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치아 치료를 맡은 치과 의사 친구는 평소에도 자주 만나는 친한 친구였다. 내 눈에 그 친구는 고등학교 시절이나 지금이나 껄렁껄렁하고 물러터진 사람 좋은 동네 친구였다. 그런데 신경 치료를 받으면서 그 친구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여러 차례 신경 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그가 보인 모습은 (당연히) 숙련되고 진지한 치과 의사의 모습이었다. 늘 그렇지만 가까운 곳에 있는 것들의 가치를 알아채지 못하는 것은 숙명인가 보다.
최근 들어서 물리학에서는 아주 근원적이고도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뉴트리노(중성미자)의 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빠른 것으로 측정되었다는 발표가 온 세상을 뒤흔들어 놓기도 했었다. 일단 해프닝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쨌든 그 수습 과정 자체도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던 사건이었다. 얼마 전에는 대형 강입자 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 : LHC) 실험 결과 힉스 입자를 '사실상' 발견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나는 이런 흥미로운 사건들에 대해서 일반인들에게 친절하게 해설하는 일종의 과학 토크를 몇몇 사람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물리학자 두 사람과 과학 소설(SF) 작가 한 사람과 함께 힉스 입자의 '사실상'의 발견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보통 검출된 신호와 잡음의 비율이 5 정도 되면 '발견'이라고 하는데, 얼마 전 LHC에서 발표한 값은 5에 약간 못 미치는 값이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로 '사실상'이라는 제한적인 수식어를 붙여놓은 것이다.
이 대담을 준비하면서 한참 책장에 묵혀두었던 이종필의 <신의 입자를 찾아서>(마티 펴냄)를 꺼내서 읽었다. 입자 물리학자인 이종필 박사와는 강연을 같이 하기도 하고 사적으로도 자주 만나면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의 강의나 강연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두 사람 모두 자기 강연을 하는 입장이었지 상대방의 강의나 강연을 듣는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쓴 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내 서재의 책장 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었지만 진지하게 읽어볼 기회를 갖지 못했었다. 이번에 <신의 입자를 찾아서>를 정독하면서 새삼 그의 강의도 진지하게 들어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치과 의사인 친구가 달라보였듯이, 친근한 이종필이 선생님처럼 새삼 다가왔다.
일반인들에게 과학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나를 포함한) 많은 과학자들이 고민했을 법한 바로 그 문제의식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그 분들의 궁금증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핵심적이었다. 양자역학이란 도대체 무엇이냐, 물리학자들이 생각하는 세상의 근본은 무엇이냐, 상대성이론에서는 왜 하필 빛의 속도가 중요하느냐, 쿼크라는 놈은 정말로 물질의 최소 단위냐, 요즘 과학자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 사느냐 등등….
이런 질문들은 대개 술자리에서 오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자리에서는 물리 공식이나 수학 방정식이 끼어들 틈이 없다. 오로지 말과 이야기, 진정한 '스토리텔링'만이 살아남는다.
이 책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그런 '술자리 이야기'를 고스란히 옮긴 글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자신의 편의를 가장 우선으로 생각했다고도 할 수 있다. 현대 물리학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주변 분들에게 어설픈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느니 아예 글로 남기자는 속셈이다. 책이라는 문물의 원초적인 쓰임새를 이제야 깨달은 모양이다.
기록으로 남기려는 결심을 하게 된 데에는 객관적인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 2008년은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입자 가속기가 가동되는 해이다. 전 세계 수많은 과학자들이 과학의 역사는 이 해를 매우 특별하게 기억하리라 확신한다. 분명히 술 마시러 나가면 사람들은 나에게 그것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물어볼 것이다."
▲ <신의 입자를 찾아서>(이종필 지음, 마티 펴냄). ⓒ마티 |
위에서 인용한 글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이종필이 주목한 것은 '스토리텔링'이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스토리텔링의 또 다른 핵심 중 하나는 전체 플롯이나 서사 구조보다는 이야기의 진행 과정에서 만나는 디테일한 재미라고 할 수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는 그런 원칙에 충실한 책인 것 같다. 과학의 경이로움은 단지 과학적 발견의 순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발견의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치열함과 우연성에도 깃들여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신의 입자를 찾아서>의 스토리텔링 전략은 적절해 보인다.
2008년에 예정되어 있었던 LHC의 충돌 실험에 자극받아서 썼다고 지은이가 밝힌 이 책은 역시 그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그 '대충돌'에 대한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번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어야만 한다. 우선 입자 물리학의 표준모형을 이해해야 LHC의 충돌 실험이 갖는 의미와 신의 입자라고 불리는 힉스 입자의 발견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표준모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입자'라는 아주 기초적인 물리학적인 개념에 먼저 익숙해져야만 한다. 그리고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물리 법칙에 대해서도 이해해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만나야만 한다. 첩첩산중이다. 더구나 지은이가 잘 지적했듯이 '과학책은 쉽게 읽혀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다. 그러니 더 난관일 터이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에서 이종필은 표준모형이 형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역사책을 쓰듯이 써내려가면서 이 난관을 극복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에 이루어진 물리학의 위대한 발견들을 하나하나 마치 옛날이야기처럼 스토리텔링하고 있다. 물리학적 발견의 결과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누가, 왜, 어떻게 그런 발견을 할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디테일하게 적고 있다. 마치 한 편의 옴니버스 소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과정에서 과학적 발견의 과정이 주는 경이로움을 독자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 이야기의 전개가 빠르고 재미있다.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과학적 발견과 마주치게 된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그 발견을 넘어서는 또 다른 발견의 과정이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씩 현대 물리학의 세계로 독자들을 이끌어가고 있는 책이 바로 <신의 입자를 찾아서>이다.
