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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6세, 단두대 희생양 된 진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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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6세, 단두대 희생양 된 진짜 이유는…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 사토 겐이치의 <소설 프랑스 혁명>

격정적인 미라보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 루이 16세는 재정 궁핍으로 왕정 파산 상태가 경고되자 오랫동안 열지 않았던 삼부회의 소집에 나선다.

이 시기, 오노레 미라보는 단연 정세를 끌고 가는 괴물에 가까운 주역이었다. 귀족 출신인 그가 평민 자격의 의원 후보로 나서서 선출되었을 때 삼부회의의 미래는 파란이 예상되지 않을 수 없었다. 미라보의 격정적 연설과 정치력은 귀족, 성직자 그리고 제3신분으로 불린 부르주아 또는 평민들 사이의 계급적 긴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내다보였기 때문이었다. 루이 16세도 물론 안심하고 있을 처지는 아니었다.

이러한 미라보를 유심히 주목하면서 정치를 배워나간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훗날 프랑스 혁명의 반동을 자초한 로베스피에르였다. 젊고, 뛰어난 학식과 능력을 가진 그는 조만간 프랑스 혁명의 스타가 될 과정을 밟고 있었고, 혁명 정신에 충실한 정치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로베스피에르는 미라보가 역설했던 왕정의 개혁보다는 단호한 결별이 답이라는 생각을 속으로 굳혀가고 있었다. 그 결별이 어떤 희생을 치르게 되건 말이다. 프랑스 혁명의 유혈사를 써내려간 길로틴은 그의 마음에 이미 세워져 있었던 셈이다.

루이 16세, 로베스피에르 그리고 제3신분

프랑스 혁명 전야, 지식인을 비롯한 대중의 인기를 모은 루소의 사회 계약론과 평등 사상은 왕과 귀족, 성직자들이 지배하는 기존 질서에 일정한 균열을 내고 있었다. 파리 민중들도 자신들의 빈곤과 억압된 처지를 분노하고 있었다. 구체제인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은 가쁘게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루이 16세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자신의 금고가 비어가는 것에만 신경을 썼고, 숲에서 사냥하는 일에 몰두했다. 재무장관 자크 네케르는 귀족과 성직자에게도 재정 부담을 맡도록 해야 하는 어려운 정치적 과제를 안게 되고, 이를 위해서 제3신분의 협력을 얻는 줄타기를 시작한다.

프랑스는 1776년 미국 독립 전쟁의 막대한 지원을 계기로 국가 재정이 고갈되었고, 국제적으로는 영국과의 불화로 인해 운신의 폭이 좁았다. 루이 16세는 절대 왕조 체제를 이룬 루이 14세와는 달리, 자기를 괴롭히는 자들이 없으면 그저 좋은 성품의 군주로 인생을 끝냈을 별반 야망이 없는 왕이었다.

그러나 성서와 토지를 기반으로 프랑스 사회를 지배하는 성직자 계급과 귀족들 그리고 신흥 부르주아 계급과 정치적 합의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가난한 왕"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에 새로운 정치적 구도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봉건 체제에 기초를 둔 절대 왕정 체제의 개혁을 시도하려 한 것이다.

삼부회의는 그러한 구상의 소산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삼부회의가 지금까지 정치적 발언권이 별반 없었던 제3신분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를 주었고, 성직자, 귀족들은 이 때문에 자신들의 기득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으로 인해 반격의 음모를 꾸미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바야흐로 프랑스 정치는 파란만장의 드라마로 진입하게 되었다. 절대 왕정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벌였던 일이 그 자신을 무덤에 파묻는 역설적 현실로 귀결되어 갔던 것이다. "혁명의 판도라 상자"는 그렇게 열렸다.

역사 소설, 정치 소설

▲ <소설 프랑스 혁명 1>(사토 겐이치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 펴냄). ⓒ한길사
사토 겐이치의 <소설 프랑스 혁명>(김석희 옮김, 한길사 펴냄)은 이러한 역사를 소설적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을 서로 결합시켜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미라보, 로베스피에르 그리고 혁명군을 장악하고 있던 라파예트, 네케르 등의 인물들을 프랑스 혁명의 무대 위에 올려놓고 그 역사를 어렵지 않게 이해하도록 한다.

