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얻은 딸아이를 보물처럼 여기며 애지중지하다 보니 "딸 바보 아빠"라는 이름을 얻은 지 오래다. 최악의 찜통더위에 헉헉 거리던 지난 2주 전에는 딸아이와 함께 처음으로 동해 바닷가에 가서 1박2일 텐트 치고 자면서 하루 종일 시원한 파도에 몸을 맡겼다. 일곱 살 딸아이는 파도타기 물놀이를 하느라고 이틀 내내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그렇지만 직장인에게 법으로 허용된 유급 휴가 기간이 짧고 더구나 그 여름휴가 기간마저 7월 말, 8월 초에 한꺼번에 집중되는 우리네 인생에서, 그 귀중한 시간은 넘치는 사람과 자동차에 복작복작 시달리다 허무하게 날려버리기 일쑤다.
그에 반해 프랑스의 여름휴가는 훨씬 넉넉한 모양이다. 공식적인 유급 휴가가 무려 5주일에 이른다고 하니, '바캉스'라는 단어가 프랑스에서 비롯된 것이 당연해 보인다. 우리의 동해 바닷가에 해당되는 것이 프랑스에서는 영국을 바라보는 서해안인 모양이다.
여기 프랑스 서해안의 노르망디 해변을 향해 딸 둘을 데리고 차를 운전하는 아빠가 있다. 그런데 파리에서 노르망디까지의 거리는 멀고 딸들은 지루해 한다. 그래서 아빠는 딸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어 따분함을 없애주겠다고 하고, 딸들은 동의한다. 그런데 프랑스 사회당 당원이며 유럽의회 의원으로 재직 중인 아빠의 직업이 직업인만큼, 그 재미있는 이야기란 바로 '좌파 이야기'다. 우리나라로 치면 '진보 이야기' 정도 되겠다.
이 책 <좌파 아빠가 들려주는 좌파 이야기>(임명주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의 저자인 앙리 베베르(Henri Weber)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몰라 책의 첫 장을 보니, 그에 대한 소개가 나와 있다.
"프랑스의 사회당 소속 정치가. 1968년 5월 혁명에 참여했으며, 사회당에 입당하기 전에는 트로츠키주의자로 혁명적 공산주의 청년회(JCR)와 혁명적 공산주의 동맹(LCR)을 이끌었다. 유럽의회 의원이기도 하다."
▲ <좌파 아빠가 들려주는 좌파 이야기>(앙리 베베르 지음, 임명주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에코리브르 |
아무튼, 그래도 그렇지, 여름 해변으로 가는 즐거운 휴갓길 차 속에서 '좌파 아빠가 들려주는 좌파 이야기라니, 너무 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실제로 이 책에서 앙리 베베르의 딸들은 가끔 "아빠, 너무해", "아빠, 그만 해"라는 말을 하며 아빠를 당황하게 한다. 그렇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들은 철이 좀 들었는지 좌파 아빠가 들려주는 프랑스 좌파의 이야기를 끈기 있게 잘도 들어준다. 말하자면 초급 정치 강좌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인데, 노르망디 해변까지의 거리는 한 시간 반밖에 안 남았고, 그 짧은 시간 안에 도란도란한 가족적 분위기 속에서 역사와 정치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진다.
좌파는 어쩌다 좌파가 되었나?
우리나라에서 좌파, 우파라는 말이 쓰인 건 아마도 식민지 시대부터였을 것이다. 정확히 말해서 당시 주로 사용된 말은 좌익과 우익이었다. 그리고 1950년 한국 전쟁이 좌익과 우익간의 내전 양상을 강하게 띠면서 좌익과 우익은 철천지원수가 되었고, 그 이후 수십 년간 폭압적인 우익 독재가 지속되면서 남한 땅에서 좌익이라는 용어는 사실상 소멸되었다. 1960~70년대 이래 새로 등장한 반독재 민주 세력 역시 자신을 좌익으로 부르기를 거부했다.
