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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의 공포' 초읽기, 연말이 무섭다!

[서리풀 논평] 굶주림은 추억이 아니다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매주 한 차례 발표하는 '서리풀 논평'을 동시 게재합니다. (사)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비영리 독립 연구기관으로서,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연구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굶주림은 추억이 아니다

애그플레이션(agflation)? 이 낯선 신조어가 요즘 들어 부쩍 자주 등장한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만들었다는 이 말은 농업을 뜻하는 영어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조합한 용어란다.

최근 국제 시장에서 곡물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이 말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아직도 해외 토픽 정도의 관심을 벗어나지 못한 듯하지만, 세계화의 그늘은 여기에도 어김없다.

지난 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내년 초에 밀가루가 올해 2분기보다 27.5퍼센트, 옥수수가루는 13.9퍼센트 급등할 것으로 예측했다. 건조한 숫자로 되어 표현되었지만, 이 예측은 어떤 이에게는 공포다.

먹고사는 문제여서다. 하는 수 없이 2008년을 전후해 전 세계를 휩쓸었던 곡물 파동의 기분 나쁜 기억을 떠 올리게 된다. 방글라데시와 이집트를 비롯해서 한 열 개도 넘는 나라에서 먹는 문제 때문에 폭동이 일어났다.

일부 전문가는 그 때보다 상황이 더 나쁘다고 주장한다. 곡물 가격이 더 올랐다는 것이다. 식량 '안보'라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곡물 가격이 오르는 이유로 바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시장'의 상황이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이 오른다는 시장의 법칙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아마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올해만 하더라도 미국이나 러시아, 우크라이나 같은 나라에서 이상 기후 때문에 생산이 크게 줄었다. 물론 소비도 계속 늘어난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자연이 아니라 국제적 정치 경제 구조가 식량 위기를 불러오는 주범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최근 일로는 2008년 국제 경제 위기가 이번 위기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금융 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이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엄청나게 풀었고 그 결과 투기 자본이 곡물 시장에 몰려들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2011년 곡물의 선물 거래 중 실제 농산물 거래는 2퍼센트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 98퍼센트가 투기 자본에 의한 것이라고 추정했을 정도다(☞바로 보기).

곡물 투기를 금지하려는 국제 사회의 노력은 미국과 영국의 거대 자본이 반대하는 바람에 전혀 진전이 없고, 일부 국가는 식량을 무기화하거나 사재는 데 앞장서고 있다. 뿌리 깊은 불평등 구조 때문에 각 나라 안에서 식량이 '배분'되는 것도 문제를 악화시킨다.

곧 닥칠 식량 위기가 국제 정치와 자본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면,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도 또 다른 모습으로 위력을 발휘할 전망이다. 그리고 그 영향은 다른 문제와 마찬가지로 차별과 불평등의 구조를 완벽하게 재생산한다.

정부와 여론은 물가를 걱정하는 식으로 결과를 비인격화한다. 뜬금없이 식량 자급과 농업 구조 개편에 목소리를 높이지만, 현실의 위기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눈앞의 위기는 (어쩌면 많은 이에게 생소할지도 모를) 굶주림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얇고 성근 안전망을 가진 사람이 주로 굶주림의 위기 앞에 놓여 있다.

먹고 굶는 문제를 지나간 옛 노래로 치부하는 것은 현실을 모르거나 피하는 것이다. 이른바 과잉 영양의 문제를 빼더라도, 영양 부족과 결핍의 문제를 '극소수' 예외라고 보기 어렵다.

간단한 수치로 확인해 보자. 아동청소년백서의 통계에 따르면 2011년 아동 급식을 지원한 대상자 수는 47만 명을 넘었다(☞바로 보기). 일부 사회복지 단체들의 추산으로는 결식아동이 100만 명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급식 지원과 결식의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든 이 많은 아동과 청소년이 밥을 먹을 수 있게 사회가 지원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가볍지 않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계층이나 집단은 또 있다. 영양에 취약한 것으로 치자면 노인도 어린이에 못지않다.