삼부회의가 소집되었을 때 각 계급의 정치적 영향력을 정리해낼 투표의 방식까지 정밀하게 소개한 그의 소설은 역사의 정치 소설화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흥미롭다. 애초에 재정 위기 타파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삼부회의였기에 돈만 빼면 되었지 제3신분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원하지 않았던 지배 계급의 배신이 시작되면서 루이 16세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가졌던 파리 민중들은 서서히 들고 일어난다.

바스티유 감옥이 깨져나가는 것은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석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곳에 주둔하고 있던 군대의 무기를 탈취해 시민군 무장을 하기 위함이었다. 사토는 그런 장면도 생생하게 그려내면서 역사가 어떤 정밀한 계획이나 시나리오가 아니라, 순간의 우연과 판단의 차이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막대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솜씨는 무엇보다도 방대한 프랑스 혁명사에 대한 섭렵과, 그의 문학적 재능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인, 또는 아시아인이 유럽의 역사를 문학화하는 작업에 도전한다는 열정과 의지가 작동했다고 여겨진다.

일본인이 쓰는 유럽 혁명사 소설이란?

국내 출간 기념 대담의 자리에서 그는, 프랑스 혁명이 2단 로켓처럼 제1국면과 제2국면이라는 상이한 과정을 거쳤다면서 결국 현실에서 실패한 혁명이 되어버린 이 역사를 오늘에 반추하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자신도 계속 탐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제1국면은 삼부회의로 인한 절대 왕정 체제의 타협 국면, 제2국면은 그 타협이 더는 변화하는 현실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새로운 폭발력을 가진 쪽으로 질주한 상황을 말한다. 사토는 이런 프랑스 혁명사의 전개 과정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사실 우리로서도 궁금했던 것이, 메이지 유신과 관련된 역사와 소설이 지배하는 일본 사회에서 유럽 혁명사를 가지고 소설을 쓴다는 일이 우선 가당키나 한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에 시동을 건 사토의 모습은 문학이 이런 차원에서 "다른 형태의 세계어"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즉, 유럽의 역사도 인류의 역사 속에서 공유되는 순간, 그 역사를 바라보고 생각하는 자의 언어, 역사, 세계, 자산이 된다는 뜻이다.

▲ <소설 프랑스 혁명>의 작가 사토 겐이치. ⓒ프레시안(최형락)
전체 12권으로 구상하는 사토의 작품은 이제 국내 번역본으로 4권까지 나왔다. 원래 권투를 했다는 특이한 경력을 가진 작가라 그런지 소설 전개가 흡인력 있고 속도가 빠른 까닭도 다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소설의 전반부는 프랑스 혁명을 주도해 나간 주요 인물들이 그려져 있는데, 이와 함께 우리는 베르사유와 파리의 대립, 보통의 인민들, 특히 여성들의 역할이 조명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은 프랑스 혁명의 정작의 주인공들이 누구인지 밝혀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사실, 삼부회의에서 귀족과 성직자 계급의 결탁으로 제3신분의 정치적 위상이 흔들리는 위기에서 이들을 구한 것은 인민들의 봉기였다.

앞으로 계속 나올 후속편을 봐야 판단할 수 있겠지만, 혁명 초기 부르주아의 이해와 인민들의 이해가 점차 충돌해나갈 때 어떤 방식의 드라마 전개와 서술이 있게 될 것인지 주목된다. 부르주아의 정치적 이해관계는 보통의 인민들이 줄기차게 요구한 경제적 요구와 언젠가는 모순의 상태에 돌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프랑스 혁명의 역사는 이후 1848년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전반에 걸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대치 전선이 펼쳐지는 뿌리가 된다.

사토의 <소설 프랑스 혁명>은 프랑스 혁명사의 세계적 권위인 조르주 르페브르의 <프랑스 혁명사 연구>나, 아나키스트인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의 <프랑스 대혁명사>가 번역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에게 친절한 안내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작품이 역사적 사실에 명확히 근거를 두고 전개되고 있다는 것은 르페브르의 책을 읽어보면 확인된다.

