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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차라리 새누리당과 손을 잡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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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안철수, 차라리 새누리당과 손을 잡는다면…"

[정희준의 '어퍼컷'] 안철수, 희망인가 재앙인가

안철수 교수는 보수다. 부산의 의사 아버지와 자식에게 존댓말을 쓰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업의 CEO이자 서울대학교 교수인 그에게서 진보의 싹이나 징후는 찾을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새누리당으로 대변되는 보수가 아닌 진보 진영을 그의 대권 텃밭으로 삼았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치열한 지지율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이미 오차범위 밖 우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요리 보고 조리 보아도 보수인 그가 왜 새누리당과 각을 세우며 굳이 진보적 이상을 실천하겠다고 나서는가.

한국의 뒤틀린 정치 지형이 만들어낸 돌연변이 현상

그가 방송이나 책을 통해 주장하는 것들은 대부분 모범답안이나 원론적 수준의 이야기들이다. 사실 상식을 강조하고 합리적이고 공정한 사회를 말하는 것을 가지고 그가 보수인지 진보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지금의 안철수를 평하자면 그는 상식에 근거한 합리적 보수주의자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려는 인물이 아닌가 싶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새누리당과 함께 할 수 없다. 멀게는 친일파, 가깝게는 군사 독재 세력의 정신을 이어받은 지금의 새누리당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대단히 예민한 각 지역 토호 세력의 결집체이자 직능별 대변인들로 구성된 기득권 집단이다. 가진 자들과는 수많은 커넥션으로 얽혀 있는 이들은 서민들의 고충이 무엇인지는 아무리 쉽게 이야기 해줘도 잘 이해를 못한다. "표 떨어진다"고 하면 그때서야 듣는 정도다.

150여 명의 새누리당 의원들 중 상식에 근거한 합리적 보수로서 노블레스 오블레주가 무엇인지 아는 의원의 수는 양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덕목에 더해 (강용석 의원 제명이나 정두언 의원 체포 동의안 부결에서 보듯) 스스로에게 엄격한 보수주의자를 찾아보자면, 글쎄…닭발 하나면 되지 않을까. 게다가 '이명박'이라면 보수도 창피해 하는 분위기 아닌가.

안철수가 만들어낸 지각 변동

사실 꿈같은 이야기지만 안철수가 새누리당으로 들어가든 박근혜와 보수 후보 단일화를 하든 했다면 더 바랄 나위 없는 그림이 될 뻔했다. 안철수와 예를 들어 김종인이 함께 한다면 한국 근대사 100년 만에 처음 보는 '보수 혁신'도 그려 볼 수 있을 게다.

그러나 '불통'으로 상징화된 독재자의 딸이 버티고 있고 경제 민주화가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수준의 원내 대표가 이끄는 새누리당에서 안철수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자신의 참신한 이미지만 헌납하는 꼴이 될 것이다. 결국 그는 새누리당 아닌 대안을 찾아야 했는데 그것은 바로 보수가 아닌 진보 진영이다.

사실 그는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야권 후보가 되겠다든지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하겠다든지 하는 말을 한 적은 없다. 그러나 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가 구애에 나서고 문재인 후보는 공동 정부 언급까지 했다. 민주당이 안철수 한 명에게 끌려 다니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뉴시스

안철수로 인한 한국 정치의 득과 실

안철수가 단숨에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것은 기성 정치에 대한 실망과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이다. 민주당이 새누리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식적이고 서민 우선이기는 하지만 그들 역시 기득권에 집착하고 패거리 지어 정치를 해왔다. 모두들 민주당이 압승할 거라던 총선 때 새누리당은 당명도 바꾸고 빨간 옷 입고 젊은 인물들 공천하면서 김무성도 잘라버렸는데 참으로 비교되게 김진표 같은 사람을 공천해 참패했다. 그래서 결국 김두관도 박차고 나오게 했고 안철수까지 뛰어들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여도 야도 못 마땅한 상태에서 착해 보일 뿐 아니라 잘 생기기까지 하고, 또 참신할 뿐 아니라 능력까지 있는 그를 국민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정치학자들은 비판적이다. 민주 정치의 근간은 정당이다. 지금 여야의 후보들은 정당 안에서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문재인에 대한 비문의 공격은 비박의 공격보다 더 집요하고 거칠다. 문재인은 태클에 부상당할 지경이라고 했다. 그런데 안철수는 울타리 밖에서 기다란 막대기로 경기장 안을 휘젓고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러한 안철수의 행태를 두고 '민주주의 절차의 기반을 허무는 것,' '아주 위험하고 비민주적이고 무책임한 방식,' '장기적으로 정당 정치의 발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 학자는 "말이 안 된다"고까지 했다.

반면 긍정적인 지식인들도 많다. 안철수 현상은 '한국 현대 정치의 파행이 낳은 결과'로서 '정당 정치가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는 개혁 의지가 정당 외부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특히 안철수에 대한 지지는 '민주당의 대안을 찾으려는 현실적 열망'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사실 제3지대에서 출현한 대통령 후보들은 내가 아는 바로도 꽤 많다. 문국현도 있었고 허경영도 있었다. 1992년 당도 없이 나 홀로 미국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돌풍을 일으키며 결국 18.9퍼센트의 득표를 한 로스 페로도 있고 1997년 새로운 당을 창당해 영국 총선에 뛰어든 제임스 골드스미스도 있다. 굳이 이러한 전례가 아니더라도 구태의 기준으로 안철수를 비판할 필요는 없다. 길은 먼저 가는 자가 만드는 것이고 기준은 새로 만들면 되는 것이다.