2012년 서울시가 식비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저소득 노인 숫자만 하더라도 2만 1000명이 넘는다. 서울시가 이렇다면 경제 사정이 더 좋지 않은 다른 지역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아예 굶는 것이 중요한 문제긴 하지만, 식량 위기라고 하더라도 재난이 있을 때 생기는 것과 같은 극단적인 굶주림은 적다. 오히려 광범위한 '저강도'의 기아를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이 문제이다.

저강도의 기아란 학술적으로는 영양 결핍이라고 부르는 문제로, 이른바 '보이지 않는 굶주림(hidden hunger)'을 일컫는다. 만성적으로 무기질이나 비타민 같은 영양소 섭취가 모자랄 때 생기는데, 겉으로는 금방 표시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는 수식어와는 어울리지 않게 그것이 빚어내는 결과는 비참하다. 세계적으로 매년 200만 명 이상의 어린이가 비타민 A나 아연 등의 영양소 부족으로 생명을 잃을 정도라고 한다.

물론, 한국에서 이런 종류의 후진국형 영양 결핍은 보기 힘들다. 사실, 단백질 영양 실조(콰시오커), 구루병, 실명 같은 질병이 생길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저강도'라는 표현이 나타내듯이, 알아차리기 어렵고 왜곡된 형태의 굶주림은 결코 사고나 예외가 아니다. 자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이 걱정된다면 바로 이런 굶주림을 말하는 것이다.

조금 오래된 것이긴 하지만 2007년 인하대학교 연구팀이 조사한 결과는 실마리 하나를 보여준다. 조사에서 빈곤층 아동들이 섭취하는 영양은 열량(칼로리)은 전체 아동의 약 81.5퍼센트, 비타민 C는 75.3퍼센트, 칼슘은 85.6퍼센트에 그쳤다.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도 보이지 않는 굶주림이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저소득층에서 비만의 빈도가 높다는 것도 이런 '저강도' 굶주림의 결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싸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라면이나 햄 같은 음식은 칼로리는 높은 반면 비타민이나 무기질은 부족하다. 균형을 위해선 과일이나 채소를 충분히 먹어야 하지만, 비싸다 보니 충분히 섭취하기가 어렵다.

여기에다 운동 부족까지 보태지면 비만은 당연한 결과가 된다. 모두 아는 대로, 비만은 많은 만성 질환의 원인이 되는 핵심 위험 요인에 속한다. 위험 요소와 이로 인한 질병 모두가 빈곤층에 집중되어 불평등하게 나타나는 것은 필연적이다.

2012년 2월 발표된 통계청의 가계 동향 자료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퍼센트의 엥겔계수가 20.7퍼센트로, 2005년 이후 가장 높았다. 최상위 20퍼센트보다 식료품비의 비중이 두 배 가량 높다.

세계적인 곡물 가격 상승이 한국의 가계에 어떤 차별적 영향을 미칠지 불을 보듯 훤하다. 취약 계층과 저소득층은 더 싼 식료품을 더 적게 소비하는 수밖에 없다. 양과 질이 모두 나빠지게 될 것이다.

최근 들어 일부 언론은 연말께 'A의 공포'가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막상 공포를 느낄 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알아듣지 못하겠지만 A는 신조어 애그플레이션을 뜻한다.

A의 공포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상관없다. 그러나 서민과 저소득층이 직면할 공포는 그렇게 지나갈 일이 아니다. 곡물 가격 상승과 식량의 위기가 이들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진정한 공포다.

일차적인 단기 대책으로는 정부의 대비, 구체적으로는 예산 확충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급식비 예산으로는 농산물 가격이 상승하면 급식과 영양이 더욱 부실해질 가능성이 높다.

경제 위기의 심화와 빈곤 인구 증가에 따라 대상자 수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양과 질 모두에서 국가의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구석구석까지 정책의 집행 체계도 재정비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한창 논의하고 있는 내년도 예산이(중앙과 지방정부 모두에서) 예상되는 굶주림의 위기에 충분히 민감한 것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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