"양자역학의 세계는 이렇듯 전문가들조차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곧이어 등장하는 양자역학의 이야기들을 단번에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낙담하거나 자학하지 않길 바란다. 양자역학은 원래 어렵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가 유도하는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큰 산과 마주치게 된다.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이다. 물론 위에서 인용한 것처럼 독자들을 위로하면서.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은 여전히 어려운 이야기지만 현대 물리학 이야기를 하면서 꼭 한 번은 다루어야만 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론이기도 하다. 어렵다고 이 부분을 생략하고 현대 과학의 현상학적인 이야기만 하는 책들이 많은데, 나는 그런 책들에 대해서는 변죽만 울렸다는 가혹한 평가를 할 밖에 없다.
지은이는 이 거대한 두 산도 우회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물론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에 대해서 설명하는 책은 아주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직 물리학자가 자신이 이해한 것을 한글로 쏟아내는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이야기는 여전히 귀하고 소중하다. 더구나 이종필의 적절한 비유와 적합한 개념 설명은 두 이론에 대한 기본 개념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많지는 않지만 몇 권의 대중 물리학 책을 살펴봤는데 <신의 입자를 찾아서>에 실린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에 대한 설명은 '친절도'와 '이해도' 면에서 가장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처음부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우리말로 쓴 것도 당연히 큰 매력이다.
이종필은 친절한 글쓰기의 와중에도 입자 물리학자로서의 확고한 입장을 표하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에 대한 어설픈 철학적인 이해가 갖고 올 황당함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불확정성 원리는 종종 지나치게 확대해석 되어 결국 우리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진리란 없다는 주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것은 다시 절대적인 진리란 없다는 주장으로 나아가고 인간의 인식 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가져온다. 양자역학이 현대 철학에도 큰 영향을 끼친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현대 철학의 인식론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긴 하지만, 물리 전공자로서 생각하기에 그 '회의'는 좀 지나친 것 같다. 양자역학에서는 위치와 운동량의 동시적 정확성을 포기하는 대신 어떤 시스템의 파동함수를 가장 중요한 물리적 정보의 원천으로 여긴다. 이 파동함수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게 되면 '정확하게' 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양자역학에서는 진리라는 개념이 고전적인 의미의 진리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불확정성 원리로 인해 절대적인 진리가 불가능해졌다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진리의 실체(예컨대 파동함수)를 발견한 것은 아닐까? 양자역학에 기반을 둔 현대 물리학과 현대 과학은 역설적이게도 전례 없는 정밀도를 자랑하며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상대성이론은 진리의 상대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불변을 위한 현상의 상대성을 말하는 셈이다. 피카소의 <우는 여인>이라는 그림을 예로 들자면 아무리 보는 관점이 달라지더라도, 그래서 그 보이는 모습이 달라지더라도 울고 있는 여인의 실체가 바뀌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진리나 법칙이나 원리가 바뀌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본래 보편적이고 항상 적용 가능한 무엇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발견의 과정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의 디테일에 충실한 이 책은 드디어 표준모형에 다다르고 또 다시 '대충돌' 이야기로 돌아가서 끝을 맺는다. 233쪽에 실린 '표준모형의 입자 구성 도표'를 보고 '아하'라고 내뱉을 수 있다면 이 책의 의도를 충실히 따르고 내용을 잘 이해한 것일 것이다. 지은이는 표준모형의 불완전성과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런 문제점들을 극복하는 것이 미래의 과학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환상을 갖고 있는 물리학자 이휘소의 물리학적 실체에 대한 논의도 곁들인다. 표준모형의 형성에 그가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신의 입자를 찾아서>는 훌륭한 책이다. 과학적 발견의 결과뿐 아니라 그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이 돋보이는 책이다. 친절하고 재미있다. 살아있는 우리말로 쓴 멋진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이 쉽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지은이는 친절하지만 '쉽다고' 포장하지는 않는다. 정면으로 승부를 하되, 최선을 다할 뿐이다. 하지만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결과에 이르는 과학적 성취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책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책을 통해서 알맹이가 빠진 '쉽다'고 포장된 책 보다는 땀을 요구하지만 친절하고 스토리가 있는 책을 경험할 수 있어서 기뻤다. 그 정도의 감내 없이 경이로움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물리학 교과서는 2008년을 기점으로 완전히 새롭게 다시 써야만 할 것이다."
물리학계에서는 2012년 현재 힉스 입자의 발견을 '사실상'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리고 어쨌든 교과서의 내용도 바뀔 것이다. 이 무더운 여름 <신의 입자를 찾아서>를 통해서 이열치열, 오히려 땀을 흘리면서 21세기에 벌어지고 있는 프런티어의 현장을 이해하는 지적 교양의 대열에 동참해 보면 어떨까.
덧붙임. 눈에 띈 사소한 오타 하나. 242쪽 아래에서 세 번째 줄에 있는 문장 "사실 과학자들은 이런 결론은 내리게 된 이유는 실험적으로 왼손잡이 중성미자만 검출되었기 때문이다." 중에서 '결론은'은 '결론을'의 오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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