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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피 냄새' 없으면 사랑이 아니야!

[박수현의 '연애 상담소'] 정미경의 '나의 피투성이 연인'

사랑이 의도적인 열정이 아니듯, 환멸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구나. (<나의 피투성이 연인>(정미경 지음, 민음사 펴냄), 130~131쪽)

미는 친구 진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진은 헤어진 애인이 자기를 사랑했다고 굳게 믿고 있다. 미는 진도 그녀의 이전 애인도 다 잘 안다. 진의 이전 애인은 어느 날 술을 먹고 미에게 고백했다. 진을 만나기는 하지만 실상 별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사실은 미에게 더 매력을 느낀다고. 물론 미는 그의 구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애인이 자기를 지극히 사랑한다는 판타지를, 만나면서도 헤어져서도 굳게 고수하는 진을 보면 화가 치민다. 미는 생각한다. 진은 애인이 아니라 자기 판타지만을 사랑한다고. 또 미는 단정한다. 진은 자신을 기만하고 있으며, 판타지 속의 사랑은 절대 사랑이 아니라고.

미는 다른 친구 선도 도통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선은 연인과 매일 싸운다. 싸우는 이유는 늘 치졸하기 짝이 없다. 애인이 사소하게 약속을 어겼다고, 말 한 마디 불친절하게 했다고, 선은 노상 트집을 잡는다. 선은 동성 친구들 사이에서는 관대하다는 평판을 가졌다. 그러나 애인을 대할 때, 선은 치사함 그 자체이다.

미는 선이 위선자가 아닌가 생각한다. 미가 보기에 선이 동성 친구들한테 베푸는 배려의 반이라도 애인에게 베푼다면 문제는 전혀 없을 것 같다. 미를 더욱 못 견디게 하는 것은 그러고도 선이 제 애인을 사랑한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친구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차던 미, 소설을 읽는다. 정미경의 '나의 피투성이 연인'(소설집 <나의 피투성이 연인> 중)이다. 서른하나의 나이에 남편을 교통사고로 여읜 여자의 이야기다.

그의 죽음 이후

▲ <나의 피투성이 연인>(정미경 지음, 민음사 펴냄). ⓒ민음사
유선은 작가였던 남편과 열렬한 연애 끝에 결혼했다. 남편의 사랑이 "너무도 견고해서 일생을 끌로 긁어도 닳지 않을 바위 같"(93쪽)다고 그녀는 믿고 있었다.

죽은 남편에 대한 애도가 채 끝나기도 전에 출판사 직원이 그녀를 찾아온다. 사람들이 남편을 잊기 전에 미완성 원고나 일기나 편지 같은 사적인 글들을 유고집으로 내자고 권유하며, 경제적 보상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암시한다.

그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일단 남편의 컴퓨터를 뒤져본다. 의아하게도 암호가 걸린 파일들이 존재했으며, 더욱 놀랍게도 그 파일들은 남편이 죽기 전 백일 간 다른 여자와 나눈 사랑의 기록이었다. "아아, 인생을 일천 번이라도 살아보고 싶다"(108쪽)는 그의 고백. 그녀는 그가 "혼인의 윤리"를 버리고 "열정의 윤리"를 선택했음을 깨닫는다.

남편의 외도에 맞닥뜨린 여인의 정경은 익숙하다. 그렇지만 원망과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 할 남편은 죽고 없다. 죽은 남편에 대한 상실감과 그리움만으로도 감정의 짐은 무겁고 무거운데, 거기에 배신이라니. 배신이란 상실감과 그리움마저 혼탁하게 만들어 버리지만, 상실감과 그리움은 아직도 빠져 나올 수 없는 질곡인 채로 남아 있다. 피 흘리는 상처에 처치를 받기도 전에 소금 벼락을 맞은 셈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사적인 글을 출판하자는 제의에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남편의 스캔들을 세상에 폭로하면 경제적으로도 보상받고 남편에게 복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비로소 깊고 어둡고 차가운 우물이 부부 간에 존재했음을, 자신은 그 우물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음을 깨닫게 된다. "정확히 이름 붙일 수만 있다면 그것이 외로움이든 슬픔이든 부끄러움이든, 미움이든, 박탈감이든, 배반이든, 모멸이든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무 많은 감정이, 쏟을 길 없는 상대를 향해 간헐천처럼 뜨겁게 예고 없이 솟아올랐다. 매번 소스라쳤고 매번 화상이었다."(111쪽) 그녀는 "제 삶이 어느 순간 전복되어 버린 듯한 혼란스러움"(114쪽)에 시달릴 뿐이다.

