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제목은 <이콘드(Econned)>(이브 스미스 지음, 조성숙 옮김, 21세기북스 펴냄)다. 그런데 '이콘드'가 무슨 뜻이지?? 고유 명사인가? 영어 사전을 뒤져봐도 이콘드(econned)라는 단어는 없다.
영어로 쓰인 부제를 보니, "How unenlightened self interest undermined democracy and corrupted capitalism(계몽되지 않은 이기성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망가뜨리고 자본주의를 타락시켰나)"이다. 그리고 한국어 번역본을 낸 출판사에서 달아준 한글 부제목은 "탐욕 경제학의 종말"이다.
목차를 보니 2008년 말에 시작되어 지금도 진행 중인 세계 금융 위기에 관한 책이고, 특히 그것을 주류 경제학의 결함과 연계하여 비판하는 책이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그럼에도 왜 이 책의 제목이 '이콘드'인지는 여전히 아리송했다. 그러다 우연히 '프레시안 books'의 한 기획 위원을 통해 그것이 경제학을 의미하는 'economics'와 '사기 치다'를 의미하는 'con'을 합성한 조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이콘드>(이브 스미스 지음, 조성숙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21세기북스 |
<이콘드>는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이 퍼뜨리는 '비현실적 통념'이 어떻게 오늘날 수십억 인류를 도탄에 빠뜨리는 80년 만의 최악의 세계 경제 위기를 낳고 더 나아가 심화시키고 있는지 고발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의 첫 쪽에 나오는 문구는 의미심장하다.
"진실의 가장 큰 적은 거짓말이 아니라 끈질기고 비현실적인 통념이다. 통념을 믿는다는 것은 따로 고민하는 불편함 없이 마음을 놓게 만든다."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
미국의 대통령 케네디를 책의 첫 쪽에서 등장시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좌파의 관점에서 쓰인 책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미국 민주당 리버럴(liberal)의 입장에 서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인 이브 스미스가 현재 미국 민주당의 주류 입장인 오바마-클린턴-서머즈 등의 정치경제학적 관점을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스미스는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오바마 민주당 행정부가 2008년 말 이후 금융 위기 대책으로 부랴부랴 내놓은 대응책과 금융 규제 강화 조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별 실효성도 없을 뿐 아니라 결국은 월스트리트의 금융 자본과 금융 회사들의 부패한 이해관계를 여전히 보호해주는 반민주주의적인 조치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스미스는 정치적으로는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클린턴-오바마 행정부의 경제-금융 정책에 대해서는 진보적인 관점에서 비판하는 미국의 로버트 라이시나 폴 크루그먼, 조셉 스티글리츠 등의 입장에 훨씬 가깝다.
이브 스미스, 애덤 스미스를 욕보이다
이 책의 저자인 이브 스미스는 주류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와 성이 같다. 그렇지만 그는 이 책에서 시종일관 애덤 스미스와 그 후계자들의 자유주의 경제 사상, 즉 '자유 시장이 사회 전체에 조화와 균형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사고방식을 비판하면서 그것을 '거짓말'이요 '사기'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책의 제목에서부터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을 사기 행위로, 그 경제학자들을 사기꾼이라고 부르는 것은 보통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니다. 더구나 2부로 나뉜 이 책 제1부의 제목은 '경제학이라는 이름의 거짓말'이다. 만약 어떤 경제학자가 그런 용어를 공개적으로 사용한다면 그는 경제학계에서 왕따 당할 각오를 먼저 해야 할 것이다. 한국만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자인 스미스는 학자가 아니다. 그는 하버드 대학과 하버드 대학 비즈니스 스쿨을 나와 골드만삭스와 매킨지 등 월스트리트에서 25년간 몸담으면서 다양한 실무 경험을 쌓은 금융 컨설팅 전문가이다.
그렇다면, 스미스는 실무 경험은 풍부할지 몰라도 일반 경제학이나 금융 경제학의 이론과 학문 같은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문외한이 아닐까? 그런 걱정일랑 일찌감치 던져 버리는 것이 좋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스미스의 박학다식에 놀랐다.
특히 이 책의 제1부('경제학이라는 이름의 거짓말')에서 그는 200쪽에 걸쳐 '자유 시장'의 위대한 자기 규율, 자기 규제('보이지 않는 손'의 기적적인 작동)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주류 경제학과 그리고 그 경제학과 매우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는 현대 금융 경제학의 '효율적 시장 가설', '자본 자산 가격 결정 모델', '블랙-숄즈의 옵션 가격 모델', '가우시안 코풀라 함수' 등을 소개하면서 그것들의 현실 부적합성(즉 '거짓말')을 비판하는데, 읽는 내내 나는 경제학과 금융 경제학, 수학과 통계학에 대한 스미스의 풍부하고 깊은 지식에 탄복을 금치 못했다. 그러면서 그와 대비되어 그 어느 것 하나 깊이 아는 것이 없는 나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며 부끄러웠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그나마 조금 위안이 되기는 하였다. 내가 알고 있는 거의 대다수 주류 경제학자와 비주류 학자들 역시 스미스에 비한다면 부끄러운 수준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천박한 학문 현실이 어찌 개개인의 책임이라 말할 수 있으랴. 아무튼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머릿속에서는 '도대체 미국이라는 나라에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스미스처럼 경제와 금융의 실무를 꿰뚫고 있으면서도 경제학과 경제사상사, 수학과 계량 경제학 등에 대해 이토록 많은 지식을 가지고 통달해 있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맴돌았다.
