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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쳤는데 와 '억' 하고 안 죽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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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쳤는데 와 '억' 하고 안 죽노?"

[프레시안 books] 김형민의 <그들이 살았던 오늘>

'재미있을까?' <그들이 살았던 오늘>(김형민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서평을 제안 받았을 때 든 생각이다. 1년 365일, 그 하루하루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정리하는 책은 새롭지 않다. 웬만한 신문사와 방송사들이 지면 혹은 방송 시간을 메우는 데 심심찮게 활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인터넷에서 검색어 몇 개만 입력해도, 몇 년 전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렵잖게 알 수 있다. '식상하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이 든 이유다.

그럼에도 수락했다. 저자의 '요리' 솜씨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오만 가지 사건 중 어떤 것을 골라내느냐에 따라 역사를 다르게 구성할 수 있다. 어떤 재료를 택하느냐에 따라 요리가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렇게 고른 재료를 어떻게 손질하고 다루느냐에 따라 역사도, 요리도 달라진다.

김형민이라는 본명보다 '산하'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하다는 저자는 방송사 프로듀서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 '특명 아빠의 도전', 사회 밑바닥에 카메라를 들이댄 '긴급출동 SOS 24' 등을 연출했다. 이런 경력은 역사에 대한 저자의 관점과 맞닿아 있다.

역사란 "특별하게 빛나는" 사람들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특별하지 않을지라도 결코 빛나지 않을지라도"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던 이들이 살아낸 삶의 총합이기도 하다.

"특별하지 않을지라도 결코 빛나지 않을지라도", 민중가요 '민들레처럼'의 노랫말이다. 이러한 역사관에 따라 저자는 잊힌 사건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자신의 방식대로 치열하게 시대를 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 곳곳에 담았다.

▲ <그들이 살았던 오늘>(김형민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웅진지식하우스
그중에는 1929년 광주학생운동을 이끌었으나 좌익으로 몰려 한국전쟁 때 경찰의 손에 총살당한 장재성('빛고을의 스러진 빛, 장재성',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 발발), 1948년 여순사건 때 자신의 아들을 죽인 좌익 학생을 용서하고 수양아들로 삼은 손양원 목사('원수를 사랑한 아버지', 1948년 10월 21일 손양원 목사 아들 피살)처럼 한국 현대사를 웬만큼 접한 사람 중에도 모르는 이들이 많을 법한 인물들도 있다.

이와 달리 '빨치산의 전설' 이현상처럼 상대적으로 알려진 사람도 있다. 대중의 기억에선 많이 희미해졌지만 역사에 관심을 두고 있는 이들에게는 익숙한 사람들이다. 저자는 현실에서 패배하고 육신은 덧없이 사라졌지만, 짧았던 삶보다 훨씬 오래도록 이어질 정신을 역사에 남긴 이들의 삶과 투쟁을 애정어린 눈으로 짚는다. 부박해져만 가는 세태에 휘말려 점점 관심의 저편으로 밀려나는 이들을 복권시키기 위한 기억 투쟁인 셈이다.

1984년 이후 대학가에서 필독서처럼 여겨졌던 님 웨일스의 책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을 이끌었던 윤상원에 대한 서술에서도 이런 점은 잘 드러난다.

님 웨일스가 "한국인들은 나한테 와서 <아리랑>의 의미를 묻는다"고 냉소했듯, 우리는 우리 역사의 의미를 오랫동안 잃어버리고 살았다. (…) 우직한 사람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역사를 바꾼다. 그러나 그 우직하고 올곧은 사람들의 육신이, 그들이 사력을 다해 돌리는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 깔려 바스러지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그리고 수레 위에 앉은 이들이 우두망찰 그들의 존재조차 모른 채 바퀴를 재촉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1938년 10월 19일 서른다섯 평생을 조선 해방과 혁명에 들이부었던 한 창창한 젊음이 끝내 아리랑 고개를 넘지 못하고 굴러떨어졌다. ('스러진 아리랑', 1938년 10월 19일 김산 처형)

끝까지 총을 놓지 않고 싸우던 윤상원은 계엄군의 집중 사격을 받고 목숨을 잃는다. 그의 바지에는 전날 만났던 외신 기자들의 명함이 들어 있었다. 보안사 요원이 찍은 마지막 모습에서 그는 두 팔을 벌린 채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처럼 누워 있다. 사망한 뒤 누였던 매트 위로 불붙은 커튼이 떨어지는 바람에 그의 시신은 불에 그을린 참혹한 모습이었다. 광주가 이 나라의 십자가였다면 그는 그 위에서 못 박히고 창에 찔려 물과 피를 쏟으며 죽어간 목수의 아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역사에는 예수를 닮은 이들이 많다. 육신으로는 부활하지 못하였으되 수많은 청춘들의 결단과 노래 속에 부활한. 윤상원, 그도 그랬다. ('항쟁의 불꽃 꺼지다', 1980년 5월 27일 광주 시민군 지휘자 윤상원 사망)

기억 투쟁…저항의 역사에 대한 관심, 장삼이사에 대한 애정

"예수를 닮은 이들", "수많은 청춘들의 결단과 노래 속에 부활한" 사람들에 대한 저자의 애정은 책 곳곳에서 느껴진다. 한국인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저자는 1973년 미국이 뒷배를 봐준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목숨을 잃은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등 세계 각지의 "예수를 닮은 이들"의 삶도 풍부하게 다루고 있다.

