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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언론의 본심 "가난하면 병들어 죽어라!"

[서리풀 논평] 가난과 질병의 악순환을 끊어야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매주 한 차례 발표하는 '서리풀 논평'을 동시 게재합니다. (사)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비영리 독립 연구기관으로서,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연구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가난과 질병의 악순환을 끊어야

2010년 현재 빈곤층은 340만 명에 이른다. 최근 국무총리실이 발표한 2010년 빈곤 실태 조사결과가 그렇다. 이 숫자마저 실제보다 적게 잡힌 것이다.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00~120퍼센트에 속하는 이른바 차상위 계층을 포함하면 빈곤층 규모는 570만 명으로 늘어난다. 열 사람에 하나 꼴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그래서 가난은 아직도 아주 가까운 문제다.

현실은 상대적 빈곤이니 절대적 빈곤이니 하는 개념 구분을 무색하게 한다. 건강과 의료 문제만 해도 그렇다. 만성 질환자가 있는 가구 비율은 전체 가구가 22.4퍼센트인 반면, 기초 수급 가구는 63.8퍼센트 차상위 가구는 58.3퍼센트로 비빈곤 가구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의료비가 부담된다는 가구 비율도 마찬가지다. 전체 가구는 33.1퍼센트였으나, 기초 수급 가구는 45.5퍼센트, 차상위 가구는 52.7퍼센트가 부담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비수급 빈곤층은 11.8퍼센트가 치료를 중도에 포기한 경험이 있었고, 포기한 이유 중 90.9퍼센트가 치료비 부담 때문이었다(<한국일보> 2012년 6월 5일자).

사실 이런 조사 결과는 놀랍거나 예상을 벗어난 것이 아니다. 경제 위기를 극복했다는 자화자찬이 이어졌지만, 가난은 여전히 한국 사회의 한 단면임을 누구나 안다. 어느 정도 건강 보장 제도가 갖추어졌다지만, 중산층에게도 의료비는 부담스럽다.

익숙한 가난에 대응하는 방식 역시 낯익다. 2012년 제2차 사회보장심의위원회에서 확인된 핵심 전략은 변함없이 대상을 분리하고 개인화한다는 것이다. 다만, 빈곤층을 다시 나눠 차상위와 기초 수급자를 대비시키는 것이 좀 달라졌다. 더 '세분화'했다고나 할까.

분리와 개인화는 우리 사회 기득권층이 가난을 이해하는 방식과 맞물려 있다. 아니나 다를까, 빈곤층 소득이 역진적이고(<한국경제>의 제목에는 소득 역전 앞에 "황당한"이라는 표현이 붙었다), 모든 혜택은 수급자가 '독식'한다는 해석이 쏟아졌다.

다시 봐도, 차상위도 어려우니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은 찾을 수 없다. 기초 수급자가 혜택을 독차지하고, 한번 수급자가 되면 무슨 수를 쓰든 유지하려고 하며, 광범위한 '도덕적 해이'가 의심된다는 것이 논지의 핵심을 차지했다.

압권은 한 신문의 제목이다. "공짜 복지에 '빈곤 역전'"을 1면에 가장 큰 제목으로 뽑았다(<세계일보> 2012년 6월 5일자). 공짜 복지라니, 막상 기사 본문에는 저소득층에 돈을 지원하는 정책의 결과가 소득 역전이란다. 빈곤층을 일하도록 만들어야지 돈을 지원하면 공짜 심리가 생긴다는 소박한(?) 그러나 본심을 드러낸 진단이리라.

내놓고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정부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정책을 마련한 것 같다. 물론 비수급 빈곤층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것도 과제에 들어있다. 하지만, 여기에는–너무나 익숙한 표현으로–우선순위와 재정 영향을 고려하여 관계 부처 간 협의를 통해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그보다는 대상자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겠다는 뜻이 앞서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정부 문서를 읽을 때처럼 숨은 뜻을 해석할 필요도 없이 아예 명확하게 밝혀 놓았다. 기초 수급자에 집중된 부문별 복지 혜택을 차상위 계층으로 조정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이 문제만큼은 정책도 일관성을 보인다. 의료 급여 대상자에게 새로 본인 부담금을 물리는 것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집중된 혜택을 차상위 계층으로 조정한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빈곤도 의료 급여도 답을 찾을 수 없다. 실태 조사 결과가 보여 주듯, 기초 수급자는 일부 혜택을 받는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고단하고 팍팍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말이 그렇지 조정하는 것이 쉬울 리 없다. 그나마 이들이 받는 혜택을 조정하자고 하면, 기초 수급자와 차상위 계층 사이에 새로운 갈등이 일어날 것이 뻔하다.

무엇을 기준으로 하든, 의료 급여 대상자는 확대하는 것이 맞다. 혜택의 수준이나 본인 부담 문제도 마찬가지다. 일부 사람들은 '도덕적 해이'를 말하지만, 공짜 복지와 '복지 병'의 시각을 벗어나지 못한 주장이다.

인도적이고 정의에 부합하는 안전망의 원리는 비록 열 사람이 낭비를 한다 한들 꼭 필요한 한 사람을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까지 연구 결과를 보면, 낭비한다고 몰아세우는 것은 의도가 의심스러운 근거 없는 주장에 가깝다. 심지어 낭비를 인정하는 경우라도 의료 급여 수급자가 모두 책임질 일은 아니다.

또 한 가지, 의료 급여는 가난한 사람이 공짜로 병원에 갈 수 있게 해주는 단순한 제도라고 할 수 없다. 건강과 의료는 가난과 밀접하고, 그래서 의료 급여는 빈곤 예방과 빈곤 탈출에 연결되어 있다.

건강이 나빠지면 새로 가난해지거나 가난이 더 심해진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와 반대 방향으로, 가난하면 건강이 나빠진다는 것도 정설이다.

이런 건강과 가난의 고리는 당대에 그치지 않고 대를 이어 계속된다. 부모가 가난한 집 아이는 대체로 건강이 더 나쁘고, 그 결과 교육과 기술 습득이 부진한 경우가 많다. 성인이 된 이들이 좋은 일자리를 구하고 제대로 된 경제 활동을 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가난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이들의 건강 역시 좋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말하자면, 가난-건강-교육-노동-가난의 고리로 이어지고 되풀이되는 '사회적 유전'을 피하기 어렵다.

가난이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 제대로 된 복지이고 사회 정책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한 요소인 의료 급여 역시 가난과 건강의 사회적 유전을 예방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의료급여가 지향해야 할 정책 방향은 명확하다. 가난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많은 사람들을 포함하고, 또한 충분한 수준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대상 범위를 모든 빈곤 인구로 확대하고, 있던 본인 부담도 줄이거나 없애야 한다.

덧붙이는 말. 의료 급여가 가난을 예방하거나 가난에서 탈출하는 데에 어떤 역할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제대로 분석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의료 급여 정책의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러고 보니, 기초생활보장제도 전체가 빈곤의 심화를 예방하거나 빈곤에서 탈출하는 데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참고 자료

국무총리실. 2012년 제2차 사회보장심의위원회 보도자료. 2012년 6월 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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