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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라인업은 슈퍼스타, 왜 이리 심심해!

[이명현의 '사이홀릭'] <인간이 우주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 모르는 것들>

과학 잡지 <사이언스> 2005년 7월 1일자에 '125 Questions : What don't we know?'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사이언스> 125주년을 맞아서 과학의 최전선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125가지 질문들을 모아놓고 간략한 설명과 전망을 붙여놓은 것이었다. 어떤 질문들은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누구나 흔히 던질 수 있는 정말 궁극적인 질문들이었다. 또 다른 질문들은 그 답이 알 듯 말듯 우리 눈앞에 와있는 것들이었다. 아주 엄격한 수학적인 질문들도 있었다.

몇 가지 질문들을 옮겨 적어보면 이렇다.

- 생체 시계는 어찌 이렇게 정확할까?
- 어떻게 기억을 저장하고 불러내는가?
- 의식의 생물학적 토대는 무엇인가?
- 잠자고 꿈꾸는 이유는 무엇인가?
- 유전자 조절로 건강을 관리할 수 있을까?
- 줄기세포로 모든 암을 치료할 수 있을까?
- 도덕성은 뇌에 각인되어 있을까?
- 성격은 유전자와 얼마나 연관이 있을까?
- 서로 돕는 행동은 어떻게 진화되어 왔을까?
- 통일 이론은 가능할까?
- 우리 우주는 유일한가?
- 광활한 우주는 무엇으로 채워져 있나?
- 복잡계를 설명하는 일반 이론을 발견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더 적어보면 이렇다.

- 우주의 생물체는 우리만일까?
- 이 지구에서 생명체는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
- 블랙홀의 본질은 무엇인가?
- 행성들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 태양계에서 지구 말고 다른 곳에 생명이 존재하는가, 혹은 존재했을까?

또 다른 몇 가지 질문을 더 적어보자.

-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가?
- 정부의 엄청난 적자는 국가의 금리와 경제 성장률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 민족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발전되었는가?
- 언어와 음악의 진화론적 뿌리는 무엇인가?
- 무엇이 현대 인간의 행동을 낳았는가?
- 어떤 나라들은 발전하고, 또 다른 나라들은 침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이언스>가 제시한 125가지 과학적 질문들 중 일부 질문에 대해서 강봉균, 이정모, 이현숙, 정재승, 최기운이 글을 쓰고 김용석, 강신주, 정재승이 대담을 한 것을 묶은 <인간과 우주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 모르는 것들>(낮은산 펴냄)이 출판되었다.

"이 질문들을 보면서 묘한 호기심이 다시 발동했다. 과연 대한민국 최고의 석학들은 이 질문에 대해 어떤 답을 가지고 있을까? 그들에게 이런 질문들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이런 엉뚱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어 이 책은 세상에 나오게 됐다."

이 책을 기획한 정재승이 '책을 내며'에 써놓은 것처럼 이 책은 기본적으로 질문에 대한 책이다. <사이언스>가 제시한 125가지 과학의 질문들로부터 이 책의 기획이 시작되었고, 기획자는 국내 과학자들은 이런 질문에 어떤 답을 갖고 있을까 궁금했었고, 국내 학자들에게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졌다. 이 책은 이런 일련의 질문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몇 년 전 서울 삼청동의 작은 카페에서 있었던 모임에 간 적이 있었다. 출판사의 편집자, 이 책에는 참여하지 않은 철학자, 정재승 그리고 내가 참가한 일종의 <인간과 우주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 모르는 것들>에 대한 기획회의였다. 과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유쾌한 토론이 이어졌던 즐거운 기억이 떠오른다. 내가 만약 이 책의 필진으로 참여했다면 위에 나열한 질문들 중 두 번째 질문 리스트에 대해 답을 하는 글을 썼을 것이다. 그 모임 후 이런저런 사정으로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이 책과의 인연은 안타깝게도 멀어져버렸다. 마음속에 늘 미안함이 남아있었다. <인간과 우주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 모르는 것들>을 보면서 큰 짐에서 벗어난 것 같아서 무척 기뻤다.

▲ <인간이 우주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 모르는 것들>(정재승 외 지음, 낮은산 펴냄). ⓒ낮은산
<인간과 우주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 모르는 것들>을 읽는 법 한 가지를 제안하려고 한다. 물론 책읽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이고 그 방법도 취향의 문제이니 자기 마음대로 읽으면 그만이다. 내가 이 책을 받아들고 처음 했던 일은 표지를 보는 평범한 일이었다. 그 다음 동작은 2~3초 동안 왼손으로 책을 받치고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책을 휙 넘기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보통 목차를 보는데, 이번에는 책 끄트머리에 있는 '우리가 조금밖에 모르는 125가지 과학 난제'라는 제목이 붙은 일종의 부록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이렇게 125가지 질문들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이런 저런 궁리를 하는 것으로 이 책 읽기를 시작했다. 그런 후 목차로 옮겨갔고 그런 다음에야 서문 격인 '책을 내며'를 읽었다. 그리고는 다시 책을 덮었다. 질문에 대한 답을 그냥 듣기 보다는 혼자서 좀 생각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의 지적 능력과 지식의 한계로 명확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렴풋한 답에 바로 따라붙는 질문을 만난 것은 큰 즐거움이었고 수확이었다.

