 나라와 우리 국민들의 미래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안철수의 생각은 미국의 클린턴, 오바마 정부의 사상과 철학, 경제 사회 전략을 20년 전부터 그대로 모방해온 민주통합당의 그것과–따라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그것과-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단지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달리 사회 복지에 대한 강조가 추가되었을 따름이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의 생각>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참여했던 핵심 관료 이헌재의 '경제 특강'과 똑같다.
장담하건대, 문재인은 안철수이고, 안철수는 문재인이며, 따라서 양자 간의 후보 단일화는 커다란 이념 대립 없이 원활하게 진행될 것이다. 조국이 양자 간의 '아름다운 단일화'를 주문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문재인의 민주통합당에서 일했던 박선숙이 홀연히 안철수 캠프에 가담하는 것을 그 누구도 양심과 사상의 배신, 사상 전향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안철수와 이헌재 그리고 박선숙
<경제는 정치다>에서 이헌재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 때의 일이다. 어떤 자리에서 공격적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도대체 당신은 왜 좌파 정부에서 일하느냐, 정체가 뭐냐"는 질문이었다. 자뭇 당혹스러웠다. 그래서 잠시 생각하다 그 자리에서 "나는 시장주의자다. 그것도 적극적 시장주의자다"고 대답했다. (165쪽)
그 김대중 정부의 청와대 대변인을 했으며, '뼈 속까지 김대중 신봉자'로 알려진 박선숙이 안철수 캠프의 책임자를 맡았다. 그런데 <경제는 정치다>에서 이헌재는 이 책의 발간이 작년 가을에 경제민주화에 대해 공부하는 전문가들로부터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에서 시작되었다고 썼다(11쪽). 그런데 최근 보도를 보면, 그 공부에 참여한 인물 중에 바로 박선숙과 민주통합당 의원 박영선이 있었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김대중 정부 치하에서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경제는 정치다>의 뒤표지에는 박선숙이 쓴 다음과 같은 추천사가 나와 있다.
"IMF 외환 위기 당시 이헌재는 '저승사자'로 불렸다. 재벌을 해체하고 그 문어발식 탐욕을 끊어내는 개혁의 선두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성과보다 그 개혁을 법제화하기 위한 그의 치밀한 노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재벌들의 탐욕을 제어할 급소가 무엇인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개혁은 단호하게, 그러나 물이 스며들 듯이 진행하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재벌 개혁의 목소리가 높은 이 시대에 그의 생각과 경험을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공정한 시장 경제의 답을 찾는 이들에게 이 책은 올바른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김상조를 필두로 많은 사람들이 이헌재를 '모피아식 관치 금융'의 화신으로 비난한다. 김상조는 "이헌재식 관치 경제는 원칙을 위배한 것이고, 심지어는 법을 위반하는 경우도 많았다"며 "이런 과거를 갖고는 정상적이고 선진적인 경제 질서를 결코 만들어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마치 김대중, 노무현 정부로 하여금 재벌 개혁 및 금융 개혁을 '단호하게' 하지 못하게 만든 책임자가 바로 이헌재 등 모피아 세력인 양 비난한다.
이에 반해 이헌재는 "개혁은 미지근하게" 해야 한다고 본다(152쪽). 왜냐하면 경제 개혁은 국민들의 삶을 다루는 것이기에 조심스럽게 진행하여야 하기 때문이다(204쪽). 게다가 법제도와 시장 질서가 아직 확립되지 않은 대혼란의 구조 조정 시기에 "원칙을 위배하고, 심지어 법을 위반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 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것은 어렵다. 따라서 박선숙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이헌재의 생각에 동의한다. "개혁은 단호하게, 그러나 물이 스며들 듯이 진행하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경제학자라면 몰라도 경제 관료라면 그런 탁월한 능력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안철수 캠프의 경제 정책 참모로 가담한 전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이원재 역시 같은 의견이다. 안 철수 캠프에 합류한 이원재는 20일 YTN 라디오에 나와 "이헌재 전 부총리는 외환 위기를 극복하는 데 굉장히 큰 역할을 하신 분"이라며 "우리 경제와 세계 경제가 계속 위기라는 사인을 받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 전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위기 관리 능력과 혁신, 개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합쳐지면 좋은 한 쌍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점에 대해 나 역시 동의한다. 이헌재라면, 안철수 미래 대통령이 추진할 재벌 개혁과 가계 부채, 부동산 대출 부실화 문제의 해결을 '중도 시장주의'의 관점에서 (이것은 경제 민주화 학자들도 공유한다), 더구나 이헌재/모피아 특유의 관료주의적 유능함까지 겸비하여(이것은 경제 민주화 학자들에게 결여된 것이다),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김상조 등 이헌재 비판자들은 정작 중요한 문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먼저 박선숙이 찬양했듯이 이헌재는 재벌을 해체했다. 그 결과 우량 대기업들이 외국 자본에, 특히 투기 자본에 매각되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 다른 재벌에 인수되었다. 그렇다면 그런 재벌 해체가 과연 '진보적' 정책이었단 말인가?