더욱 난감하게도, 그럼에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은 없어지지 않는다. "잠든 물새처럼 그가 M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다 할지라도 지금은 그를 안고 싶다"(130쪽)고, 유선은 되뇐다. "사랑이 의도적인 열정이 아니듯, 환멸도 마음대로 되지 않"(130~131쪽)기 때문이다.

출판사의 제의에 대해서도, 유선은 내적 분열에 시달린다. 사람들이 더 오래 남편을 기억하게 하고 싶어서 제의를 받아들일까 생각하면서도, 완벽한 아빠로 각인된 딸의 기억을 훼손하고 싶지 않아 거절할까도 생각한다.

그러면서 생활은 궁핍해지고 급기야 집을 내놓게 되자 딸마저 생활의 불안에 시달린다. 발레복 입은 소녀들의 화사함과 밝음을 딸에게 주고 싶었던 유선은 급기야 "연약한 것은 추한 것"(134쪽)임을 깨닫고 출판사의 제의를 수락하기로 한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유선은 마음을 바꾼다. 그녀는 남편의 컴퓨터가 텅 비어있었다고 거짓말을 함으로써, 출판사의 제의를 거절한다.

왜 그녀는 출판사의 제의를 거절했을까. 왜 남편의 외도 사실을 끝내 묻어두기로 한 것일까.

나는 믿는다, 내가 선택한 거짓을

마지막 결정 후 유선은 속으로 부르짖는다. "널 위해서가 아니야. 당신은 내 속에서, 언제까지나, 마지막 보여주었던 그 모습처럼, 나의 피투성이 연인으로 남아 있어야 해."(136쪽)

여기에서 우리는 낯설지 않은 연인의 심리를 보게 된다. 실상 보다는 판타지를 믿고 싶은 심리. 유선은 남편과의 사랑이 불완전했음을 까발리는 대신 남편과의 사랑이 사랑이었다고 인정하는 쪽을 택했다. 배신자로서의 남편 대신 연인으로서의 남편을 기억하는 편을 택했다. 그리고 관계의 실상인 외도로 인한 균열을 못 본 척하기로 한다.

어쩌면 유선은 자기기만의 달인 같다. 관계의 실상에 애써 눈감고 판타지 속에서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유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서두의 진도 그러하듯이, 종종 연인은 현실을 인정하기 보다는 제가 꾸며낸 판타지 속에서 기만적인 만족에 안주하려고 한다.

그런데 판타지 없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그는 나를 열렬히 사랑한다는 판타지는 연인에게 일종의 최음제이다. 이른바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하더라도 종종 실상은 두 개의 판타지가 빚어내는 오해의 협주곡이다.

사랑의 시작은 어떤가. 드물지 않게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판타지 혹은 오해에서부터 사랑은 시작된다.

이런 판타지는 서두의 진이나 유선의 경우처럼 자기기만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유선은 이 판타지를 지속하기 위해서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을 말소하려고 한다. 판타지는 자기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필히 거짓을 필요로 한다.

그림자 없는 것은 생명 없는 것

그러나 그뿐일까. 판타지는 그저 거짓에 기반을 둔 허약한 모래성일 뿐일까. 아니다. 실상 유선의 판타지는 더 지엄한 진실을 통찰한 결과이다.

"사랑이 아름답고 따스하고 투명한 어떤 것이라고는 이제 생각하지 않을래. 피의 냄새와 잔혹함, 배신과 후회가 없다면 그건 사이보그의 사랑이 아닐까 싶어. 당신, 전등사 갔던 날 기억나? 사랑도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어. 전등사를 보지 못한 그날을 전등사 갔던 날, 로 이름 지었듯 뭔가가 뼈져 있는 그대로 그냥 사랑이라고 불러주는 거지."(136쪽)

완벽한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친절하고 황금율의 배려를 베푸는 관계만이 사랑인가. 아니 오히려 그런 지나치게 예의 바른 관계는 사랑하고 거리가 멀다. 그런 도덕적으로 칭찬할 만한 관계는 덜 친할 때에 가능하다. 때로 미덕으로 가득 찬 관계는 친밀감의 부족을 증명한다.

