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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남 의원, '잃어버린 석달'을 어떻게 보상할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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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남 의원, '잃어버린 석달'을 어떻게 보상할건가?

[초록發光] 실종된 탈핵 정치를 찾습니다

탈핵에 성공했거나 현재 추진하고 있는 나라들을 두루 살펴보면, 정치·사회적 시사점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가장 기본이 되는 사회 운동의 역량이다. 환경 운동이나 탈핵 운동 진영이 가장 선호하는 것이기도 한데, 에너지 결정권을 행사하는 데 필요조건으로 볼 수 있겠다. 둘째는 제도 정치의 각성과 정책 전환의 의지이다. 정당 정치가 아래로부터의 탈핵 운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면 에너지 민주주의를 앞당길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에너지 전환 실험을 꼽을 수 있는데,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운동 못지않게 지역에서의 에너지 자립 시도와 에너지 협동조합과 같은 활동은 탈핵의 가시적 잠재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상당하다.

이중에 어느 것이 먼저냐 하는 질문에 정답은 없다. 각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교과서적적인 탈핵 공식은 없다고 보면 된다. 다만 운동과 정치와 실험이 선순환을 이룰 때 탈핵의 가능성이 더 빨리 더 커진다는 점은 확실한 것 같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지난 1년 6개월간 시민 사회에서의 탈핵 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은 듯하다. 운동권의 어젠다에서 국가적 어젠다로 격상되었으니 말이다. 이런 점에서 부안의 에너지 자립 마을 실험 등이 다시 각광 받고 있고, 최근에는 서울과 경상남도 등에서 햇빛발전협동조합이 준비되고 있을 정도로 대안적 에너지 전환 실천이 탄력을 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런 탈핵의 흐름이 국가 에너지 정책을 바꿀 만한 수준에는 한참 모자란다는 사실 또한 냉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토론과 교육 등 숱한 탈핵 공론장이 마련되고 있음에도 뭔가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핵발전 네트워크'의 강고함을 직시하는 것과 함께 탈핵 운동의 대표 격인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 행동'과 같은 대항 네트워크의 활동에 대한 주체적 평가도 필요한 시점이라 하겠다.

제도 정치와 관련해서는 당면한 대선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는 핵발전 정책에 대해 '침묵의 정치'를 보여주고 있는데, 누구도 박 후보의 찬핵 입장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도 궁금해서 옛 신문을 검색해봤다. 국민의 정부 시절인 1999년 산업자원위원회 의원 재직 당시 한국전력 국정 감사에서 "월성, 울진 등 원전 지역이 활성 단층인지 인지 여부를 민관 합동으로 조사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지진 위험이 있는 곳에 핵발전소를 건설하면 안 된다는 사실 정도는 인지하고 있다는 점 말고는 확인할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핵발전 정책에 차이가 생겼다. 여전히 애매하긴 하지만 민주통합당은 '원전 재검토'와 '수명 연장 반대'가 당론인 듯하다. 한참 진행되고 있는 당내 경선 후보자들 중에는 '2040년'이니 '2060년'이니 나름의 입장을 개진한 바 있다. '저녁이 있는 삶'에 쓸 전기를 재생 가능 에너지로 생산하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당 후보로 결정될 캠프의 제안이 최종적으로 당의 공식 정책 공약으로 채택될지는 모르겠으나, 2007년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를 내세운 민주노동당의 '2035년 핵 없는 나라'와 가까운 안도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겠다.

▲ 통합진보당 김제남 의원. ⓒ연합뉴스

이들 정당에 비해 녹색당, 진보신당과 통합진보당의 탈핵 노선은 선명하다. 녹색당과 진보신당은 원내에서 자리 배정을 받지 못한 탓에 제도 정치에서는 사라졌지만 보이지 않은 곳에서 묵묵히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그러나 의석을 차지한 통합진보당의 탈핵 정치는 곧 멈춰버렸다. 탈핵 정치를 보이지 않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통합진보당과 김제남 의원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그 결과는 탈핵의 정치·사회적 전략의 삼박자에서의 이탈이었다.

새누리당의 찬핵 입장의 상징적 인물이 비례대표 1번을 배정받은 민병주 의원이라면, 통합진보당은 탈핵 에너지 전환 운동에 앞장섰던 환경 단체 출신의 김제남 의원이었다. 환경 운동 진영 등 많은 사람들이 조승수 전 의원 이상으로 '탈핵 의원'으로 성장하길 기대했을 것이다.

탈핵 보좌진들을 영입하면서 19대 개원 직후 왕성한 활동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찬핵 세력과의 전장에서가 아니라 집안에서 사단이 났다. 7월 26일, 이석기, 김재연 의원 제명안에 기권한 정치적 결정은 많은 이들의 '멘붕'에 이어 곧바로 '당붕'으로 이어질 결정적 사건이었다.

당시의 정치적 책임에 대해 나까지 돌 하나 더 던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분당으로 이어지는 사태에 모든 책임을 지게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 책임은 분당 카드를 너무 이른 시기인 2008년에 써버린 과거 전력으로 돌리는 게 더 합당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김제남 의원은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 위한 국회의원 연구 모임'을 통해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더니 돌연 9월 3일에 소위 구당권파와 결별 선언을 한다고 발표했다. 내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 돌변이다. '낭만의 시민 정치'와 '현실의 진보 정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얻은 교훈이라면 일면 수긍이 간다. 이제 더 이상 당내에서는 혁신의 가능성을 찾아볼 수 없다고 판단해서라고 하니 인정은 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 동안 잃어버린 (너무 과한 표현이라면, 관계가 서먹해진) 우군인 환경 단체와 활동가들과도 윈윈 관계를 복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탈핵을 주장하는 입장에서 지난 잃어버린 세 달을 어떻게 보상받아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보상받을 수 있는 방법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통합의 정치'를 위해서 '탈핵의 정치'를 희생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잡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도 성심껏 책임지는 진정성을 보이는 게 정치의 미덕이어야 한다면, 김제남 의원이 제자리 찾는 모습을 볼 수 있길 기대해 본다.

탈핵 운동과 에너지 대안 실험이 탈핵의 대항 헤게모니가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 그리고 이것들과 비교하면 한참 뒤떨어진 제도 정치의 수준을 고려하면, 탈핵은 길은 멀기만 하다. 4대강에는 존재할 필요가 없는 토건 사업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고, 구제역에는 과도한 방역작업으로 가축을 몰살해 가축의 존재 이유마저 새롭게 정의한 이명박 대통령 집권 동안에는 불능화 조치를 순차적으로 실시해 핵발전소의 존재를 지워나가기란 애초에 불가능했다고 보는 게 맞다. 믿을 수 있고 실력 있는 탈핵 정치 대표도 없는 상황이니 말이다. 운동 단체들의 생각도 이와 같지 않을까.

그렇다고 18대 대선에서 탈핵 약속을 맺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진보-개혁 세력과 친환경 세력을 아우르는 탈핵 동맹은 무슨 조직이나 위원회로 이름 붙인다고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탈핵의 종착지로 언급되는 2030, 2040은 숫자에 불과한, 그릴 수 있는 아름다운 전망일 뿐이다. 탈핵 운동은 결국 중장기적인 진지전이다.

그렇다면, 18대 대선은 탈핵의 1단계만 약속하기로 하자. 바로 노후화된 핵발전소와 건설·계획 중인 핵발전소를 멈추게 하자. 이것으로 충분하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 진행하는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이런 시도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이 아닌 '초록 대안'을 찾으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활동의 일부분입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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