월스트리트, 금융 위기를 일으키다
이브 스미스에 따르면 월스트리트의 금융 회사들은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오랜 단골들에게 사기를 치고 갈취하는 것을 명예롭지 못한 일이라고 여겼다. 더구나 시장 원리를 따르더라도 그렇게 단골을 갈취하는 사기 행위는 비즈니스계의 상식이 아니다. 왜냐하면 일단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고객은 그 거래 관계를 단절할 것이며, 평판이 나빠진 그 회사는 시장에서 영원히 퇴출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스트리트에서는 1980년대부터 고객들을 갈취하는 사기 행위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1990년대부터는 만연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부시 공화당 정부와 클린턴 민주당 정부가 공히 뉴욕 증권가(월스트리트)를 위해 금융 시장 규제 완화(탈규제)를 단행한 결과였다. 이 책의 서문에서 스미스는 자신이 금융 컨설턴트로서 직접 체험한 다음의 일화를 소개한다.
"1990년대 초 나의 고객 명단에는 대규모 증권 회사인 오코너도 포함되어 있었다. 750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린 오코너는 본래 자기 계정 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증권 회사였다. (그렇지만) 오코너의 고객 친화적인 태도는 얼마 안가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했다. 금융 상품의 복잡성이야말로 최고의 친구라는 사실을 깨달은 대형 금융 회사들은, 어수룩한 고객들에게서 한 푼이라도 더 뜯어내려고, 온갖 종류의 덫과 함정이 깔린 상품들을 제시했다. 그 회사들은 고객을 왕이 아닌 먹잇감이라고 간주하는 일에 점점 더 익숙해졌고, 마침내는 그들이 속한 사회까지도 잡아먹기 시작했다."
1994년 발생한 멕시코의 금융 위기가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이 말하듯이 '정경 유착과 관치 금융 때문'이 아니라 멕시코의 금융 시장 개방과 금융 탈규제의 산물이라는 것은 비주류 경제학계에서는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스미스는 한 발 더 나간다. 그 위기는 월스트리트 금융회사들이 멕시코 현지의 고객들(즉, 멕시코의 현지 은행들)에게 사기를 쳐서 그들을 갈취해 먹은 결과 발생하였다는 것이다(제6장).
말하자면 골드만삭스 같은 회사들이 당시 멕시코 은행에게 신용 파생 상품을 팔아먹을 때 그들은 이미 그 복잡한 파생 상품에 내재한 파국적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 상품을 덥석 물어 삼킨 멕시코 고객들이 조만간 매우 큰 위험성(즉 금융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스미스는 이렇듯 고객의 미래 손실 위험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상품을 팔아먹은 것은 그야말로 사기 행위, 고객 갈취가 아니냐고 묻는다. 이것은 스미스처럼 월스트리트 금융 회사의 내부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내부자가 아니라면 감히 말하기 힘든 발언이다.
한편, 1994년 멕시코에서 월스트리트의 금융 회사들이 고객을 갈취한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도 2008년 말부터 수백 개의 우량 중소기업에게 큰 피해를 일으켜 문제가 되었던 '키코(kiko)' 즉 외환 헤지 파생 금융 상품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키코 사태 역시 키코라는 파생 상품을 개발하여 우리나라에 판매한 미국 월스트리트 투자 은행들이 어수룩한 한국의 은행과 증권사 궁극적으로는 중소기업들을 상대로 사기를 쳤다고 볼 수 있는 경우인데, 이 역시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해당하는 범죄행위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 스미스의 진단이다.
스미스는 2008년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 위기 역시 그 원리상 1994년 멕시코 금융 위기와 다를 것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 즉, 2008년의 미국발 금융 위기 역시 월스트리트의 거대한 범죄적 사기 행위, 고객 갈취 행위의 결과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월스트리트로 대변되는 미국의 금융 시스템 그 자체가 시스템적 루팅 즉 '시스템적 고객 갈취'를 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스미스는 그 경제학적 증거로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 애커로프와 폴 로머가 1993년 발표한 공동 논문에서 월스트리트의 통상적인 비즈니스 행위를 범죄 행위로 단정하였다는 점을 지적한다(제7장). 그리고 법률가의 관점에서 보면 범죄에 해당되는 행위가 어떻게 신고전파 경제학자의 관점에서는 합리화되어 윤리적으로 정당한 행위로 둔갑하는지를 (조지 애커로프 등이 발전시킨) 정보 비대칭성의 경제학의 관점에서 비판한다.