르페브르는 유럽 전체의 역사와 프랑스 혁명의 관련을 설명하면서도, 프랑스 혁명의 내적 전개 과정을 세밀하게 분석한다. 크로포트킨의 경우에는, 부르주아의 정치적 이해와 프롤레타리아 또는 인민의 경제적 목표가 서로 상치하면서 프랑스 혁명이 어떤 진화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오늘날 진보의 가치와 실천의 문제가 일상의 수준에서 정리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프랑스 혁명에 대해 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게 될까?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1848년의 프랑스 혁명이 1968년 유럽의 신좌파 혁명으로 그 역사적 평가를 완료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결국 자유주의 부르주아 체제가 더는 미래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상황은 프랑스 혁명 이후 세계적 부르주와 체제의 균열이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혁명에 헌신하고, 혁명을 배반하고 혁명을 망각해 버린 그 우여곡절의 과정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역사는 도대체 어떤 과정과 단계를 거치면서 진화하게 되는 것일까?

<소설 프랑스 혁명>은 그런 와중에 '인간'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해준다. 결국,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 가는 것이므로.

"아시아의 시대를 대비하려면 유럽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지난 7월 9일 경기도 파주 헤이리에 위치한 북 카페 '포레스타'에서 김민웅 성공회대학교 교수가 <소설 프랑스 혁명>의 작가 사토 겐이치를 만났다. '프레시안 books'는 두 사람이 나눈 대화의 주요 내용을 싣는다. 한 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날 대담의 통역은 일본 문학 번역가 김난주 씨가 맡았다.

ⓒ프레시안(최형락)

김민웅 : 프랑스 혁명은 근대화 과정의 매우 중요한 시발점이지만, 한국에선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사토 겐이치 씨의 <소설 프랑스 혁명>이 가지는 의미는 큽니다. 이 장대한 <소설 프랑스 혁명>의 작가 사토 씨가 이번에 한국 독자와의 만남을 위해 방문하셨는데,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사토 겐이치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프랑스 혁명사를 소설로 쓰고 있습니다. 아시아인이 유럽 혁명에 대해 쓴다면 프랑스 혁명에 대해 써야만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김민웅 : 일본 사람이 일본이 아닌 지역의 역사에 대해 쓰는 경우가 많습니까? 한국 같은 경우는 주로 한국 역사에 대해 저술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사토 겐이치 : 일본에서도 유럽 역사를 소설화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김민웅 : 그렇다면 <소설 프랑스 혁명>을 쓰기까지 많은 용기와 노력이 필요했을 텐데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습니까?

사토 겐이치 : 일본에서도 유럽 역사를 다룬 소설이 없었던 건 아닌데, 지속적으로 계속 해나간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제가 중학생 시절까진 영화 하면 유럽 영화나 미국 영화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유럽이나 미국을 다루면 별 반응이 없던 게 이상했습니다. 그게 프랑스 혁명을 소설로 쓴 한 이유입니다. 두 번째 이유로는 저희 세대에 이르러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를 둘러싼 환경이 많이 달라진 걸 꼽을 수 있겠습니다.

김민웅 : 아시아 사람으로서 유럽 역사를 쓰는 것도 흥미롭지만, 왜 하필 프랑스 혁명이었을까요. 프랑스 혁명은 공화정을 탄생시켰는데, 사실 일본은 영국처럼 입헌 군주제에 가까운 천황제를 유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차이가 궁금합니다.

사토 겐이치 : 어려운 질문입니다. (웃음) 프랑스뿐 아니라 그 옆 나라인 영국이나 독일에 대해서도 같이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도 천황제가 남아있기 때문에, 영국의 비슷한 입헌 군주제에는 큰 흥미가 가질 않았습니다. 영국에 대해 써야 할 의미를 별로 찾지 못했어요.

김민웅 : 프랑스 혁명을 소설로 쓰기 위해서 어떤 작업이 필요했나요?

사토 겐이치 : 일단 자료가 될 책을 모았습니다. 주인공과 대략적인 줄거리를 정한 상태에서 취재차 프랑스에 다녀왔고요. 지금도 계속 <소설 프랑스 혁명>을 연재 형식으로 쓰고 있습니다. 아시아 사람들은 유럽을 공부할 때, 유럽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 남자는 핸섬하고 프랑스 여자는 미인이라 생각하죠. 돈도 훨씬 많은 것 같고요. (웃음)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요. 프랑스든 미국에든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살고 있다는 사고가 기본적으로 있지 않으면, 소설을 쓸 수 없습니다. 그런 사고가 불가능하다면, 몸으로 쓴 소설이 아니라 머리에서 꾸며낸 소설밖에 태어날 수 없겠지요.