그러다가 1980~90년대에 시나브로 등장한 말이 '좌파'라는 단어다. 그리고 최근 10년간 좌파라는 단어는 대중적으로 확산되어 일상어로 정착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우파 언론과 우파 정치인들이 결정적으로 공헌한 듯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을 자랑스러운 우파로 지칭하면서 그보다 왼쪽에 있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좌파 정권'이라 비난하는데 열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합법적으로 집권한 정부였던 만큼 자연스럽게 '좌파'라는 말 역시 대한민국에서 합법적 정당성을 가지는 용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좌익은 용납 못하지만 좌파는 용납되는 야릇한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여기서 질문. 왜 세상 사람들은 좌파니 우파니 하는 말을 쓰는 걸까?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동인, 서인, 남인하며 당파 싸움에 열중한 것은 알고 있는데, 어쩌다 요즘 시대에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좌인(좌파)과 우인(우파)간에 당파 싸움이 수시로 일어나는 걸까?
노르망디 해변으로 가는 차 속에서 두 딸이 좌파 아빠와 나누는 첫 번째 이야기도 이에 관한 것이다. 나야 프랑스 대혁명에 관한 책에서 이미 읽은 이야기이지만, 프랑스인 앙리 베베르가 딸들에게 들려주는 소리를 직접 들어보자.
아빠 : 200년 전, 그러니까 프랑스 대혁명 당시 국민을 대표하는 (…) 제헌 국민의회가 소집됐어. (…) 1789년 8월 28일, 왕권을 규정하는 매우 중요한 법안에 대한 투표가 있었단다. 그 국민회의의 결정에 대해 (당시 루이 16세) 왕이 반대할 수 있는 거부권이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투표였어. 표결하는 순간, 왕정 지지자는 연단의 오른 쪽으로 모였고, 왕정 반대자는 왼쪽으로 모였어. 당시에는 일어서거나 앉는 걸로 표결을 했기 때문에, 같은 표끼리 모이는 게 숫자를 세는데 더 편했고, 그 당시에도 정치인들이 서로 몸싸움을 했기 때문에 같은 편끼리 있는 게 더 안전했지. (…) 이게 좌파, 우파라는 말의 기원이야. 알고 있었니?
"아니요"라는 소리가 두 딸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아빠 : 그러니까, 서로 대립적인 좌와 우의 개념은 프랑스에서 만들어져 전 세계로 퍼진 거란다.
"전 세계라고요? 정말요?" 클레망스(두 딸 중 하나)가 놀라워하더군요.
이 책의 서술방식이 모두 이렇다. 즉 두 딸과의 대화인 만큼 주제에 관해 가볍게 스케치하면서도 핵심적인 이야기를 전달한다. 아무튼, 책의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놀란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프랑스의 역사에서 비롯된 좌파, 우파라는 말의 기원을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쳐도, 역사와 철학을 잘 가르치기로 유명한 프랑스의 중·고등학생 두 딸이 그것을 모른다고 대답했다는 점이다. 아무튼, 프랑스 아빠의 이야기는 1789년 대혁명에서 시작해서 1848년 혁명으로 이어지고, 다시 오늘날의 좌파와 우파로 이어진다. 그리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좌파와 우파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두 딸에게 설명해 나간다.
인간의 선함과 이성, 의지, 진보를 낙관한다
언뜻 보기에 두 딸과의 두서없는 이야기처럼 보이는 이 책은 의외로 목차와 내용의 차례와 구성이 잘 짜여 있다. 초급 교육 교재로 쓰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이다. 책의 맨 앞에서 '좌파란 무엇인가'라는 기본적인 용어 정의 문제를 이야기한 저자는, 그 다음에는 좌파가 갖는 인간관과 가치관을 이야기한다. 먼저 그는 좌파적 인간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바로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가인 장자크 루소의 정신이다.
아빠 : (…) 루소에 따르면 인간은 천성적으로 선하고 창조물 가운데 가장 너그러운 동물이래.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선과 정의 그리고 진실을 열망하는데, 사회가 모든 악의 근원인 사유 재산과 불평등을 만들어서 인간을 망치고 악인으로 변하게 한다는 거지. 정의롭고, 평등하고, 갈등이 없도록 조직된 사회는 인간이 선하고 관대한 본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해주고, 오늘날 사회에 만연한 이기주의와 탐욕, 권력욕, 지배욕에 종말을 고하게 한다는 거야.
그에 반해 우파는 인간에 대해 비관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어. 대부분의 인간은 본래 악하고 폭력적이라는 거야. 쾌락을 위해 악행을 저지르고 다른 인간을 고문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거지. (…) 그렇기 때문에 우파는 권위에 집착하고 진정으로 선한 사회를 건설하는데 비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거란다. (…) 근본적으로 좌파는 인간에 대해 낙관적이고, 우파는 비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어.