경제학과 법학의 잘못된 만남
그런데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야 타고난 거짓말쟁이라고 하더라도, 왜 미국의 법원은 월스트리트의 사기 행위와 고객 갈취에 침묵했을까?
그 이유로 이브 스미스는 1980년대부터 리처드 포스너 같은 미국의 대표적인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대기업들의 후원을 받아 법학부 교수와 법원 판사들을 위하여 진행한 '법경제학' 캠페인, 즉 법을 경제학적 방법론으로 설명하는 운동과 그 대성공을 지적한다. 미국에서 법경제학 캠페인은 법학과 법원의 판결에 대대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법 규정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개념은 평등이다. (…) 그리고 법 규정의 두 번째 전제는 (…) '정당한 법 절차'의 중요성이다. 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는 효율성을 더 중시하고, 정부 역할의 최소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한다. 평등과 정당한 법 절차에 대한 전제와 완전히 대척점에 위치한 가정이다." (223쪽)
미국 신보수주의 법경제학의 세례를 받은 한국의 가장 유명한 법경제학 전공자는 아마도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 싱크탱크 '한반도 선진화 재단'을 운영해온 박세일 서울대학교 교수일 것이다. 그는 1990년대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비서관으로 활동하면서 그 정부의 온갖 신자유주의 경제 사회 개혁, 즉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폐지와 외환 금융 시장 개방, 노동 시장 유연화, 교육 개혁과 대학 규제 완화(5·31 조치) 등을 지휘했던 인물이다.
애초 보수적이던 한국의 법학자 및 판사들이 1990년대 이후부터 미국과 비슷한 방향으로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로 변화하였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우리나라 법학자와 법조계 인사들이 미국에서 '선진 문물'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워온 '자유 시장의 법경제학' 때문이다. 더구나 '자유기업원' 같은 토종 신자유주의 싱크탱크 역시 그런 신자유주의 법사상을 우리나라 법조계 인사들에게 대대적으로 계몽하고 있다.
일화 하나. 대재벌의 편법 상속 증여 문제를 놓고 세법을 전공하는 친구와 대화하던 중 그로부터 우리나라에서 세법을 전공하는 법학자의 대다수가 요즘 상속세를 아예 폐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게 여긴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너무 놀라서 내가 어떻게 '사법 정의'의 최후 보루인 판사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법학자들이 그렇게 변했냐고 물으니, 그 친구 말이, 미국의 부시 공화당이 주장한 상속세 폐지론이 한국의 법학자와 법조계에 최근 10년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신보수주의 싱크탱크들이 한국의 지적 풍토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 그리하여 이 나라의 경제 제도와 법 체계를 얼마나 쉽게 바꾸어 놓는지를 보여주는 명백한 사례다.
신자유주의적 탈근대화는 전근대성로의 회귀
법 앞에서의 평등과 법률적 절차의 공정성은 18세기 이래 구미에서 발전한 전통적 자유주의 즉 고전적 자유주의 사상의 핵심적 가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전근대와 근대를 구별하는 핵심적인 기준은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브 스미스가 잘 지적하듯이, '탈근대'를 표방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법 앞에서의 평등' 원칙을 사문화함으로써 사실상 인류를 '전근대' 시대로 되돌려 놓고 있다.
한국의 경우 많은 개혁적 진보 인사들이 재벌계 인사들이 온갖 편법과 불법을 저지르고서도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는 현실을 가리키며 "우리나라는 아직 전근대 사회이며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근대화'의 과제조차 미완성의 미래 과제"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신자유주의보다 '전근대적인' 재벌 체제와 모피아 관치 경제가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브 스미스가 말하듯이-그리고 나 역시 동의하는 듯이-법 앞에서의 평등 원칙을 허물어뜨리는 세력은 재벌과 모피아(MOFIA, 금융 관료)만이 아니다. 그들을 포함한 '글로벌' 차원의 "신자유주의 과두 동맹"(이병천) 전체가 자신들의 이해관계 관철을 위해 '자유와 평등', '법 앞에서의 평등',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근대성(즉 고전적 자유주의)의 성과조차 무너뜨리고 있다. 따라서 미국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신자유주의와의 대결은 그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대립 구조다.
이 모든 '탈근대의 외피를 쓴 전근대로의 복귀' 흐름의 배후에는 주류 경제학 즉 신고전파 경제 사상이 있다. 그리고 신고전파 경제 사상은 오늘날 신자유주의로 변형된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명백하게 나타나는 자본의 약탈과 갈취, 범죄 행위, 어리석은 탐욕을 윤리적으로 정당화한다. 그런데도 미국의 공화당은 신보수주의적 자유주의(즉, 오리지널 신자유주의)를, 민주당의 리버럴은 진보적 외피를 쓴 자유주의 즉 진보적 자유주의를 주장한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도 매우 비슷하다. 그리고 미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보수적 자유주의'이건 '진보적 자유주의'이건 관계없이 모두가 신고전파 경제학의 프리즘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에도 "진짜 악당은 누구인가"(351쪽)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이브 스미스의 책을 독자들이 꼼꼼하게 읽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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