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여자의 질문 "그 남자에게 나는 섹스 인형인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여자의 질문 "그 남자에게 나는 섹스 인형인가?"

[박수현의 '연애 상담소'] 미겔 데 우나무노의 '완전 남자'

그는 나를 섹스 파트너로 생각할 뿐이야. 순은 음울하게 되뇐다. 순에게는 사랑에 관한 판타지가 있다. 육체적이라기보다 정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사랑. 평생 서로에게 천국을 선사해 주다가 함께 죽는 사랑. 그녀에게 육체의 교환이란 정신적으로 위대한 사랑으로 가는 통과 의례일 뿐이다. 그런데 그 남자는 순을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육체만을 원하는지 알 수 없다.

한 술 더 떠서 순의 판타지는 이런 식으로 발전했다. 사랑한다면, 그는 나를 만날 때마다 설레야 한다. 이전 애인들보다 훨씬 더 열렬하게 나를 사랑해야 한다. 나를 만나서 느끼는 감정이 전무후무한 강렬한 열정과 설렘이어야 한다. 헤어지더라도 나는 그에게 인두에 덴 자국처럼 영원히 각인되어야 한다.

순은 이러한 사랑의 이상을 먼저 설정해 놓고, 연인의 사랑이 그에 미치는지 아닌지 끝없이 점검했으며, 이상에 못 미칠 때 절망에 빠졌고, 그의 내심을 끊임없이 의심했다. 절망과 의심에 지치면 운수불길하여 못된 남자들만 만났다고 생각하면서 사랑을 서둘러 끝내곤 했다.

순은 계속 의심했다. 그는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자랑하기만을 원할 뿐인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가? 결혼을 앞두고서는 이렇게 의심했다. 그는 결혼 생활의 안정감만을 원할 뿐인가? 진정한 사랑을 원하는가? 결혼해서는, 일상적 보살핌과 정서적 안정 등 각종 서비스만을 원할 뿐인가? 나의 경제적 능력을 원할 뿐인가? 연애 초반부터 결혼 생활 내내 순은 사랑의 진정성 여부를 고뇌하느라 마땅히 누릴 수 있었던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대체로 남자들은 순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았다. 남자는 순의 궁금증을 이해할 수 없다. 동침하고 싶거나 결혼하고 싶었을 때 사랑하지 않았다고는 말 못한다. 그러나 미처 생각지도 못한 곳까지 상상의 나래를 펴서 상세하고도 난해한 항목을 조목조목 들이밀며 질문하는 순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순의 질문을 듣다 보면 남자는 자기 감정을 새로이 의심하게 된다. 뭐야, 난 이 여자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이 여자가 그리는 판타지가 사랑이라면.

▲ <모범 소설>(미겔 데 우나무노 지음, 박수현 옮김, 아르테 펴냄) ⓒ아르테
순과 그녀의 남자, 미겔 데 우나무노의 '더도 덜도 아닌 딱 완전한 남자'(<모범 소설>(박수현 옮김, 아르테 펴냄))를 읽는다. 순은 자기와 똑같은 질문에 평생토록 사로잡힌 여자, 훌리아를 만나고서 깜짝 놀란다. 남자는 자기와 비슷한 알레한드로를 만나서 반갑다.

너는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니? vs. 그게 도대체 왜 중요하니?

레나다 마을의 공식 미녀, 휘황찬란한 미모의 훌리아는 소설을 즐겨 읽었다. 소설에 나오는 낭만적인 사랑의 양상과 윤리를 진실 그 자체로 믿고, 사랑은 낭만적이고 진정하고 완전해야한다는 준칙에 포획된 영혼이다. 낭만적인 사랑에 대한 믿음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랑의 진정성에 관한 시니컬한 의심을 동시에 키운다.

낭만성에 대한 믿음과 시니컬한 의심이 샴쌍둥이처럼 붙어있는 모습은 일견 모순적일지 모르나, 사실 필연적이다. 믿음이나 당위가 강하다는 말은 이상이 높다는 말이요, 이상이 높으면 그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반성적 자각이나 의심 역시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훌리아는 자주 현실을 비탄하며 빈번하게 의심에 빠진다. 먼저 아버지를 의심한다. 사업상 위기에 빠진 아버지가 딸의 미모를 무기로 부유한 남자와 거래하려 한다고.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에서, 그녀는 또래의 애인들을 만든다.

애인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환상 속에서 살고 싶었던 훌리아는, 그러나 잇달아 배반을 경험한다. 첫 번째 애인 엔리케는 훌리아의 아버지가 자신을 만나고자 한다는 전언을 듣고 바로 이별을 결심한다. 헤어질 궁리에 여념이 없는 엔리케 앞에서 훌리아는 바보스럽게, 고집스럽게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재차 물을 뿐이다. 그녀가 얼마나 자신만의 환상에 빠져 있는지, 상대 마음의 움직임에 둔감한 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처음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그렇듯, 그녀가 관심을 두고 집착하는 것은 상대 자체가 아니라 자신만의 판타지이다. 그러니까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어야 한다는 판타지 말이다.

두 번째 애인 페드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도망치자는 훌리아의 제안 앞에서 페드로는 무얼 먹고사느냐며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지만, 그녀는 같이 죽자고, 자기를 사랑하면 같이 죽을 수 있다고 말할 뿐이다. 역시나 사랑의 판타지에 포획된 영혼의 전형이다.

두 번의 연애가 실패로 끝난 후, 훌리아는 "남자들은 나와 사랑에 빠지는 게 아니라 내 예쁜 얼굴하고만 사랑에 빠지지. 날 얻으면 그들이 유명해지니까!"(40쪽)라고 탄식하면서 남자들의 사랑을 의심한다. 남자들이 자기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명예욕이나 호승심을 충족하고자 사랑하는 시늉을 할 뿐이라고, 그녀는 시니컬하게 분석하고 의심한다.