며칠 전에 나는 한국에도 프랑스 사회당과 같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좌담회에 참석했는데, 그 좌담회에서 진보적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한 인사가 우리 측의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와 인간이 이성적으로 자본과 시장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라는 테제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 과연 인간의 이성과 의지로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를 통제하는 것이 가능한가, 오히려 더 큰 혼란만 초래하지 않겠느냐는 의문이었다.
그의 의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이랬다.
"만약 참여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민주공화국으로 결집하는 시민들의 집단적 일반 의지와 집단적 일반 이성(집단 이성)의 잠재력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초래하는 사회 양극화와 온갖 투기와 탐욕, 다가오는 금융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겠는가?"
비록 오류를 저지를 수 있고, 더구나 사회적 합의에 이르기까지 많은 논란과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국가(민주공화국)로 결집되는 집단 이성은 '합리적 (자유) 시장'(진보적 자유주의의 핵심에 놓여 있는)보다 훨씬 더 신뢰할 만한 것이라는 것이 나의 답변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앙리 베베르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매우 의미 있게 다가왔다.
아빠 : 좌파는 인간의 이성과 의지를 믿어. 세상을 이성으로 이해하고 의지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확신하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게 무지와 미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려고 노력했단다. (…) 좌파는 인간의 정신은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고, 인간의 의지는 모든 것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
몇몇 극좌파는 이성주의와 의지주의를 과도하게 밀어붙이는 과오를 범하기도 했는데, 어떻게 보면 당연해. 어떤 운동도 초기에는 극단적인 경향을 띠거든. 그 후 경험을 통해 이성과 의지의 한계를 깨닫고 좀 더 현실적인 주장을 펴게 되었지만, 여전히 세상을 배우고 변화시켜, 정의롭고 연대가 살아 있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에는 변화가 없단다. 그래서 진보는 좌파의 또 다른 믿음이야. 내일은 오늘보다 좋고, 우리는 부모님 세대보다 더 잘 살 수 있다는 믿음.
드디어 나왔다. '진보'라는 단어! 비로 기본적 생존권을 얻기는 하였지만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좌파라는 단어는 기피 대상이다. 보수주의 우파로부터 '좌파 정권'이라는 비난을 받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후계자들 역시 스스로를 '개혁적 진보파'니, '진보적 개혁파'니 하는 말로 포장한다. 그리하여, 좌파, 우파를 대신하여 우리나라에서 훨씬 많이 쓰이는 말이 진보, 보수라는 단어이다.
그런데, 진보-보수라는 용어로 우리나라 정치판을 바라보는 것이 간단하지가 않다. 무엇보다도 진보 내부에 여러 흐름이 있다. 민주통합당으로 대표되는 중도 개혁파 진보 즉 자유주의적 중도 개혁파가 있고, 그보다 조금 왼쪽에 자유주의적 진보파(진보적 자유주의파)가 있다. 자유주의적 진보파와 매우 비슷한 것이 민족주의 진보파이다. 그리고 더 왼쪽에는 사회민주주의 지향성의 진보파가 있고, 더 왼쪽에는 반자본주의 진보파가 있다.
이 다섯 종류의 한국 진보파 중 가장 힘이 센 정치 세력은 오른쪽에 있는 두 진보파 즉 자유주의 중도 개혁파와 자유주의 진보파일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의 경우 전자는 중도 우파로 분류되고, 후자는 '공화주의 좌파'로 분류된다. 특히 우리나라의 '진보적 자유주의'와 매우 유사한 프랑스의 '공화주의 좌파'는 프랑스 사회당(사회민주주의)과 여러 공산주의 정파(공산당 및 트로츠키주의 등)와 구별되는데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그렇듯이 공화주의 좌파는 정치적으로 작은 세력에 불과하다.
그에 반해 저자인 앙리 베베르가 속한 프랑스 사회당이 1980년대 이래 프랑스 공산당을 제치고 프랑스 진보 블록 내에서 가장 큰 세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 <좌파 아빠가 들려주는 좌파 이야기>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주로 프랑스 사회당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보는 인간관과 세계관, 가치관에 관한 것이지, 공화주의 좌파나 공산주의 좌파의 그것이 아니다.