김민웅 : 사실 이 소설의 장르는 팩트와 픽션이 결합된 '팩션'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팩션을 구성해나갈 때 사토 씨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무엇이었을까요.

사토 겐이치 : 역사 소설을 쓸 때 물론 팩트는 중요하지만, 팩트 안에 혹은 팩트 이면에 있는 것, 다시 말하자면 진실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것을 역사 속에서 끄집어내려면 논픽션보다는 픽션이 좀더 쉬운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민웅 : 일본에는 메이지유신이라는 정치적 사건이 있지요. 지금까지 메이지유신을 둘러싸고 굉장히 많은 소설과 드라마가 나왔습니다. 일본 작가에게 메이지유신이 국민적 상식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사토 씨께서는 메이지유신의 관점으로 프랑스 혁명을 바라보진 않았을까 궁금합니다.

사토 겐이치 : 네, 그렇죠. 메이지유신은 프랑스 혁명과 상통하는 면이 많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선 혁명까진 이르지 못했죠. 개혁이 왕정으로 가느냐, 공화정으로 가느냐에서 많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김민웅 : 프랑스 혁명을 이해하려면 베르사유와 파리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베르사유는 왕정 체제, 앙시앙 레짐의 근거지였고 파리는 민중 혁명의 중심지였죠. 나라의 중심이 베르사유에서 파리로 옮겨간 것이 프랑스 혁명의 매우 중요한 발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때 프랑스는 미국 독립 혁명을 돕다가 재정이 파탄에 이르렀고, 루이 16세는 재정 악화를 메우기 위해 세금을 또다시 부가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프랑스의 재무장관이었던 자크 네케르라는 인물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지죠.

사토 겐이치 : 루이 16세는 안주하는 왕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왕이었습니다. 나쁜 사람은 아니었죠. (웃음) 그러나 개혁을 하고 싶어도 그런 정책을 맡길 사람이 없었습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어중간한 개혁가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한편, 네케르는 스위스의 은행가였는데, 수완가이고 비즈니스맨이었습니다. 루이 16세가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발탁했던 사람입니다.

김민웅 : 소설 속에서 루이 16세는 재미있는 특징을 가진 왕으로 묘사됩니다. 사실 베르사유 궁전은 그의 할아버지였던 루이 14세의 지휘 아래 지어졌는데요. 하지만 루이 16세는 할아버지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루이 16세의 스타일이 어떤지 잠깐 들려주시지요. 그걸 이해해야 네케르와의 관계도 더 잘 이해가 갈 것 같습니다.

사토 겐이치 : 루이 16세는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웃음) 성실했고요. 루이 14세는 돈을 엄청나게 썼고 애인을 엄청 많이 만들었고 자식들도 많이 보았죠. 베르사유 궁전에서도 사치스런 낭비를 계속했기 때문에 결국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봉착했습니다. 아들이었던 루이 15세는 아버지의 그런 면을 무척 싫어했다고 하고요.

루이 16세 역시 할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마음을 이어받았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우유부단했고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그의 비극이었고, 혁명의 열기는 걷잡을 수 없게 됐죠.

김민웅 : 네케르가 삼부회를 소집할 때, 회의를 구성하는 귀족과 성직자와 평민 간의 세력 다툼이 심각한 문제가 되지요. 이때 미라보의 역할이 부각됩니다. 사토 씨께선 특히 미라보의 역할을 부각시키셨는데, 미라보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이었을까요?

사토 겐이치 : 루이 16세는 왕으로서 성실함을 갖췄고, 네케르에게는 비즈니스맨으로서의 수완이 있었죠. 대신 뛰어난 정치가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미라보가 등장해 정치력을 발휘하게 된 것입니다.

김민웅 : 미라보의 정치력을 좀 더 설명해 주신다면….

사토 겐이치 : 미라보는 젊은 시절부터 방탕했습니다. 아버지조차 그를 두고 내 자식이 아니라고 했을 정도죠. (웃음) 감옥살이를 했고, 한때는 유부녀와 염문을 일으키는 바람에 그 남편의 총에 맞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상당히 파렴치한 인생을 보낸 사람이었습니다. 프랑스 귀족의 부끄러움이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혁명이 벌어지니까 미라보의 풍부한 인생 경험이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가 아니면 초기 프랑스 혁명이 이뤄지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미라보 자신은 귀족이었지만, 혁명의 힘을 귀족에게 의존하지 않고 평민에게서 찾음으로써 혁명을 진행시켰습니다.