저항의 역사에 초점을 맞췄지만 과거의 투쟁을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1894년 갑오농민전쟁에 관한 대목에서도 이런 점을 엿볼 수 있다.

우금치마저 없었다면 우리의 과거는 얼마나 더 부끄러워지겠는가. 하지만 냉철하게 그 오류를 분석하고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본보기로 삼는 것도 또 다른 역사 익히기다. 이것이 성공한 역사보다는 실패한 역사가 더 큰 스승이 되는 이유다. ('우금치 마루에 흐르던 소리 없는 통곡이어든', 1894년 12월 4일 우금치 전투)

지배 계급을 떨게 한(혹은 불편하게 만든) 사람들을 망각의 수렁에서 건져 올리려 한다고 해서 시쳇말로 운동권 논리에 갇혔다고 지레짐작하면 오산이다. 저자는 명동 한복판에서 소매치기에 맞서다 목숨을 잃은 청년 이근석, 시민을 구하려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가 불귀의 객이 된 여섯 명의 소방관 같은 장삼이사를 주목한다. 신문 사회면에 등장했다가 오래지않아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기 마련인 '특별하지 않은' 이런 이들도 <그들이 살았던 오늘>에서는 당당한 주역으로 부활한다.

그 소식을 듣던 날, 동료들은 안타까워하면서도 칼 앞에서 몽둥이라도 하나 들었어야 한다는 둥, 너무 무모했다는 둥 사설을 달고 있었다. 그때 한 선배가 그 구설들을 한마디로 틀어막았다. "용기 없으면 용기 있는 사람 존경이라도 하자. 그 사람이 그걸 몰라서 그랬겠나." ('명동 거리에 빛난 용기', 1997년 1월 10일 의인 이근석의 죽음)

난 자리. 불길이 일렁이고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낡은 살림집 안에 사람이 남아 있다는 말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기 자신을 들이밀었던 사람들의 자리였다. 그리고 그 '바보'들을 탓하던 젊은 소방관은 또다시 그 '바보'들의 난 자리를 채우러 가고 있었다. 자꾸만 뒤돌아보면서 발걸음을 옮기던 또 다른 '바보'의 뒷모습을 응시하다가 나는 그만 그토록 막으려 애썼던 눈물의 봇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여섯 소방관의 죽음', 2001년 3월 4일 서울 홍제동 화재 사건)

힘없는 사람들, 하루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당하는 데 익숙해져야만 하는 이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저자는 자연스럽게 노동자의 현실에 주목한다.

술자리에서 노무현을 욕하는 친구에게 섣불리 반박할 수 없는 것은 당시 행정부 수반으로서 노무현 대통령이 배달호로 시작된 죽음의 행진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인권 변호사 출신 노무현에게 일말의 기대를 품었던 그들은 그를 "대통령님"이라 호칭하며, "아버지에게 상담하는 마음으로" 호소했지만 노무현은 변칙적인 노동 탄압에 숨 막혀 가는 그들에게 "세상이 달라졌다"는 한마디로 외면해 버렸다. (…) 2003년 1월 9일 새벽,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아무에게도 미움 살 일 없이 살았던 한 선량한 노동자가 아무도 모르게 스스로를 불태웠다. ('불에 탄 호루라기', 2003년 1월 9일 노동자 배달호 분신자살)

1931년 강주룡과 2011년 김진숙…"모든 역사는 현대사"

저자에게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탈리아의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베네데토 크로체의 말)다. 이미 지나가버린 일로 치부하기에는, 과거가 오늘날에도 그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다는 말이다. 저자가 일제 때 노동 탄압과 여성 차별에 시달리다 평양 을밀대에서 고공 농성을 한 고무공장 노동자 강주룡에게서 김진숙을, 그리고 전태일과 김주익을 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단어 몇 개만 바꾸면 2011년 수백 일 동안 크레인 위에 매달려 있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호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김 지도위원은 "1970년 청계천 재단사 전태일의 유서와 2003년 한진중공업 노조 위원장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라고 통탄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1931년 을밀대 지붕 위에 광목을 비끄러매고 올라간 이와 2011년 크레인 출입문을 용접해 버린 채 허공의 감옥에 스스로 갇힌 노동자의 호소는 80년 세월을 뛰어넘어 비참하게 일치한다. ('고공 농성의 효시, 떨어지다', 1931년 8월 13일 평양 노동운동가 강주룡 사망)

<그들이 살았던 오늘>에서 눈에 들어온 것 중 하나는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이었다. 1987년 6월 항쟁의 불을 지핀 박종철 열사에 관한 대목을 살펴보자.