인간관, 세계관, 가치관을 말하자
인간의 이성과 의지, 진보에 관한 신뢰를 이야기한 저자는 곧 이어서 인권과 시민권, 형식적 권리와 실질적 권리, 경제적 권리와 사회적 권리, 경제 정의와 사회 정의, 자유와 평등,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과 같은 매우 본질적이면서도 국민의 일상적 삶을 바꾸어 놓는 명제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렇듯 국민들의 일상적 삶을 좌우하는 본질적 사안에 있어 좌파와 우파가 어떻게 다르게 바라보고 다르게 행동하는지를 설명한다. 이 부분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나라 진보가 지금까지 거의 이야기해본 적 없는 내용이다.
이 부분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나라 진보 진영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논쟁과 대립들, 예컨대 경제 민주화-재벌 개혁 관련 논쟁과 통합진보당 분열 사태, 민주노총의 무기력 등의 일련의 사건 속에서 과연 한국의 자칭 진보 내지 좌파는 좌파적인 인간관과 세계관, 가치관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점들에 관하여 토론하고 있는가?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좌파가 바라보는 인간관과 세계관, 가치관이야말로 추상적인 이념 논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국민들의 고단한 일상적 삶을 좌우하는 근본적인 변화에 관한 것이다. 복지 국가와 경제 민주화라는 두 가지 담론을 정치적으로 흥행시키는데 성공한 한국의 진보 세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국민들로부터 더욱 더 외면 받고 고립되어 가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복지 국가와 경제 민주화라는 용어를 넘어, 더 나아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같이 알량한 뼈다귀만 남은 용어를 넘어, 국민 개개인의 인생과 일상을 좌우하는 기초적인 개념들, 즉 이성과 의지에 대한 신뢰의 여부, 형식적 권리와 실질적 권리의 차이 여부, 자유와 평등, 자주가 도대체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의 여부 등에 대하여 한국의 진보 세력이 깊게 생각해본 적도 없고 논의해본 적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스스로 진보에 속한다고 말하는 제반 인사와 인물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서 동해 바닷가로 가는 다섯 시간의 운전 도중에 앙리 베베르처럼 사춘기 자녀들에게 '진보는 인간과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진보가 추구하는 궁극적 가치와 목적은 무엇인가', '진보는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바꾸려 하는가', '오늘날 진보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명쾌하게 이야기해줄 사람이 있는가?
말하건대, 거의 아니 전혀 없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데, 왜냐하면 한국의 자칭 진보 세력은 지난 30년 동안 이런 기초적인 의문점에 대해 고민한 적이 없고 논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나의 의견에 조금이라도 동의한다면 이 책 <좌파 아빠가 들려주는 좌파 이야기>를 읽으시라. 그리고 이것과 비슷한 한국판 <진보 아빠가 들려주는 진보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준다고 가정한다면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그 목차와 내용을 스스로 구성하고 구상해 보시라. '진보의 재구성'은 이렇듯 '진보적 인간관과 세계관, 가치관의 재구상'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책의 내용과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여름휴가와 관련된 이야기 하나. 이 책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유급휴가를 처음으로 도입한 것은 프랑스 최초의 좌파연합 공화국이었던 1937년 인민전선 정부였고, 그 때 처음으로 프랑스 국민 전체가 2주간의 여름 바캉스를 즐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 이래 지금까지 60년간의 기간 중에 프랑스인의 여름휴가는 3주(50년대), 4주(60년대), 5주(2000년대)로 늘어났는데, 그 중 단 1회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좌파 정부가 시행한 것이다. 말하자면,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여름휴가가 더 늘어나 더 행복한 시대가 열린다"는 사실을 서민들이 역사적으로 체험한 것이고, 따라서 프랑스인들은 '좌파 집권'이 자신의 일상적 행복과 여가시간 활용 즉 일상적 삶의 변화에 어떤 긍정적 의미를 지니는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한다.
그에 반해 한국의 진보 좌파는 어렵고 추상적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삶의 변화 문제로 들어가면 사실상 (진보적) 자유주의자가 말하는 내용과 별로 구별되지도 않는다. 유급 여름휴가 기간을 대폭 늘리는 것이 진보 좌파의 사고방식 속에 중요한 과제의 하나로 자리잡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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