김민웅 : <소설 프랑스 혁명> 4권까지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은 미라보이지요. 그 외에 로베스피에르와 라파예트가 등장하면서 프랑스 역사가 바뀌게 됩니다. 특히 귀족 출신 라파예트는 미라보와 미묘한 경쟁 관계를 형성합니다. 그는 미국 독립 혁명과 프랑스 독립 혁명에서 각각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특별한 인물이죠.

사토 겐이치 : 라파예트는 조지 워싱턴의 친구였고 미국 독립 전쟁에 참전한 사람입니다. 신대륙인 미국의 장점, 즉 훌륭한 퍼포먼스를 겸비하였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을 리드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권 선언 역시 라파예트가 제안한 것이었죠.

ⓒ프레시안(최형락)

김민웅 : 이제 로베스피에르가 등장할 차례입니다. 처음엔 미라보와 함께 혁명을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정치적 입장이 달라지지요.

사토 겐이치 : 로베스피에르는 성실한 노력가이자 세상을 좋게 만들어나가려는 이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4권에서 그려지다시피, 혁명 초기 단계에는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세상의 부정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지만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고 해결해야 하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고요. 그런 상태의 로베스피에르가 노련한 정치가인 미라보에게서 정치력을 배워가는 과정을 4권에 담았습니다.

김민웅 : 1789년에서 1791년까지가 프랑스 혁명의 1단계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이때는 입헌 군주제를 유지하는 쪽으로 혁명이 진행되었죠. 이 부분에서 미라보와 로베스피에르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미라보에게는 개혁 정치와 더불어 왕정을 유지하는 게 프랑스를 안전하게 유지하는 길이었고, 로베스피에르는 끝까지 밀어붙이고 싶어 했죠.

사토 겐이치 : 미라보는 루이 16세를 이용하여 효과적인 정치 개혁을 꾀했지만, 루이 16세보다도 먼저 죽는 바람에 꿈을 이루질 못했습니다.

김민웅 : 왕이 어느 쪽에 서느냐에 따라 혁명의 진로가 달라지는 시기였지요. 미라보는 루이 16세를 이용하며 삼부회에서 평민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도록 하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는 루이 16세를 믿지 못했어요. 중간 중간 루이 16세가 음모를 꾸미거나 귀족과 손을 잡으려는 시도를 들켰거든요. 그래서 로베스피에르는 왕과 귀족에 대한 불신이 쌓여갔고, 결국 반혁명 세력을 철저히 차단하려는 단호한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조금 다른 얘기로 넘어가자면, 프랑스 혁명에서 여성들의 역할도 아주 흥미로워요.

사토 겐이치 : 앙시앙 레짐은 여성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로 대표된 궁정의 모습을 보세요. 지금으로 말하자면 쇼핑 중독의 시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웃음) 그런 의미에선 여성들이 딱히 손해 보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사실상 그녀들의 행복은 '주어진' 행복이었습니다. 요컨대 마리 앙투아네트는 루이 16세가 남편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입장에 그쳤다는 거죠.

1789년 10월 파리의 평민 여성들이 베르사유 궁전까지 행진합니다. 빵을 달라고 외치면서, 왕과 직접 얘기하겠다고 주장하죠. 그러면서 대체 왜 왕이 베르사유에 있는가, 국민들의 고생을 알아야 한다면서 파리로 데리고 옵니다.

김민웅 : 여성들이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와 귀족들을 데리고 파리로 돌아오는 광경을 보면, 루이 16세는 사실상 여성들의 인질입니다. (웃음)

사토 겐이치 : 여성들이 부르길, 왕을 왕이라 하지 않고 빵가게 주인이라고 부릅니다. (웃음) 자기들의 식량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라는 거지요.

김민웅 :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들이 <소설 프랑스 혁명>을 어떻게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나요?

사토 겐이치 : 우선 소설로서, 얘기로서 즐길 수 있길 바랍니다. 두 번째로는 지금 자기가 놓여 있는 국제 관계와 사회 환경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아시아인으로서 유럽의 역사를 다루는 소설을 쓰고 있는데, 저는 앞으로 아시아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아의 시대를 만들어가기 위해 유럽의 역사를 디딤돌로 삼고 싶습니다. 저의 그런 소망에 한국인 독자들도 참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리=김용언 기자)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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