훌리아는 부유한 알레한드로와 결혼한다. 의심의 담론에 포획된 그녀는 역시나 "그는 날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예쁜 얼굴로 그를 빛내주기만을 바라는 걸까? 나는 그에게 무진장 비싸고 희귀한 가구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있을까?"(51쪽)라며 사랑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그가 훌리아의 미모와 유명한 훌리아를 얻었다는 명성을 재산 목록에 더하려고 할 뿐,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고 의심하는 것이다.

연애 중에 "그는 날 진정 사랑하는 걸까?"(51쪽)라고 물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훌리아의 비극은 그 질문에 평생 포획되어 살아간다는 점이다.

알레한드로는 어떤가. 그는 사랑한다는 말 따위는 소설에나 나오는 헛소리이며, 오직 바보들이나 그런 말들을 주고받는다고 고집스럽게 주장한다. 그는 훌리아가 바라는 대로, 다정한 사랑의 밀어를 속삭여주거나 사랑을 확신하게 하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다. 혼란에 빠져 사랑을 확인하고자 하는 아내의 끊임없는 몸부림을 신경 쇠약으로 치부할 뿐이다.

알레한드로에게도 그만의 준칙이 있다. 완전히 남자다워야 한다는 준칙. 소설의 제목인 "더도 덜도 아닌 딱 완전한 남자"는 알레한드로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별명이다.

훌리아는 남편의 질투를 유발함으로써 사랑을 확인하겠다고 작정한다. 고의로 불륜에 빠져들며, 그 사실을 의도적으로 남편에게 알린다. 그러나 남편은 훌리아의 기대대로 질투에 눈이 멀기는커녕, 아내를 정신병자로 몰아간다. 환각을 사실로 믿는 정신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잔혹한 처사임에는 틀림없지만, 알레한드로의 변은 이렇다. 아내에 대한 믿음을 어떤 식으로든 깰 수 없어서 아내의 불륜을 인정하느니 차라리 그녀의 정신병을 믿어버리는 편을 선택했다고.

정신병원에서 나오고자 훌리아는 불륜을 저지른 적이 없었고 단지 환각에 빠졌다고 거짓으로 인정하기로 한다. 인정한 후 알레한드로를 처음 대면한 날마저, 훌리아는 또 다시 고집스럽게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이때 알레한드로는 난생 처음으로 "내 어찌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소! 내 영혼을 다 바쳐, 내 피를 다 바쳐, 내 내장을 다 바쳐 나 자신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오!"(93쪽)라고 미친 사람처럼 외치며 광폭하게 아내에게 입을 맞춘다. 작가는 이를 "기를 쓰고 봉해두었던 무시무시하고 신비로 가득 찬 영혼의 심층"(93쪽)이라고 표현한다.

결혼 생활 내내 바라왔던 대답을 처음으로 들은 훌리아는 일단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기뻐한다. 그러나 의심의 습관은 얼마나 끈질긴지 그녀는 또 다른 의심에 빠져든다.

즉시 이어지는 훌리아의 질문. "내가 당신 사람이 아니라 다른 남자의 여자라 하더라도 나 자신, 바로 나이기 때문에 날 사랑하나요? 아니면 내가 당신 것이기 때문에 날 사랑하나요?"(94쪽) 그러니까 남편이 극적인 방식으로 사랑을 보여주었음에도 그것이 자기 소유물에 대한 애착인지 그녀 자체에 대한 사랑인지 의심하는 것이다.

그녀는 임종의 순간에서조차 의심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 "이제야 내가 그토록 괴로워했던 모든 일이 다 쓸데없었다는 걸 알겠어요"(106쪽)라고 말하면서 사랑을 의심했던 일평생에 회한을 느끼지만 바로 곧이어 케케묵은 고뇌에 다시금 빠진다.

작가 우나무노는 소설집의 서문에서 말했다. 더도 덜도 아닌 딱 완전한 남자를 알레한드로로, 더도 덜도 아닌 딱 완전한 여자를 훌리아로 형상화했다고. 그는 사랑에 대처하는 자세에서 남성성의 극단과 여성성의 극단을 그리고 싶었나 보다. 서두의 순의 남자가 알레한드로에게, 순이 훌리아에게 공감한 것을 보면 작가의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듯하다.

이런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왜 발생할까? 질문을 바꾸어서, 여자들 특히 젊은 여자들은 왜 상대 남자의 사랑의 진정성을 그토록 요구하거나 의심할까?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듯이 대체로 남자의 사랑은 상대에게 성욕을 느끼는 사건에서 출발한다. 젊은 남자들의 경우 이른바 진정한 정신적 사랑에 대한 판타지가 여자들만큼 강하지 않다.

이런 가설이 가능하다. 이것은 남녀의 성적 욕구의 발달 양상이 다르기 때문인가? 알려진 대로, 남자들은 20대에 가장 강한 성욕을 느끼다가 40대에 이르러 육체적 필요보다 정서적으로 소통하고 의지하고픈 욕구를 더 강하게 느낀다.

여자들은 그 반대이다. 리비도의 양이 일정하다고 가정할 때, 젊은 여자도 남자와 동일한 양의 리비도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젊은 여자의 성적 욕구가 미미하다는 속설대로, 그 리비도는 육체에 부착되지 못한다.

육체에서 이탈한 리비도가 어디로 가겠는가. 관념적인 환상에 달라붙지 않겠는가. 그러하기에 젊은 여자들은 격렬한 에너지로 사랑에 관한 판타지를 살찌운다. 청춘이기에 당연히 왕성한 리비도가 육체 대신에 관념적인 판타지에 부착되는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