일례로 사랑할 때 사람들은 때때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치사해진다. 친밀감의 확신이 유아기로의 퇴행으로 이끌기 때문이리라. 서두의 선처럼, 누구보다 연인을 가깝다고 느낀 나머지 온갖 치사하고 유치한 짓도 다 수용되길 은연중에 기대한다. 아름답진 않지만, 그것이 사랑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심리의 일환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야누스처럼, 사랑 그 숭고하고 거룩한 감정은 반드시 이면에 졸렬하고 유치한 감정을 거느린다. 사랑의 환희라는 빛 이면에는 질투, 소유욕, 의심, 치사함, 이기심 등 다종다양한 그림자가 존재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빛과 그림자를 거느리듯, 사랑 또한 그러하다. 그런데 그림자 없는 존재를 생명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림자는 분명히 아름답지 않지만, 그렇다고 없어질 수도 없다.

그림자 중 가장 어두운 것이 배신으로 인한 환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유선은 남편의 배신을 알았음에도 남편을 그리워하고 피투성이로 망가졌을지언정 남편과의 관계를 사랑으로 인정하려고 한다. 치 떨리는 배신과 환멸을 겪을 운명에서 자유로운 사랑은 어지간해서는 없기에.

이런 실상 앞에서 어떤 이는 '사랑, 그 따위는 없다'고 선언하며, 바리케이드 안에 스스로를 가둔다. 그는 사랑을 부정하며 관계 맺기를 기피한다. 그러나 어떤 이는 뭔가가 빠져 있는 그대로를 사랑이라고 불러 준다. 이는 어찌 보면 사랑이라는 판타지 속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처럼 보인다. 엄연히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라고 믿으며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만은 더 지엄한 진실을 수긍한 결과이다. 사랑의 그림자까지도 엄연히 사랑이라는 지엄한 진실. 그림자조차 사랑으로 수긍하고 포용할 때 연인은 성숙한다. 어찌 보면 사랑의 본질은 결핍이다. 사랑은 어찌됐든 피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고통과 상처와 환멸로 뒤범벅이 된 피투성이 기묘한 물체가 곧 사랑이다.

제목에 쓰인 "피투성이"는 "블러디(Bloody)", "잔혹함" 등 동일 계열의 말로 변주되며 소설에서 다양한 의미망을 거느린다. 그들은 우선 유선이 남편을 상기할 때 떠올리는 다양한 이미지를 지시하며 그때마다 남편에게 품었던 감정을 드러내지만, 궁극적으로 사랑의 다양한 본질을 의미한다.

첫째, 한참 열애할 때 블러디의 의미는 이렇다. "블러디는 서로의 손목을 날카로운 면도칼로 긋고 너의 동맥 속에 내 피를 흘려 놓고 싶었던, 혀를 깨물어 흘러나오는 너의 피를 삼키고 싶던 블러디", "데일만큼 뜨거웠던 39도의 블러디였고 너는 나의, 나는 너의 심장 자체를 원했던 블러디"(116쪽)이다. 여기에서 블러디는 서로의 피를 섞어도 좋을 만큼 합일에 이르렀던 열정의 국면, 황홀한 엑스터시의 순간을 뜻한다.

둘째, 유선은 피투성이가 된 남편의 시신에서 블러디 밸런타인을 떠올린다. "그의 멈추어버린 심장 속에 내 뜨거운 피를 전부라도 흘려 넣어주고 싶은 블러디 밸런타인"(116). 이때의 블러디는 이별의 고통이다. 이는 단지 남편과의 이별의 고통을 의미할 뿐 아니라 사랑의 본질까지 꿰뚫고 있다. 이별의 운명의 예정되지 않는 사랑은 없기에.

셋째, 유선은 남편의 배신으로 인한 지옥 같은 고통을 겪는다. 이때의 사랑은 배신으로 인한 환멸, 혼란의 결정체라는 점에서 블러디이다.

마지막으로 유선은 남편에 대한 사랑을 지키는 선택을 하면서 사랑 그 자체를 피투성이라고 수긍한다. 거짓과 혼란과 상처와 환멸이 뒤섞인 그대로, 황홀한 열정과 애끓는 이별의 고통까지 다 포함한 피투성이 자체가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이란 서로의 피를 섞어도 좋을 만큼 황홀한 합일의 순간을 보장하기에 잔혹하고, 이별의 고통을 필히 예정하기에 잔혹하지만, 또한 배신과 환멸을 그림자처럼 거느리기에 잔혹하다. 이토록 아름답지만 흠집투성이인 그것을 사랑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기에 사랑은 또한 잔혹하다. 이 모든 잔혹함이 뭉뚱그려진, 잔혹함의 총합이 사랑이라니. 사랑은 더도 덜도 아니라 딱 피투성이 그 자체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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