안철수가 던진 혼란, 해결할 수 있을까

그러나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안철수의 행동은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그는 대선을 5개월 앞둔 지금도 확실한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그는 국민이 '동의해 주면 나가 (주)겠다'는 것인데 문국현도 허경영도, 로스 페로나 제임스 골드스미스도 그렇게 하진 않았다. 대통령에 대한 포부를 밝히고 공약을 통해 검증을 받아야지 '시켜 줄래, 안 시켜 줄래'를 먼저 묻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때 가서 공약을 만들 것인가. 순서가 바뀌었다.

나는 그의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이야기를 듣자 하니 큰 틀에서의 원론만 밝혔지 세부적인 내용, 예를 들어 '어떻게'에 대한 설명은 찾기 힘들다고 한다. 기존의 대권 주자들보다 실질적인 내용에서는 약한 듯하다. 물론 대통령쯤 되면 자신은 방향을 제시하고 실무는 임명직들이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정치인이나 전문인 지지 세력도 없는 상태에서 덜컥 대통령이 됐을 경우 국정을 어떻게 이끌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 문제는 현실적이면서도 더 심각한 문제이다. 그는 지금 제3지대의 후보로서 자신의 지지율 추이를 지켜보는 상태다. 어찌 보면 그는 홀로 관망하는 듯한 형국이다. 그렇지 않다. 그는 지금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진보 진영 또는 민주당과 심지어는 통합진보당까지 뒤흔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127명의 의원 중 경선 후보 8인의 캠프에 이름이라도 올린 의원의 숫자가 50명도 안 된단다. 이는 한 사람으로 결정되면 그 사람을 돕겠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사이에서 줄타기 하며 대기하고 있는 의원이 대다수란 뜻일 것이다. 결국 민주당 의원들조차 민주당 후보보다는 안철수를 더 신경 쓰고 있다는 말이다.

이는 통합진보당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탈당과 분당 이야기가 나오는 지금 많은 탈당자들은 '차라리 안철수'를 지지하겠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고 한다. 창당 때 많은 당원들이 신자유주의 세력이라는 이유로 국민참여당 쪽 사람들을 반대했을 정도로 진보의 선명성을 강조했던 당이다. 그런데도 당이 위기에 처하자 그 틈새에서 나오는 이름이 안철수다.

안철수는 지금 자신의 지지율만 높이는 게 아니라 동시에 기존 정당들의 기반을 휘저으며 완전히 흔들어 버리고 있다. 이는 진보 진영의 업보이기도 하다. 이제까지 얼마나 못난 짓을 많이 했던가. 그러나 이는 분명 안철수가 십분이라도 져야 할 책임이 될 것이다. 박명림 연세대학교 교수는 "민주주의 핵심은 정치적 책임성인데 안 원장은 매우 위험한 정치적 곡예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만약 "안 원장이 출마 포기하면 그것은 보수 후보의 지지를 강화하는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대권 얻고 당은 몰락?

물론 지금 물론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현격하게 낮아졌다. 그러나 안철수의 등장과 그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결국 새누리당이나 박근혜에 대한 타격이 아니라 오히려 의지를 함께 할 (것으로 보이는) 진보 진영에 타격을 주는 결과를 낳았다. '붕괴'라고 표현하기엔 과하지만 대선을 앞둔 진보 진영의 정당 입장에서는 존재의 가치가 거의 '몰락'하기 일보 직전이다.

특히 문제는 민주당 경선 이후이다. 현재 '문 대 비문'으로 대치한 형국인데 싸우는 모습이 인정사정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문재인만 공격하다가 결국 문재인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면 문재인을 중심으로 결집해 안철수와의 단일화 경쟁과 이후의 대선을 치를까.

혹 문재인이 민주당 후보가 되면 비문 4인은 표면적으로라도 결과에 승복하고 문재인 지지를 표명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들의 지지 세력 상당 부분은 안철수 쪽으로 갈 공산이 적지 않다. 그와 반대로 혹 비문 4인 중 한명이 민주당 후보가 되더라도 똑같은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지지자들 중 상당수는 안철수 지지로 돌아설 가능성인데 이들이 그럴 가능성은 더 크다.

정권 탈환은 물론 중요한, 최우선의 목표다. 그러나 그 와중에 정당 정치의 근간이 허물어져 버리는 것은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다. 특히 남의 집안을 다 헤집어 버리고 그 위에 서는 것은 아무리 목표 달성이 중요하더라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안철수는 지금 두려움을 가지고 무겁게 고민할 것이지만 이 문제도 안철수가 자신의 대권 도전 결정에 더하여 고민해야 할 문제다. 정치인이 될 거라면 말이다. 그가 가는 길은 새로운 길일 수도 있고 누구 말대로 정당정치의 후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지조는 지켜야

그리고 한 가지 더. 백만장자 로스 페로가 미 대선에 나섰을 때 그가 공화당의 표를 잠식할 것이 분명했지만 공화당은 그에게 입당이나 단일화 제의를 하지 않았다. 그냥 따로 갔다. 민주당에 지는 한이 있어도 정당으로서의 지조를 지켰다. 그래서 1992년 아버지 부시, 1996년 밥 돌 모두 클린턴에게 연패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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