비로소 본문을 읽게 된 것은 책을 덮은 지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이 책은 누가 뭐라고 해도 '질문'이 화두인 책이니, 책 뒤쪽에 모아 둔 125가지 질문부터 읽는 것은 나쁘지 않은 접근법인 것 같다.

<인간과 우주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 모르는 것들>은 훌륭한 책이다. 글 첫머리에 적어놓은 첫 번째 질문 묶음이 이 책에서 선택하고 답을 하려고 한 질문들이다. '생체 시계는 어찌 이렇게 정확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정재승의 글을 보면 이 질문에 대한 현대 과학의 모범답안이 잘 정리되어 있다. 그런데 글 끝머리에 다시 질문이 등장한다.

"진화적 차원에서 보자면, 인간을 포함해 동물들은 왜 일주기 리듬을 갖게 됐을까? 그것이 생존에 더 도움이 됐기 때문일까?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으로 나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그것을 결정할까? 그것은 타고난 것일까. 습관과 노력으로 변형 가능한 것일까? 좀 더 거시적으로 보자면, 시계라는 개념은 인간이 편의상 만든 개념이 아니라, 자연이 만든 발명품일까? 시간이란 실제로 존재하는 물리량일까, 그저 운동만이 이 우주에 존재할 뿐이며 시간이란 물체의 운동을 관통하는 가상의 개념일 뿐일까? 신경 세포 간의 동기화 현상은 시교차상 핵이라는 생체 시계를 둘러싼 이 모든 질문에 근사한 해답을 얻는 데 우리에게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사실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답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그 답의 문제점도 알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과학에서는 하나의 답을 알면 열 개의 새로운 질문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러니 과학의 시작과 끝은 곧 질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도 <인간과 우주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 모르는 것들>일 것이다.

'어떻게 기억을 저장하고 불러내는가?'에 대한 설명 글에서 강봉균도 역시 질문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최근 서술 기억 저장에 중요한 일을 하는 해마에서 새로운 뉴런들이 만들어진다는 놀라운 발견이 이루어졌다. 왜 하필 해마에서 뉴런들이 만들어질까? 혹시 새로 만들어진 뉴런들이 새로운 기억 저장에 관여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는 많지만, 해마와 뉴런 생성이 기억의 비밀을 풀 열쇠일지도 모른다."

'우리 우주는 유일한가?'에 대한 최기운의 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주 상수 문제의 해답은 어떤 근본 원리로부터 나올 가능성을 아직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유일한 우주의 가능성도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아마도 우주의 유일성에 관한 논쟁은 인류가 존재하는 마지막 시간가지 살아 있을 것이다."

<인간과 우주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 모르는 것들>는 훌륭한 책이다. 질문에 주목했다는 것 자체가 탁월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들 질문에 대해서 국내 과학자들의 목소리로 답을 들려주려고 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당연히 가독성이 뛰어난 책이다. 지금 과학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리말로 생생하게 중계방송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모범답안이 낳은 질문을 또 다시 던져주는 친절하고 훌륭한 책이다. 현재를 인식하고 가까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현안을 갖게 해주는 책이다.

하지만 <인간과 우주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 모르는 것들>은 모범답안에도 또 다른 질문이 생기듯이 아쉬움도 남는 책이다. 더 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다들 질문이 너무 도전적이어서 답하기 곤란하다며 정중히 거절하셨다'는 기획자의 말을 받아들이면서 넘어가기로 하자.

'복잡계를 설명하는 일반 이론을 발견할 수 있을까?'에 대한 설명 글에 정재승이 다른 곳에 썼던 글을 보완해서 다시 실은 것은 무척 아쉽다. "<과학콘서트>에 실었던 글이 마침 이 난제에 대해 잘 얘기하고 있어, 그 글을 수정 보완하였습니다"라고 글 끝머리에 친절하게 밝히고 있지만 정재승의 재기발랄한 새로운 글을 보고 싶어 하는 독자로서 아쉬운 마음까지 감출 수는 없다.

'위험한 좌담'이라고 스스로 칭한 철학자 김용석, 강신주와 과학자 정재승의 대담은 좀 싱거웠다. 대담의 내용 자체만을 놓고 보자면 나름대로 경쾌하고 발랄했다고 생각한다. 그 내용도 모법답안 같은 이야기들로 꽉 찬 알찬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인간과 우주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 모르는 것들>은 질문에 대한 답을 하고 또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책이 아니었던가. 대중들에게 가장 접근한 철학자 두 명과 대중들에게 가장 친근한 과학자 한 명이 펼쳐놓은 대담치고는 너무 약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예쁜 소품이랄까. 전혀 위험하지 않고 너무 안전했다.

이 정도 라인업이면 뭘 못하겠는가? 훨씬 더 도전적이고 디테일한 대담일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예를 들면, 글 첫머리에 적어놓은 세 번째 질문 목록에 대한 각론으로서의 대담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적어도 이 책에 실린 글 각각에 대한 철학적 담론이 넘쳐나기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스페인 축구 대표팀의 맥 빠진 시범 경기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 정도 호화 라인업에 늘 듣던 거대 담론이 아닌 디테일하고 화려한 개인기를 기대하는 것이 과한 욕심인가?

<인간과 우주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 모르는 것들>은 읽기 편하고 질문을 마구 던지고 싶은 욕망이 들도록 하는 훌륭한 책이다. 하지만 더 위험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 책이다. 다른 질문들에 대한 답과 또 다른 질문을 담은 (그리고 더 위험한 대담을 담은) 속편은 언제 나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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