만원 버스의 라디오 뉴스에서 강민창의 '탁 치니 억' 소식을 들으며 등교한 날, 1교시는 국어였다.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오시자마자 갑자기 출석부를 교탁에 힘껏 내리쳐서 엄청난 소리를 냈다. 평소에 '난폭한' 선생님이 아니었기에 '와 저카지?' 기겁을 하고 쥐 죽은 듯 조용했는데 선생님이 피식 웃으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탁 쳤는데 와 억 하고 안 죽노?"

(…) 어느 날, (부산) 서면의 한 골목에서 백골단이 학생 하나를 짓밟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놔, 이 개새끼야, 빨리 안 놔?" 유달리 '사랑의 매'를 잘 들었던 선생님들 탓에 어지간한 폭력 신은 대수롭지 않던 나의 기가 질릴 만큼 끔찍한 구타였다. 사색이 되어 지켜보던 내 눈에 학생이 끌어안고 있던 물건이 포착되었다. 눈동자 초점이 나가고 입에서 피거품이 나올 지경으로 두들겨 맞으면서도 꽉 쥐고 놓지 않은 것은 박종철 영정의 초상화였다. 백골단은 그걸 빼앗으려 들지는 않고 "내놓으라"고 소리만 치며 학생을 폭행했다. 아마도 항복받기를 원했던 것 같다. 장장 15분이 넘는 폭행 끝에 백골단은 액자를 손에 넣고 박살을 냈다. ('종철은 무엇을 지키려 했던 것일까', 1987년 1월 14일 대학생 박종철 사망)

이것만이 아니다. 김광석이 세상을 떠난 날 편집실 밖 책상에 조촐한 술상을 마련하고 시대의 가객을 추모한 일('끝내 일어나지 못한 우리의 가객', 1996년 1월 6일 가수 김광석 자살) 등 저자의 경험은 곳곳에서 전면에 드러난다. '여섯 소방관의 죽음'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에 더해 한국전쟁 당시 흥남 철수('내 평생의 찰떡', 1950년 12월 14일 흥남 철수)를 다룰 때는 가족의 체험을 부각시킨다.

역사를 객관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봐야 한다고 보는 이들 중에는 저자의 이런 방식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청년 이근석'과 '여섯 소방관'처럼 기억하는 이가 거의 없는 인물과 '무하마드 알리'처럼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특별한 사람을 같은 비중으로 다루는 것에 의구심을 품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다르게 생각한다. 순전하게 객관적이기만 한 역사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물론 역사를 재구성할 때 경험은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 예컨대 '너희들 그때 살아봤어?'라는 태도로 믿기 어려운 자기 자랑을 너절하게 늘어놓는 일부 인사들 같은 사례가 경험이 독으로 작용하는 경우다.

그러나 저자의 방식은 그렇지 않다. 박종철이 죽던 때 고등학생이던 저자가 겪은 일들은 그 시대의 풍경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또 하나의 역사다. 요리에 비유하자면, 주재료에 경험이라는 양념이 잘 배어들어간 모양새다.

많은 부분을 공감하면서도 '나라면 조금 다르게 구성할 텐데', '이 사안을 더 크게 다루고 저 사안은 지금보다 작게 다루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도 물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들이 살았던 오늘>은 '산하'가 재구성한 역사이고, 인정하고 존중할 만한 가치가 있음을 충분히 느끼게 해줬다는 것이다. '재미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책장을 넘기는 동안 눈 녹듯 사라진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가 대한민국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다룬 사례는 대부분 낯설지 않았다. '역사 좀 안다'고 으스대려는 건 결코 아니다. 그럴 처지가 못 된다. 그럼에도 '낯설지 않았다'고 말하는 건 필자 역시 저자와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필자도 저자처럼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으나 수업에 열심히 들어간 기억은 별로 없다. 학교를 떠난 후 역사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진 것도 저자와 마찬가지다. 그에 더해, 저자가 자신의 페이스북 등을 통해 역사에 관한 글을 쓴 것과 비슷하게 필자도 근현대사 연구 성과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정리하는 일을 부업 삼아 하고 있다.

그래서 안다. <그들이 살았던 오늘> 정도로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작업임을. <그들이 살았던 오늘>은 인터넷을 검색해 몇몇 사실들을 적당히 오려붙인 후 '책'이라고 우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도 반가운 책이다.

마지막으로, 일상에 매몰되지 않고 시간을 내서 역사 이야기를 재구성하며 저자가 독자와 공유하고 싶었을 것 같은 대목을 하나 소개한다.

가장 먼저 단두대에 오른 것은 조피였다. 재즈를 좋아하던 평범한 여대생의 목이 잘려 나갔다. (…) 그리고 한스가 죽었다. (…) 칼날이 떨어졌고 백장미들은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독일이 가장 부끄러웠던 시기를 조금이나마 가릴 수 있는 장미꽃이 되어 남아 있다. 그들이 외쳤던 한마디는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에게도 여운이 크다. "당신은 독일의 모든 것이 당신과 당신의 행동에 달려 있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당신이 독일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도 우리가 대한민국이다. ('독일의 백장미 피어나다', 1943년 2월 18일 반나치 운동가 숄 남매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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