박선숙이 찬양했듯이 이헌재는 재벌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막아버렸으며 계열사 간 내부 거래를 어렵게 만들었고 주주 자본주의를 만개시켰다. 그리고 그 결과 한국의 재벌 그룹들은 이제 더 이상 우주항공이나 제약, 첨단 부품 소재와 같은 미래형 제조업 분야로 무모한 투자를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별다른 기술력이 없어도 손쉽게 진출할 수 있으며, 손쉽게 경쟁자(주로 국내 중소기업 또는 영세 기업)를 쓰러뜨릴 수 있는 제과점이나 순대집, 패션의류, 소모성 자재 등에 진출하여 손쉽게 돈을 번다. 주가 상승과 단기 수익성 향상에 혈안이 된 주식 펀드 매니저들과 야합한 재벌 3세, 4세들이 손쉽게 부를 축적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프레시안(손문상) |
외환은행의 론스타 매각·쌍용차의 상하이차 매각은 누구의 책임인가?
그렇다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안철수와 문재인, 이헌재와 박선숙이 모두 하나 같이 동일한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면, 게다가 이헌재는 학자들과 달리 관료적 유능함과 교활함까지 지닌 탁월한 경제 관료라고 한다면, 과연 누가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치하에서 벌어진 빈부 격차 심화와 금융 투기화, 부동산 가격 앙등 사태의 책임자란 말인가? 누가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매각한 책인자였고, 누가 상하이자동차에 쌍용자동차를 매각한 책임자였던가? 누가 한국 사회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책임질 올바른 인물이란 말인가?
앞서 말했듯이, 안철수와 문재인, 이헌재와 박선숙 (그리고 서울시장 박원순 역시) 모두 하나 같이 미국 리버럴의 프리즘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런데 이것은 경제 민주화(실제로는 경제 자유화)와 재벌 개혁(실제로는 주주 자본주의화)을 앞세우는 개혁 진보파 경제학자들 역시 전혀 다를 것이 없다. 즉 이헌재 및 모피아 세력과 경제 민주화 학자들은 모두 공통의 목표와 미래 비전을 가지고 있되, 단 그 실현 방법에 있어 "미지근하게, 물이 스며들 듯이" 가져갈 것인지, 아니면 "단호하게, 원칙과 규칙을 준수하면서" 진행할 것인지에서 의견 차이를 보일 따름이다.
경제 민주화 학자들과 모피아라는 두 세력 모두 1990년대 이래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에서도) 한국 경제와 한국 사회를 '빅 스웨덴(Big Sweden)'이 아닌 '리틀 아메리카(Little America)'로 만들고자 꿈꾼다. 즉 미국 리버럴의 주류인 오바마와 클린턴, 그리고 서머스와 가이트너가 꿈꾸는 '열린 시장주의', '진보적 (또는 중도적) 자유주의(시장주의)'가 바로 그들이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10년 전, 모피아 그룹과 경제 민주화 그룹이라는 두 세력이 합작하여 (또는 경제 민주화 학자 및 시민 단체의 철저한 묵인 하에) 진행된 것이 바로 외환은행의 론스타 매각, 쌍용자동차의 상하이차 매각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이는 요즘 드물다. 그리고 김대중 시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주주 자본주의와 투기 자본, 재테크 풍조의 만연과 '부자 되세요' 신드롬, 빈부 격차의 심화 현상 역시 두 세력이 합작한 "정부 주도 및 재벌 주도형 경제의 해체와 시장 주도, 중소벤처 주도형 경제로의 전환"의 명백한 결과였다는 것도 기억하는 이 역시 드물다.
그런데도 당신은 안철수와 문재인에 열광한다. 그리고 경제 민주화를 얘기하며 사실은 '경제 자유화'를 밀어붙이는 이들의 의견에 동조하여 이헌재와 모피아는 비난한다. 이것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비난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자, 이제 다시 물어보자. 지금,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이렇게 마무리를 하자니 덜컥 겁이 난다. "똥 묻은 개라니?? 당신은 정체가 뭐요? 그렇다면 당신은 박근혜를 지지하자는 말이요?" 하고 비난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나의 정체와 생각 전체를 알고 싶은 독자들은 장하준 교수, 이종태 기자 그리고 내가 공저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부키 펴냄)와 <쾌도난마 한국 경제>(부키 펴냄)를 읽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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